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62화 (62/127)

十二장. 요괴 토포사. (4)

상호와 임충이 도착하니 어수선한 분위기로 모여 있던 이들은 그 둘을 바라보았다.

두정갑을 입은 군관부터 갓에 도포까지 입은 젊은 양반, 심지어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산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철사수염의 사내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있었다.

‘다행히 임 무관이 내 생각대로 차별하지 않고 모아온 것 같네.’

이미 의병들과 숱하게 함께 싸워왔기에 출신이나 그런 것은 전혀 따지지 않는 상호였다.

상호는 서른 명의 사내 중 먼저 첫 인상이 강하게 들어왔던 자들부터 말을 걸었다.

“당신 이름은?”

“···노유명이라 하오.”

특이하게 검은색 삿갓과 장포를 입은 얼굴선이 날카로운 사내는 짧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전체적으로 거친 인상에 뺨엔 흐릿하게 검흔이 남아 있는 게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꽤나 험한 일을 한 자로 보였다.

이에 상호는 다시 물었다.

“보아하니 실력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지?”

“한양 시전거리에서 자릿세를 받으며 살았소.”

올해로 32살인 노유명은 조선 시대의 깡패라 할 수 있는 검계에 속한 자였다.

검계는 살인, 강도, 약탈, 부녀자의 겁간을 자행하며 살인 청부도 마다않고 하는 위험한 자들이 모인 집단으로 소속원 모두가 무예가 출중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서울 검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실력이 뛰어난 노유명은 전란이 벌어지면서 각자 제 살길을 찾아 도망친 다른 검계 소속원들과 다르게 스스로 의병에 가담하여 지금까지 여럿의 왜병을 베어 쓰러뜨린 자였다.

상호는 옆에 선 임충의 귓가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귓속말로 말했다.

“저기 임 무관님. 제가 분명 인성 쪽도 살펴달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저도 출신 때문에 좀 망설였지만 주변의 평판이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고 타인과도 교류가 적을 뿐, 딱히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일이 없다고 하여 뽑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호는 노유명이라는 사내가 범죄 집단에 있었다는 사실이 끝까지 찝찝했다.

하지만 실전에서 왜군을 여럿 벨 정도로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가진 노유명을 내치기는 아까웠다.

일단 곁에 두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일단 노유명을 낙점했다.

이어서 상호는 여럿의 인물 중에서도 눈에 들어왔던 또 다른 인물 앞에 섰다.

중인 신분인 듯 초립을 쓴 20대 중반의 남성으로 딱히 싸움 실력이 특출하거나 체력적으로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상호가 그를 눈여겨 본 것은 모인 자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을 보는 시선에 강한 호기심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제물포에서 역관 일을 했던 조인환이라고 합니다.”

“역관이면 외국어에 능통하겠군.”

“왜어와 중원 말을 할 줄 압니다.”

조인환의 말에 상호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자를 채용했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아까 날 꽤나 주목하던데 그럴 말한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군.”

“제가 듣기론 여러분께선 요괴들을 토벌하여 신통력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신통력을 얻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 그만 결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

신통력, 즉 스킬에 대한 얘기를 접하고는 그것의 정체를 궁금했던 모양이다.

상호는 조인환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에게 보여줄 겸 ‘물의 속성력’을 살짝 일으켜 허공에 무수한 물방울을 띄웠다.

“허억!”

“진짜 신통력을 부리는 도사였구먼.”

미리 설명을 들었던 사람들도 이 광경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특히 조인환은 감격해하는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번 능력을 보여주니 그 뒤에 상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바뀌었다.

“전 이래보여도 동네에서 장사 소리를 들었습니다요.”

“내가 이래보여도 곰도 잡은 몸이오.”

저마다 뽑히기 위해 열성적으로 자기 어필을 했다.

하지만 상호는 섣불리 사람을 뽑지 않고 인상과 행동거지, 그리고 대화를 통해 신중하게 인원을 추렸다.

최종적으로 낙점된 인원은 앞서 뽑은 노유명과 조인환과 두 명의 인물이었다.

추가로 뽑힌 두 사람 또한 이력이 꽤 독특했다.

“명령을 주셔유.”

더벅머리에 덩치는 산만 하지만 약간은 어리숙하게 보이는 청년이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말한다.

그의 이름은 떡쇠.

사노비로 주인을 따라 의병에 참가한 그는 이곳 군영에서 힘 하나는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점과 또 천성이 순하지만 동료의 위급함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는 증언 때문에 뽑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상호는 이 자와 대화하면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열다섯이라고?”

“네 그러유.”

“하···그렇구나.”

딱 얼굴과 덩치만 봐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데. 내심 이렇게 생각하면서 상호는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여기에 또 한 명은 관군에 속한 일반 병졸이었다.

말단 병사에 딱히 특별해보이지 않는 평범한 20대 초반의 이 병사를 뽑은 것은 그의 특별한 재능 때문이었다.

탁!

무려 50보나 떨어진 위치에서 나무 기둥에 올려 있는 호두가 여지없이 날아든 돌멩이에 의해 다른 곳으로 튕겨나갔다.

잇따라 돌에 맞아 떨어지는 호두 알들.

오석견은 회전력을 실어 천에 들어간 돌멩이를 정확하게 노린 표적을 향해 날렸다.

소싯적부터 재미삼아 익힌 기술이라는데 그 수준이 아주 대단했다.

물론 단순한 돌팔매질로는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호는 이 재주를 살릴 방도를 알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팀이 짜였다고 봐야겠지.”

본인까지 포함해 총 일곱 명의 인원으로 소규모 팀을 꾸렸다.

아직 다른 조력이 필요하지만 충분히 경험을 쌓고 몬스터 코어로 능력을 강화한다면 단독으로 Ⅰ단계 몬스터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이렇게 상호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서 왜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전쟁이 벌어지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북진을 거듭한 20만의 왜군.

그러나 국왕이 궁궐을 버리고 도망친다는 왜국의 장수들의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지고 거기에다가 복병인 조선 수군과 그리고 의병에 의해 발목이 묶이는 상황에 빠지면서 초기의 기세를 잃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터무니없게도 요괴들의 습격을 받아 소규모 부대들이 잇따라 몰살당하는 일까지 벌어지니 왜군 지휘부는 아연질색 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왜군 총대장인 우키다 히데이에는 최전방에 있는 1,2군의 사령관을 제외한 나머지 사령관들을 김해로 모아 대책 회의를 열게 된다.

“전쟁을 시작하고 벌써 삼 개월이 흘렀다. 태합께서 제시한 날짜를 한참 벗어난 지금도 아직 우리 군은 조선을 함락하긴 고사하고 그나마 점령한 지역까지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겨우 스물 밖에 되지 않은 젊은 총대장의 말에 좌우로 자리한 각 군의 사령관들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조선을 함락하고 곧장 중원까지 차지한다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주장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바다 건너 본토에서 진격이 멈춘 것에 대해 크게 노여워한다는 것을 여기 있는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항변할 말이 있는지 한 명의 왜장이 고개를 꼿꼿이 들며 입을 뗐다.

“본국은 지금 이곳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소.”

“구로다 공.”

칠흑의 갑주를 입은 제 3군의 사령관인 구로다 나가마사는 다혈질의 성격답게 거침없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점령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조선인들이 무기를 들고 나타나 빈틈을 찔러대고 있고 바다에서 이순신의 함대에게 연전연패해서 서쪽 바다를 통해 보급을 한다는 계획 자체가 실패한 덕에 전방의 병사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싸우고 있소.”

“크흠.”

구로다 나가마사의 말에 특히나 불편함을 드러내는 이는 얼마 전에 한산도에서 대패를 당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였다.

무려 73척의 함대를 갖고 서해를 지나 평양까지 나아갔어야 했지만 이순신 장군의 매복 전술에 보기 좋게 당해 함대 대부분과 가신들까지 잃고 본인도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어 무인도에 간신히 도망쳤어야 했다.

무려 무인도에서 열흘이나 갇혀 미역을 씹으며 간신히 살아남았고 겨우겨우 탈출에 성공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그런 만큼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괜히 찔끔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하고 구로다 나가마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요상한 괴물들까지 나타나니 병사들의 사기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오.”

“정말로 그런 요괴가 이 땅에 있는 것이오, 구로다 공.”

“이 몸이 허언이라도 했단 말입니까. 이 칼로 요괴의 목을 몇이나 베었소이다!”

의심하는 기색이 내비친 7군 사령관 모리 데루모토에게 구로다 나가마사는 왈칵 화냈다.

순간 반쯤 일어난 구로다 나가마사의 태도에 모리 데루모토는 얼어붙은 모습을 보였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좋지 않자 정좌한 채 있던 우키다 히데이에는 강하게 무릎을 치며 나섰다.

“두 사람 다 그만두도록.”

“으음.”

“칫!”

중재에 두 사람은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우키다 히데이에는 구로다 나가마사에게 물었다.

“요괴를 퇴치했다면 어찌 시체를 가져오지 않을 것인가?”

“베어낸 머리를 가져오려고 했소. 하지만 기이하게도 시간이 흐르자 그것들은 죄다 사라져버렸소이다.”

몬스터 시체가 이 세계에선 시간이 흐르면 존재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우키다 히데이에는 물론 왜장들 대부분이 쉬이 이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아까의 일도 있고 해서 더는 이 문제를 따지고 들지 않았다.

“조선 땅에 이토록 많은 요괴들이 나타나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군.”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본국에서는 이런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키다 히데이에는 최근 본국에 다녀왔던 봉행 나츠카 마사이에에게 질문했다.

이에 나츠카 마사이에는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오사카 성에 다녀오는 동안에 여러 지방을 들렀지만 어디서도 요괴의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참 다행이군.”

자신들의 영지가 이곳 조선에서처럼 요괴들이 나타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기 모인 모든 왜장들은 일단 안심했다.

우키다 히데이에는 다시 말했다.

“첩자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명국의 대대적인 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 되면 평양성에 있는 고니시 공이 꽤나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명군이 도착하면 조선 공략이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니 그 전에 조선 국왕을 붙잡고 이 땅의 백성들이 우리에게 무릎을 꿇게 해야 한다.”

속전속결을 주장하는 우키다 히데이에의 말에 다른 왜장들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우키다 히데이에는 한 쪽에 펼쳐진 조선 전도를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경상우도 공략에 방해가 되는 진주성을 공략하는데 나 우키다 히데이에가 나설 것이다.”

비록 명목상이긴 하나, 총대장인 우키다 히데이에가 직접 나선다는 것은 그만큼 진주성 함락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각지에서 점령지 내에서 날뛰는 조선인들과 요괴 토벌은 7군이 주도해 실행하도록 한다.”

애당초 후방 예비대의 성격이 강한 모리 데루모토의 7군이 의병과 요괴들을 찾아 섬멸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진주성을 무너뜨려 소백산맥을 넘어 전라도 공략의 교두보를 확보한 다음 곡창 지대를 점령해 보급을 원활하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최근 남해까지 빠르게 장악해가는 조선 수군의 거점을 빼앗아 다시 한 번 수군이 서해 바다로 진출하게끔 만든다는 게 이번 작전의 의의였다.

여기에 내내 신경을 건드렸던 의병 세력과 점령지 곳곳에 불쑥 나타나 피해를 주는 몬스터까지 제대로 잡아 족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상호 일행이 남쪽으로 향하게 될 시기에 겹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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