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31화 (31/127)

六장. 전쟁에 뛰어들다. (5)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황진, 정담이 이끄는 지원군이 서쪽 고갯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원군이 도착했다.”

고개 위에서 반가움에 외치는 병사들 사이에 상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착한 수백의 병력은 바로 인수인계하여 고개 방어를 맡았다.

“힘든 싸움이었을 텐데 끝까지 버텨줘서 고맙네.”

“뒤는 우리에게 맡겨주게.”

황진과 정담은 큰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군을 맞아 버텨낸 상호를 크게 칭찬했다.

상호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미처 오기도 전에 웅치 고개를 넘겨주고 이곳에 온 자신들의 부대가 크게 패주하게 되었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리한 것이다.

아무튼 적에 비하면 월등히 숫자는 적지만 지리적 우세를 점한 이상, 쉽사리 패배하지는 않을 터였다.

게다가 곧 있으면 권율이 이끄는 부대가 당도할 것이 이쪽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상호는 드디어 여길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는 만나고 싶었던 의병장 중 한 명이 고인후를 따로 만났다.

고인후는 관병들이 온 것을 보고 다시 고경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내게 할 얘기가 있다고?”

“예.”

상호는 고인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전 세자 저하의 명에 따라 각지의 의병장들과 만나서 어떠한 일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해서 말인데 가는 길에 동행해서 고경명 의병장과 만날 수 있을까요?”

“내 아버님과 말인가?”

고인후에게 상호는 간략하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상호의 정체라든가 몬스터의 존재에 대해선 역시나 믿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상호는 증거가 될 만한 실물로 헬하운드 로드에게서 획득한 몬스터 코어를 보여주었다.

“이것만 있으면 힘을 더 강하게 할 수 있고 날짐승처럼 빨라질 수 있으며 머리가 더 비상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증거를 보여 드리죠.”

“정말인가?”

고인후는 상호의 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 상호는 이번에 처치한 헬하운드 로드에서 획득한 것까지 합해 3개의 몬스터 코어를 보유하고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여기 있는 이 부위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본인 또한 저것을 취해 큰 힘을 얻었지요.”

“허어, 그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군.”

전에 몬스터 코어의 힘을 얻은 바 있는 임충이 옆에서 말을 거드니 고인후는 믿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쇄기를 박듯 임충이 말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더욱 믿을 수 있을 겁니다.”

임충은 그리 말하고 잠시 상호 쪽을 한 번 보았다.

자신보다 임충이 직접 몬스터 코어의 효능을 보여준다면 더 고인후가 믿음을 가질 것이라고 여긴 상호는 고개를 살짝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에 임충은 근처에 있는 묵직해 보이는 바위를 향해 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두 팔을 크게 벌려 바위를 품에 안았다.

‘한 번에 성공해야 하는데.’

현재 임충이 가진 코어의 힘은 1단계의 ‘근력 강화’였다.

이 단계라면 대략 운동선수나 격투가 정도의 근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일 경우의 얘기로 만약 기존부터 육체 단련을 해와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더 우월하다면 그것이 플러스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내금위 무관으로 혹독하게 수련해온 임충의 근력은 코어로 얻을 수 있는 힘의 기준에서 본다면 2단계나 3단계에 가까울 것이었다.

“허업!”

놀랍게도 임충이 힘을 쓰자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바윗돌이 살짝 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본 상호는 현재 임충의 근력이 코어 능력 평가 기준으로 보았을 때 2단계를 넘어섰다고 보았다.

“대단하군. 천하장사라도 혼자선 이렇게 쉽게 바위를 들지 못할 것이야.”

“보옥의 힘을 취하기 전의 저였다면 감히 이것을 들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실로 신묘하기 그지없군. 그러면 나도 그 보옥이라는 것을 취한다면 이런 괴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가능합니다. 또한 아까도 말했듯이 여러 가지 부분을 개발할 수 있고 더불어 특수한 코어의 경우엔 신통력도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세자인 광해군이 의병들에게 전한 명령이 몬스터 토벌에 대한 명분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의병들에게 주도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기는 좀 부족하다.

하여 상호는 몬스터 코어에 대해 설명하여 토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알려준 것이다.

이제 더는 안 믿을 수 없게 된 고인후는 이제는 열띤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힘을 열 명, 아니 백 명에게 줄 수 있다면 왜적을 몰아내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구먼.”

“그럴 수만 있다면야 가능은···하겠지요.”

상호는 고인후의 말에 애매한 태도를 살짝 보였다.

몬스터 코어의 힘을 지속적으로 가져 힘을 중첩시킨다면 항우나 장비 같은 일기당천의 장수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자 한 명이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의 판세를 바꿀 수 있을까?

솔직히 시대가 더 과거였다면 모르겠지만 전술이라는 게 발달되고 아울러 무기도 슬슬 냉병기에서 화약 무기로 바뀌어가는 시대에선 개인의 무력은 큰 영향을 주기 어렵다.

물론 고인후의 말대로 능력자의 숫자가 100명 이상이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몬스터 코어를 획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만큼 고인후의 생각대로 되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 몬스터란 것들은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직 모릅니다. 일단 사람들이 없는 험지에 놈들이 주로 출현하는데 우선은 각지에서 조정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토대로 놈들의 서식지를 파악하고 차차 조사대를 곳곳에 보내 추가로 놈들을 찾아내야 될 겁니다.”

“그 말인 즉,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빨리 놈들을 찾아 없앨 수 있다는 말이군.”

“그러한 셈이죠.”

“그렇다면 나도 힘닿는 곳까지 돕겠네.”

마침내 고인후는 상호의 말에 찬동하며 몬스터 토벌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처음으로 만난 의병장인 고인후에게서 이러한 대답을 들은 상호의 표정은 무척 밝아졌다.

다만 한 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내 뜻이 어쨌든 군을 움직이는 것은 나의 부친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동행을 해 그 분을 만나 설득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가도록 하세. 그런데 내 부친은 평생을 유학자로 살아오신 분이라 설득하는 게 많이 힘들지도 모르네.”

“그 정도는 각오한 바입니다. 그저 의병 여러분께 작금의 사태를 설명하며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

고인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리하여 상호 일행은 고인후의 의병 부대와 함께 고경명이 있는 곳으로 바로 향하게 되었다.

상호 일행이 떠난 뒤, 웅치 고개는 약 삼천에 달하는 정담, 황진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지켜지게 된다.

본래 역사에선 정담의 부대만 이곳에서 수비를 하다가 고바야카와 군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고 장수인 정담이 전사하게 되지만, 후에 뒤늦게 도착한 황진의 부대가 왜군을 막은 덕에 겨우 웅치 고개를 지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는 상호의 개입으로 바뀌게 되어버렸다.

이미 웅치 고개에 대한 두 번의 공격을 펼쳤지만 실패를 하고만 왜군, 고바야카와 군은 당초 각각 도착해야 할 부대가 한 번에 오게 됨에 따라 규모가 상대해진 조선군을 파악하고 공격을 단념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곳을 돌파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군.”

후방에 세운 군영에서 간략하게 그려진 지도를 놓고 전라도 공략을 맡은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휘하에 있는 승장 안고쿠지 에케이가 공손히 의견을 제시했다.

“조선군의 움직임이 우리가 예측했던 것보다 빨랐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기껏 적의 방어가 허술할 것이라 생각해 금산에서 먼 길을 돌아와 이곳까지 왔는데 보기 좋게 당해버렸어.”

거리상 전주성으로 향하는 길이 더 짧은 이치 고개를 넘지 않은 것은 그쪽에 조선군의 방어가 몰릴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길을 돌아 이곳 웅치 고개를 돌파해 전주성을 노리고자 했었다.

그런데 예측과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으니, 수천의 군세를 이끌고 이곳까지 온 다카카게의 입장으론 분통이 터질 만한 일이었다.

“주군! 제게 기회를 주시면 저 조선군을 격멸해 보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 우에다에게 기회를!”

눈앞의 난관을 극복해 보인다면 주군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큰 총애를 받을 것을 아는 그의 가신들은 서로 앞다퉈 전공을 세울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다카카게는 고개를 무겁게 가로저으며 이와 같이 말했다.

“이미 두 번이나 실패를 맛보았다. 더 이상 공격해본들 득보다 실이 더 클 터, 그러니 공격은 하지 않는다.”

“으음.”

고바야카와의 결정에 방금까지 말을 꺼냈던 가신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승장 에케이는 다카카게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주군, 그러면 이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슨 방법이 있는가, 에케이.”

“조선군은 우리가 이곳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 다시 회군하여, 이치 고개에서 다시 한 번 돌파를 노려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에케이의 제안에 다카카게는 흥미를 보였다.

이대로 금산성으로 복귀하는 것은 일군을 이끄는 다카카게로선 체면 상하는 일이었다.

잠시 심사숙고한 다카카게는 제장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여기 있는 조선군들에게 볼썽사납게 꼬리를 빼고 후퇴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이 보 전진을 위해 일 보 후퇴한다고 생각하고 여기선 물러나도록 하지.”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럼 고개 위에 있는 조선군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철수 준비를 한다.”

“하앗!”

결정에 따라 고개 아래에 진을 쳤던 고바야카와 군은 웅치 고개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당초 역사보다 이른 시점에서 이치 고개로 향해 북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변경은 향후 이치 전투의 흐름을 바꾸게 된다.

* * *

웅치 고개를 떠나 상호는 일행과 고인후의 의병들과 함께 고경명 의병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진산에게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니 예상 밖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 아버님께서 금산성을 치러 가셨다고?”

“예, 도련님.”

진산에 남아 있던 집안의 노비를 통해 고인후는 자신의 아버지인 고경명이 진산을 떠났다는 사실을 들었다. 왜군 주력이 웅치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탈환을 위해 떠난 것이다.

고인후는 상호에게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본인은 급히 금산성으로 가봐야 할 것 같소.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어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있는 일이죠.”

상호는 이리 말했지만 고경명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내심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굳이 또 전쟁터 한복판에 가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이때, 고인후가 말했다.

“아무리 주력이 자리를 비웠다지만 이렇게 무리해서 성을 공격하러 가시다니.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소이다.”

이 말에 문득 상호는 자신의 기억에 있는 임진왜란에 대한 정보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경명이 무리한 공세를 펼치다가 왜군에게 대패 당한다는 사실이었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본 결과, 그 전투가 바로 금산성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끄응! 이걸 어쩐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겠으나 알았으니 문제다.

사실 기존의 역사에 맞춘다고 하면 이대로 고경명이 죽게 내버려두는 게 옳았다.

문제는 현재 고경명이 이끄는 의병이 무려 수천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각지에서 궐기한 의병 중에서도 이 정도의 규모를 갖는 집단은 없다.

이만한 전력이면 상호가 계획한 조선 땅에 출몰한 몬스터들을 섬멸하는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후자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호는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우리도 같이 가겠습니다.”

“함께 가준다면야 나로서도 든든한 일이오.”

이리하여 재차 상호는 고인후와 함께 고경명 부대가 진격해간 금산성을 향해 곧바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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