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61화 (61/127)

十二장. 요괴 토포사. (3)

토포사가 됨으로써 상호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더 이상 광해군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어디서든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향후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을 주된 일로 삼게 될 이 시대의 헌터들을 상호 본인이 목표로 하는 계획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권력을 쥘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게 문제란 말이야.’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켰던 김덕령을 역모로 몰아 목을 자르고 누구보다도 큰 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을 억울한 누명을 씌워 백의종군하게 만든 선조이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대뜸 관직을 받은 상호를 결코 좋게 볼 리가 만무했다.

잘하면 삭탈관직이겠지만 운 없으면 죄인이 되어 목이 잘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이미 받은 관직을 바로 내려놓을 수도 없는 노릇.

‘선조가 나에 대해 알기 전에 이쪽 나름대로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상호는 최악의 경우로 조선의 조정과 척을 지더라도 이쪽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대책을 시급히 세우기로 내심 결심했다.

어쨌든 이렇게까지 해서 토포사라는 직위까지 내려줄 만큼 광해군은 상호에 대해 두터운 신뢰를 갖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 제대로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음 행보를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출발 날짜를 앞당기기로 일행과 협의를 끝내고 상호는 잠시 군영을 거닐었다.

막 전투 하나를 끝낸 뒤라 어수선한 분위기의 군영 내를 유유자적 걸었지만 상호의 내심은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광해군이 내린 관직이 미칠 후폭풍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앞으로의 싸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와이번 같이 병장기만으론 싸우기 힘든 적을 상대할 때 쓸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묘향산에서 싸운 와이번의 경우를 생각하면 중화기의 필요성을 느끼는 상호였다.

와이번 정도의 대형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무기라면 기껏해야 대장군전 같은 대형 투사체를 날릴 수 있는 천자총통뿐이었다.

그렇지만 천자총통은 성이나 판옥선에서 고정해서 사용하는 무기이지 도수 운반으로 옮겨가며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끄응! 내가 아는 지식으론 쓸 만한 무기를 만들어 볼 수도 없는데.”

상호는 제식 무기에 대한 사용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격발 때 예상치 못한 불발 상황을 막는 총기 손질 정도일 뿐이지 부품 하나하나 세세하게 아는 것이 아니다.

대체 역사 소설을 보면 잘도 시대를 뛰어넘는 소총과 대포를 만들지만 막상 그것을 가능케 하려면 전반적인 지식을 제공해야함은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제대로 된 생산 공장을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조건들을 전부 수립하려면 조선 조정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많은 장인들을 모아 머리를 쥐어뜯어 현대 무기와 이 시대의 무기를 접합할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전쟁 통에 몬스터 토벌이 시급한 지금 시기에 무기 제작 같은 것에 시간을 뺏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뭔가 쓸 만한 무기가 없을까.”

고민하며 군영 내를 거닐던 상호의 눈에 문득 하나의 화포가 눈에 띄었다.

크기는 여수에서 탔던 판옥선에 보았던 천자총통과 승자총통보다 작고 위에 손잡이 같은 게 달린 화포가 거치대 같은 데에 올라가 있었다.

철로 되어 무거워 보이긴 해도 크기는 한 사람이 어찌어찌 들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생소한 이 무기를 본 상호는 걸음을 멈추고 그 근처에 서 있던 군관에게 말을 걸었다.

“이 화포의 이름은 무엇인가?”

“불랑기포라고 합니다.”

상호가 보인 패를 본 군관은 바로 공손하게 답했다.

이 말에 상호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불랑기포? 어디선가에서 들어본 이름인데.”

천자총통이나 승자총통 같은 경우엔 꽤 알려진 터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불랑기포에 대해서는 바로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불랑기포는 조선 시대에 관련된 역사물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면이 컸기 때문이다.

“이름을 모를 만도 하지요. 난이 시작되고 군기시에 있던 군사 물자를 빼올 때 안 쓰던 무기까지 죄다 갖다가 쓰게 되어 이 불랑기포도 여기에 두고 된 것이지요.”

“으음.”

불랑기포는 본래 14세기에 터키에서 제작된 것이 시초로 그것을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넘어갔고 그것이 다시 조선에 전해진 것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의 것을 모방해 임진왜란 전에 소수 제작되었지만 기존의 총통 체계에 밀려 쓰이지 않던 무기였던 불랑기포였지만 향후 명군이 참전하면서 그들이 이 무기를 유용하게 사용함에 따라 조선군도 대거 이 불랑기포를 다루게 된다.

뭐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고 지금은 왜군과 싸우기 위한 무기가 하나라도 절실한 시기라 창고에서 꺼내져 사용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를 보는 상호의 태도는 군관과는 확연히 달랐다.

‘불랑기포라, 꽤 마음에 드는 걸.’

화포이면서 휴대해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상호는 군관에게 좀 더 자세히 불랑기포의 성능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이를 통해 불랑기포는 크기에 따라 1호부터 5호까지가 있으며 지금 본 것은 4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와 이를 끼워 발사하는 본체인 모포가 따로 있어 이를 결합하여 쏘고 다시 해체해 다소 쏠 수 있어 발사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자포와 모포의 결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칫 폭발이 일어나 사용자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단점보다는 그래도 장점이 더 많다.”

어느 정도의 위험 부담은 감수해야 하는 게 이 시대의 무기니 폭발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거치대로 쓸 포좌 문제는 따로 생각한 게 있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포가 아닌 포환이었다.

“이것이 불랑기포로 쏘는 포환인가.”

“그렇습니다.”

아이 주먹보다 작은 포환.

크기가 큰 불랑기포라면 좀 더 큰 포환을 쏠 수 있다지만 별반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투사체군.”

철로 만든 철환이 그나마 가장 위력이 강한 포환인데 그마저도 와이번 정도 되는 몬스터에겐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불랑기포를 쓰는 것은 어려웠다.

“위력을 키운다고 화약을 더 쓴다면 폭발 위험만 더 커질 뿐인데. 뭔가 다른 대안이 없을까.”

대안을 생각하던 상호의 뇌리에 불현 듯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곧 그는 서둘러 자신이 배정받았던 막사로 돌아갔다.

펄럭.

입구의 천을 거칠게 걷으며 안으로 들어선 상호는 자신의 봇짐을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호의 행동에 안에서 휴식을 취하던 율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뭔가 찾으시나요, 나리?”

“중요한 것을 찾고 있어.”

잡다하게 들어있는 물건들을 난폭하게 꺼내면서 상호는 얼렁뚱땅 대답했다.

그러던 그의 손길이 하나의 주머니에서 멈췄다.

“찾았다!”

회심의 외침을 지르면서 상호는 주머니의 입구를 단단히 묶은 끈을 풀었다.

그 안엔 영롱한 빛을 발하는 돌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바로 게이트가 붕괴된 자리에 남게 되는 차원석이었다.

현대에서는 신자원으로서 유용하게 쓰이는 아이템이지만 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이 시대에선 그 가치가 한없이 떨어진 차원석을 상호가 갖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만에 하나 현대로 귀환할 수 있게 된다면 엄청난 돈이 될 이것도 함께 가져가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여럿의 게이트를 파괴하고 나온 차원석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아서 갖고 다니던 중이었다.

“이 돌은 나리께서 애지중지 모으셨던 것 아닙니까? 이것을 어째서 찾으신 것인지요?”

“잊고 있었어. 이 차원석이 가진 특수한 성질을 말이야.”

“네?”

율은 상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상호는 주머니 안의 차원석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왜 그것을 잊고 있었을까.’

차원석은 단순히 막대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자원로만 생각한 게 실수였다.

사실 차원석은 일반적인 경우엔 대단히 안정적이지만 조건만 맞춘다면 품고 있던 에너지를 폭발시키게 되는 위험한 폭발물이 된다.

‘우리 때야 귀하디귀한 차원석을 그런 용도로 쓸 일이 없었으니 기억을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램 당 몇 만원이나 하는 차원석을 폭탄 대용으로 누가 쓰겠는가.

초창기 때 위기에 몰릴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차원석을 그렇게 썼다지만 헌터들 중 누구도 이렇게 목돈이 되는 물건을 1회용으로 쓰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끼다가 똥 되는 것보단 낫지.”

“나리?”

“아 미안 미안.”

자신이 너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상호는 율에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혹시 이 근방에 돌 같은 잘 연마할 수 있는 석공이 있는지 좀 알아봐주겠어?”

“석공을 말인가요?”

“응. 최대한 빨리 일을 맡길 게 있어서 그래.”

“바로 찾아보도록 할게요.”

율은 상호가 무슨 이유로 석공을 찾는 것인지 그 영문을 몰랐지만 그래도 아무 물음도 하지 않고 바로 이 일을 하러 천막을 나섰다.

이렇게 차원석을 탄환으로 쓰는 것으로 대형 몬스터에 대한 대비책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지만 또 하나 떠나기 전에 해둬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마침 그 일을 준비하던 임충이 상호를 찾아왔다.

“토포사 나리, 말씀하신 대로 쓸 만한 자들을 모아놨습니다.”

“아이고 참, 임 무관님. 그냥 전처럼 불러주시라니깐요.”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품계가 한참 낮을 때에도 세자 광해군의 명을 직접 받은 상호에게 존댓말을 썼던 임충이다.

그런 그이니 품계는 같지는 토포사라는 특수 관직을 받은 상호에게 나리라는 호칭까지 깍듯이 붙이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호의 입장에선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임충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민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름 원래대로 해달라고 했지만 끝까지 고집스레 태도를 바꾸지 않으니 상호로선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휴! 그럼 모았다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죠.”

“예.”

상호가 임충에게 부탁한 일은 새로운 전력감이 될 만한 인재를 찾아달라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상호 본인을 포함해 세 사람만으로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목적을 달성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운이 따라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더욱이 이제부터 갈 곳은 완전히 왜군의 점령지가 된 한반도 남쪽 지역이었다.

율이나 임충에게 계속해서 큰 위험 부담을 안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 전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모인 인원은 몇 명입니까?”

“제게 말씀하셨던 요구 사항에 맞는 인원으로 서른 명 정도 추렸습니다.”

“꽤 많군요.”

상호는 임충에게 당장 몬스터와 싸워도 전혀 겁먹지 않을 담대함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싸움에 능하며 또한 인품이 좋다고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범법자는 아닌 자들로 추려달라고 부탁했었다.

왜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들어가는 만큼 너무 많은 인원으로 움직이면 행각이 발각될 우려가 있기에 상호가 생각하는 선발 인원은 대략 다섯 명 정도였다.

그보다 많은 인원을 모아놨다고 하니 거기서 인원을 선택하는 것은 상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저들인가요?”

“그렇습니다.”

군영 한쪽 빈터에 모여 있는 각양각색의 인물들.

그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피며 상호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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