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57화 (57/127)

十一장. 묘향산의 마수. (4)

하룻밤을 푹 쉬고 일행은 날이 밝자마자 비로봉으로 향했다.

험준한 산길을 타고 이동하는 데만 한 나절이 걸렸다.

휘이이잉.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산자락으로 오르던 중에 머리 위에서 바람이 불었다.

상호는 순간적으로 주먹 쥔 손을 번쩍 들며 그대로 자세를 낮췄다.

그것을 본 뒤따르던 임충과 율, 그리고 사명대사를 비롯해 승병들도 모두 자세를 낮췄다.

잠시 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로 한 마리의 와이번이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냥에 나섰던 놈인가.”

날아가는 와이번의 발엔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놈은 곧 비로봉의 꼭대기,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암벽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그 부근의 상공엔 역시나 몇 마리의 와이번이 배회하고 있었다.

“하피보다는 숫자가 적군.”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 몬스터일수록 게이트를 넘어오는 숫자가 적다.

Ⅱ단계 몬스터 게이트라고 해도 와이번 정도라면 보통 열 마리 내외가 평균적이라 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와이번은 총 여덟 마리였다.

“로드로 보이는 녀석은 안 보이는군.”

상호는 ‘매의 눈’으로 산꼭대기 일대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어디서도 로드로 의심되는 와이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거리가 아직 꽤 되기 때문에 좀 더 접근해야만 했다.

“여기서부터는 모습을 드러내고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임충의 말대로 지금 있는 곳에서 와이번들이 있는 산꼭대기 부근까지는 나무가 거의 없는 지대라 노출되기가 쉬웠다.

여기에 사명대사도 한 마디 보탰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조금만 아차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쉽네. 차라리 우리에게 유리한 곳으로 저 괴수들을 유인하는 게 좋을 것 같네.”

“하지만 이 근방엔 그럴 만한 장소가 없군요.”

평탄한 지형은 부근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 몸을 은신한 소나무 숲도 와이번과의 싸움엔 유리한 장소가 아니었다.

‘와이번이 내뿜는 불꽃을 생각하면 차라리 바위뿐인 지형이 낫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주변을 보던 상호의 눈에 하나의 지형이 눈에 띄었다.

와이번들이 있는 비로봉 꼭대기까지 가는 길에서 약간 벗어난 아래쪽에 자리한 그곳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서로 마주보며 붙어있었다.

그 사이로 사람이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나있어 반대편 아래와 이어져 있었다.

“저기를 이용하면······.”

상호는 머릿속에 있던 전날 생각했던 계획을 조금 수정했다.

생각이 정리되고 상호는 사명대사와 임충에게 자신이 떠올린 계획을 설명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소?”

“지금 이 인원으로 정면 대결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여기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상호가 제시한 계획에서 사명대사나 임충, 그리고 나머지 승병들은 후방에서 대기하는 역할이었다.

하피와 다르게 와이번에겐 평범한 화살은 통하지 않는데다가 헬하운드처럼 불꽃을 뿜어낼 수 있으니 와이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상호나 율을 빼면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와이번의 주의를 끄는 교란 정도였다.

사실 처음엔 나머지 인원들이 주의를 끌면 상호나 율이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려 와이번을 처치하거나 최소한 땅으로 떨어뜨리는 게 원래 계획의 골자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작전을 전개한다면 와이번의 주의를 끄는 역할이 불가피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수정된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그런 희생을 더 줄일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것은 율에게 전보다 큰 부담을 주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걱정에 상호는 율에게만 특별히 따로 얘기를 했다.

“······이리 해서 하려고 하는데 만약 부담스럽다면 본래 계획대로 해도 돼.”

“나리의 의중이 그러하시다면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맡은 소임을 다할 것이에요.”

“일단 그 결의는 고맙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네.”

상호의 당부에 율은 바로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도 약간 마음이 걸렸지만 상호는 당장 둘이서 와이번들을 토벌해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 때문에 곧 신경을 쓰는 것을 관두었다.

공중을 크게 원 그리며 날던 한 마리의 와이번이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와이번의 눈에 바위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두 남녀가 포착되었다.

휘익!

방향이 급격히 바꾼 와이번은 그대로 두 사람을 향해 하강하였다.

이러한 놈의 움직임은 지상에서 이동하던 상호와 율에게 바로 포착되었다.

“그래, 어서 와라.”

상호는 걸려든 게 한 마리라는 사실에 만족하며 율과 함께 아까 눈에 봐두었던 바위 틈새를 향해 전력을 달렸다.

뒤에서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는 와이번의 존재를 의식하며 달리는 것은 간담을 졸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상호나 율은 전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목적한 곳까지 도착했다.

좁은 틈새를 바로 앞에 두고 상호는 뒤를 보았다.

“키에엣!”

긴 목을 길게 뽑으며 상호를 향해 와이번이 입을 벌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두 사람은 틈새 안으로 들어갔고 와이번의 입은 틈새 바깥에서 거칠게 다물어졌다.

“크르르르.”

지상에 착지한 와이번은 목을 틈새로 넣어 두 사람을 물어 끄집어내려 했다.

“이쪽으로.”

상호는 율을 지켜주며 다가오는 와이번의 주둥이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연신 부딪치는 커다란 이빨.

하지만 와이번보다도 큰 바위들은 놈의 격한 동작에도 자잘한 흙만 흘릴 뿐,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런 상황에서 상호는 벌어진 아가리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먹고 싶으면 이거나 먹어라!”

벌려진 아가리 안으로 물줄기가 세차게 뿜어졌다.

느닷없이 물세례에 와이번은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좁은 틈새로 억지로 밀어 넣었던 머리는 쉽게 빠지지 않았고 목구멍을 통해 넘어오는 물을 하염없이 마셔야만 했다.

이윽고 틈새에서 머리를 빼낸 와이번이 비대해진 배를 한 채로 뒤뚱거렸다.

이 때, 율이 바깥으로 나가면서 허리의 검을 뽑아 ‘포스’의 힘을 이끌어내 그대로 와이번을 깊게 베었다.

날아오를 수 없는 상태였던 와이번은 그대로 피를 뿌리며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카아아!”

어느새 하늘이 시끄러워졌다.

한 마리가 영역 내에서 당하니 다른 와이번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급기야 한 마리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아래로 빠르게 하강해왔다.

“어서 안으로!”

상호는 다시금 율과 함께 틈새 안쪽으로 피신했다.

쿵 소리와 함께 착지한 와이번이 아까 전의 놈처럼 똑같이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간다!”

아까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호는 강한 수압의 물줄기를 와이번의 벌어진 입 속으로 쏘았다.

이것을 견디지 못한 놈이 뒤로 물러나는 와이번을 입천장을 향해 율은 포스가 담긴 검을 힘껏 찔러 넣었다.

단숨에 뇌까지 닿은 일격에 와이번은 그대로 절명했다.

죽은 와이번의 시체로 인해 입구가 막히고 상호는 율과 함께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와이번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시체로 박힌 부근을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며 자리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회를 상호는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수룡창!”

한 번에 발휘할 수 있는 ‘물의 속성력’을 최대한 내니 무려 3발의 ‘수룡창’이 동시에 구현되었다.

자체적인 수류로 빠르게 회전하는 ‘수룡창’은 곧 빠르게 와이번들을 향해 날아갔다.

푸화학!

파열음과 함께 와이번들의 날개 한 짝이 무참히 찢어졌다.

이로 인해 균형을 잡지 못한 세 마리의 와이번들은 날지 못하고 추락했다.

수십 미터 암벽 아래로 벽에 부딪치면서 추락한 놈들은 죽거나 크게 다쳤다.

“하아아앗!”

여기에 율 역시 포스를 담은 검을 크게 휘둘러 원거리 참격을 뿌려 연달아 수십 보 거리 밖에서 날고 있던 와이번의 날개를 베었다.

“좋았어!”

계획대로 잘 되어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와이번을 산 아래로 떨어뜨렸다.

당초 쓰러뜨린 두 마리를 빼면 남은 것은 한 마리뿐이었다.

“키아아앗!”

상호와 율의 능력을 경계한 것일까.

유일하게 남은 와이번은 두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산꼭대기 쪽으로 방향을 바꿔 달아나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상호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에 대고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는 산골짜기를 따라 메아리쳤고 이것을 신호로 지금껏 소나무 숲에 은신해 있던 승병들이 바깥으로 나와 일제히 화살을 쐈다.

포물선을 그리며 위에서 떨어진 화살에 와이번은 급히 날갯짓을 해대며 허둥대었다.

“수룡시!”

“하앗!”

제자리 비행을 하는 와이번을 향해 상호와 율이 동시에 공격을 펼쳤다.

수룡시가 와이번의 허리를 찌르고 이어서 날아간 무형의 참격이 와이번의 목을 깊게 베었다.

“키에에엑!”

끔찍한 비명과 함께 와이번은 비틀거리며 날다가 산등선에 추락했다.

“차하아앗!”

놈에게 단숨에 달려간 임충이 단번에 6m에 달하는 높이를 뛰어올라 그대로 와이번의 몸 위로 착지했다.

착지하는 순간에 역수로 든 검으로 와이번의 눈을 그대로 찌르니 와이번은 고통에 찬 몸부림을 펼쳤다.

“헙!”

경사면으로 따라 굴러 떨어지는 와이번의 몸에서 임충은 몸을 날려 휘말리는 것을 피했다.

멀리서 이를 본 상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걸로 와이번들은 모두 일소했다. 하지만 아직 로드로 여겨지는 개체는 나오지 않았다.

‘게이트를 지키는 것일까.’

이렇게 상호가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는 한 점의 구름이 만들어낸 그림자라고만 여겼던 그림자가 갑자기 빠르게 이동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림자의 크기도 커져갔다.

이것을 인지한 상호는 고개를 꺾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설마···지금까지 저 위에 있었던 건가?”

구름이 깔린 하늘 위.

와이번 로드는 여태껏 눈으로 보기 어려운 상공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모두 부하들이 죽임을 당하자 마침내 침입자들을 제거하고자 내려온 것이다.

급강하해서 내려온 와이번 로드는 볼을 크게 부풀렸다.

그것을 ‘매의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상호가 외쳤다.

“다들 흩어져!”

산 전체까지 울려 퍼지는 그의 외침에 사명대사와 승병들은 황급히 있던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그 직후에 와이번 로드가 길게 내뿜은 불길이 그곳을 덮쳤다.

화르르륵.

불길이 땅에 뿌려지고 주변으로 퍼졌다.

바위조차도 녹일 만큼의 강력한 화력.

“으아악!”

비산되는 불길에 휩쓸린 승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갔다.

곧 와이번 로드는 자기가 불을 뿜었던 자리 위를 스치듯 지나쳐 다시 위로 상승했다.

순식간에 수백 미터 상공 위로 올라가는 놈을 보며 상호는 분한 표정을 지었다.

“제길, 이래서는 공격이 닿지 않아.”

능력을 써도 저 높이까지는 명중시킬 자신이 없었다.

재차 강습을 하려는 듯 와이번 로드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에도 놈이 노리는 것은 승병들이었다. 이대로라면 또다시 사상자가 늘어날 터였다.

“아직 자신은 없지만······.”

능력 업을 하면서 ‘물의 속성력’을 다루는 능력 또한 강화되었다.

상호는 이를 기반으로 보다 강력한 위력을 내는 ‘수룡창’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새로운 방식으로 또 하나의 기술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수룡의 수호!”

코피가 나올 정도로 정신력을 한 번에 쏟아 부어 완성한 기술.

와이번 로드의 불길이 뿜어지는 그 찰나에 승병들이 있는 곳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허공에서 뿜어져 반구 형태의 장막을 만들어냈다.

길게 뿜어진 불길은 물의 장막과 충돌하였고 곧 막대한 수증기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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