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8화 (48/127)

九장. 정문부. (7)

상호가 본격적으로 지시를 내리면서 싸움의 양상이 달라졌다.

상호는 세 사람 모두 자신의 말을 믿고 그대로 그것을 수행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 ‘매의 눈’으로 오크 로드와 세 사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동시에 아까까지 파악했던 행동 패턴을 토대로 지시를 계속해서 내렸다.

“율은 앞으로 가면서 찌르기! 직후에 임 무관은 우측으로 한 발자국 움직이고 거기서 오크 로드의 행동을 제지해요.”

연이은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이 움직이고 오크 로드는 방금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율을 쫓아 몸을 돌리지 못하고 허점을 드러냈다.

지금 공격한다면 성공할 것 같은 상황.

하지만 상호의 지시는 뜻밖의 것이었다.

“세 사람 다 뒤로!”

이 기회를 버리고 물러나란 말에 세 사람 다 움찔했다.

이에 상호는 재차 소리쳤다.

“어서요!”

이것이 효과를 냈고 세 사람은 시킨 대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오크 로드는 콧김을 거칠게 뿜어내며 발을 지면을 찼다.

방금 공격해 들어왔다면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식으로 반격하려던 것이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휴우.”

상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오크 로드의 의도를 읽은 것은 오크 로드가 보여준 행동 패턴 덕분이었다.

여태까지 보여주지 않은 행동, 그런데 그것이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면 답은 뭔가 노림수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다들 조심해요.”

상호의 말에 세 사람은 무기를 고쳐 잡고 다시 오크 로드를 상대했다.

이후로도 격렬한 공방이 펼쳐졌지만 오크 로드는 상호의 매서운 눈길에 완전히 간파되어 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몰렸다.

위기감을 느낀 오크 로드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도망치는 게 현명하겠지만 놈은 그러지 못했다.

‘놈이 게이트 키퍼인 이상 그럴 수는 없겠지.’

게이트 키퍼, 로드의 힘을 얻은 몬스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게이트를 떠날 수 없었다.

설령 죽음의 상황에 닥쳐도 말이다. 그렇기에 오크 로드는 더욱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이기도 했다.

슬슬 오크 로드가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본 상호는 뒤쪽을 향해 말했다.

“지금 놈을 끝장낼 것이니 살수들은 돌진할 준비를 하고 사수들도 내 지시에 바로 화살을 쏠 수 있게 해주세요.”

그 말에 뒤에서 대기하던 인원들은 허둥거리며 시키는 대로 따랐다.

딱히 뒤를 보지 않고 상호는 오크 로드와 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별안간 소리쳤다.

“셋 다 뒤로!”

이제까지보다 다급한 상호의 외침에 세 사람 모두 싸우다 말고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졸지에 상대를 잃은 오크 로드는 우두커니 서있게 되었다.

“발사!”

상호가 짧게 외치자 뒤쪽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던 사수들이 화살을 날렸다.

일제히 쏘아진 화살은 그대로 오크 로드 주변으로 낙하했다.

“크워어!”

달리 피할 길이 없었던 오크 로드는 두 팔을 들어 머리를 가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여기저기 화살을 꽂은 채로 선 오크 로드를 보며 상호는 재차 지시를 내렸다.

“지금 돌격해요!”

이러한 말에 대기하던 살수들이 창을 들고 일제히 오크 로드에게로 달려들었다.

퍼버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크 로드의 몸 곳곳에 창이 박혀졌다.

“크흡!”

“다들 버텨!”

있는 힘껏 장정 여덟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창을 찔렀지만 그럼에도 오크 로드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창을 찔러온 살수들을 힘으로 밀어내며 도끼를 든 손을 들려고 했다.

이런 놈을 막기 위해 살수들은 이를 악물며 힘을 줘봤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이것을 본 상호는 임충을 보았다.

“임 무관님!”

“으음.”

임충은 상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박에 이해하고 움직였다.

오크 로드가 볼 수 없는 위치로 이동해 등 뒤에 다가가는데 성공한 그는 단숨에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이 일격에 마침내 오크 로드의 머리가 떨어지고 전투는 마침내 끝이 나게 되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오크 로드를 쓰러뜨린 것에 기뻐하며 상호는 자신의 말에 따라 싸웠던 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 부위의 지시 덕분에 수월하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임충은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정문부 또한 비슷한 칭찬을 해왔다.

“아까 전의 지시는 실로 대단했네. 그렇게 완벽하게 적을 꿰뚫어보고 모든 움직임을 예측해내 우리에게 적절한 지시를 할 수 있다니. 그 통찰력은 보통이 아니야.”

“하, 하하.”

과도한 칭찬에 상호는 머쓱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내심 자신이 아까 한 일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늘 지시에만 따르던 내가 이렇게 지시를 내리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런데 의외로 나 꽤 잘한 것 아닌가?’

자신에게 ‘커맨더’의 재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터라 아까 경황이 없던 중에도 정확한 지시를 내린 것에 대해 새삼 스스로 놀라는 상호였다.

물론 ‘커맨더’는 이 정도만으론 자칭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 붙잡혀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 그게 정말인가?”

상호가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에 오크들의 본거지를 수색하던 사람들이 오크들에게 납치된 사람들을 찾아냈다.

다행히 납치된 시일이 길지 않아 다들 무사했다.

진심으로 안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번 구출을 주도했던 정문부는 흐뭇해했다.

“그럼 어디.”

상호는 곧장 오크 로드의 몸을 갈라 몬스터 코어를 찾았다.

이윽고 놈의 뱃속에서 찾은 것은 푸른색의 몬스터 코어였다.

“좋았어!”

씨 서펜트 때에 이어 또 다시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몬스터 코어를 얻은 것에 상호는 쾌재를 불렀다.

그 다음 한 일은 게이트를 찾아 파괴하는 것이었다.

“여기 있었군.”

게이트는 오크 로드가 있는 움막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호는 더는 몬스터가 나오지 못하도록 확실히 게이트를 파괴했다.

이후에 혹 생존한 오크가 더 있는지 주변을 수색하고 나서 구출한 사람들을 데리고 처음 들렸던 고을로 복귀했다.

초승달이 밤하늘에 걸린 가운데, 하루 종일 산을 걸었음에도 상호는 쉬지 않고 중요한 대화를 나눴다.

호롱불로 밝힌 방 안에서 상호는 정문부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제안을 하였다.

이에 정문부는 호탕하게 답변했다.

“그런 요괴들이 이 땅에 있다고 하면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나 또한 전력을 다해 이것들을 토벌하는데 돕겠네.”

“감사합니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해둬야 할 일이 있네.”

정문부의 말에 상호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하여 먼저 말을 꺼냈다.

“왜군 때문입니까?”

“곧 이곳까지 왜군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네.”

조선을 침공한 왜군 중 2군에 해당되는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2만여 명의 병력이 함경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의 진격이 함흥까지 향하고 있다고 하니 정문부로선 이들을 그냥 방관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역사를 알고 있는 상호는 이렇게 말했다.

“왜군을 격퇴해서 더는 침공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죠.”

“이해해주니 고맙네.”

“그럼 병사를 일으키시는 겁니까?”

살짝 떠보듯 묻는 상호의 말에 정문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럴 생각이네. 본래 이곳 함경도엔 여진, 거란족도 벌벌 떨게 할 만큼 뛰어난 병사들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앞선 왜군과의 전투에서 대다수를 잃고 말았네.”

“그렇지요.”

상호는 신립 장군과 탄금대 전투를 떠올리며 씁쓸한 어조로 대꾸했다.

이런 상호의 속내를 모르는 정문부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직 육진에 남아있는 병력이 꽤 되고 이번처럼 백성들 중에 뜻이 있는 자들을 모아 왜군을 막아볼 생각이네.”

“분명히 잘 되실 겁니다.”

지금의 답변은 단순히 역사를 알기에 한 말이 아니라 정문부라는 인물을 개인적으로 보고 판단하여 한 말이었다.

붙잡힌 백성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구하려 한 정문부는 후대에서 위인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이후로 왜군을 막아내고 몬스터 토벌도 잘 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 쉬게.”

“예.”

긴 대화가 끝나고 상호는 같이 동석했던 임충과 함께 방을 나왔다.

밖에서 율이 기립해 있었다.

그것을 본 상호는 놀라서 한 마디 했다.

“여태까지 이곳에 서 있었던 거야?”

“네.”

“거참 바로 잠자리에 들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듣네.”

피로가 쌓였으니 먼저 쉬라고 분명 말해두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율을 보며 상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참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임충에게 말을 전했다.

“둘이 잠시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상호의 뜻을 받아들이고 임충은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둘만 남게 되고 상호는 사람이 찾지 않을 으슥한 곳을 찾았다.

“······.”

율은 상호를 따라와서는 초조해하며 주변을 보았다.

아무리 무인으로 살았다지만 그래도 조선 시대의 여인인 율로선 이 야심한 시간에 남정네와 같이 있는 게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저기 말이야.”

“네, 넷!”

평상 시였다면 보이지 않았을 과민한 반응을 내보이며 율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상호는 품에서 보자기로 싸두었던 푸른색의 몬스터 코어를 꺼내보였다.

딱히 빛이 없어도 몬스터 코어는 신비한 광채를 뿜어내며 그 존재를 드러냈다.

율은 순간 이 광채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런 율에게 상호는 말했다.

“이것을 네가 취했으면 한다, 율.”

“제, 제가 말인가요?”

“그래.”

“어찌 저 같은 게 이런 보물을 취할 수 있겠나이까. 부디 말을 거둬주세요.”

율은 손사래까지 취며 사양해왔다.

으레 이런 반응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상호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율이 지금까지 전투에서 활약해준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아.”

“그래도······.”

“앞으로 나는 각지에 나타난 요괴들을 상대해야 돼. 그 중엔 이번에 상대한 오크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가 즐비해. 그러니 날 따라오려면 그만큼 걸맞은 힘이 필요하다고.”

일리에 맞는 말이었기에 율은 더는 마다하지 못했다.

“이것을 취하면···정녕 신통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래, 맞아. 다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은 랜덤··· 아니 일정치가 않아서 어떤 능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몰라.”

“그렇군요.”

“하지만 적어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으니깐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네.”

상호의 설명에 율은 상호의 손바닥 위에 있는 몬스터 코어를 손에 쥐었다.

율은 그것을 보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상호를 믿고 그가 시킨 대로 몬스터 코어를 이마에 가져다대었다.

그 순간! 푸른 광채가 나타나면서 몬스터 코어의 힘이 율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것을 보며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율은 어떠한 능력을 손에 넣을까.’

개인적으론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을 얻었으면 한다.

물론 운이 나쁘다면 그리 좋은 스킬이 안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큰 걱정이 안 된다.

나쁘게 보이는 능력일지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몬스터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코어의 힘을 취하면서 눈을 감고 무아지경에 빠졌던 율이 코어의 광채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서서히 눈을 떴다.

“어때, 기분이?”

“···모르겠어요. 이런 기분은 처음인지라.”

상호의 말에 답하던 율은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상호는 이런 일이 없었지만 코어의 힘을 취하는 과정에서 다소 피로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상호는 얼른 다가가 몸을 부축했다.

“나리.”

“이것은 절대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야.”

자신의 품에 안겨 홍조를 보이는 율에게 상호는 황급히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율은 그런 상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이고는 눈을 다시 감았다.

그대로 잠이 든 것이었다.

“이것 참.”

여러모로 난감하게 되었다.

상호는 일단 율이 얻은 스킬에 대해서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잠이 든 율을 그녀의 방으로 데려다주고자 그녀를 안아들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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