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장. 북관대첩. (4)
정문부와 그를 따라 두 왕자를 탈환하러 갔던 이들은 모두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반면 그들과 마주쳤던 요시바케 코요다가 이끌던 왜군은 웨어 울프와 충돌로 인해 100명의 기마 무사가 전멸 당하고 300명의 보병 중 태반을 잃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간신히 웨어 울프의 추격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탈출할 수 있었다.
“하아, 두 왕자님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이 불충을 어찌하면 좋을까.”
“······.”
상호는 자책하는 정문부를 보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조선의 녹봉을 먹는 관리이고 효와 충을 제일 중요시 여기는 유학을 어린 시절부터 공부한 사람이니 저렇게 구는 게 유별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현대인의 시점으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고 일행은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다행이 본대는 별 피해 없이 회령 점령에 성공했기에 정문부와 상호 일행은 회령에 입성했다.
정문부는 우선적으로 남은 반란 세력을 뿌리 뽑는데 주력하는 한 편, 왜군과 싸울 의병을 더 모았다.
그 사이에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은 길주성과 그 일대 지역을 점령해갔다.
이렇게 보름의 시간이 후딱 흘렀다.
“장군, 벌써 여러 고을이 왜군의 습격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어서 일전을 치러야 합니다.”
회령 관아에서 열린 지휘관 회의에서 정문부 휘하로 들어온 여러 제장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정문부도 같은 뜻을 밝혔다.
“본인 또한 왜군과의 일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회령과 명천 일대의 민심을 안정시켜 후방을 정비하는데 성공한 지금이라면 일전을 벌여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만 정면에서 싸우기엔 전력이 너무나 약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제껏 의기 있는 자들이 휘하에 모여준 덕에 삼천의 군세가 되었다지만 상대는 이만이 넘는 대군이오. 섣불리 싸움을 걸었다간 필패할 것이니 계책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오.”
정문부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자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서 정문부는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보낸 세작을 통해 얻은 정보를 갖고 자신이 생각한 전략을 이야기했다.
“세작이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왜장 가등청정은 안변에 본진을 두고 그곳에 머물고 있다 하오.”
대신 휘하의 무장들에게 병력을 주어 북진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명령을 받고 북으로 진격해간 왜군은 길주에서 더 북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발목이 묶여있었다.
“세작이 알리기를 현재 길주성에 주둔한 왜군은 그보다 북쪽 지역에 나타나는 요괴와 전투를 치르고 있다고 하오.”
“허허.”
“그것 참.”
정문부의 말에 지휘관들은 모두 크게 놀라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현재 왜군이 싸우고 있는 적, 웨어 울프와 직접 접촉했던 정문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이미 몬스터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며칠 간, 이들은 반란에 가담했던 자들만 상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백두대간의 가장 윗부분, 함경도를 가로지르는 함경 산맥 일대에 나타난 여러 몬스터 거점을 처리하는 일도 했던 것이다.
이 일은 도맡았던 바로 상호 일행이었다.
우선 상호는 근방의 산들을 잘 아는 사냥꾼들을 통해 몬스터 거점의 위치와 숫자를 파악해냈다.
그 결과, 약 100여 곳의 몬스터 거점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이 중에서 당장 정문부의 의병 부대에게 악영향을 미칠 만한 대여섯 개의 몬스터 거점을 의병 부대의 협력 하에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문부의 일을 도와준 상호 일행이지만 지금 이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헌터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상호 일행은 다음 임무를 위해 함경도 땅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로써 함경도를 지키는 싸움은 여러 곳에서 모여든 의병장들의 지지 하에 북도의병 대장으로 추대된 정문부의 역량에 따라 당락이 결정나게 되었다.
“우리는 요괴들을 상대로 어떻게 대처하고 토벌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왜군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진격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늑대인간 요괴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그러하다고 해도 요괴들의 숫자가 한정적인 이상, 수적 우세로 왜군이 그것들을 격멸하고 북상해올 것입니다.”
“그 말이 옳다.”
정문부는 경원부사 오응태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한 곳의 몬스터 게이트에서 나타나는 몬스터 숫자는 단계가 높아지지 않는 한 제한적이었다.
계속해서 손실을 입히고 수적 우세로 몰아붙인다면 웨어 울프나 몬스터 게이트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방법을 모르는 왜군일지라도 그들을 무찌르고 당초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정문부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길주 일대로 올라온 왜군 대다수는 요괴 소탕에 투입되고 있어 사실 상 길주성은 텅 빈 상태라고 한다.”
“설마 우회해서 성을 노리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정문부는 요괴와의 싸움 때문에 대부분의 병력이 나가 있는 길주성을 함락하여 북쪽으로 올라온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안변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본대를 견재한다는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원래 역사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본래 역사에선 길주성을 나온 왜군을 격퇴하여 길주성의 왜군을 고립시키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안변에서 가토 기요마사의 본대가 오는 것을 매복해 타격을 입히는 것인데 제 삼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의 존재로 직접적인 성의 함락 쪽으로 방향이 바뀐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에 대해 지휘관들은 반대를 하지 않았고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 부대는 사전에 조사하여 몬스터들의 영역이 아닌 곳을 따라 우회하는 길을 확보하여 신속하게 이동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길주성의 왜군들은 며칠간이나 자신들을 애먹이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때문에 정작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숫자는 적어 방비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야심한 밤.
성벽 위에 드문드문 서 있는 왜병의 눈을 피해 위장한 병사들이 성벽 가까이로 다가갔다.
“좋아, 올라가라.”
“예!”
면밀히 엄선되어 뽑힌 군관과 병사들은 성벽의 틈새를 이용해 능숙하게 성벽을 기어올랐다.
먼저 올라간 군관은 소리 없는 걸음으로 보초를 서는 왜병의 등 뒤로 다가가 단도로 목을 찔렀다.
힘없이 쓰러지는 시체를 곧바로 받아 성벽에 눕히고는 뒤따라 올라오는 이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 병사들이 올라오고 성벽 위는 침묵 아래 정리되어졌다.
“너희는 성문을 열어라.”
“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야습조는 곧 성 곳곳으로 흩어져갔다.
이윽고 성문이 열리자 멀찍이 숲에 은신해 있던 정문부는 부대를 이끌고 신속하게 성으로 향했다.
“적이다!”
마침내 성 내의 왜군이 조선군의 야습을 알아챘다.
부리나케 숙소에서 왜병들이 반 벌거숭이 모습으로 나왔지만 이미 조선군은 그들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죽어라!”
“으악!”
밤하늘을 날아온 화살에 왜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져갔다.
그 다음으로 장창을 든 조선군 살수들이 일제히 돌격해와 도망칠 틈을 주지 않으니 일방적인 학살이 펼쳐질 따름이었다.
“항복해라! 그러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다!”
정문부의 외침에 살아남은 왜병들은 순순히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이로써 길주성은 다시 조선의 휘하에 편입되었다.
길주성의 함락으로 가장 큰 낭패를 겪게 된 것은 웨어 울프 소탕에 투입되었던 왜군 병력이었다.
웨어 울프 한 마리를 토벌하는데 수십의 사상자를 내며 어려운 싸움을 하던 왜군으로선 퇴로까지 막혀버린 곤궁한 사태에 더 이상 임무를 지속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우선 안변에 있는 본대와의 합류를 꾀하고 서둘러 철수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문부가 예상했던 바였다.
좁은 협로를 따라 후퇴하는 800여 명의 왜군을 두고 왼쪽 언덕 위쪽에서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으아악!”
“매복이다!”
뒤늦게야 조선군의 매복을 알아차린 왜군은 허둥대면서 탈출을 꾀했다.
이때, 그들이 가려던 방향에서 200여 명의 기병들이 집단을 이루어 달려왔다.
“돌격, 앞으로!”
“와아아!”
선두에서 말을 모는 것은 바로 정문부였다.
조총병들이 사격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대열로 파고드는데 성공한 함경도 정예 기병들은 무자비하게 편곤이나 철퇴로 왜병들의 머리를 으깨며 전진했다.
“퇴각해라!”
부대를 지휘하는 왜장은 황급히 반대편으로 후퇴를 명령했다.
계속해서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 비와 기병의 추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왜군은 본래 왔던 곳으로 쫓기듯 후퇴해야만 했다.
“여기까지면 된다.”
“하지만 아직 적이······.”
“저들은 어차피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후퇴하는 왜군을 압박하며 뒤를 추격했던 기병대는 정문부의 만류에 따라 더 이상 왜군을 쫓지 않았다.
정문부가 만류한 것은 지금 왜군이 쫓겨 들어간 지역이 웨어 울프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헉헉.”
“여기까지 쫓아오지 않는군.”
“히요시님, 여긴 그 요괴 놈들이 출몰하는 곳입니다.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만 합니다.”
“큭! 동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가는 수밖에.”
살아남은 왜군은 부상자들을 수습하여 서둘러 이 지역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피 냄새는 웨어 울프들을 자극하였다.
“크르르르.”
“아우!”
그간 왜군의 토벌로 숫자가 꽤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게이트를 지키는 로드를 제외하고도 십여 마리의 웨어 울프들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그 중엔 일전 왜군 기마무사들을 참살했던 검은 털의 웨어 울프도 있었다. 이놈은 ‘강화종’이라 부를 수 있는 몬스터 코어를 품은 개체였다.
웨어 울프들은 도망치는 이 지역을 벗어나는 왜군을 쫓아 움직였다.
좌우로 산개해 움직인 웨어 울프들은 곧 대열의 머리와 꼬리 부분을 각각 급습했다.
“요괴다!”
“도, 도망쳐!”
이미 만신창이인 왜병들은 불쑥 기습적으로 나타나 닥치는 대로 살행을 펼치는 웨어 울프에게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런 가운데 부상자들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제일 먼저 살해당해갔다.
순식간에 100명도 넘던 인원 중 태반이 죽어나갔다.
웨어 울프들은 손톱과 발톱, 이빨을 십분 활용해 도망치는 자들을 쫓아 찢어발겼다.
“덤벼라!”
왜장은 도망치지 않고 왜도를 옆으로 세워 들고 ‘강화종’ 웨어 울프와 마주했다.
그러한 왜장의 태도에 ‘강화종’ 웨어 울프는 네 발로 땅에 서서 낮은 자세로 경계를 취했다.
죽더라도 무사답게 죽겠다는 각오로 왜장은 기합을 목청껏 내지르며 곧장 앞을 향해 돌격했다.
간격에 이르고 손에 들린 왜도가 힘껏 앞으로 뻗어나갔다.
휘익!
“아닛?!”
방금까지 있던 ‘강화종’ 웨어 울프의 모습이 눈앞에 사라진 것에 왜장은 적잖게 당황해했다.
이때, 그의 왼팔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크아앗!”
어느 틈에 팔이 잘린 것인지. 왜장은 비명을 지르며 잘린 팔쪽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이런 가운데 왜장 뒤편으로 어느새 이동한 ‘강화종’ 웨어 울프는 긴 주둥이를 벌리며 하얀 김을 내뱉었다.
이런 놈의 기척에 왜장은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몸을 돌리며 재차 왜도를 수평으로 길게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왜도가 나아갔지만 역시나 베이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이익!”
영악하게도 검의 간격을 읽고 그 반경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있는 ‘강화종’ 웨어 울프의 영악함에 치를 떨며 왜장은 다시 한 번 왜도를 휘두르고자 했다.
하나, 그의 시도는 불발로 끝나버렸다.
서컥.
‘강화종’ 웨어 울프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대로 투구를 쓴 머리와 몸을 둘로 분리했기 때문이다.
데구르르.
잘려진 머리가 지면을 구르고 ‘강화종’ 웨어 울프는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아우우우!”
이 목소리에 응해 주변에 흩어져 달아나는 왜병들을 참살하던 웨어 울프들도 덩달아 고개를 위로 젖히고 울어댔다.
이렇게 본의 아니지만 조선군과 몬스터의 연계로 길주를 지나 북상한 왜군 부대는 완전히 전멸해버렸다.
이러한 패배 소식은 가까스로 탈출한 병사에 의해 알려졌고 이에 분개한 가토 기요마사는 2만에 달하는 본대를 이끌고 길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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