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54화 (54/127)

十一장. 묘향산의 마수. (1)

1592년 8월 21일.

함경도의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상호 일행은 평안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묘향산까지는 아직 멀었습니까?”

“앞으로 반나절 정도만 더 달리면 도착합니다.”

말을 나란히 달리며 상호와 임충은 이렇게 대화를 나눴다.

지금 상호가 가는 곳은 조선 시대에서 사대 명산으로 꼽는 묘향산이었다.

정문부와 그를 따르는 의병 부대가 가토 기요마사의 왜 2군을 상대로 함경도의 운명을 건 중요한 일전을 치르기 직전인 이 시기에 이 산을 찾아가는 것은 임진왜란 중에 크게 활약했던 의병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리, 저기서 잠시 쉬시지요.”

율은 앞쪽에 작은 고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상호에게 얘기했다.

마침 휴식과 식사를 생각나던 차였기에 상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서 오세요.”

주막의 주모는 말을 바깥에다가 묶어놓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상호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곧 국밥과 탁주가 나오고 세 사람은 주린 배를 달랬다. 그러면서 미처 나누지 못한 중요한 얘기를 나눴다.

“쉬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움직이니 요즘 몸이 부치네요.”

“확실히 쉬운 여정은 아니지요.”

“일단은 여기 평안도의 일만 잘 끝내면 한 고비를 넘기는 셈이니 그 이후에 좀 쉬어야죠.”

전라도, 함경도, 평안도는 아직 왜군의 침략이 다 미치지 못한 지역이다.

그렇기에 협력을 약속한 고인후나 정문부 같은 의병장들이 당장 후방을 어지럽히는 몬스터 토벌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이렇게 토벌을 하다보면 능력자들의 숫자가 늘 테고 해당 지방의 몬스터의 세력권의 확대나 왜군의 침입에 대해 보다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을 터였다.

“후방이 안정되면 다음으로 왜군에게 점령된 지역들에 대해서도 손을 써야지요.”

“꼭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 요괴들과 왜군이 서로 다투도록 방치하면 우리 조선에 더 유리할 텐데요.”

임충은 함경도에서의 일을 상기하며 이렇게 말해왔다.

분명 그 말대로 세력을 계속해서 확대해가는 몬스터들이 왜군의 점령지를 빼앗아간다면 필연적으로 양측이 충돌할 것이다.

그리 된다면 양쪽 모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고 그것은 곧 조선의 이득이 될 게 확실했다.

상호라고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리 하지 않는 것은 몬스터 게이트의 확대에 따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였다.

“지금은 아직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몬스터가 나타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전이문을 방치한다면 더 많은 숫자의 요괴가 이 땅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엔 군대로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가 넘어올 수도 있지요.”

“군대로도 이길 수 없는 존재 말입니까?”

“네.”

상호는 그리 말하면서 자신이 이 시대로 넘어오게 만든 계기였던 레드 드래곤과의 싸움을 떠올렸다.

단 한 마리였지만 전투기도 전차도 거의 상대가 안 되는 괴물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특급 헌터들이 잔뜩 덤벼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러한 존재가 지금 시대에 나타난다면 그만큼 최악의 일은 없다.

이리 생각하기에 상호는 최대한 왜군 점령지에 있는 몬스터 게이트들도 서둘러 봉쇄하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왜군과 몬스터와 충돌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보옥의 존재를 알아챌 가능성도 있습니다.”

“으음.”

상호의 말에 그제야 임충도 우려하는 표정을 만들어보였다.

이를 보며 상호는 계속해서 말했다.

“보옥의 쓰임새를 저들이 금방 알아채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쪽도 바보가 아닌 한, 이쪽에 있는 능력자 존재와 요괴의 연결고리를 알고 그 힘을 취하는 방법을 알아낼 것입니다. 그리 되면 양쪽 모두 능력자의 숫자나 기량에 따라 전쟁을 치르게 될 가능성도 있죠.”

“충분히 우려할 만한 일이군요. 해서 그 전에 이쪽에서 최대한 몬스터들을 토벌하여 보옥을 확보하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새로운 몬스터 게이트가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모를까, 현재 출현한 몬스터 게이트만이라면 확보할 수 있는 몬스터 코어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만약 왜군이 몬스터 코어의 효과를 안다면 분명 그것을 노리게 되고 자연스레 쟁탈전 양상이 될 게 분명했다.

하여 이번에 평안도의 일만 끝나면 광해군이 있는 곁에 잠시 돌아갔다가 곧장 왜군 점령지로 이동하여 그곳의 의병들을 규합하여 해당 지방의 몬스터 게이트를 빠른 시일 안에 함락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한반도 말고 다른 지역에도 몬스터 게이트가 나타났을 경우인데.’

이 점을 처음부터 우려했었다.

하여 상호는 광해군에게 일본 열도와 만주, 중원 등에서 몬스터 게이트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꽤 먼 곳까지 조사를 해야 하는 일이라 당장 사실 확인은 어려웠다.

‘하지만 명나라의 원군이 원래 역사대로 도착하고 왜군 또한 아직 물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해당 국가들에선 아직 몬스터에 대한 소동이 없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조선에서는 몬스터들의 존재가 일반 백성까지 알 만큼 부각되었는데 저 두 나라에서는 그럴 만한 일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러한 부분만 보면 몬스터 게이트는 한반도, 조선 땅에만 국한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정만으로 섣부르게 믿을 수는 없으니 일단 정보를 얻을 때까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했다.

“충분히 쉬었으니 그만 출발할까요.”

“그러시죠.”

상호의 말을 듣고 허투루 시일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임충은 바로 대답하며 자리를 일어났다.

그런 두 사람이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니 어느새 율이 말들의 고삐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민한 그녀는 둘의 대화를 듣다가 곧 여길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채고 먼저 행동했던 것이다.

“고마워, 율.”

“아니에요.”

율 덕에 약간이지만 시간을 단축하고 다시 묘향산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꼬박 반나절을 더 달려 드디어 묘향산의 초입에 진입할 수 있었다.

“우와! 정말로 풍경이 아름답네.”

상호는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묘향산의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명산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눈에 들어온 묘향산은 그야말로 절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좀 더 느긋이 풍경을 감상하며 등산하고 싶었지만 곧 얼마 안 있으면 해가 떨어질 것 같아 그럴 수는 없었다.

“여기서 원적암까지 가는 길은 꽤 험하고 머니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러지.”

산 인근의 부락에서 길잡이로 고용한 약초꾼의 말에 세 사람은 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잡이의 말대로 가는 길은 상당히 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 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성큼성큼 나아갔다.

‘코어의 힘을 팍팍 준 보람이 있네.’

두 사람을 보며 상호는 슬쩍 미소 지었다.

함경도에 있으면서 많은 몬스터 게이트를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몬스터 코어를 손에 넣었다.

물론 그 중 태반은 도움을 주었고 앞으로 함경도 지방에서 몬스터 토벌에 힘쓸 정문부를 위해 양도했지만 나머지는 고스란히 이쪽이 취하였다.

상호 본인도 그렇고 두 사람도 이를 통해 상당한 능력 향상을 이뤘기에 전력은 함경도로 갈 당시보다 월등히 커진 상태였다.

“다들 대단하시군요. 이렇게 험한 산을 오르는데 조금도 지치지 않으시다니.”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약초꾼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세 사람의 체력에 감탄했다.

다들 산길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 이동한 덕에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인 원적암에 당도할 수 있었다.

명산에 자리한 사찰은 자연과 한데 어울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절의 마당에서는 무수한 민머리의 사내들이 가지런하게 대열을 갖추고 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저들이 바로 승병들인가.’

임진왜란 당시에 일어난 의병 중에는 살생을 금하는 승려이면서도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살계를 범하는 것을 주저치 않은 승려들로 구성된 승병도 있었다.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불교의 중들은 정신 수행을 목적으로 전통 무예를 갈고 닦았기에 승병들은 특히나 왜병과의 백병전에서도 큰 활약을 펼쳤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상호는 절도 있는 모습으로 훈련을 하는 젊은 승려들을 보고 흡족해 했다.

이번에 상호가 이곳에 온 것은 이번 전쟁에서 저들 승병들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는 고승을 만나기 위험이었다.

“실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죄송하지만 지금 본 사찰에서는 불공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찰에······.”

“아닙니다. 저희가 이곳을 찾은 것은 서산대사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입니다.”

상호는 문지기로 있는 젊은 승려에게 용건을 밝혔다.

이에 젋은 승려는 난처해하며 다시 물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서 오신 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천에서 왔습니다.”

상호의 말에 승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천에 조정의 분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곧 승려는 정중해진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바로 손님을 왔다는 사실을 안쪽에 알리고 오겠습니다. 다시 올 때까지만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상호가 선선히 대답하자 대화를 나눴던 승려는 서둘러 사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린 시간은 대략 두 식경 정도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대사께서 여러분을 바로 만나뵙고자 하십니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상호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곤 앞서 걸음을 옮기는 승려를 따라 사찰 내로 걸음을 옮겼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사찰의 대웅전이었다.

커다란 석가여래의 불상이 놓인 그곳엔 두 명의 고승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나이가 많이 든 고승으로 회색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나이에 비해 허리가 꼿꼿하고 눈빛이 인자하면서도 초롱초롱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좌편에 앉은 고승은 좀 더 나이가 젊고 수염을 길게 길렀는데 눈매가 마치 호랑이의 그것처럼 부리부리한 게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두 분 고승을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전 이상호라고 합니다.”

“세자 저하를 모시는 내금위의 군관 임충이라고 하오.”

따로 밖에서 대기하기로 한 율을 뺀 상호와 임충은 두 고승 앞에서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런 두 사람을 지긋이 보던 나이 많은 쪽의 고승이 곧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허허헛! 오늘 길한 손님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객이 아무래도 그대이었던 것 같구려.”

“예?”

알 수 없는 고승의 말을 상호는 쉬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한 그를 웃는 낯으로 본 늙은 고승은 자신을 소개했다.

“소승은 휴정이라고 하고 여기 옆에 있는 승려는 유정이라고 하오.”

“유정이라면? 혹 사명당이라고 불리지 않습니까?”

“소승의 당호가 사명당이기는 합니다만, 처음 보는 분에게 그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소이다.”

털털한 목소리로 유정은 말하였다.

그런 그를 보며 상호는 살짝 놀랐다.

‘설마 여기서 사명대사까지 만나게 될 줄이야.’

서산대사라 불리는 고승 휴정이 승병을 모으고 있다는 정보를 이천에 있을 때에 알았기에 이곳에 온 것이다.

그 내용 중엔 사명대사인 유정이 있다는 것은 없었기에 지금 만남은 어디까지나 우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명대사.

임진왜란 당시에 큰 활약을 했던 승장으로 그 이름이 특히 유명해진 것은 전쟁이 끝나고 일본을 끌려간 무수한 조선인 포로를 교섭을 통해 돌려받은 일이다.

이에 관한 일은 특히나 많은 야사를 만들었고 상호가 살았던 현대에까지 이야기로 전해졌다.

그랬기에 상호는 사명대사까지 만나게 된 지금의 일을 호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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