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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3화 (43/127)

九장. 정문부. (2)

정문부가 위험에 처하기 전에 그를 찾고자 상호 일행은 길을 재촉했다.

대략 위치를 듣고 왔다지만 첩첩산중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상호는 헌터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크들이 잘 다닐 만한 장소를 중심으로 수색해나갔다.

“이것 좀 보십쇼.”

길잡이로 따라나선 고을의 사냥꾼이 상호를 불렀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수풀 위에 누워있는 다수의 시신들은 모두 처참하게 살해당한 채였다.

“이미 한 발 늦은 건가.”

“이쪽을 좀 보십시오.”

임충은 시체들 사이에 누워있는 오크 시체를 발견했다.

그것을 본 상호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혹 정문부의 시신도 여기에 있는 그것을 걱정했다.

“북병사로 보이는 시신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북병사는 20대 중반이라고 했는데 이 중엔 그 나이의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전에게 들었던 병사의 숫자에 비해 여기 있는 시체의 수가 적습니다.”

상호는 임충의 말에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행여나 정문부가 여기서 죽임을 당했다면 역사가 크게 뒤틀렸을 것이다.

“시체들을 보니 죽은 지는 얼마 안 되었군요.”

“여기 이것 좀 보세요.”

주변을 살피던 율이 상호에게 한 가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사람이 어딘가로 끌려간 흔적이었다.

“아무래도 산 채로 잡아간 모양이네.”

“아녀자들을 붙잡아 간 것처럼 말인가?”

“응, 그래.”

몬스터들이 사람을 잡아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노동을 시키기 위함이다.

오크나 고블린 같은 아인종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숫자가 늘고 세력이 커지면 게이트를 중심에 두고 자신들의 성채를 짓는다.

이를 위해서 인력이 많이 필요하니 사람들을 산채로 붙잡아 가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자신들의 욕망을 풀기 위해서 또는 비상식량으로 쓰기 위함이다.

이유가 뭐든 한 번 잡혀간 사람은 거의 살아 돌아올 수가 없으니 어서 서둘러 구출을 해야 했다.

“흔적들을 쫓으면 놈들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서 가죠.”

상호는 직접 앞장서서 오크들의 본거지를 찾아 움직였다.

드문드문 남은 흔적과 오크들이 사용했을 만한 산길을 토대로 산 하나를 넘고 한참을 이동했다.

가다보니 계곡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지는 폭포의 아래엔 무척이나 맑은 물이 고인 웅덩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엔 선객이 먼저 와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상호는 바위 뒤에 숨어 웅덩이 옆에 자리를 잡은 오크들을 보았다.

원형으로 둘러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뭔가를 굽고 있는 오크의 숫자는 모두 아홉 마리였다.

정문부 일행을 습격했을 때보다 숫자가 적은 것은 다른 오크들이 다른 목적을 갖고 있어 본거지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오크들은 본거지까지 포로를 데리고 가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밧줄로 묶여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크 전사나 오크 주술사는 없어 보이는데······.”

오크들 중에서도 코어를 가진 상위 개체들은 아주 위험한 존재였다.

다행이도 다행히 오크 전사나 오크 주술사 같은 상위의 오크 개체는 없었다.

“적의 숫자가 우리보다 많습니다. 섣불리 공격하는 것은 위험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붙잡힌 사람들을 구할 기회는 없었다.

길잡이로 따라온 사냥꾼을 빼면 세 사람뿐인데 상대는 무려 아홉이었다.

임충과 율이 무예가 빼어나다지만 세 배나 많은 오크들을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기는 있었다.

“제가 맡겨주시죠.”

상호는 두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이 모습을 본 임충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찬성을 표했다.

“나리의 뜻이 그러하다면······.”

율도 허리에 매단 검을 살짝 뽑으며 각오어린 모습을 보였다.

상호는 이런 두 사람에게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폭포수가 떨어지는 웅덩이를 보았다.

‘물이 있다면 능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다.’

허공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본래 있던 물을 조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다만 어느 정도 거리가 되어야만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호는 오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살금살금 웅덩이 쪽으로 다가갔다.

더 이상 몸을 숨길만한 바위가 없는 곳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하였고 바위 뒤에서 물의 속성력을 발휘했다.

상호가 웅덩이에서 물을 퍼 올리는 이미지로 정신을 집중하자 곧 웅덩이의 물 일부가 큰 물방울 형태로 차례차례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상호는 ‘수룡시’의 이미지를 재차 그려서 허공에 뜬 물방울을 화살의 현태로 바꿨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수룡시는 총 여덟 발이었다.

“가랏!”

상호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허공에 떠 있던 수룡시들이 순간 가속하여 오크들을 향해 날아갔다.

“쿠워?”

“카우차!”

한 발 늦게 수룡시의 존재를 알아챈 오크들은 부랴부랴 그것을 피하려 했다.

퍼버벅!

회전을 하며 날아든 수룡시가 몸통과 머리에 박힌다.

피를 뿌리며 쓰러진 오크의 수는 모두 다섯.

처음부터 숫자가 모자라 빼놓았던 한 마리 말고도 세 마리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

쉬잉!

하지만 이내 한 마리의 등판에 화살을 박혀 들어가면서 숫자가 하나 줄었다.

화살을 쏜 것은 바로 율이었고 곧 임충이 검을 들고 오크들을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 요괴!”

외침과 함께 정확히 급소를 노리고 임충의 검이 번뜩였다.

“쿠어어!”

살아남은 오크 중 하나가 강격을 휘두른다.

투박한 검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임충은 몸을 옆으로 틀어 그것을 피했다.

오크의 검을 자갈들이 깔린 지면을 때렸고 그 바람에 무수한 자갈이 주변으로 강하게 튕겨나갔다.

황급히 두 팔로 파편을 막는 임충을 향해 다른 오크가 두꺼운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려 했다.

“어딜!”

상호는 그것을 보고 재차 물의 속성력을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릴 여유가 없었기에 웅덩이의 물을 그대로 오크에게 날린다는 느낌으로 힘을 펼쳤다.

그러자 웅덩이의 물이 세차게 솟구치더니 그대로 오크가 있는 쪽으로 물기둥이 되어 날아갔다.

“꾸에엑!”

물기둥의 수압에 오크는 그대로 넘어졌고 뒤이어 날아든 임충의 검격에 그대로 절명하였다.

마지막 한 마리가 처치하고 세 사람은 바로 붙잡힌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보시오!”

“당, 당신들은······.”

붙잡혀 있는 사람은 총 다섯 명이었다.

그 중, 화려한 군복을 입은 젊은이를 보고 그가 정문부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여러분을 구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곧 풀어줄 테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고맙네.”

정문부는 자신의 밧줄을 풀어주는 상호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다행히 다섯 사람 모두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대체 자네들은 누구인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준 상호 일행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런 정문부에게 상호는 품에 간직하였던 마패를 보여주며 말했다.

“전 세자 저하의 명에 따라 도처에 나타나는 요괴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은 이상호라고 합니다.”

“세자 저하라면 광해군 마마를 말하는가?”

“그러합니다.”

상호는 이후에 쓸데없는 설명을 빼고 몇 가지 핵심만 추려 설명해주었다.

이번엔 직접 경험한 일이 있어서 그런지 정문부를 이해시키는 일은 무척이나 쉬웠다.

“마침 지나는 고을에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내가 너무 안이했었네. 북방의 거란이나 여진족과도 상대해봤지만 이런 괴물은 처음 상대해봐 그만 붙잡히는 치욕을 당하고 말았네.”

“적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리 말하며 상호는 정문부를 자세히 보았다.

자신보다 겨우 두 살 많을 뿐이지만 조선 시대 사람으로 상투와 수염을 갖고 있어 동년배로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기억하고 있는 역사 속의 정문부 이미지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좀 있으면 밤이 됩니다. 지금 쓰러뜨린 오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른 놈들이 낌새를 채고 올 지도 모르니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아니, 잠깐만! 붙잡혀간 사람들을 두고 그냥 우리끼리 돌아가자는 것인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인원만으론 오크들의 본거지까지 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상호라고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않고 겨우 이 인원만으로 본거지에 있을 수많은 오크들과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오크 로드를 상대하는 것은 자살 행위였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물론 그들을 포기하지는 말은 아닙니다. 일단 돌아가서 사람과 무기를 확보하고 본거지를 치는 겁니다.”

“그 의견엔 소인도 찬성입니다.”

얘기를 듣던 임충 또한 상호의 의견에 동조했다.

처음 보는 요괴에게 붙잡혀 자신처럼 고초를 겪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애끓었지만 정문부도 상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해서 정문부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말대로 하지. 그리고 병사와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내게 맡겨주게.”

“당장 이곳으로 북병영의 병사를 이동시키려면 시일이 걸릴 텐데 괜찮겠습니까?”

임충이 묻자 정문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휘하에 있는 병력은 함경도 경성에 있어 이곳까지 동원해오려면 꼬박 이삼 일은 걸릴 터였다.

“이곳에서 몇 년이나 부임해 있었네.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사냥꾼들과도 아는 사이이고 지방 유지와도 돈독한 사이이네. 내가 부탁한다면 충분히 힘을 보태줄 것이네.”

“그렇군요.”

상호는 정문부의 말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원래 역사에서 임해군이 왜군에게 잡혀가는 일이 벌어지자 정문부는 함경도 일대에서 의병을 동원했다.

그의 아래로 사람들이 의병으로 모였던 것은 그만큼 그가 신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병력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을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럼 어서 돌아······.”

상호가 나서서 말하던 바로 그 순간!

저 산속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워어어어!”

그 소리는 짐승의 것과는 다른 어느 존재의 포효였다.

이것을 들은 상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런, 근처에 다른 놈들이 있었던 건가?”

“이 부위?”

“아무래도 오크 놈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들킨 것 같습니다.”

상호의 말에 말을 걸었던 임충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이렇게 되면 어서 서둘러 여기를 벗어나야만 했다.

“어서 서둘러야 합니다.”

“알, 알겠네.”

“제대로 뛸 수 있겠습니까?”

“나는 괜찮네만······.”

정문부는 말 끝을 흐리면서 병사들 쪽을 보았다.

두 명은 괜찮았지만 두 명은 부상 정도가 꽤 심했다. 특히 한 명은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이들을 데리고 오크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까.’

체력이 뛰어난 오크들을 상대로 도망쳐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상자를 데리고 그들을 뿌리치는 것은 거의 어려웠다.

‘이럴 때는······.’

헌터 활동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다.

도저히 부상자를 데리고 갈 수 없다면 부상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게 헌터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선택의 기회란 자그마한 가능성을 믿고 뒤에 남는 것과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무자비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수 있기에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헌터들은 이렇게 했다.

새삼 상호는 그러한 헌터들의 규칙을 적용하고자 했지만 그보다 먼저 임충이 말했다.

“어찌 버리고 갈 수 있겠소. 최대한 도와서 같이 여기를 빠져나갑시다.”

“마땅히 그리 해야 한다고 본인도 생각하네.”

부상자도 데려가자는 말에 정문부까지 거들었다.

이 상황에서 차마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없었던 상호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어서 갑시다!”

결국 부상자들까지 떠안고 일행은 오크들을 피해 폭포 웅덩이가 있는 곳을 떠났다.

잠시 뒤, 상호 일행이 있었던 장소로 콧김을 뿜으며 녹색 피부의 오크들이 당도했다.

“크와아!”

오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금속 갑옷을 입은 오크가 쓰러진 시체들을 보고 크게 소리를 터트렸다.

그리고는 곧 흉흉한 기색을 풍기며 남겨진 자취를 따라 본격적인 추격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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