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28화 (28/127)

六장. 전쟁에 뛰어들다. (2)

상호는 권율의 재량에 따라 임시로 얻은 지휘권을 통해, 200명의 군사에 대한 지휘권과 물자를 확보하고 바로 전주성을 떠날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몬스터 토벌 후에 웅치 고개에서 왜군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다른 부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해서 상호는 본래 웅치 고개 확보 임무를 맡았던 김제군수 정담과 동복현감 황진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들도 선뜻 웅치 고개로 돌아갈 마음을 품지 못하고 있었다.

“그 괴수들은 보통 괴물들이 아니네.”

“산 속에서 나타나 병사들을 물어 채가는 게 보통 날쌘 게 아니더군. 범도 그리 빠르지는 못할 것이야.”

“그런 놈들이 득실거리는데 어찌 왜군을 막을 방비를 할 수 있겠는가.”

산 속에서 범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 동원되는 병사만 수백 명이 필요하다.

게다가 전문적인 사냥꾼이 아니면 쉽게 잡지도 못한다.

하물며 정체도 알 수 없는 괴수를 당장 왜군이 오는 마당에 토벌한다는 것을 어불성설이었다.

이런 우려를 내보이는 두 장수를 설득코자 상호는 이처럼 말했다.

“고개를 점거한 괴수의 토벌은 제가 할 것입니다. 두 분께서는 그 후에 고개로 와 왜군을 막아주시면 됩니다.”

“으음.”

“시간이 많이 없는 토벌이 가능한가?”

“하루면 충분합니다.”

상호의 즉답에 두 장수는 서로를 한 번 보고는 이리 대답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함께 가도록 하지.”

이리하여 조선군의 일부는 다시 한 번 웅치 고개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놈들이 나타나는 곳이네.”

“지난번에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갔다가 사방에서 놈들이 덤벼오는 통에 많은 피해를 입었네.”

“정말 우리가 돕지 않아도 괜찮겠나?”

“네, 괜찮습니다.”

두 장수가 이끌고 온 수백 명의 병력까지 더해지면 근 천 명의 병력이 되지만 상호는 제안을 그냥 거절했다.

자신이 고안한 대책대로 헬하운드를 토벌하는데 이만큼이나 많은 병사도 필요 없고 또 오히려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식이 도착하면 바로 달려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이렇게 황진과 정담의 본대와 떨어져 상호는 200명의 병사와 함께 웅치 고개 좀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산세가 점차 험해지고 주변에 나무가 많아지는 가운데, 상호는 계획을 수행하기 좋은 장소를 골랐다.

“고개까지 올라갈 것입니까?”

“아니요.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상호는 고갯길 초입 부분에서 앞을 보면서 임충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산 사이로 난 좁은 소로(小路)를 통해 고개 위로 지금 올라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하여 상호는 마른 황토가 드러난 평탄한 땅을 골라 그곳에 진을 쳤다.

“이곳에 땅을 파라굽쇼?”

“예.”

납득하기가 어려운 상호의 지시에 군졸들은 웅성거렸다.

하지만 명령을 받은 만큼 그들은 곧 땅을 열심히 파서 참호를 여러 군데에 만들었다.

이 작업이 끝나고 상호는 또 하나의 일을 지시했다.

“여기다가 장작을 쌓으란 말씀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한여름이라서 밤에도 춥지가 않은데 왜······.”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서둘러주십시오.”

200명 군사 중에 딸려온 하급 군관이 의문을 제시했지만 상호의 뜻은 굽혀지지 않았다.

흡사 캠프파이어를 준비하듯 인근 산에서 조달한 장작을 차곡차곡 쌓았고 커다란 단을 완성시켰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것만 설치하면 끝이군.”

상호는 준비해온 비장의 수단까지 직접 나서 설치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상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군사들에게 알렸다.

“이제 밤까지 기다릴 일만 남았습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식사와 휴식을 충분히 취하세요.”

“정말로 그리 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괴수 토벌이라고 해서 으레 산을 샅샅이 뒤져가며 괴수를 쫓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군졸들은 상호의 이러한 조치에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임충과 율도 마찬가지였다.

혼자만 계획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 나중에 혼란이 생길 수 있기에 상호는 이후에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우리가 상대할 괴수의 정체는 헬하운드라는 요괴다.”

“헬하운드? 그게 뭡니까?”

서양식 이름이고 한 번도 듣지 못한 이름이기에 다들 의문을 드러냈다.

여기에 대해 상호는 불필요한 설명을 하기 싫어 그냥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놈의 명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쪽의 말로 놈을 지칭한다면 지옥개라 할 수 있겠죠.”

“지옥개?”

“거 살벌한 이름이구먼.”

“참고로 놈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는 것에 능하고 입으로 불도 내뿜을 수 있습니다.”

“예엣?”

“불을 뿜는다굽쇼?”

상호의 설명에 듣던 이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웅치 고개 주변의 산은 현재 헬하운드들의 사냥터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섣부르게 들어갔다간 조직적인 헬하운드의 사냥술에 농락당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헬하운드가 내뿜는 불길은 나무와 수풀에 불을 붙이기 쉬워 자칫 잘못하면 큰 화재 속에 갇혀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이쪽이 유리한 지형으로 놈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호의 설명에 여전히 일부는 불신을 가졌지만, 어쨌든 지휘권은 상호에게 있었기에 모두 그의 지시에 별말 없이 따랐다.

슬슬 해가 서쪽 산마루에 걸리고 주변도 슬슬 컴컴해져갔다.

“불을.”

“알겠습니다.”

상호의 지시에 곧 산더미처럼 쌓은 장작에 불이 붙었다.

잠시 뒤, 불길은 엄청난 기세로 커졌다.

“후훗.”

상호는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날이 더욱 깜깜해졌지만 허허벌판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은 주변을 밝히며 밤하늘까지 불기둥을 만들어냈다.

다들 아까 낮에 파둔 참호에 들어갔는데 다들 코를 막고 괴로워했다.

참호 주변에다가 논밭에 뿌리려 만들었던 거름을 뿌려놨기 때문이다.

“아이구, 고약해 죽겠구만.”

“조금만 참으라고. 우리 냄새를 없애려고 뿌린 것이라고 하니 말이여.”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참호 안에서 군졸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밤은 더욱 깊어졌다.

“커엉!”

이윽고 웅치 고개 쪽에서 늑대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고갯길 일대를 차지한 헬하운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드디어 오는 모양이군요.”

“어째서 그 괴수들이 고개 아래까지 내려올 것이라 확신하신 건가요?”

같은 참호를 쓰는 율이 질문을 해와 상호가 거기에 대답해 주었다.

“헬하운드는 다른 무엇보다 불길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그냥 지나칠 리 없지. 분명 불을 보고 이쪽으로 올 거다.”

“그렇군요.”

상호는 헌터로서 가진 지식을 활용해 이번 미끼 작전을 세운 것이다.

“컹! 컹!”

짖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모두가 바짝 긴장하여 주변을 경계했다.

잠시 뒤, 붉은 갈기털을 휘날리며 서른 마리 가량의 헬하운드들이 무리 지어 나타났다. 그중엔 유독 덩치가 큰 헬하운드가 있었다.

놈은 바로 웅치 고개에 생성된 게이트의 수호자로 지정된 헬하운드 로드였다.

‘로드까지 내려올 줄은 몰랐는데, 이거 운이 좋은걸.’

다른 몬스터와 다르게 로드는 게이트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는 일이 그렇게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로드가 이 함정에 걸려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던 차였는데, 운 좋게도 로드까지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에 유혹되어 아래까지 내려와 준 것이다.

“카오오!”

“왕! 왕!”

모닥불 주변으로 간 헬하운드들은 불길 가까이에서 고개를 쳐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흥분에 차 모닥불 주위에 원을 그린 헬하운드들은 주변에서 풍겨오는 거름 냄새 탓인지 수십 보 떨어진 곳에 은신한 사람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목표가 함정 속에 들어온 이상,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것 같습니다.”

“그럼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내죠.”

임충은 그리 대답하고는 하늘을 향해 한 대의 불화살을 높게 날렸다.

컴컴한 밤이기에 불화살은 밤하늘에서 잘 보였고 병사들은 여기에 반응해 곧장 행동을 개시할 수 있었다.

“지금이여.”

“알았당께.”

각 방향의 참호에서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일었다.

불꽃은 지면에 뿌려진 흑색 화약을 점화시켰다.

치이이익.

점화된 불꽃이 빠르게 앞으로 뻗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닥불 주변에서 일제히 폭음이 일어났다.

“커어엉!”

“카오오옷!”

지면에 얕게 묻혀 있던 비격진천뢰의 심지에 불씨가 옮겨진 순간 폭발이 일어났고 창졸간에 헬하운드들은 발밑에서 날아든 무수한 파편에 찢겨지게 되었다.

폭음과 함께 비명이 들려오는 것을 보며 상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전에도 한번 써본 적이 있는 비격진천뢰이다.

다행히 전주성에 비격진천뢰가 있어 가져왔고 이번에는 지뢰로 써먹어 모닥불 주변에 묻어놨던 것인데 그 효과는 예상보다 컸다.

직접적인 폭발에 휘말린 몇 마리는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었고,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상대적으로 피부가 얇은 배 부위에 파편을 받는 바람에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와아아!”

이때를 놓치지 않고 사전에 지시한 대로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고함과 함께 튀어나왔다.

그들의 손엔 창과 칼 말고도 다른 것도 들려 있었다.

“여엉차!”

팔뚝이 유달리 굵은 병사들의 손에 들린 고기잡이용 그물이 허공을 가른다. 넓게 퍼진 그물은 그대로 헬하운드들의 몸을 덮쳤다.

“카오!”

“컹! 컹!”

그물이 갇힌 헬하운드들은 입에서 불을 뿜어내고 이빨과 손톱으로 그물을 찢으려 했다.

사실 강철로 만든 그물이 아닌 이상에야 그물은 불과 1분도 안 되어 갈기갈기 찢기게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이 병사들에겐 선제공격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뒈져버려!”

“에이잇!”

달려오는 속도까지 이용해서 병사들은 헬하운드의 몸에 긴 창을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꽤나 두꺼운 가죽인지라 창검으로 찌르고 베도 깊은 상처가 나지 않는 헬하운드지만 건장한 장정이 거리를 두고 전력으로 달려와 찌른 창에는 당해낼 방법이 없는 모양이었다.

혀를 내밀며 차례차례 헬하운드들이 쓰러져갔다. 하지만 전부 잡기엔 손이 부족했고 로드를 비롯한 몇 마리는 그물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다들 거리를 두고 물러나!”

“예, 옛!”

상호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주둥아리에 불길을 머금은 헬하운드의 으름장에 담이 약한 자들은 벌써 뒷걸음질 치는 중이었다.

상호는 로드를 중심으로 모인 다섯 마리의 헬하운드를 보며 긴장하였다.

‘여기까지는 내 생각대로 되었다만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군.’

이백의 병사가 함께 싸운다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한다면 상호는 거느린 병사들을 신용하지 못했다. 그저 실력이 입증되고 몬스터와의 싸움을 경험한 임충과 율만을 어느 정도 같이 싸울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화르륵.

“흐어어억!”

“오메!”

헬하운드 로드가 방사한 불길에 놀란 병사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때, 불길이 향하는 방향의 지면에서 갑자기 물기둥이 솟구쳤다.

“흐읍!”

왼손을 앞으로 뻗은 상호의 이마에 핏대가 세워졌다.

물기둥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상호가 가진 이능력이었다.

‘큭!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힘을 쓰려니 컨트롤이 잘 안 돼.’

씨 서펜트 로드를 쓰러뜨리고 얻은 몬스터 코어.

결국 상호가 취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깃든 스킬은 놀랍게도 ‘물의 속성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씨 서펜트와의 싸움에서 마법과도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속성력이 없음을 아쉬워했던 상호로선 아주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습득했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속성력으로 이끌어낼 수 힘은 아주 미약해서 겨우 허공에서 일정 양의 물을 모으는 정도였다.

그러하기에 능력을 끊임없이 갈고 닦고 ‘정신력’ 능력치를 올려야만 비로소 마법이라고 할 만한 능력을 낼 수 있었다.

“하악, 하악.”

그저 지면에서 물을 솟구치게 한 것이 다인데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장난 아니었다.

역시 겨우 며칠, 이동 중에 짬짬이 능력을 연습한 것만 가지고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래도 불길을 막는 데는 성공했으니 능력을 제대로 쓴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 능력이다.”

보통의 인간을 초월하는 힘, 그것을 가진 자로서 상호는 헬하운드 로드를 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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