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26화 (26/127)

五장. 해룡 토벌! (5)

돌아가는 길.

정운과 그리고 상호 일행이 탑승한 대장선의 파손이 꽤 컸지만 그래도 항해는 가능해 여수까지 항해할 수 있었다.

왜군의 순찰선을 피해 항로를 잡고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로 돌아온 것은 씨 서펜트 퇴치 후 이틀이 지난 뒤였다.

“수고들 많았네.”

돌아와 보고를 올리니 이순신은 흡족해하며 말하였다.

비록 한 척의 판옥선이 당분간 수리를 위해 전력에서 빠지고 여럿의 인원이 죽거나 다쳤지만 미지의 적을 상대로 이 정도면 충분히 선전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한 이순신의 칭찬에 상호는 마음 속 깊이 기쁘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순신은 이어서 말하였다.

“그런데 그 해룡의 비늘을 벗겨왔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씨 서펜트의 비늘은 어지간한 공격은 막아낼 수 있는 강도를 갖고 있습니다. ···제련은 힘들기 때문에 갑옷으로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방패로 써먹을 수는 있을 겁니다.”

죽은 씨 서펜트의 시체가 재가 되어버리기 전, 아직 마력이 사그라지지 않았을 때를 노려 사람들을 부려 최대한 많이 비늘을 모은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실제로 상호가 있던 시간대에서도 씨 서펜트의 비늘은 방어구의 소재로 높은 평가를 받아 이 시대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토대로 다양한 보호 장구를 만들어졌다.

완전 가공이 어렵기에 비늘 한 장을 통째로 방패로 만들어 쓰는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철로 만든 방패보다 가볍고 튼튼하다는 점에서 유용 가치는 높다고 볼 수 있었다.

“최대한 많이 회수해왔으니 부디 좌수사 어른께서 요긴하게 써주십시오.”

“그리하지.”

“그리고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상호는 공손한 손길로 천에 쌓인 몬스터 코어를 이순신에게 진상했다.

그것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본 이순신이 고개를 들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일전에 제가 말씀드린 특수한 힘을 갖게 해주는 보옥입니다.”

상호는 많은 고민 끝에 이번 몬스터 코어를 이순신에게 주기로 결정 내렸다.

이것은 앞으로 미래로 돌아가기 위한 협력을 이순신에게서 얻기 위한 투자였다.

“이것이 말인가?”

이순신은 상호의 말에 탁자에 놓인 몬스터 코어를 두 손가락을 집게처럼 하여 집어 들었다.

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내는 그것을 신중한 눈빛으로 보는 이순신을 상호 역시 초조하게 줄곧 바라봤다.

잠시 뒤, 이순신은 다시 원래 있던 위치에 몬스터 코어를 내려놓았다.

상호는 계속해서 속에 담았던 말을 꺼냈다.

“어떤 능력을 가질 지는 저도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장군께 도움이 되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이것을 취해주십시오, 장군.”

“전에도 말했지만 본인은 이런 것에 의존할 마음이 없네.”

“유학의 도를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그러신 겁니까?”

답답한 마음에 결례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 상호를 잠시 본 이순신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까닭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장수된 자가 제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군의 통솔과 국가를 위하는 마음이네. 사사로이 힘을 취한다는 것이 앞의 두 가지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기에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네.”

“군의 통솔과 국가를 위하는 마음입니까.”

이것은 분명 성웅이라 칭송받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칭송할 때 가장 먼저 말하는 부분이었다.

때론 무자비란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엄격한 군율로 잘못을 저지른 부하의 목을 쳐내기를 주저하는 않았고 억울한 죄로 극심한 문초를 받고 백의종군까지 받았음에도 열세인 전력을 이끌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모두가 질 것이라고 말하는 전투에 앞장서 나섰다.

그것이 바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아직 난 자네의 말을 전부 받아들인 것은 아니네. 허나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은 진정이라고 생각하네.”

“······.”

이순신의 말에 상호는 순간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있던 시대로 돌아가는 것만을 생각하고 일을 진행했을 뿐이지 딱히 이 시대의 민초들을 걱정하였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팔도에 나타난 요괴들을 토벌하려면 신통력만으론 부족할 터, 앞으로 함께 싸울 자들을 통솔하는 역량을 키우기를 권유하는 바이네.”

“병법을 익히란 말씀이십니까?”

“장수된 자가 아니니 병법을 모두 통달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양한 전장에서 적절하게 병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둔다면 적은 피해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네.”

이순신의 이 말은 상호에게 크게 와 닿았다.

생각을 조금만 해본다면 이순신의 말이 지극히 온당한 것을 알 수 있는 일이다.

‘확실히 나는 그런 쪽은 무지한 편이지.’

사실 현대인에게 고대의 병법 같은 것은 쓸모가 전혀 없기 때문에 학자나 군인들이나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몬스터 출현 이후로 사정은 달라졌다.

거점을 지키며 덤벼오는 몬스터들을 효율적으로 토벌하기 위해서는 헌터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작전을 펼치는 것도 뭣보다 중요하다.

특히 이런 작전을 짜고 주도적으로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헌터를 ‘커맨더’라고 부른다.

‘커맨더’는 임시 레이드 팀이든 아니면 정식으로 국가에 등록된 공식 레이드 팀이든 상관없이 특수 능력이나 전투 역량이 아닌 전적으로 전술에 능한 자들이 주로 맡는다.

이들의 역할은 정찰을 통해 확인된 몬스터 게이트 인근의 상황을 토대로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레이드 참가 인원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장 효율적인 팀 배치를 한다. 그리고 공략 때는 유동하는 상황에 맞춰 레이드에 참가한 헌터들에게 실시간으로 지시를 내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장수와 ‘커맨더’는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앞으로 본격적으로 헌팅을 시작하면 수십 명의 멤버들을 역할에 맡게 통솔할 줄 알아야 돼. 그리고 단순히 몬스터에 대한 지식만 갖고 커맨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한 상호의 표정은 매우 진지해졌다.

하지만 당장 병법을 공부한다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읽지도 못하는 책으로 공부를 할 수는 없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상호는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바로 눈앞에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있는데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하여 의자에 일어나 무릎을 바닥에 꿇고 고개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군님! 그 말씀대로 제겐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런 저에게 병법에 대해 가르쳐주실 수는 없는지요.”

“허어.”

예상 밖의 말에 이순신은 살짝 곤혹스러워 했다.

하지만 진지한 상호의 얼굴을 보고는 곧 말했다.

“다음 출정 때까지라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겠지만 병법의 기초를 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장군님!”

이리하여 상호는 떠나기 전의 짧은 시간이나마 이순신으로부터 병법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가르침을 얻게 된다.

****

둥! 둥!

북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수십 척의 판옥선들이 황포 돛을 펼치고 바다로 향한다.

그 가운데에는 이질적인 모양새를 한 거북선도 볼 수 있었다.

마침내 당도한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함대까지 합해 55척의 함대가 모였고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73척의 왜 함대가 있는 견내량으로 출진을 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시작이군.”

여수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에서 상호는 이리 중얼거렸다.

이제 저 함대는 한산도로 나아가 그 유명한 학익진 전술로 왜 수군을 격멸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역사의 흐름이고 그것에 방해가 되었던 요소도 제거했으니 분명 그리 될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만······.”

상호가 굳이 좌수영 바깥까지 나온 것은 함대의 출정을 구경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당초 한산도 대첩의 성공 유무를 끝까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겨버려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뭐 장군이라면 분명히 한산도 대첩을 원래 역사대로 대승으로 이끄시겠지.’

상호가 며칠 동안 지켜본 이순신 장군은 역사서에서 떠올릴 수 있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원래 역사대로 그가 패배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란 확신을 이번에 제대로 받을 수 있었기에 걱정하는 마음은 사실 별로 없었다.

“이제 출발하시지요.”

“그러죠, 임 무관님.”

상호는 되돌아서서 자신을 기다리던 임충을 바라보았다.

붉은 색의 무관복을 입은 임충과 그리고 뒤편에서 3필의 말고삐를 쥐고 대기하고 있는 율도 볼 수 있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떠날 때도 임충과 율만이 상호의 동행으로 따라가게 된 것이다.

“나 때문에 괜한 시간을 지체했군요.”

“아닙니다.”

함대가 출진하는 모습을 보고픈 마음에 일부러 시간을 약간 지체하면서 이곳에 기다렸었다.

이 점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상호는 이순신이 신경써서 준비해준 군마의 등에 올라탔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 임충이 상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정녕 광주 목사가 있는 곳까지 가실 겁니까.”

“물론 그럴 겁니다.”

상호가 이리 급하게 출발하게 된 것은 이순신이 있는 전라좌수영까지 온 장계 때문이다.

그 장계는 물자를 지원해달라는 장계였는데 보낸 이는 놀랍게도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측 명장 중 하나로 알려진 권율이었다.

직접 장계를 본 것은 아니고 우연찮게 장계가 도착한 시간에 이순신의 사저에서 가르침을 받다가 알게 된 것이었다.

물자 지원을 요청한 이유는 금산 지역을 빼앗은 왜군이 다시 전라도 지방을 노리고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치 전투에 대해 기억해내었던 상호는 이제 그 전투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곤 이렇게 서두른 것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아주 중요합니다. 혹여 이번처럼 몬스··· 아니 요괴가 개입되어 자칫 전라도 방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으음, 그렇긴 합니다만······.”

위험을 무릅쓰고 큰 전투가 있을 곳에 가는 이유에 이런 이유도 있긴 하지만 사실 또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이순신 장군도 그렇지만 권율 장군하고도 안면을 익혀둘 필요가 있단 말이지.’

권율이 훗날 치룰 ‘행주 대첩’은 임진왜란 삼대 대첩 중 하나이다.

그리고 도원수가 되어 향후 전쟁에서 조선군을 통괄 지휘할 중요 인물이니 미리 만나둬서 나쁠 것은 없다.

‘거기다 고경명이라는 인물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지.’

임란 초기의 의병장 중 하나로 잘 알려진 고경명은 상당히 명망 있는 인사로 이치 전투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한 의병장이다.

현대에 있을 때는 관심이 없어 잘 몰랐지만 현재 6천여 명의 의병을 모아서 의병대를 모았다는 이야기를 이곳에서 듣고 그의 부대에 대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고경명이라는 사람은 학자에다가 60대가 넘은 자이니 내 일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 휘하에 있는 의병들은 얘기가 다르지.’

의병을 미래의 헌터처럼 만들 계획을 가진 상호로선 이만큼의 의병들이 모인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고경명이라는 인물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더라도 이들 의병 중 일부만이라도 이쪽의 설득에 넘어오게 한다면 차후의 일에 큰 도움이 될 게 틀림없었다.

하여 상호는 큰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서둘러 금산 지방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상호는 임충을 보며 이와 같이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최대한 서둘러 가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다만 그리되면 상당히 고달플 것인데 그 점은 괜찮으시겠습니까?”

“제 걱정은 안 해도 괜찮습니다.”

이젠 말 타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쉬지 않고 장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자신 때문에 이렇게 가는 것임을 알기에 상호로선 약한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것은 율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 될 텐데 괜찮겠어?”

“결코 누가 되지 않게끔 처신하겠습니다.”

“가는 길도 그렇지만 이번에 가는 곳은 곧 전장이 될 곳이야. 그런 곳에 여자 몸으로 간다는 것은······.”

“이미 아녀자이기를 버린 지 오래이옵니다.”

율은 상호의 우려에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그녀가 한낱 아녀자가 아닌 무사로서 출중하다는 것을 실전을 통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이 아직은 앳된 여자아이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고 결국 율이 따라오는 것을 허용해야만 했다.

“출발하시지요.”

“이럇!”

임충의 말에 상호는 힘껏 말 옆구리를 두들겨 말이 질주하게끔 했다.

상호가 탄 말이 빠르게 달려 나가는 모습에 곧 임충과 율도 그를 따라 말을 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왜군이 일으킨 참화를 빗겨갈 수 있었던 전라도 지방의 명운이 걸린 이치 전투가 벌어질 그 땅을 향해 세 사람은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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