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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2화 (42/127)

九장. 정문부. (1)

이치 전투가 끝나고 상호 일행은 북으로 향하였다.

상호가 북쪽, 정확히 말하자면 함경도 땅에 가는 것은 그곳에서 몬스터가 나타나 피해를 입혔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또 하나, 함경도에 거병을 한 의병장인 정문부를 만나려는 목적도 있었다.

세 사람은 다시금 길을 거슬러 함경도 강계 땅으로 향했다.

이 와중에 상호는 한 가지를 떠올리고 임충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제가 알기론 함경도에 세자 저하처럼 다른 왕자님들도 나와 전쟁을 독려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 맞습니까?”

“임해군 저하와 순화군 저하께서 지금 병사를 모으기 위해 그쪽에 계십니다.”

“역시···그렇군요.”

이 대화를 통해 상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임해군과 순화군.

선조의 아들들로 이 중 임해군은 장자였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성품이 아주 개떡 같은 개망나니 왕자라는 것이었다.

전쟁 전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켰기에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세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임해군은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도 조금도 반성을 하지 않고 함경도에 와서도 패악을 부려대니 이에 함경도의 주민들은 고통에 신음했다.

결국 이를 참다못해 국경인이라는 자가 이 둘을 붙잡아 왜군에 넘겨버리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아직 시간 상 그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머잖아 그리 될 것이 거의 확실했다.

‘뭐 두 왕자가 어찌 되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조선의 일개 왕자, 그것도 전혀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들지 않게 만드는 개망나니를 구해줄 의리는 상호에게 없었다.

괜히 이치 전투 같이 끼지 않아도 될 전투를 다시 하고 싶지 않기에 그 문제는 임충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다.

상호 일행은 길을 서둘렀다.

그렇지만 조선을 침공한 왜군의 제 2진인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함경도 쪽으로 진격하고 있어 그들을 피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야 했기에 시일이 지체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행은 목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고을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한 고을의 분위기는 매우 심상치 않았다.

“이것 참, 분위기가 참 을씨년스럽군요.”

길거리에선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고을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집집마다 인기척이 느껴졌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창호지를 붙인 문을 약간만 열고 바깥의 동태를 숨죽이며 살피고 있었다.

그러한 동태를 느낀 상호는 말 위에서 임충에게 말했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네요.”

“왜군이 올라온다고 하니 불안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우리까지 경계의 시선을 볼 필요는 없겠지요.”

상호는 이곳에 뭔가 일이 있음을 짐작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곧 이렇게 말했다.

“잠시 이곳의 사정을 확인하고 가지 않겠습니까?”

“저도 같은 생각을 하던 참입니다. 그럼 우선 고을의 수령을 만나러 가시죠.”

“네, 그러죠.”

먼저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알기 위해 고을의 관아를 찾았다.

그런데 관아에 도착하니 고을 사또는 없고 아전 두 사람만 덜렁 있었다.

두 사람은 상호 일행이 광해군의 명을 받아 왔다는 말에 황급히 자세를 낮췄다.

“고을을 책임지는 사또는 어디로 갔나?”

임충의 물음에 아전 중 한 사람이 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 그것이···. 변란이 일어나고 적이 이 고을 근방까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사또 나리께선 피난을 가셨습니다.”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가 그렇게 피난가도 괜찮은 겁니까?”

“당연히 안 될 일이지요. 조정의 명을 받아 고을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임무를 방기하고 도망친 것은 큰 죄입니다.”

임충의 대답에 상호는 이곳의 상황을 두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급급하다지만 아직 쳐들어오지도 않은 왜군을 두려워해 혼자만 도망쳤다는 게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에 없는 사또나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곳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혹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습니까?”

“그, 그것이······.”

상호의 물음에 아전들은 말을 하는 것을 머뭇거렸다.

이에 임충이 꾸짖듯 말했다.

“어서 말하지 못하겠는가!”

“실, 실은···불과 며칠 전에 산에서 웬 요괴들이 나타나 가축을 잡아가고 처녀를 붙잡아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요괴라고?”

이 말에 임충뿐만 아니라 상호도 귀를 쫑긋 세웠다.

장계에서 언급된 요괴 출몰지는 이곳에서 좀 더 북쪽일 터, 그런데 여기에서도 요괴가 나온다는 것은 이곳에 또 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상호는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아전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 요괴의 생김새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아 그, 그게. 마치 멧돼지처럼 생긴 머리를 가진 덩치가 큰 괴물이었습니다.”

“오크군.”

“오, 오크? 그것이 무엇입니까?”

“전이문을 통해 나타나는 요괴 중 하나입니다.”

상호는 곳에 나타났다는 요괴의 정체가 오크임을 확신했다.

오크는 같은 아인종 계열 몬스터인 고블린, 코볼트보다 더 전투력이 높은 몬스터이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체구를 갖고 있지만 골격은 인간보다 더 뛰어나며 완력도 고릴라 수준으로 강하다.

게다가 무장도 고블린이나 코볼트보다 우월하여 금속 갑옷을 입은 놈들도 있을 정도고 무엇보다 무리가 군대와 비슷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숫자가 늘면 늘수록 상대하기가 버겁다.

이런 이유로 오크를 상대로 토벌전을 치를 때는 어지간한 숙련된 헌터라도 큰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상호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전이 하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이 소식을 듣고 오신 북편사이신 정문부 영감께서 아녀자들을 구하겠다고 병사들을 거느리고 그 요괴들을 쫓아 가셨습니다.”

“잠깐, 뭐라고요?”

상호는 아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여기서 자신이 만나고자 했던 사람의 이름이 나올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아무 대책도 없이 오크들의 뒤를 쫓았다는 말을 들으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분이 간 지 얼마나 됐습니까?”

“오늘 아침이오.”

대략 상호 일행이 오기 서너 시간 전에 간 모양이었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어서 찾으러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대화를 옆에서 들은 임충 역시 심각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임충은 아전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그 요괴가 사라졌다는 장소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게.”

* * * * *

상호 일행이 관아에서 이야기를 듣던 그 시간.

이제 27살인 정문부는 무관으로서 복식을 챙겨 입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병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아이구, 나리. 좀 천천히 가시지요.”

“그렇습니다요.”

“무슨 소릴! 지금 잡혀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거늘.”

정문부는 괴상한 존재들이 나타나 고을을 휩쓸고 죄 없는 아녀자들을 납치해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여 북병영의 병력 중 일부를 이끌고 직접 이곳까지 나선 것이다.

의욕이 충만한 정문부는 지쳐 칭얼대는 병사들을 이끌고 오크들이 남긴 자취를 쫓아 움직였다.

계속해서 점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주변이 컴컴해졌다.

다들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부관이 다시 한 번 정문부에게 간언하였다.

“다들 너무 지쳐있습니다. 이러다간 아녀자들을 잡아간 것들과 마주친다면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겁니다.”

“끄응, 알겠네.”

부관의 말이 지극히 온당했기에 정문부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다들 곧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했다.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 밥을 먹거나 잠깐 눈을 붙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변을 경계하며 보초를 서는 병사도 있었다.

“으으으.”

“왜 그러나?”

“잠깐 소피 좀 보고 오겠네.”

아랫도리를 움켜잡고 병사 하나가 수풀 쪽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본 보초를 서던 이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십 분이 흘러도, 이십 분이 흘러도 볼 일을 보러 간 군졸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상하게 되어간다는 것을 인지한 보초는 정문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주변을 샅샅이 살펴라.”

“예!”

정문부와 병사들은 사라진 자를 찾아 주변으로 흩어져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다 마침내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닥과 풀에 뿌려진 핏자국에 정문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뒤에서 이것을 보던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범에게 물려간 건가?”

“하지만 소리 없이 물려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다들 조용히 해라.”

뒤에서 일어난 소란은 상관치 않고 정문부는 주변에 있는 흔적을 면밀히 살폈다.

범, 즉 호랑이에게 물려갔다면 근처에 그 발톱 자국 같은 게 찍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근처에 사람이 있는데도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잡혀간 것을 보면 근처에 숨어 있다가 급습해온 게 분명했다.

“영문을 모르겠군.”

정문부는 습격자의 정체를 쉽게 추론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때, 뒤쪽에서 거슬리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저, 저······.”

“어허, 시끄럽다.”

자신도 모르게 정문부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하지만 그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며 내는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정문부는 바닥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병사들 쪽으로 돌렸다.

“도대체 뭐 때문에···헉!”

말을 하던 정문부가 돌연 숨을 깊게 집어삼켰다.

지금 병사들이 무엇을 보고 겁내하는지 알았던 것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녹색의 존재들.

돼지 머리와 흡사한 머리를 가진 덩치 큰 그들은 하나 같이 나무 몽둥이나 창칼을 들고 있으며 조잡스럽지만 철편을 매단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이들이 오크라는 사실을 모르는 정문부와 병사들은 그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굳어버렸다.

“북방 오랑캐들이···아냐?”

“세상 천지 어디에 저런 인간이 있단 말인가.”

이런 가운데 오크들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약 숫자는 서른 마리 정도.

정문부가 데리고 온 병사들의 딱 절반의 숫자였다.

“쿠욱! 쿠욱!”

오크들은 조금도 병사들을 겁내하지 않고 사냥감을 보는 탐욕어린 시선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멍하니 그것을 보다가 뒤늦게야 무기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 정문부는 황급히 병사들에게 말했다.

“뭣들 하는 게냐! 어서 싸울 태세를 갖춰라!”

“네, 넷!”

병사들은 대답하면서 창을 들고 활을 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공포가 사라지지 않은 것인지 무기까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오크들은 점차 속도를 내어 걸어왔다.

급기야 뛰어오는 오크들을 보며 정문부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았다.

“이 놈들! 내가 상대해주마!”

정문부는 용맹하게 외치며 정면에서 오는 상대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이에 맞서 오크 한 마리가 어금니가 삐죽 튀어나온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를 터트렸다.

“크워어어!”

“우오오!”

정문부는 오크가 휘두른 도끼에 맞서 검을 휘둘렀다.

튕겨지는 무기.

손이 얼얼함을 느끼면서도 정문부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내질러 오크의 몸을 노렸다.

촤악!

피가 뿌려지고 오크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픔에 물러났을 텐데 오크는 전혀 개의치 않고 도끼를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큭!”

그것을 피해 몸을 굴린 정문부는 오크의 허벅지를 재차 베었다.

맨살이 드러난 그 부위가 쩍 벌어지면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그리고 오크의 몸은 앞으로 기우뚱하였다.

두 무릎을 꿇은 오크의 목을 향해 정문부는 있는 힘껏 검을 날렸다.

서컥!

단숨에 목이 잘리고 오크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휴우, 다들······.”

한 마리를 해치우고 병사들에게 적이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 사기를 올리려 했던 정문부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그를 따르던 병사들 태반이 무참히 살해되어 바닥에 쓰러진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크윽, 이럴 수가.”

참담한 결과에 정문부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근처로 오크들이 다가왔다.

“이 놈들!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 몸을 쉽게 쓰러뜨릴 것이라 생각지 마라!”

정문부는 전의를 버리지 않고 다가오는 오크들을 향해 강한 시선을 날리며 검을 굳게 고쳐 잡았다.

오크들이 일제히 달려들고 정문부는 여기에 맞서 검을 크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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