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一장. 묘향산의 마수. (2)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여기 앉게나.”
“아, 예.”
자리를 권하는 휴정의 말에 상호와 임충은 준비된 방석 위에 앉았다.
서산대사로 불리는 휴정은 상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놀라운 말을 꺼냈다.
“관상을 보아하니 필부로 태어났지만 주변의 여건에 의해 큰 곡절을 겪을 팔자로군.”
“제가 좀 그런 편이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몬스터 사태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헌터 생활을 해야 했고 사고로 인해 과거로 날아오는 남들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당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런 것을 보면 팔자가 기구한 신세인 것은 확실했다.
이러한 생각에 의기소침해지는 상호를 보며 서산대사는 다시 말했다.
“허허, 너무 그렇게 풀죽을 것 없으이. 자네가 처하는 이 모든 일은 결코 그냥 오는 것이 아닐세. 이를 잘 해결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터이니 자신이 믿고 꾸준히 정진하도록 하게나.”
이러한 말은 상호에게 있어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새삼 휴정이 단순히 승장이 아닌 오랜 공덕을 쌓은 고승임을 깨달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곧 네 사람은 나란히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상호는 두 고승에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소상히 이야기했다.
“최근 산 일대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바로 그 요괴인 것 같습니다, 휴정 스님.”
“이곳에서 몬스터, 아니 요괴가 나타난 모양이군요.”
묘향산의 험준함과 넓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이곳 사찰이 여태껏 무사했던 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하여 상호는 이렇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놈들이 이곳엔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몇 번이고 이곳을 노리고 왔었네. 다행이도 왜군과 싸우기 위해 각지의 사찰에서 모인 젊은 승려들이 있어 큰 위기 없이 그들을 쫓아낼 수 있었지.”
서산대사를 대신해 이번에 사명대사가 지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한 사명대사를 마주보며 상호는 진지하게 몬스터의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놈들을 그대로 둔다면 분명 이곳만이 아니라 일대의 고을들도 큰 위기에 놓일 것입니다.”
“안 그래도 우리도 그러한 염려로 평양성으로 가는 것을 잠시 반려하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었네.”
명나라 원군이 합류해 치른 2차 평양성 전투에서 패배하였지만 조정은 포기하지 않고 평양성 공략을 위해 각지에 파발을 보내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이에 나라와 그리고 민초를 지키기 위해 승병들을 모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응할 참이었다.
하지만 묘향산 일대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알게 되면서 섣불리 이곳을 떠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이곳의 요괴들을 토벌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허허! 도와준다면 우리로서야 고마울 따름이지.”
서산대사는 상호의 말에 흡족하게 웃은 후, 사명대사를 보며 말했다.
“이 몸이야 여러 종파의 스님들을 모으는 역할이나 할 따름이니 요괴를 무찌르는 일에 관해서는 여기 있는 유정 스님과 함께 의논하시게.”
노령의 나이인 서산대사보다는 사명대사 쪽이 이 일이 적합하긴 했다.
이미 상호 일행이 오기 전부터 이 문제의 책임자로서 활동했던 사명대사는 묘향산에 있는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알고 있었다.
설명을 통해 상호는 몬스터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오크 무리 하나에 고블린 무리 둘, 하피 무리 하나인가.’
놈들의 영역은 묘향산 각 봉우리마다 하나씩 위치해 있고 서로의 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꽤 떨어져 있었다.
게이트가 있는 중심부까지는 사명대사 측이 파악하지 못했지만 쳐들어온 몬스터의 숫자를 미뤄보았을 때, 모두 Ⅰ단계 수준으로 짐작되었다.
이 정도라면 사명대사와 승병들의 도움만으로도 충분히 단기간 안에 토벌이 가능했다.
“그리고···묘향산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비로봉엔 하늘을 나는 거대한 괴수들이 있네.”
“거대한 괴수라니?”
“정탐을 위해 나와 십여 명의 승려들이 그곳에 갔다가 부끄럽게도 이 몸만이 간신히 살아나올 수 있었다네.”
“어떻게 생겼습니까?”
“덩치는 대략 초가집 한 채보다 크고 꼬리는 먼 서쪽 땅 사막에서나 나온다는 곤충인 전갈의 꼬리와 같으며 날개는 박쥐의 것과 흡사하며 머리는 전설에서나 나오는 이무기와 같았네.”
“···와이번이군요.”
“와이번? 처음 듣는 요괴 이름이군.”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요.”
상호는 입을 꽉 다물며 근심어린 표정을 만들어냈다.
와이번이면 몬스터 중에서도 꽤 상위에 위치한 몬스터이다.
보통 Ⅰ단계 몬스터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고 Ⅱ단계 몬스터 게이트로부터 모습을 드러냈었다.
현대에서도 와이번을 잡으려면 대물 저격총으로 급소를 맞추지 않는 한 해치우기 힘들기에 아예 열 추적 지대공 미사일로 요격하든지 아니면 40mm 대공포로 때려잡는 방법뿐이었다.
물론 5단계 이상의 능력 강화를 하거나 강력한 속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헌터들이라면 그런 현대적인 무기 없이도 와이번 한 마리 쯤은 처치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이 두 가지 모두 상호에게 없다는 것이었다.
‘일반 와이번도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하물며 로드 정도 된다면 대책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와이번들을 토벌 안 할 수도 없다.
비행 타입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보다 활동 영역이 훨씬 넓기 때문에 묘향산만이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모두 놈들의 사냥터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내가 물의 속성력을 취하게 되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긴 하지만······.’
율에게도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포스’능력이 있으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이번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상호와 율, 두 사람이었다.
일단 지상으로 떨어뜨리기만 하면 그 다음은 집단으로서 공격하면 어찌어찌 토벌이 가능할 것이었다.
‘그럼 먼저 오크와 다른 몬스터들부터 토벌하면서 몬스터 코어를 확보해 승병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면서 전력을 확보하는 게 좋겠다.’
토벌 순위에서 비로봉의 와이번을 맨 끝으로 두기로 하고 우선 묘향산에 있는 몬스터들을 소탕하기로 했다.
“쿠어어!”
“나무아미타불!”
한 손으로는 휘두르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언월도를 든 한 덩치 하는 승병은 그대로 정면에서 달려오던 오크를 베어 넘겼다.
승병들은 자기 수양을 목적으로 전통 무예를 갈고 닦았던 터라 언월도를 비롯해 여러 무기를 아주 잘 다뤄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함께 싸워온 조선군 병사나 의병들에 비해 크게 도와주지 않아도 몬스터 토벌에 도움이 되었다.
“거의 다 처치한 것 같네.”
상호의 혼잣말대로 이제 남은 것은 게이트를 지키며 저항하는 오크 로드뿐이었다.
“하앗!”
사각지대에서부터 달려든 임충이 매섭게 검을 뿌리자 오크 로드는 글레이브라 불리는 반달형 창날이 붙은 창을 마주 휘둘렀다.
파캉!
충돌에서도 임충은 전과 다르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의 근력 수치는 이미 3단계에 코어를 통해 올라갔고 거기에 기존에 가졌던 능력에 기술의 완숙까지 더해지니 오크 로드의 강격도 정면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임충이 오크 로드의 공격을 받아낸 틈을 타 율이 투명한 기운을 담은 검으로 옆구리를 깊숙이 베었다.
가볍게 스친 것처럼 보였지만 오크 로드의 상처는 꽤나 커 내장까지 흘러나왔다.
“좋았어, 마무리다!”
마지막 일격을 날릴 준비를 취한 나는 위를 향해 들었던 팔을 앞으로 힘차게 뻗었다.
“수룡창!”
기존의 수룡시보다 더 크기가 크고 전체적으로 맹렬하게 회전하는 거대한 수류의 창이 오크 로드를 향해 날아갔다.
푸확!
금속 방어구를 뚫으며 물의 창은 그대로 오크 로드의 몸을 꿰뚫었다.
최근 정신력을 2단계나 더 강화한 만큼 새로운 기술, ‘수룡창’은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촤아!
곧 물의 창은 형태를 잃고 그대로 피와 함께 바닥으로 쏟아졌다.
오크 로드는 무릎을 꿇은 채 절명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완전히 죽은 것 같군.”
상대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 상호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아미타불, 부디 후세에는 남을 해치지 않는 생명으로 태어나기를.”
전투가 끝나고 사명대사를 비롯한 승병들은 오크들의 시체를 두고 명복을 빌었다.
살생 자체는 금하지만 민초를 위해 부득이하게 살계를 범한 승병들이지만 본분은 불자라 자신들에 생명을 잃은 오크들을 두고 극락왕생을 빌어준 것이다.
“그래봤자 이것들은 이 세계가 존재가 아니니 환생은 불가능할 텐데.”
차마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얘기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면 상호는 게이트를 해체하고 다음으로 오크 로드의 코어를 회수했다.
“이걸로 여섯 개 째인가.”
4곳의 게이트 지점을 공략하면서 얻은 성과물이다.
이 몬스터 코어들이라면 사명대사나 승병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쉽게 말을 못 꺼낸 것은 불교의 불법을 따르는 스님인 사명대사와 승병들이 요괴에게서 나온 몬스터 코어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했었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요괴의 무시무시함은 잘 알고 있네. 이런 존재들로부터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면 이러한 신통력이 필요할 테지.”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너무 쉽게 승낙하는 사명대사를 보며 상호는 어안이 벙벙해서 되물어보았다.
이에 사명대사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요괴의 신통력을 받아들인다고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힘을 올바른 곳에 쓰겠노라 부처님께 맹세하고 필요할 때만 능력을 쓸 것이네.”
“휴우, 그렇군요.”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네.”
“예?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네의 말대로라면 지금 이런 신통력 가진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신통력을 사람을 구하는 올바른 일에만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그 점이 우려되는구려.”
“아······.”
사명대사의 말에 상호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구태여 생각하지 않은 문제를 사명대사가 지금 정확하게 짚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현대의 헌터들 중에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자도 꽤 많았다.
현대에선 국가가 강력한 통제 집단으로 행여 있을지 모르는 헌터들의 비행을 저지했지만 지금 이 시대의 조선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지금까지야 나름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그것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점차적으로 방법이 알려지게 되면 심성이 곧지 않은 자들도 힘을 얻게 될 테지.’
그런 자들 중에 침략자인 왜군이나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것 대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약탈하는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문제가 커지면 기존의 선량한 헌터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대책을 세울 필요는 분명 있었다.
‘이 문제도 이천에 가서 광해군과 한 번 상의해봐야지.’
상호가 고민한 후에 자신이 갖고 있던 몬스터 코어를 사명대사와 사명대사가 직접 고른 삼인의 스님들에게 나눠주었다.
삼인의 스님들은 전쟁 전에도 무예를 갈고 닦은 무승들로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나이 대였다.
이들은 붉은색 몬스터 코어를 갖고 능력 흡수를 이뤘다.
그들이 선택한 능력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은 분명했다.
“으음.”
푸른빛이 이마 주변에서 발하는 순간, 사명대사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유일하게 나온 푸른색 몬스터 코어를 흡수하게 된 사명대사가 어떤 스킬을 갖게 될 지는 복불복이었다.
이윽고 감았던 눈을 뜬 사명대사는 스스로도 놀랍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신묘한 느낌이구려.”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감이 잡히십니까?”
“뭐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능력을 써야 할지는 알 수 있을 것 같구려.”
사명대사는 그리 말하고는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방향에는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그만 부상을 입고 만 스님이 다른 스님의 손에 간호를 받고 있었다.
“잠시 비켜주시게.”
사람을 물리고 사명대사는 붕대가 감긴 왼쪽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하는 사명대사.
곧 그의 손에서부터 새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저, 저것은?!”
상호는 그 빛을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수 가능성이 낮은 레어 스킬.
다친 부위를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는 회복 스킬인 ‘힐링’ 스킬이 지금 사명대사의 손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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