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29화 (29/127)

六장. 전쟁에 뛰어들다. (3)

상호가 펼친 힘에 의해 마른 땅에서 불쑥 나타난 물기둥을 보고 헬하운드들만 멈칫한 게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괴의 현상에 병사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깬 것은 바로 임충이었다.

“뭣들 하는 것인가! 어서 놈들을 공격해라!”

이 명령에 그제야 병사들은 비로소 굳었던 몸을 움직여 화염과 물기둥이 만나 생긴 막대한 수증기 사이로 얼핏 모습이 내보이고 있던 헬하운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푹! 푸욱!

한꺼번에 여러 자루의 창이 두 마리의 헬하운드를 찔렀다.

이어 임충 역시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어 한 마리의 헬하운드를 베었다.

칼날에 의해 가죽이 찢기고 살점이 깊숙하게 베이자 헬하운드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렀다.

“타하앗!”

몸을 크게 한 바퀴 돌리면서 재차 검격을 내리긋는 임충의 일격에 결국 숨통이 끊겼다.

“크르르르.”

“······.”

정면으로 헬하운드와 대치하는 율.

그녀는 신중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헬하운드를 향해 검을 겨눴다.

이윽고 헬하운드는 10보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

이는 불꽃 방사를 하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하앗!”

놈이 하려는 것이 뭔지 안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직감만으로 율은 헬하운드가 불꽃을 내뿜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푸욱.

율은 단단한 겉이 아닌 상대적으로 연약한 입천장을 노리고 찌르기를 감행했다.

불길을 막 내뿜으려 했던 헬하운드는 입천장을 뚫고 뇌까지 파고든 검신에 부르르 몸을 떨며 최후를 맞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마리, 헬하운드 로드뿐이었다.

“크르르르.”

“도망가지 못하게 사방을 포위해라.”

임충의 말에 200명의 병사들은 사방을 에워쌌다.

그 사이에 한숨 돌렸던 상호는 헬하운드 로드를 응시했다.

“이제 놈만 없애면 목표를 달성하는구나.”

일대일이라면 승산이 없겠지만 200명의 병사가 함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상호는 한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면서 외쳤다.

“궁수!”

이 말에 여태껏 화살 한번 쏘지 않았던 궁사들이 시위에 화살을 쟀다.

곧 십여 대의 화살이 헬하운드 로드를 노리고 거의 직사로 날아들었다.

“카오!”

헬하운드 로드는 펄쩍 위로 뛰어올라 화살을 피했다. 그리고는 한쪽 방향으로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그 방향에 서 있던 병사들은 황급히 창을 들어 진로를 막으려 했다.

콰지직!

헬하운드 로드의 앞발치기에 창대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허억!”

“살, 살려줘.”

졸지에 무기를 잃은 병사들은 엉덩방아를 찧거나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 급급했다.

헬하운드 로드는 이런 이들을 찢어발기는 것보다 피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는지 웅치 고개로 도망치려 했다.

“이노오옴! 어딜 가려는 게냐!”

이를 눈치챈 임충이 길을 가로 막아섰다.

임충는 검을 허리 뒤로 돌리고 서릿발 같은 기세를 뿜어내 헬하운드 로드를 멈추려 했다. 그렇지만 상대도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다.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아가리를 벌려 강력한 불길을 뿜어내었다.

“크윽!”

갑자기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불길을 피해 임충은 황급히 옆으로 몸을 내던졌다.

상호는 그것을 보고 뒤에 있던 병사의 창을 빼앗고는 뜀박질을 했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이 기회에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상호는 투창 자세를 취하고 힘껏 어깨에 반동을 줘 손에 든 창을 그대로 앞으로 던졌다.

투창을 위해 만든 창이 아닌 어디까지나 손에 들고 찌르기 위한 용도로 만든 장창이라 일반적이라면 몇 미터 못 가고 힘없이 떨어졌겠지만, 보통 성인의 두 배 이상의 힘을 가진 상호가 전력으로 던진 창은 쭉쭉 뻗어나가 헬하운드 로드 위로 낙하했다.

헬하운드 로드는 무서울 정도로 예리한 감각을 통해 위에서 떨어지는 창을 피해냈다.

“칫!”

그것을 본 상호는 분한 듯 혀를 찼다.

그런데 이때, 뜻하지 않은 위치에서 율이 별안간 나타나 헬하운드 로드의 뒷다리를 힘껏 베어내는 게 아닌가.

그녀의 급습이 통했고 뒷다리 부위에서 피가 뿜어졌다. 그 바람에 몸을 주체하기 어려워진 헬하운드 로드는 하반신을 땅에 주저앉히고 말았다.

이것을 본 상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뭐하고 있어! 지금이 절호의 기회란 말이다!”

외침을 들은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손에 무기를 움직였다.

무수한 창이 헬하운드 로드의 몸 곳곳에 박히고 뒤이어 검과 도끼, 편곤이 사방에서 쇄도했다.

“아우우우.”

몸 중에 성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만큼 난자된 헬하운드 로드는 고통에 찬 울음을 토해내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것을 본 병사들은 두 팔을 번쩍 들며 함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괴수를 쓰러뜨렸다!”

사상자 한 명 없이 웅치 고개의 괴수들을 섬멸한 사실에 다들 기뻐하는 동안, 상호는 서 있던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에고고고.”

상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희생자 없이 완벽하게 세워둔 작전에 맞춰 몬스터를 전멸시켰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런 상호를 향해 율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나리, 괜찮으시어요?”

“아아, 괜찮아. 그보다 아깐 잘해줬어. 만약 율이 아니었다면 놈을 놓쳤을 거야.”

“과, 과찬이시어요, 나리.”

율은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귀엽다고 느끼며 상호는 격려의 차원으로 어깨라도 토닥여주려고 손을 뻗었다.

“앗!”

그런데 율은 그 손길을 반사적으로 피하며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것을 본 상호는 아차 싶었다.

‘아 맞다. 이 시대는 조선 시대였지.’

외간 남자의 손길이 조금 닿는 것도 큰 잘못으로 생각하는 조선 시대의 여성들이다.

아무리 율이 무인으로 컸다지만 이런 고정 관념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딱히 이상한 생각을 손을 내민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어.”

“······네.”

멋쩍어하며 한 상호의 말에 율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이윽고 주변에 혹 남아있을 지 모르는 헬하운드를 찾아다녔던 병사들이 돌아왔다.

쓰러뜨린 헬하운드의 시체는 모두 한 곳에 모았다. 여기서 상호는 노획품으로 헬하운드 로드로부터 능력치 상승이 가능한 붉은색 몬스터 코어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후 상호는 고개가 있는 쪽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일 아침에 게이트를 찾아 봉쇄하고 후방에 있는 조선군에게 소식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구나.”

권율에게 했던 말을 지킬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걸림돌이던 몬스터를 제거했으니 이곳에서 원래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왜군과 조선군이 격돌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상호는 그 싸움에는 참가할 마음이 없었다.

“이후의 전투는 조선군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더 이상 내 일이 아닌 일에 휘말리는 것은 사양이다.”

최대한 원래의 역사대로 되게끔 손을 썼지만 웅치에서 앞으로 벌어지는 일이 본래 역사와 동일하게 흐를지, 아닐지 상호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따지고 개입하려고 하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처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 * *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상호의 지시 아래에 200명의 병사들은 웅치 고개를 올랐다.

혹여 남은 헬하운드가 있는지 확인하고 게이트를 찾아 파괴하기 위험이었다.

한편, 황진과 정담의 부대에도 연통을 넣어 서둘러 고개로 올 것을 전했다.

숨겨진 게이트를 찾아 파괴하고 고갯길 정상까지 도달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탄했다.

하지만 고갯길 저 멀리에서 개미 떼처럼 열을 지어 오는 왜군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면서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럴 수가, 분명 왜군이 오려면 하루나 이틀 정도 더 걸린다고 하지 않았었나?”

전주성을 떠나오기 전에 웅치 고개로 향하는 왜군의 동향을 파악해뒀던 바였다.

그런데 막상 들은 것과 달리, 벌써 왜군이 도착하였으니 상호가 당황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이 대차게 꼬여버렸네. 이걸 어쩌지.”

지금 시야에 들어오는 왜군의 숫자만 어림잡아 수백 명은 되어보였다. 이게 이쪽으로 진격해오는 왜군의 전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쪽보다 월등한 우위의 전력이었다.

황진과 정담의 부대가 이곳에 도착하려면 몇 시진은 더 걸릴 터였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나오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상호는 곧장 임충에게 다가가 이와 같이 말했다.

“일단 후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됩니다.”

뜻밖에도 임충은 반대를 해왔다.

이에 상호는 다급히 그를 설득하기 위해 다시 말했다.

“우리만으로 저 군대를 막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렇다 해도 왜군이 여길 넘어 나아가게 둘 수는 없습니다.”

“끄응! 이봐요, 임 무관님. 세자 저하께 받은 우리 임무는 어디까지나 요괴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를 토벌하는 것이지 왜군을 상대하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빼앗기면 전라도의 우군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않고 후퇴할 수는 없습니다.”

내금위 소속으로 누구보다 충직한 성격인 임충은 완강하게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의 경우는 상호랑 같은 마음인지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여기서 철수할 분위기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명령이 없어도 도망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것 참 난감하게 되었군.’

결정권은 상호에게 있었다.

어느 쪽이든 쉽게 결정할 수 없어 상호는 답답함을 느꼈다.

‘고개를 선점하고 있다는 우위만 있을 뿐, 다른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데 싸워도 승산이 있을까?’

적어도 반나절은 버텨야 하는데 수적 열세의 상황에서 사기도 낮은 병사들을 데리고 얼마나 싸울지 걱정스러웠다.

상호는 다시 한 번 아래에 나타난 왜군들을 보았다.

아직까진 고개 위에 몸을 숨긴 조선군을 발견하지 못하고 서서히 고갯길 어귀로 접어드는 왜군의 선두에는 화려한 장식이 달린 갑주를 입은 무사들이 말을 타고 오고 있고, 그 뒤엔 긴 창을 든 아시가루와 조총을 든 아시가루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치는 게 좋았지만 임충이 혼자라도 남을 기세였다.

동료인 그를 버려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마침내 상호는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좋습니다. 임 무관 말대로 저들을 그냥 여길 넘도록 할 수는 없죠.”

“제 뜻을 받아줘 고맙습니다.”

임충은 상호의 결단에 감사함을 표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어도 상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결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왜군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하니 막막했기 때문이다.

‘뭔가 저들을 상대할 만한 수가 없을까.’

아무리 지형적으로 유리해도 이런 상황에서 맞붙으면 승산이 없었다.

뭔가 싸울 때 도움이 될 만한 기책이 필요했기에 상호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방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에 상호는 다급히 임충에게 말을 전했다.

“임 무관께서는 여기를 잠시 맡아주십시오. 전 잠시 몇 명을 데리고 아래에 다녀오겠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불리한 형국을 최대한 바꿀 만한 수단을 가지러 갈 겁니다. 부디 제가 올 때까지 왜군을 견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상호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몰랐지만 임충은 달리 묻지 않고 믿고 따라주었다.

이에 상호는 율을 포함해 몇 명의 병사들을 대동하고 어젯밤 헬하운드를 전멸시켰던 곳으로 급히 향했다.

어젯밤 전장이 되었던 공터엔 불타고 남은 재와 검은 그을음으로 새까맸다.

“부디 몇 개라도 남아 있어줘야 하는데.”

상호는 어제 싸움이 끝나고 헬하운드들의 시체를 묻은 땅을 보았다.

“어서 서둘러 저 땅을 파도록 해요.”

“예?”

“시간이 없으니 빨리!”

상호의 재촉에 병사들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어제 기껏 파묻은 헬하운드들을 다시 끄집어내기 위해 땅을 팠다.

땅을 파니 회색의 재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시체의 마력이 사라지면서 파묻었던 시체들이 재가 된 것이다.

“제발 나와라.”

상호는 근처에서 주운 나뭇가지를 갖고 잿더미를 열심히 뒤졌다.

잠시 뒤, 재 사이로 불그스름한 뭔가가 나타났다.

“오, 있다!”

상호는 바로 그것을 손으로 집었다.

그것은 작은 가죽 주머니처럼 생겼다. 이것은 헬하운드의 식도에 붙어있었던 신체 기관으로 이 안에는 휘발성이 아주 높은 발화 물질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헬하운드는 입에서 불길을 뿜을 수 있었는데 자체적으로도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이렇듯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것이다.

전날에는 별 필요를 못 느껴 그냥 시체와 함께 묻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와아아!”

위쪽에서 큰 함성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왜군이 고개 위에 있는 아군을 발견하고 전투에 돌입한 게 분명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요!”

상호는 병사들을 재촉했고 땅을 더 파서 다른 기름 주머니를 몇 개 더 찾아냈다.

이 작업이 끝나고 상호는 다시 전력질주로 고개 위를 향해 달렸다.

탕! 타탕!

뛰어가는 상호의 귓가에 벌써 조총의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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