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一장. 묘향산의 마수. (3)
광채가 사라지고 어느새 사명대사의 뺨엔 땀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힐링’ 스킬을 펼치는데 정신력을 너무 많이 쓴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치료를 받은 승병은 자신의 손으로 감겨있던 붕대를 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핏자국만 남은 상처 없는 맨살이 드러났다.
“허허, 나무아미타불.”
사명대사는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고 구제를 설법하는 스님에게 남을 살리는 ‘힐링’ 스킬은 어떤 의미에서 안성맞춤이었다.
정신력의 소모가 다른 능력보다 크다는 결점이 있지만 그 문제는 차후 붉은색 몬스터 코어로 보충하면 된 일이었다.
‘끄응! 저 몬스터 코어는 내가 취할 걸.’
회복 능력이 있고 없고의 차가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호는 속으로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래도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치유 능력자의 탄생은 남은 토벌을 두고 기꺼워할 만한 일이었다.
오크 집단을 무사히 토벌하고 일행은 다음 산으로 강행군을 이어갔다.
“끼이이익!”
듣기 싫은 울음소리가 산골짜기를 따라 울려 퍼진다.
이번의 상대는 반인반조의 몬스터, 하피였다.
하피들은 절벽의 틈새나 나뭇가지 위에서 앉아 있거나 하늘을 빙빙 돌며 날았다.
“약 칠십 마리 정도인가.”
‘매의 눈’ 능력으로 하피의 숫자를 파악한 상호의 바위들을 통해 몸을 숨긴 승병들을 보았다.
와이번을 상대하기에 앞서 하피는 하늘을 나는 적에 대한 대응을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의 상대였다.
최대한 하늘을 나는 하피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은미맇 거리를 좁혀갔다.
“캬아아아!”
결국 하늘을 날던 한 놈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상호 일행을 발견하고는 경고의 울음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그 순간!
앉아서 쉬고 있던 하피들이 일제히 하늘 위로 날아올랐고 하늘엔 무수한 검은 점들이 깔리게 되었다.
“쳇! 여기까지인가.”
상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손을 들었다가 내리는 것으로 모두에게 신호를 보냈다.
승병들은 일제히 활을 들었다.
승병들이 사용하는 활은 상호나 임충이 지닌 각궁이 아닌 일반적으로 평민들이 사냥을 할 때 쓰는 죽궁이었다.
각궁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활을 쏘는 사람이 애초에 활을 잘 쏘는 조선 사람이고 또 승병으로서 훈련된 스님들이었기에 충분히 사거리가 나왔다.
“키에엑!”
낮게 날던 하피들은 몸통에 꽂힌 화살에 비명을 지르며 지상을 떨어졌다.
공격을 받은 하피 무리는 아래로 빠르게 하강해 공격해왔다.
“우웃!”
“모두 몸을 낮춰.”
머리 바로 위까지 날아온 하피들의 날카로운 발톱을 피해 다들 고개를 황급히 숙였다.
이런 와중에도 임충과 율은 침착하게 시위에 화살을 다시 재서 위로 올라가는 하피의 등에 화살을 꽂았다.
독수리 무리처럼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날며 하피들은 재차 기회를 엿봤다.
이런 와중에 유독 덩치가 크고 상반신인 여성의 외형이 다른 하피에 비해 고혹적인 미모를 가진 정상적인 인간에 가까운 개체가 눈에 띄었다.
“저 놈이 로드인가.”
상호는 하피 로드를 향해 활을 조준했다.
이윽고 시위를 떠난 화살이 하피 로드에게로 빠르게 날아갔다.
휘이잉!
하피 로드의 날개가 힘껏 펄럭인 것만으로 강한 풍압이 일어나 화살은 중간에 멈춰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치잇!”
역시 단순한 공격만으론 로드 정도 되는 존재를 고꾸라뜨리긴 힘들 것 같다.
이러한 생각에 상호는 ‘물의 속성력’을 발동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하피 로드가 입을 벌리며 목소리를 냈다.
“라아아아아!”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로 내는 기묘한 소리.
그것은 딱히 치명적인 파괴력을 내지 않았다.
“으, 으으······.”
“아아.”
소리를 들은 승병들이 갑자기 헤벌쭉한 표정을 지으며 괴로움과 환희가 반반씩 섞인 신음을 흘렸다.
하피 로드의 울음소리엔 남성들을 유혹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름 색을 멀리하고 불교의 경전에 따라 경건하게 수행해온 승병들조차도 이것을 견디지 못했다.
하물며 평범한 보통의 사람인 상호가 이것을 견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흐악! 이게 말로만 듣던 유혹의 소리인가.’
하피나 세이렌 같은 여성형 몬스터의 경우엔 남성을 매혹시켜 그들을 손쉽게 잡아먹는 능력이 있다.
실제로 하피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인 상호도 이 능력을 말로만 들었던 터라 막상 상황을 경험하니 저항키가 힘들었다.
강건한 무인인 임충 역시 사정은 비슷해보였다.
“으윽!”
그나마 ‘정신력’을 코어로 강화한 덕에 어떻게든 하피를 향해 다가가려는 걸음을 막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어으으으.”
“다들 정신 차리게!”
수행이 부족한 젊은 무승들부터 결국 유혹이 이기지 못하고 하피가 있는 쪽으로 정신을 놓은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사명대사가 그들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의 힘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저 울음소리만 막을 수 있다면······.’
졸지에 위기에 처한 이 상황에 대책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던 상호의 옆을 누군가가 빠르게 지나쳐갔다.
유일하게 일행 중 여성인 율이 유혹의 울음소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움직인 것이다.
“하아앗!”
율은 약 20여 미터 상공에 떠있는 하피 로드가 있는 방향으로 힘껏 검을 내질렀다.
헛되이 허공만 가르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였지만 상호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검에 씌워진 역장이 검의 궤적을 따라 길게 뻗어지는 것을.
푸화학!
하피 로드의 왼쪽 날개가 보이지 않는 참격에 베여져 그대로 잘려졌다.
“키에에엑!”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하피 로드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곤두박질치자 방금까지 매혹되었던 승병들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상호 또한 더 이상 소리에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수룡시!”
상호는 지상에 떨어진 하피 로드를 처치하기 위해 달려가는 율을 막고자 아래로 빠르게 활강하는 하피들을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연달아 하피들이 수룡시에 맞아 추락하고 그 사이로 율이 계속 달려 막 몸을 일으키던 하피 로드의 목을 잘랐다.
이렇게 우두머리가 죽자 나머지 하피들은 혼란에 빠졌고 손쉽게 토벌할 수 있었다.
하피 둥지를 토벌하고 난 뒤에 마지막 토벌 대상인 와이번 무리가 있는 비로봉에 가기 전에 산에서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변변찮지만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곡물과 야채만으로 간단하게 요리를 만든 승병의 솜씨는 꽤 나쁘지 않았다.
상호는 하루 종일 산을 뛰어다니느라 발은 부르트고 온 몸이 피로로 짓눌릴 것 같았기에 밥을 먹고 나서 바로 바위에 의지해 축 처져 휴식을 취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밥을 먹고 난 뒤에 사명대사와 승병들은 두루 모여 불경을 외우며 오늘 하루에 자신들이 치른 살생에 대해 반성하고 아울러 희생된 몬스터에 대한 명복을 빌어주었다.
경건한 그들의 모습과 불경을 외우는 소리는 오늘 하루 심신이 많이 지쳤던 상호와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상호는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첫날 이곳에 왔을 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이때, 옆에서 작은 인기척이 있었다.
식사를 한 뒤에 남은 그릇을 정리한 율이 그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게 보였다.
“식기를 닦으러 가는 거야? 여긴 물도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넓은 잎을 구해서 대충이나마 닦아 정리하면 됩니다, 나리.”
상호는 율의 말에 기댔던 바위에서 몸을 뗐다.
오늘 마찬가지로 매우 힘들고 고되었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자신 것까지 설거지하려는 율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도울게.”
“어찌 나리께서······.”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깐. 그리고 내 능력을 쓰면 보다 설거지하기 쉬울 거 아냐.”
약간은 퉁명스럽게 말을 하며 상호는 반강제적으로 율의 손에서 식기 일부를 받아다 들었다.
두 사람은 근처에 경사가 큰 언덕 위에 서서 식기를 설거지하였다.
“핫!”
상호는 기합과 함께 모인 그릇 위로 물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물이 채워졌고 덕분에 늘러 붙은 음식 찌꺼기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밑으로 물을 흘려보내면서 손을 쉬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상호가 먼저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아까 율이 아니었으면 모두 크게 위험했을 거야. 참으로 잘해주었어.”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이젠 능력을 다루는 솜씨도 제법 능숙해진 것 같고, 나와 비교해도 부족한 게 없을 정도야.”
“어찌 나리와 제가 같을 수 있나요. 그런 과분한 말씀은 거두어주세요.”
율은 상호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상호의 생각은 달랐다.
단기간 만에 ‘포스’ 능력을 다루는 법을 이 정도까지 숙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율의 재능이 우수하고 또 노력도 기울인 결과다.
미래였었다면 특급 헌터까지도 될 수 있는 인재라고 상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솔직히 샘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헌터로서 몇 년이나 굴렀지만 이류를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과 비교해 눈부신 재능을 보이는 율을 시샘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이야 상호가 쌓은 경험을 토대로 실력 면에서 우위에 있지만 조만간 이 격차가 좁혀지고 역전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리?”
“응? 아 미안.”
잠시 생각이 길었던 모양이다.
상호의 오랜 침묵에 율은 의아함을 느낀 듯 눈치를 조심스럽게 보았다.
그런 율을 보며 상호는 속으로 반성했다.
동료의 발전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시기하다니.
상호는 표정을 바꿔 말했다.
“낮에 사용했던 방출 기술, 최대 몇 번까지 가능할 것 같아?”
“한 번 쓸 때마다 몸에 힘이 빠지고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 많으면 다섯 번까지 가능할 것 같아요.”
“흠, 다섯 번인가.”
낮에 본 위력 정도면 충분히 와이번의 몸에도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에 상호 자신이 가진 능력까지 합친다면 토벌은 아주 어렵지만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이때, 율이 그릇을 닦던 손을 멈추더니 상호를 조심스럽게 보며 이와 같이 말했다.
“나리가 저를 거두어 주신 덕에 아버님을 죽게 만든 요괴들을 무찌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어 정말로 감사드리고 싶어요.”
“천만에. 나는 그저 약간의 도움만 줬을 뿐인데.”
“내일, 나리의 명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 해내보이겠어요. 그러니 절 주저치 말고 마음껏 써주세요.”
“그, 그래.”
어떻게 들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율의 말에 상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동료로서 열심히 해주는 것은 좋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해오는 것은 좀 그랬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 차마 지적은 하지 못했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다 닦았으니 그만 돌아가서 쉴까.”
“네.”
“내일 토벌 작전에선 너의 역할이 무엇보다 크니 오늘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푹 쉬도록 해.”
“하지만 나리와 임 무관님의 잠자리를 준비하는 일은······.”
“안 해도 돼! 이것은 내가 내리는 명령이니 반드시 따르라고.”
“···알겠습니다.”
상호의 신신당부에 율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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