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5화 (45/127)

九장. 정문부. (4)

상호가 먼저 상대한 것은 초승달 형태의 칼날을 가진 시미터를 든 오크였다.

위에서 아래로 힘껏 휘둘러오는 시미터!

오크의 근력은 평범한 인간보다 강하다.

“칫!”

오크의 근력은 인간의 한계치를 넘는 4단계에 있기 때문에 힘 대 힘의 대결이라면 상호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상호는 ‘매의 눈’으로 오크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읽으면서 몸을 움직여 내리쳐오는 칼날을 살짝 피하면서 오크의 팔을 붙잡았다.

“흐아압!”

기합과 함께 왼쪽 무릎으로 옆구리를 강하게 찍으니 오크의 허리가 옆으로 꺾였다.

“크와아!”

등 뒤에서 고함과 다른 오크가 덮쳐온다.

상호는 방금까지 잡고 있던 오크의 팔을 크게 휘두르면서 몸을 회전시켰다.

그것에 딸려 휘둘러진 오크와 방금 공격하려 했던 오크가 서로 충돌을 일으켰다.

뒤엉켜 쓰러진 오크들.

상호는 재빨리 바닥에 떨어진 화살 하나를 쥐곤 막 몸을 일으키려던 오크의 눈깔에 그것을 박아넣었다.

“쿠에에엑!”

귀청 떨어질 정도로 큰 울부짖음을 지르며 오크는 자신의 눈에 화살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다.

그 틈에 놈의 손에서 시미터를 뺏은 상호는 다른 한 놈의 목을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

데구르르.

잘려진 오크의 머리가 아래쪽으로 굴러가는 것을 보았다.

이어 상호는 마저 시미터를 휘둘러 다른 한 마리의 숨통도 끊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려는 찰나!

나뭇가지가 마구 꺾이는 소리와 함께 바로 앞으로 커다란 형체 하나가 불쑥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바로 잠시 잊고 있었던 오크 전사였다.

“헉!”

“크와아아!”

오크 전사는 놀라는 상호를 보며 크게 입을 벌리며 포효했다.

다른 오크들보다 머리 하나 더 큰 덩치의 오크 전사는 철편을 쩔그럭거리면서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이런 놈을 상대로 상호는 뺨에 땀 한 방울을 흘리며 그대로 멈췄다.

울퉁불퉁한 근육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지리게 했다.

‘접근전은 무리다.’

단순히 육체의 강함이 일반 오크보다 뛰어난 게 전부가 아니다.

오크 전사의 전투 실력 또한 무척 뛰어나기에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랬기에 상호는 이 존재와의 근접 전투를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온다!’

‘매의 눈’을 통해 오크가 어떻게 공격해올 지 간파하고 몸을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비탈 아래로 굴렀다.

다리를 달리는 것보다 구르는 편이 더 빠르다는 판단에서였다.

약 이십여 미터를 구르니 깎아지듯 아래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나왔다.

거기서 일단 멈춘 상호는 아래를 보았다.

대략 10여 미터를 떨어져야 했다.

“크와아!”

오크 전사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비탈길을 전력으로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망설일 겨를도 없다는 것을 인지한 상호는 그대로 아래로 몸을 날렸다.

드르르륵.

발과 손으로 절벽을 긁으며 낙하해 착지했다.

겨우 넝쿨 줄기를 잡아 더 굴러 떨어지지 않았던 상호는 다시금 뛰었다.

이런 그의 뒤로 심상치 않은 굉음이 들려왔다.

“저, 무식한 놈 같으리라고.”

오크 전사는 10미터가 넘는 절벽에서 그대로 뛰어내린 것이다. 그러고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인지 바로 뒤를 쫓아왔다.

“끈질긴 녀석 같으리라고.”

그래도 다행이라면 절벽에서 뛰어내린 덕에 쫓아오는 게 저 오크 전사 하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상호는 욱씬거리는 몸에도 불구하고 오크 전사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계속해서 산 아래를 향해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계속 뛰다보니 계곡 물이 졸졸 흐르는 산 아래쪽까지 오게 되었다.

“물이다!”

상호에게 있어서 물이 흐르는 계곡은 싸우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첨벙. 첨벙.

물 위를 소리를 내며 달리는 상호를 따라 오크 전사가 콧김을 뿜으며 달려온다.

“수룡시!”

상호는 갑자기 멈춰서며 뒤를 향해 물의 속성력을 펼쳤다.

급박했기에 만들어진 수룡시는 단 한 발뿐이었다.

그것으로 노린 것은 오크 전사의 머리통이었다.

물속에서 솟구친 수룡시는 그대로 오크 전사의 정면으로 날아갔다.

“크워?”

오크 전사는 수룡시를 발견하곤 급히 멈췄다. 하지만 피하기엔 너무 늦은 후였다.

순간 뒤로 휙 젖히는 고개.

‘해치웠나?’

이런 기대와 다르게 오크 전사의 고개는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뒤로 젖힘으로써 수룡시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것이다.

그래도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는지 뺨에 길게 상처가 남겨져 있었다.

“크와아아아!”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오크 전사는 계곡이 떠나갈 새로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놀란 산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제대로 빡친 것 같은데.”

상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발목까지 잠겨 흐르는 계곡 물의 감촉을 느끼며 선 상호를 향해 오크 전사가 돌격해왔다.

‘매의 눈’을 통해 오크 전사의 움직임을 예측한 상호가 움직였다.

서슬 퍼런 공격이 측면에서 비스듬하게 들어왔다.

이를 한 발 먼저 예측해 피한 상호는 그대로 단도로 오크 전사의 목을 노리며 그 옆으로 돌아들어갔다.

팅!

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읽혔다?”

오크 전사는 상호가 노리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머리를 숙여서 투구로 단도를 튕겨냈다.

일단 뒤쪽으로 빠져나와 물살을 일으키며 몸을 다시 돌린 상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런 그를 향해 오크 전사가 괴성과 함께 재차 달려들었다.

계속해서 쇄도해오는 오크 전사의 시미터.

“우읏!”

눈으로는 공격을 읽었지만 몸이 그것을 따라가 주지 못한다.

옷깃이 살짝 베이고 얇은 상처를 입었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것을 참아내며 상호는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물속에 잠겨있던 돌 뿌리에 상호의 발이 걸렸다.

“어, 엇?!”

그대로 뒤로 넘어진 상호.

이 틈을 오크 전사는 결코 노치지 않았다.

“쿠와아아!”

오크 전사의 팔이 높게 올라가는 것을 보며 상호는 순간 절망에 찬 눈빛을 취했다.

이윽고 높게 올려졌던 시미터가 상호를 향해 매섭게 내리쳐졌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러한 집념이 상호를 움직이게 했다.

여태까지 내내 달리면서도 손에 들고 있던 각궁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각궁의 활대론 시미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반으로 쪼개졌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은 행운이 발생했다.

“카악!”

활대가 부서지면서 같이 활 줄이 끊어졌는데 그것이 우연찮게 오크 전사의 안면을 강타한 것이다.

갑작스런 일에 오크 전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본 상호는 황급히 일어나면서 다른 손에 들었던 단도를 고쳐잡았다.

지금이 아니면 역습을 가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에 도망 대신 맞서 싸운 것을 택한 것이다.

“우아아아!”

이번엔 몸을 오크 전사한테 던졌다.

아무리 상호보다 체중이 더 나가도 발이 물에 잠기고 바닥이 미끄러운 자갈로 되어 있으니 오크 전사도 속절없이 쓰러졌다.

이때, 상호는 단도를 든 손에 감촉이 확실히 느껴지는 것을 체감했다.

달려든 상호는 정확히 오크 전사의 목 한가운데에 단도를 꽂는데 성공한 것이다.

“커, 컥!”

오크 전사는 상호에게 깔린 채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버둥거렸다.

강인한 생명력 덕인지 목을 찔리고도 쉽게 죽지가 않았다.

“그러면!”

상호는 팔로 오크 전사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주변에 흐르는 물을 속성력으로 조작했다.

흐르는 물이 퍼올라 오크 전사의 코와 입으로 들어간다.

오크 전사는 어떻게든 그것을 뱉으려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버둥거리던 오크 전사는 곧 잠잠해졌다.

“후우!”

그제야 상호는 팔의 힘을 풀고 속성력을 중지했다.

하도 힘을 쓴 탓인지 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겨우 해치웠네.”

현대였었다면 대구경 저격총으로 한 발에 처치했을 상대지만 이곳에선 죽자 사자 도망치다 마구잡이로 붙어 행운이 따라준 끝에 잡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선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오크 전사와의 육탄전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뿌듯한 것은 사실이었다.

일단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상호는 쓰러진 오크 전사를 보았다.

서컥.

갖고 있던 단도로 오크 전사의 가슴을 째고 그 안을 더듬으니 역시나 몬스터 코어가 나왔다.

이번에도 나온 것은 능력치를 올리는 <붉은색 코어>였다.

스킬을 올릴 수 있는 <푸른색 코어>가 아니라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힘든 승리에 대한 보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이번 것은 율에게 줘야겠다.”

지금까지 같이 함께하면서 목숨을 건 싸움을 해온 율이다.

자신의 등을 지켜주느라 고생했고 앞으로 그럴 예정인 그녀에게 몬스터 코어를 주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나저나 산이라 그런지 벌써 어두워졌네.”

상호는 주변에 어스름이 깔린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원래 길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온 마당에 해까지 지면 방법이 없었다.

“이래서는 길을 제대로 찾아 가기는 고사하고 완전히 산 속을 헤매겠군.”

이렇게 되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디든 안전한 곳을 찾아 하룻밤 지내야 할 것 같았다.

“밤을 보내는 게 걱정이네.”

깊은 산 속.

오크들도 걱정이지만 이곳 함경도의 산엔 호랑이나 표범, 늑대 같은 맹수도 많다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그런 것을 걱정하며 상호는 자신이 잘 곳을 찾아 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짹짹짹.

잠결에 들려오는 산새의 울음소리에 나뭇잎을 이불 삼아 바위 밑에서 쪼그리고 잠들었던 상호는 몸을 뒤척였다.

“···이보게.”

“으음.”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

그 소리에 드디어 상호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바깥의 빛을 등지고 있는 상대가 바로 앞에 있었다.

상호는 순간 본능적으로 배 밑에 깔아두었던 단도를 꺼냈다. 하지만 그것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날세.”

“정문부 공?”

상호는 반쯤 휘두른 단도를 멈추고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기에 상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다행히 무사했군.”

“어, 어떻게 여기에······.”

서로 떨어져 행동했던 곳에서부터 여긴 상당히 먼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 의문을 품는 상호에게 정문부는 내막을 설명해주었다.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헤어졌던 장소로 돌아가니 싸움의 흔적이 있더군.”

오크들의 시체나 마력이 깃들지 않은 장비는 재가 되어 없어졌겠지만 흔적까지는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냥개와 이곳 지리에 밝은 사냥꾼들과 함께 온 덕에 흔적을 바로 쫓아 자네를 쫓을 수 있었네.”

“그러하군요.”

정문부의 말과 그리고 바위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상호는 일어나 바위 아래에서 나왔다.

바깥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선 관아에 속한 포졸들부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조끼를 입은 사냥꾼들, 그리고 흰옷의 농민도 있었고 색실을 꼬아 머리에 묶은 백정과 노비들도 쟁기나 낫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부랴부랴 사람들을 모아 해가 뜨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이 때, 밑에서 올라온 율이 상호를 보곤 순간 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에 막 떠온 계곡 물이 담겨 있는 놋그릇이 있는 것을 보아 따로 상호를 위해 물을 뜨러 갔던 모양이다.

“여어.”

상호는 그런 율을 보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한쪽 손을 들어보였다.

이에 율은 심경이 복잡했는지 다가와 물이 담긴 그릇을 내밀고는 바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머쓱하게 손가락으로 볼을 긁는 상호를 향해 임충이 말을 걸어왔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와주셨네요.”

“제가 나서지 않아도 북평사께서 서둘러 주셨지요.”

“예.”

이렇게 빨리 구해주러 온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상호는 새삼 정문부와 일행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 이제 그 요괴들을 토벌하러 가세.”

정문부는 상호를 구하는 것만으로 그칠 마음이 없어보였다.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오크들의 본거지로 향하겠다는 그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상호는 결국 정문부를 돕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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