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1화 (41/127)

八장. 이치 전투 2. (5)

상호는 한 가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세상에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 평범한 삶을 보냈던 자신에 대한 꿈이었다.

대학 졸업 걱정에 취업 걱정만 하는 전형적인 20대의 대한민국 청년이었던 상호는 각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전부였다.

교통사고나 재해 같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목숨이 위험해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몬스터의 출현으로 끝나고 말았다.

헌터로서의 제 2의 삶.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 예전보다 더 살기 어려워진 사회에서 좀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악착같이 몬스터를 사냥하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조선 시대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금 몬스터와 싸울 뿐만 아니라 조선을 침략한 왜적과 싸우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꿈으로 보게 된 상호는 괴로움으로 감은 눈을 찡그렸다.

꿈을 꾸는 그는 이 모든 게 꿈이고 맨 처음 평범했던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이던 광경이 사라지고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 의식을 차리게 되었다.

“허억!”

길게 숨을 내뱉으며 상호는 자리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깨어난 그는 나무들이 무성한 산 속의 평평한 장소에 자신이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으으······.”

“물, 물 좀······.”

근처엔 부상입어 누워있는 조선군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을 본 순간, 상호는 현실을 다시금 자각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꿈일 리 없었다.

상호는 비로소 자신이 정신력을 너무 써서 기절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된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바로 이때, 표주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들고 오던 율이 눈에 들어왔다.

“율.”

“나리, 깨어나셨나요?”

“아아, 방금 전에 눈을 떴어. 그보다 내가 기절하고 난 뒤에 어떻게 된 거지?”

“일단 이 물로 목부터 축이세요.”

율은 재촉하는 상호를 보며 바가지를 먼저 내밀었다.

당장 대답을 듣고 싶긴 했지만 마침 목이 무척 칼칼했기에 상호는 바가지를 받아들어 안에 담긴 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렇게 물을 마시는 상호를 보며 율은 그가 방금 전에 물었던 것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했다.

“나리께서 혼절하신지 두 시진이 지났어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급히 임 무관께서 들쳐 업으시고 적들을 돌파하셨어요.”

“임 무관이 말이야?”

“네.”

율의 말에 상호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고 임충이 얼마나 무리를 했는지 바로 알게 되었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해낸 임충의 활약에 내심 놀라워하며 상호는 다시 질문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지? 그리고 전투는?”

“일부는 살아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임 무관님이나 선건 어르신 모두 무사하세요. 그리고 왜군도 금산성으로 철수했어요.”

“그게 사실이야?”

“네.”

상호가 의식을 잃고 임충의 등에 업혀 다른 의병들과 함께 왜병들을 돌파하여 정담의 병력과 합류할 수 있었다.

목적을 달성한 조선군은 곧장 퇴각하였다.

물론 왜군은 호락호락 보고만 있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으려는 듯 전군을 움직여 이들을 치고자 했다.

그러나 권율과 그리고 새로운 조선군이 아군을 구출코자 고개 아래로 마침 와주었고 짧고 격렬한 싸움 끝에 고바야카와의 왜군은 공격을 단념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내가 기절한 동안에 그렇게 된 건가.”

이것으로 이치 전투는 무사히 끝난 셈이었다.

고바야카와의 5군은 이번 싸움에서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 아마 당분간은 전라도 지방을 노리고 진격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것은 본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니 상호한테는 좋은 결과였다.

“깨어났군.”

“고 장군님.”

어디에 다녀오는지 고인후와 임충이 함께 상호가 있는 곳으로 왔다.

이 중 고인후의 얼굴빛이 무척 어두운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를 미뤄볼 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부친의 유해를 찾으러 가셨던 것입니까?”

“혹시나 하고 다시 그곳에 가봤네만 역시 왜군들이 수급을 베어 가져갔더군.”

그리고 남은 시체는 대충 모아 불로 태우고 떠났다.

결국 고경명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것이다.

“정말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비록 시신을 되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몸의 일부라도 수습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상호의 위로에 고인후는 애써 이리 대답했다.

본래 역사에서는 고경명과 함께 왜군과 싸우다가 최후를 맞았을 고인후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것이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남은 병력을 수습해서 일단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님의 장례를 치를 생각이네, 이 부위,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곳의 일이 끝났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협력을 구할 생각입니다.”

이미 다음 행선지는 정해놓았다.

큰 전투를 치른 터라 마음 같아서는 며칠 정도 쉬고 싶지만 전쟁의 양상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그럴 수는 없었다.

그 말을 들은 고인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괴 토벌을 위해선 각지의 의병들을 시급히 하는 편이 좋겠지.”

“예, 그렇지요.”

상호는 대답을 하면서 고인후를 조심스럽게 보았다.

전에 고인후는 상호가 말한 요괴 토벌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고경명이 전사한 지금, 조선 시대 때 전통에 따라 삼년상을 자식으로서 치르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다.

만약 삼년상을 한다고 하면 협력은 사실 상 기대하기 힘들다고 봐야 했다.

이때, 고인후는 말했다.

“나 또한 자네가 말한 일을 적극적으로 도울 걸세.”

“예? 하지만 장례를 치르면······.”

“본래라면 아버님의 묘를 삼 년 동안 지키는 것이 효를 다하는 것이겠지만 나라가 위기에 빠진 현 상황에서 그리 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

“정말로 괜찮은 것입니까?”

“아버님이 진정 바라시는 게 이것이라고 난 생각하네.”

“···고맙습니다, 고 장군님.”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효孝를 다하지 못한다는 게 이 시대의 양반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르지 않는 상호로선 고인후의 선택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소 숫자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를 갖춘 고인후 휘하의 의병들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막아준다면 당장 다음 행보를 북쪽으로 잡은 상호도 한결 안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떠나기 전에 요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알려드리겠습니다.”

상호는 자신이 헌터로서 알고 있는 모든 몬스터에 대한 정보와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거기에 주의 사항도 잊지 않았다.

“제가 언급한 요괴가 아니라면 절대로 먼저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비교적 약한 몬스터라면 의병들만으로도 감당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보다 강한 몬스터라면 힘에 붙일 게 분명했다.

때문에 상호는 이렇게 신신당부를 한 것이다.

“그리고 또 알아두어야 할 것은 몬스터들의 영역입니다.”

게이트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몬스터 영역은 Ⅰ~Ⅴ단계로 구분되어진다.

Ⅰ단계는 초기 단계로 로드로 지정된 몬스터와 수십여 마리의 몬스터가 갓 게이트를 넘어온 단계이다.

대략 이 때의 게이트의 영향권은 반경 4~5km 정도이며 게이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로드의 특성 상 이 영역 밖으로 몬스터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그 영역만 들어가지 않으면 해당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을 일은 없다.

물론 운 없게도 게이트 생성 당시에 그 범위 안에 민가가 있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몬스터의 습격에 살해당하게 된다.

게이트는 주기적으로 열리면 그 때마다 새로운 몬스터들이 대거 넘어오게 된다.

보통은 앞서 나타난 몬스터들과 같은 종류의 몬스터가 나타나는데 그 숫자가 늘면 늘수록 게이트의 범위가 확대되어진다.

이렇게 몬스터의 숫자나 위험도, 그리고 영역의 범위를 기준으로 Ⅱ단계부터 Ⅳ단계까지 지정이 이뤄지는데 단계가 높을수록 공략 난이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상호가 과거로 넘어오게 만들었던 Ⅴ단계가 되면 게이트 일대가 이계화가 되어버린다.

분조에 있을 때에 접한 정보를 토대로 미루었을 때, 아직 조선 땅에 나타난 게이트는 Ⅰ단계 이상으로 발전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차츰 단계가 격상되는 곳이 나올 게 분명했다.

그리 된다면 상호로서도 감당하기가 힘든 사태가 닥쳐올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고인후와 좋은 협력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했다.

해서 상호는 헬하운드 로드를 토벌하고 얻은 몬스터 코어도 건네주고 사용법도 알려주었다.

그것을 어떻게 쓸 지는 고인후의 선택에 맡길 따름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함께 국난을 잘 헤쳐 나가보세.”

상호와 고인후는 헤어지기 전에 이렇게 말을 나누며 악수를 굳게 나누었다.

이로써 상호는 첫 번째 협력자를 확보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 * * *

평안북도 의주.

현재 이 땅엔 피난 온 조선 국왕 선조와 조정 대신들이 머물고 있었다.

명나라와의 통행로이기에 북쪽 변경 지역치고는 나름 정비가 되어있고 규모도 있다지만 그래도 일국의 국왕이 지내기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사실 얼마 전에 피난 올 때만 해도 선조를 따르는 자들을 극히 적었다.

참으로 볼품없는 형국으로 의주에 와 국경을 넘어 명나라로 피신까지 가려했던 선조 일행이었지만 기적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첫 승리를 보내왔고 이 해전에서의 패배로 인해 서해를 통한 보급이 어렵게 된 고니시 유키나다의 1군이 진격을 멈춰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

“명나라의 지원은 아직 멀었는가?”

임시로 만들어진 어전에서 선조는 대신들을 내려다보며 재촉하듯 말하였다.

조선의 힘만으로는 20만의 왜군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여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이덕형을 포함한 청원사를 보낸 터였다.

당장 급한 불은 껐다지만 언제 왜군이 의주까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선조로 하여금 더 초조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우의정인 류성룡이 선조에게 간하였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전하. 그리고 현재 각지에서 뜻있는 자들이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고 있고 수군에서도 또다시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당장 왜군이 이곳까지는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옵니다.”

“고작 의병이 왜군을 상대로 싸워봤자 뭘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순신이라는 자도 요행히 연달아 바다에서 이겼을 뿐이지 육지는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못하지 않았는가.”

의병의 게릴라 전술과 이순신이 거둔 해전의 승리가 대국적인 측면에서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관심에 없고 당장 눈앞의 상황만 놓고 말하는 선조였다.

그러한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류성룡은 이번 회의 때 꼭 말하기로 했던 사항에 대해 말하였다.

“전하, 분조를 이끌고 계신 세자 저하께서 올린 장계에 대해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우의정! 지금 그 얘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뭔가?”

류성룡의 말에 선조는 명백하게 불쾌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며칠 전, 분조에서 광해군이 보낸 장계가 이곳에 도착했다.

그 내용은 조선 각지에 괴수나 요괴가 출몰한다는 보고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는 것과 이를 막기 위해 한 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을 본 선조는 대노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세자는 정신이 있는가! 어디서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장계를 올린단 말인가. 당장 왜적을 무찌를 생각은 있기나 한 것인가!”

자신을 대신해 위험한 곳에 남아 분조를 이끄는 광해군이지만 괜한 자격지심으로 친아들임에도 민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차에 이런 장계를 보내오니 화를 내었다.

그래서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광해군의 부탁을 바로 그 자리에서 거절했던 선조인데 다시 한 번 우의정인 류성룡이 얘기를 꺼내니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전하! 세자 저하가 전한 보고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장계가 이곳에도 오고 있사옵니다. 단순히 맹수나 왜병을 잘못 오인해서 보냈다고 하기엔 그 증언이 일관되니 제대로 조사를 해보심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이러한 발언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좌의정 윤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요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있을 턱이 없지 않소. 지금은 왜적을 몰아내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할 때인데 그런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힘을 빼서는 안 될 것이오.”

“유언비어라니요! 지금 세자 저하께서 올린 장계에 보면 직접 그 요괴와 싸웠다는 내용도 있소. 그것마저 거짓이라고 치부할 참이오!”

“커흠!”

류성룡의 반격에 윤두수는 할 말이 없는지 헛기침만 공연히 할 따름이었다.

이때, 대신들의 신경전을 보던 선조가 입을 떼었다.

“그만! 지금은 저 명나라 원군이 올 때까지 왜군을 막아내는 대책을 강구하는 게 우선이니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말라.”

선조의 발언에 류성룡은 침음을 흘리며 더 이상 이 안건에 대해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결국 광해군이 요청한 일은 이뤄지지 못했고 팔도 각지에 나타난 몬스터에 대한 조정의 대처는 조금도 없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