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장. 북관대첩. (5)
길주를 탈환하고 왜군 부대를 전멸시키는 큰 승리를 거둔 정문부의 의병 부대는 쉴 틈도 없이 가토 기요마사의 본대와 상대해야 했다.
고작 삼천에 불과한 부대로 2만에 달하는 가토 기요마사의 본대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은 지극히 불리했다.
이런 이유로 길주성에서의 농성도 마뜩찮은 상황이어서 일부 지휘관은 더 이상의 일전은 피하고 후방으로 물러나 다시 때를 기다리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문부의 뜻은 확고했다.
“적은 갑작스런 패전 소식에 당황하여 제대로 대비도 하지 않은 채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고 기껏 탈환한 길주성을 다시 내줘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말로 지휘관들을 설득한 정문부는 직접 뒤를 지킬 소수의 병력을 제외한 삼천의 병력을 이끌고 남쪽의 임명(臨溟)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의 백탑교(白塔郊)라는 곳에 매복을 준비하니 이 사실을 모른 채 며칠이 지나 가토 기요마사의 본대는 이곳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1592년 9월 16일.
공교롭게도 원래 역사에서 정문부가 의병장으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이 날에 양군은 서로 맞붙게 되었다.
“장군, 왜군의 대열이 이리로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알겠다.”
산들을 끼고 굽이진 험로가 이어지는 곳에 자리를 잡고 매복에 들어간 의병들은 숨을 죽이고 왜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무수한 깃발을 나부키며 끝없이 이어지는 대열을 이루고 행군하는 가토 기요마사의 2군 병력은 그야말로 위압적이었다.
“꿀꺽.”
“여기가 저 놈들에게 죽음의 땅임을 명명백백하게 알게 만들어주자.”
관병이며 의병 할 것 없이 모두 투지에 불타며 때를 기다렸다.
길고 험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느라 왜병들이 최고로 지칠 때까지 기다린 끝에 마침내 공격 신호로 효시(嚆矢)가 골짜기 위로 날아올랐다.
이와 동시에 숨겨져 있던 여러 종류의 군기(軍旗)가 곳곳에서 올라오고 동시에 왜군들의 머리 위로 무수한 화살로 쏟아졌다.
“매복이다!”
뒤늦은 경고가 있었지만 이미 날아든 화살에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뒤였다.
길게 열을 지은 왜군 대열을 효과적으로 격멸하기 위해 측면으로 길게 포진한 정문부의 부대는 초반부터 맹렬한 공세를 펼쳤다.
이러한 상황을 매복이 미치지 않는 후방에서 지켜보던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제 2군의 사령관인 가토 기요마사는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조선 놈들은 하나같이 약해빠진 겁쟁이인 줄만 알았는데 제법 싸우는 자들도 있지 않은가.”
“국경지대이니 응당 싸움에 익숙할 터이지요.”
“그러나! 우리 군에게 대적할 것은 용서할 수 없다. 후도, 고시와라, 당장 저들을 격멸하고 길을 열도록.”
“하앗!”
부채를 크게 휘두르며 가토 기요마사는 명령을 하달했고 이에 휘하 왜장들은 병력을 이끌고 전장에 가세했다.
“쏴라!”
타타탕!
반격으로 조총병들이 일제사격을 가하자 화살을 날리던 의병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이어 무수한 보병들이 올라오면서 육탄전이 벌어졌다.
“에잇!”
투전으로 갈고 닦은 돌팔매질로 날려진 차돌은 어김없이 왜병들을 맞췄다.
삿갓이 찢어지면서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고꾸라지는 왜병의 뒤에서 투구를 쓴 무사가 왜도를 높이 빼들고 계속 돌격해왔다.
“와아아!”
“물러서지 마라!”
백병전이 펼쳐지고 여기저기서 비명과 고함이 들려왔다.
지리적 우세와 매복에 따른 선공으로 우세했던 정문부 부대지만 점차 후방에서 계속해 몰려오는 적병의 수에 밀리기 시작했다.
“역시 쉽지 않군.”
전세의 흐름을 살피던 정문부는 허리춤에 찬 검집에서 검을 빼들었다.
아직 그가 있는 곳까지 왜군이 오지 않았으니 그가 취한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날 따르라.”
“예, 장군.”
앞서 걸어 나가는 정문부를 따라 네 명의 사내들이 움직인다.
이들은 저마다 행색이 달라 푸른색 두정갑을 걸친 군관부터 호랑이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옷을 입은 사냥꾼, 중이나 입을 만한 옷을 입은 거구의 사내, 철사 수염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러 실을 꼬아 만든 머리띠를 한 장정까지.
어디 하나 공통점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지만 한 가지 같은 게 있다면 무수한 적을 향해 가는 걸음걸이엔 거침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격 준비!”
열을 가지런하게 지어 천천히 걸음을 옮겨오던 조총병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제자리에 서서 사격을 준비했다.
그 사선엔 앞으로 걸어 나오는 정문부의 네 명의 사내가 들어가 있었다.
조총의 심지에 불이 붙고 격발이 이뤄지려는 것을 본 머리띠를 한 장정이 제일 앞으로 뛰쳐나갔다.
타타탕!
“허업!”
기합을 내지르며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리며 선 장정을 향해 수십 발의 탄환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정의 몸에 명중한 총탄이 관통하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면 장정의 몸은 어느 사이엔가 금속의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 코어로 얻을 수 있는 스킬 중 하나인 ‘아이언 스킬’ 스킬의 효과였다.
“아닛?”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조총병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이때, 방패막이가 되어준 장정의 등 뒤에서 정문부를 비롯해 나머지 사람들이 그대로 조총병들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하아아앗!”
조총병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쾌속한 검이 연달아 궤적을 그린다.
어느 순간에 조총병들 사이로 선 정문부가 멈춘 순간, 그 주변에 있던 자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신속迅速.
지금 정문부의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 말로 딱 적합한 말이었다.
“죽어라, 왜놈들아!”
다른 세 사람도 비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외우며 손에 든 철퇴를 휘두르는 거구의 사내에 의해 왜병들이 휙휙 하늘을 날았다.
“으라차!”
한 번의 찌르기로 세 명의 꿴 가죽옷을 입은 사냥꾼은 호기롭게 맨 손으로 또 다른 왜병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빙빙 돌려 왜병들이 밀집한 곳으로 던졌다.
여기에 방패를 들고 창을 찔러오는 왜병들을 막아내며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적을 쓰러뜨려나가는 군관까지.
평범한 사람을 뛰어넘은 힘과 속도, 그리고 능력을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몬스터 코어의 힘 덕분이었다.
“이 정도로 내가 빨라지다니.”
몬스터 코어를 통해 ‘민첩성’을 2단계나 끌어올린 정문부는 방금 전에 자신이 해낸 일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단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한 명뿐이 아니었다.
“이 힘이라면 왜병이 얼마든 덤벼도 문제없겠어.”
“암, 그렇고말고!”
상호 일행과 함께 몬스터 토벌에 나섰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토벌에서 획득한 몬스터 코어의 힘을 취한 네 사람 역시 자신감을 드러냈다.
새로 얻은 힘과 능력에 대해 훈련을 해왔기에 정문부와 코어의 힘을 취득한 네 사람은 힘을 얻고 처음 맞는 실전에서도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자 덤벼라!”
“히익!”
한 명의 말에 근처에 있던 왜병들이 혼비백산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까 보였던 믿기 힘든 재주에 엄청난 움직임을 선보인 다섯 사람을 상대로 몇 갑절의 병사가 겁을 먹은 것이다.
“보았는가! 우리에게 든든한 아군이 있다! 반드시 이 싸움을 이길 것이니 겁먹지 말고 응전해라!”
“와아아!”
아군의 큰 활약에 조선군은 크게 사기가 치솟았다.
순식간에 전세가 뒤바뀌고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병력이 밀리자 보다 못한 무사들이 나서서 정문부와 휘하 능력자들을 상대하고자 나섰다.
“잠시 멈춰라. 이 몸은 고자와 가문을 섬기는······.”
무사 중 하나가 자신을 밝히고자 했다.
하나,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목에 짧은 화살이 박혔다.
통아를 이용해 보다 먼 거리의 적을 위력적으로 사살할 수 있는 이 편전으로 무사를 고꾸라뜨린 것은 바로 사냥꾼이었다.
“이익! 무사도도 모르는 무례한 것들.”
“비겁하다!”
다른 무사들이 이것을 보고 비판의 말을 쏟아내자 통아에 재차 편전을 재며 사냥꾼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남의 땅에 먼저 쳐들어온 것들이 뭔 말이 많으메.”
사냥꾼은 그리 중얼거리면서 다시 통아에 편전을 집어넣고 시위를 당겼다.
이것을 본 무사들은 왜도와 장창을 들고 기합과 함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이야아아압!”
“오라!”
여기에 맞서 정문부와 능력자들이 마주 돌격했다.
검과 왜도가 맞부딪치고 양측은 서로 뒤엉켰다.
전체적인 기량 면에서는 다년 간 전쟁을 치러온 왜국의 무사들 쪽이 우월했다.
“이요옷!”
소리를 내며 무사가 수평으로 길게 원을 그린다.
이를 피하는 대신 정문부는 높이 도약해 무사의 머리 위를 날았다.
“갑옷을 입고 이 만큼의 높이를 뛴다고?”
무사는 정문부를 따라 시선과 몸을 돌리더니 재차 발도 자세를 취하곤 착지 지점을 향해 일합을 취했다.
그대로 낙하한다면 몸이 베일 수 있었다.
“소용없다!”
이 순간! 정문부의 발이 허공을 차고 낙하하던 방향이 바뀌었다.
마치 바람을 밟는 것 같은 보법!
이 또한 스킬 중 하나인 ‘에어 워커’였다.
“하앗!”
“크아악!”
착지와 동시에 정문부의 검이 상대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다른 능력자들도 스킬과 그리고 능력치 계승을 통해 현격한 실력 차를 메우며 무사들을 모두 쓰러트렸다.
“이, 이럴 수가.”
“후퇴해라!”
믿었던 무사들까지 일방적으로 당하자 진두지휘하던 왜장들은 후퇴를 명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결과에 당연히 가토 기요마사가 분개하였다.
콰득!
손에 쥔 접힌 부채를 그대로 반으로 쪼개며 가토 기요마사는 말했다.
“도대체 저들은 뭐란 말인가?”
“조선에 저러한 기묘한 재주를 가진 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닌자들처럼 특수한 훈련을 받은 자들일 수 있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제아무리 뛰어나기로 소문난 이가나 코가의 닌자들도 저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전국시대에서의 닌자는 기껏해야 타 영지의 소문을 수집하거나 동향을 살피는 게 전부였다.
그 사실을 닌자를 직접 부려본 적이 있는 대영주인 가토 기요마사가 누구보다 잘 아는 바였다.
동시에 저러한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능력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능력이 비범하다고 해도 겨우 다섯, 제가 가서 놈들을 격멸시키겠습니다.”
“부디 이 노소다에게 기회를!”
가토 기요마사 직속의 가신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지목하며 기회를 줄 것을 요청해왔다.
이에 가토 기요마사는 분전 중인 조선군의 동태를 보고는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 따라서 철퇴한다.”
“알, 알겠습니다.”
보통 때라면 강공을 펼쳤을 가토 기요마사가 뜻밖의 결정을 내리자 가신들은 적잖게 당황해했다.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명령에는 절대적으로 따랐다.
뿌우우.
철퇴를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울리자 왜군의 전 병력이 퇴각을 개시했다.
“왜적이 물러난다!”
“우리의 승리다!”
명백한 수적 불리에도 불구하고 왜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전투에 참가한 의병과 관군 모두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이때까지도 전방에서 검을 휘두르며 무수한 왜병을 베던 정문부는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물러나는 적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승리하였구나.”
본인이 생각해도 기적적인 승리였다.
특히 이번 전투를 통해 자신이 얻은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장군, 무사하십니까.”
“난 괜찮네. 부상자를 수습하여 우리도 어서 길주로 돌아가세.”
“네, 장군!”
비록 승리를 거두었지만 수백의 사상자가 나왔기에 정문부는 후퇴하는 적을 쫓지 않고 병력을 물렸다.
이렇게 양군은 각각 본거지로 철수하였고 전투의 수습을 하였다.
당초 본래 역사에서였다면 수 개월을 끌었을 싸움이었지만 당초 예상과 다르게 한달여 만에 북관대첩은 종식되었다.
이 전투를 통해 처음으로 제대로 능력자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
능력의 유효함을 확실히 인지한 정문부는 남쪽의 왜군의 동향을 살피며 보다 많은 몬스터 코어를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가토 기요마사도 능력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몬스터의 존재에 이어 몬스터 코어의 능력까지 점차적으로 부각되어지면서 향후 임진왜란의 흐름은 크게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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