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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조선시대에 가다-39화 (39/127)

八장. 이치 전투 2. (3)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왜도는 어둠 속이었지만 검신에 반사된 달빛 덕에 훤히 볼 수 있었다.

옆으로 몸을 피하면서 상호는 그대로 발차기로 상대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커헉!”

신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상대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가운데, 이번에 세 명이 한꺼번에 덤벼왔다.

무기라곤 단검 한 자루뿐인 상호로선 창을 찔러오는 이들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쉬잉!

등 뒤에서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이런!”

아군이 착각하고 잘못 쏜 화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살은 상호의 머리 옆에서 두 뼘 정도 되는 거리로 지나쳐 앞에 서 있던 왜군의 가슴 한 복판에 적중했다.

상호는 순간 고개를 뒤로 돌렸다.

진지에서 벗어나 아래로 내려와 경사면 위쪽에서 낮게 자세를 취하고 활을 든 율이 있었다.

“나리, 어서!”

율은 이리 소리치며 재빨리 화살을 꺼내 시위를 잰 다음 신중하게 화살을 날렸다.

주변에 불붙은 수풀 덕에 시야를 확보한 율이 30보 거리에서 정확히 직사로 또 한 명의 왜병을 거꾸러뜨렸다.

한 고비를 넘긴 상호는 자세를 고치고 단번에 율이 있는 곳까지 뛰어올랐다.

옆까지 와서 상호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여기까지 내려온 거야.”

“나리가 이곳에 있는 게 보여서 모시러 왔어요.”

“할 말이 많지만···일단 고맙다.”

상호는 율을 똑바로 보며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때, 바로 뒤에서 왜병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서 가자!”

“네!”

상호와 율은 조선군 진지로 전력으로 달렸다.

다행히 가까워지자 조선군 병사들은 둘이 적이 아님을 알고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

무사히 아군이 있는 곳까지 온 둘은 숨을 헐떡이며 안도해했다.

“적이 더 이상 못 오르게 하라!”

왜군을 맞아 싸우는 조선군 병사들을 독려하는 이는 바로 임충이었다.

병사들은 화살을 날릴 뿐 아니라 미리 낮 중에 모아둔 짱돌을 있는 힘껏 던지기도 했다.

조선 시대 때, 조선 사람들이 즐겨하던 놀이 중 하나인 ‘석전’이 있기에 다들 돌을 던지는 것엔 일가견이 있었다.

“컥!”

“으악!”

20보 안까지 다가오는데 성공한 왜병들은 날아든 돌에 얻어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야습이 실패한 것이 확실해지자 아래서부터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적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타타탕!

조총병들이 올라오면서 사격을 가해왔다.

“아악!”

“몸을 숙여!”

총격에 돌을 던지고 화살을 쏘던 조선군 병사들 여럿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조선군의 공격이 약해지자 기회다 싶어 보병들이 우르르 위로 올라왔다.

“제길.”

나무를 등지고 총격을 피하면서 상호는 몰려오는 왜병들을 힐끔 보았다.

충분히 쉬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신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가라, 수룡시!”

상호는 자신이 붙인 기술의 이름을 힘껏 외쳤다.

그 순간! 자연스레 떠오른 이미지에 맞게 물방울들이 응집되어 화살의 상태를 이뤘다.

상호의 현재 정신력으로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수룡시’는 총 세 발이었다.

물로 이뤄진 화살은 약간 곡선을 그리고 상호의 시야에 들어온 세 명의 왜병이 동시에 쓰러졌다.

“수룡시!”

상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했다.

화살과 다르게 유도 능력이 있는 수룡시는 백발백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상호의 정신력으론 대여섯 번의 공격이 한계였다.

“더 이상···무리인가.”

상호는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 시야가 흐릿해지고 나서야 더 이상 능력을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근처에 굴러다니던 주인 잃은 창을 쥐고 위로 올라오는 왜병을 상대했다.

“하아앗!”

상호는 기합과 함께 왜병을 향해 창을 힘껏 찔렀다.

창은 그대로 왜병의 몸을 뚫고 뒤에 자리한 나무에까지 박혔다.

“대신 가져가지.”

쓸 수 없는 창을 놓고 상호는 자신이 죽인 왜병의 창을 챙겨 다음 적을 상대했다.

그의 곁에서 율 또한 맹활약을 펼쳤다.

“이야아압!”

정면에 있는 왜병들 사이로 율은 날쌘 제비처럼 파고들고는 그들이 반응하기보다 먼저 검을 빠르게 출수했다.

율의 검은 정확히 급소만을 노렸고 여지없이 피를 흘렸다.

적병을 쓰러뜨린 후에 율은 바로 상호의 위치를 살피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맹활약을 하며 계속해서 적병을 쓰러뜨려갔다.

여기저기서 함성과 비명이 토해지는 가운데, 양쪽의 병사들은 서로 뒤엉켜 난전을 펼쳤다.

점차 밑에서 올라오는 왜병들이 많아지면서 조선군도 새로운 지원군을 투입시켰다.

“이 놈들!”

새로 투입된 의병들을 직접 통솔하는 이는 바로 고경명이었다.

아직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몸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끝끝내 부려 전장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고인후나 정담 같은 장수들도 병사들을 이끌고 가세하니 왜군은 오히려 밀려나는 형국이 되었다.

“후퇴하라!”

야습이 실패한 마당에 더 이상의 공격은 무리라고 판단한 왜군 측 장수는 군을 물리고자 했다.

이러한 적의 동향을 파악한 권율은 즉각 명령을 하달했다.

“적을 쫓지 마라!”

패주하는 왜군을 쫓는 것보다 부대를 재정비하고 다음 공격을 대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명령이 전파되었음에도 일부의 병력이 멈추지 않고 도망치는 왜군들을 쫓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중지 명령이 안 간 것인가? 신호수는 당장 퇴각 신호를 보내라.”

“예, 장군!”

왜군을 뒤쫓는 아군을 부르기 위해 신호수가 나팔로 퇴각 신호를 보냈다.

밤중에 들리는 나팔 소리는 분명 모두에게 들렸을 터였다.

허나, 그럼에도 왜군을 도륙하며 그 뒤를 쫓는 병력은 되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추살해라!”

무분별한 추격을 강행한 것은 다름 아닌 고경명이었다.

그와 그를 따르는 의병들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왜병들이 죽이고자 악착같이 그를 쫓았다.

“죽어라, 이 놈!”

“커억!”

다친 몸이고 게다가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경명은 앞에 나서서 왜병을 환도를 연거푸 베었다.

이런 고경명을 따라온 고인후는 걱정스런 마음에 말했다.

“너무 멀리까지 뒤쫓았습니다. 더 추격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 어서 본진으로 돌아가시지요, 아버님.”

“그럴 수는 없다.”

“아버님!”

“이 놈들이 살아서 돌아간다면 또다시 다른 곳에서 우리 백성을 죽일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

고경명은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왜군을 뒤쫓았다.

이러한 부친의 행동에 고인후는 걱정을 하면서도 뒤를 따랐다.

무려 본진에서부터 다섯 리나 되는 위치까지 추격을 감행한 고경명과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의병들은 야습에 동원된 왜군의 절반을 섬멸하였다.

하지만 이런 무리한 추격은 결국 큰 사단을 만들고야 말았다.

“왜적 놈들이다!”

무수한 깃발이 세우고 앞에 나타난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본대를 발견한 의병들은 뛰던 걸음을 급히 멈췄다.

비로소 자신들이 너무 멀리까지 왔다는 것을 인지한 고경명은 의병들에게 소리쳤다.

“전원, 퇴각하라!”

이 명령이 아니더라도 의병들은 이미 왔던 길을 다시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고바야카와는 수하 장수들에게 말했다.

“놈들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예, 주군!”

명령에 따라 양쪽 가장자리로 기병들이 달려나가 의병들을 따돌리더니 순식간에 배후를 점하였다.

길이 가로막힌 의병들은 도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퇴로가 막혔습니다.”

“장군,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절망에 찬 의병들의 목소리에 고경명은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후회하며 왜병들을 노려보았다.

이런 가운데 조총병으로 이뤄진 부대가 사정거리까지 접근해오더니 사격을 하였다.

타타탕!

“으악!”

“크허억!”

정면에서의 사격에 의병들이 잇따라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인후는 자세를 숙일 생각도 하지 않고 앞에 보이는 왜군을 노려보는 자신의 부친을 챙기고자 몸을 던졌다.

피슛.

“크윽.”

총탄이 옆구리 쪽으로 살짝 스치면서 입고 있던 갑옷 사이로 핏방울이 튀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인후는 부친의 몸을 감쌌다.

“괜찮습니까, 아버님?”

“난···걱정하지 마라. 그보다 어서 병사들을 데리고 여길 탈출해라.”

고경명은 몸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자신이 부축하는 아들을 뒤로 밀쳤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 고인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찌 아버님만 두고 간단 말입니까? 저도 함께 옆에서 싸우겠습니다.”

“이 아비의 마지막 말을 거역할 참이냐! 어서 가거라!”

아들에게 노성을 터트리면서 고경명은 싸우기 위해 검을 들어올렸다.

순간 장전을 마치고 기다리던 조총병들이 고경명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타타탕!

빗발치는 총탄과 함께 우뚝 서있던 고경명은 자신의 몸 곳곳을 강타하는 총격에 온 몸을 들썩거리며 천천히 무너져갔다.

권율은 왜군을 쫓아 멀리까지 간 고경명과 휘하의 의병들을 염려하여 즉각 병력을 보냈다.

그 중엔 고경명과 고인후를 걱정하여 함께 따라나선 상호도 있었다.

“서둘러라!”

방금 전에 총성이 들려왔기에 다들 걸음을 서둘렀다.

나무가 적어지는 산기슭 아래에서 말을 몰며 도망치는 의병들을 학살하는 왜군 측 기병을 볼 수 있었다.

“저, 저런!”

“한 발 늦은 것인가.”

저 멀리 왜군 주력으로 보이는 군세가 보였기에 상황은 바로 파악되었다.

포위되어 학살되는 의병들을 구하러 가기는 사실 상 힘들어보였다.

“제길.”

상호는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분노를 드러냈다.

기껏 힘들게 역사와 다르게 살려놨더니 제 발로 사지로 들어간 고경명과 고인후의 행동에 분노한 것이다.

“어찌 합니까?”

“으음.”

권율의 명을 받아 병사를 데리고 이곳까지 온 정담은 부관의 말에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나서면 아직 생존한 의병들을 구출할 가능성이 아주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도우러 간 이쪽 역시 왜군에게 공격받아 몰살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담은 세의 불리함을 절실히 느끼고 퇴각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권율의 책임 추궁이 매서울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결국 포위된 의병들을 구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날 따르라!”

직접 환도를 뽑아들고 앞으로 돌격하는 정담을 뒤따라 300여 명의 병사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를 발견한 왜군 기병들이 황급히 말머리를 돌려 돌진을 막고자 했다.

“에잇!”

상호는 잠시 멈춰서 활의 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았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화살이 기마 무사에게로 향했지만 일반적인 왜도보다 길이가 긴 타치(太刀)를 든 상대는 몸을 무기에 가려서 화살을 막아냈다.

그러면서 계속 말을 몰아 상호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것을 본 상호는 수룡시를 쓸 정신력을 남겨둘 것을 후회하며 재차 시위에 화살을 쟀다.

“어디 이것도 막아보시지.”

외침과 함께 날린 화살이 기마 무사의 상체를 노렸지만 이번에도 역시 칼날에 막혀 튕겨졌다.

그것을 본 상호는 짧게 혀를 차며 방법을 달리했다.

티잉.

시위를 떠난 화살은 기사 무사를 향해 날아갔다.

“흥!”

상호가 활을 당기는 동작을 보고 기마 무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태도를 비스듬하게 들어 방어를 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 화살이 노린 것은 그가 아니었다.

“히이잉!”

“우와아악!”

화살이 눈에 꽂힌 말이 격하게 앞다리를 들자 그 위에 탄 기마무사는 그대로 꼴사납게 낙마하여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상호는 살짝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헤헤, 어떠냐.”

이렇게 보인 미소는 금방 지워졌다.

조선군 병사들이 쏜 화살 세례를 뚫고 기마 무사들이 난입해왔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리고 흥분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언제 어떻게 죽임을 당할지 알 수 없는 형국이었다.

위험이 도처에 득실거렸지만 그럼에도 고경명과 고인후 부자를 찾기 위해 상호는 더 앞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론 버거웠다.

하여 그는 곁에 있는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같이 가겠어요.”

“이 목숨을 걸고 지켜드리겠습니다.”

율과 그리고 다시 본연의 임무인 상호 호위로 돌아온 임충이 곧장 대답해주었다.

두 사람의 대답에 힘을 얻은 상호는 앞으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갑시다.”

상호는 두 사람과 함께 두 부자와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을 구하러 목숨을 걸고 사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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