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장. 해룡 토벌! (3)
후방에 남겨둔 세 척의 판옥선과는 약 300보 가량 떨어진 상황에서 대장선만 씨 써펜트 무리에 포위된 형국이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동시에 모습을 나타내니 갑판 위에 있는 모두가 다시금 겁에 질려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바로 이때!
망루에서 우렁찬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대포를 재장전하고 궁사들은 불화살을 준비해라!”
“네, 넷!”
“그리고 기패관은 바로 후방의 배들에게 이쪽으로 합류하라 전해라.”
정운이 제 때 명령을 내리니 갑판 위가 부산해졌다.
한편, 이러한 모습을 본 상호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토벌의 지휘관이 정운이라서 다행이다.’
왜 이순신 장군이 정운을 그토록 아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배 위에서의 싸움이 시작되려는 마당에 상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제길, 공격할 수단이 없네.”
철갑탄이 장전된 총화기라도 있다면 마음껏 씨 서펜트를 공격하겠지만 지금 있는 것은 각궁이 전부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금 불화살을 쏘는 정도였다.
‘내가 마법 유저가 아니라는 게 지금처럼 통탄스러울 때가 없구나.’
몬스터 코어로 얻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 스킬Skill 중에는 이른바 마법Magic이라고 불리는 스킬들이 존재한다.
불, 냉기, 번개 같은 순수한 속성력을 다루는 능력부터 회복과 저주 같은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초상 능력을 통틀어 마법 스킬이라고 하고 이것을 익힌 헌터를 ‘마법 유저’라 칭한다.
상호도 헌터가 되면서 이런 능력을 갖기를 꿈꿨지만 안타깝게도 스킬이 담긴 몬스터 코어는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고 간신히 손에 넣었던 것도 결국엔 마법 스킬이 아닌 ‘매의 눈’ 스킬이었다.
“크오오!”
수면 아래로 잠수해 접근해 온 씨 서펜트 중 한 마리가 갑판 위로 머리를 내밀며 덤벼온다.
흡사 바다뱀을 닮은 씨 서펜트의 앞니가 번뜩이고, 놈은 갑판에 박치기를 하듯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콰지직!
순식간에 갑판이 짓뭉개지고 구멍이 뻥 뚫린다.
그 주변에 있던 이들은 엉덩방아를 찧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여기엔 상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으으, 엉덩이야.”
얼얼한 엉덩이를 쓰다듬을 새도 없이 일어난 상호는 뱃전 위로 모습을 보인 씨 서펜트의 머리를 노려보았다.
당장 손에 들린 것은 활뿐.
일단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쏴보는 상호였다.
쉬이잉!
“아앗!”
허망하게 빗나간 화살.
아무래도 계속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니 화살 또한 엉뚱하게 날아간 것이다.
“후우!”
긴장을 풀기 위해 숨 뱉기를 하고 상호는 진중하게 다시 한 번 시위를 당겼다.
마침 정면에 있던 씨 서펜트가 고개를 숙인 덕에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먹어랏!”
일갈과 함께 상호는 시위를 놨다.
날아간 화살은 운 좋게도 씨 서펜트의 왼쪽 눈을 파고들었다.
“크롸라라!”
고통 때문에 씨 서펜트는 다시 머리를 갑판 위에 처박았다. 그리고는 옆으로 구르면서 몸부림을 쳤다.
이 난동에 사람들이 넘어지고 고정된 대포가 나뒹굴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지금이 저 씨 서펜트를 없앨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상호는 주변에 있는 모두에게 들리게끔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이 기회다! 비늘 사이를 노리면 칼날이 먹히니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려!”
다급함에 반말로 말하고는 상호는 갑판에 굴러다니던 도끼를 들고 배의 기둥만 한 몸통에 매달려 비늘 사이를 마구 찍어대기 시작했다.
상호의 힘에 의해 휘둘러진 도끼는 실로 강력하여 순식간에 피가 마구 뿜어지면서 상처가 벌어져 갔다.
“이 부위에 비늘이 없으니 여길 노려라.”
노련한 임충은 씨 서펜트의 턱 아래쪽이 비늘 없는 취약한 부분임을 군졸들에게 알리고 자기 자신도 검으로 턱 밑을 깊게 찔렀다.
약점을 당하자 머리를 내밀었던 씨 서펜트가 더욱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 바람에 몸 위에 올라탄 상호는 떨어지지 않게 용을 써야만 했다.
“우리도 돕자고!”
“그래!”
두 사람의 공격이 효과가 있는 것을 본 군졸들도 저마다 날붙이가 달린 것을 들고 씨 서펜트의 몸에 달라붙었다.
무수한 난타에도 불구하고 씨 서펜트는 쉽사리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
‘질기기 짝이 없네. 그렇다면!’
상호는 머리통 위를 노리고 힘껏 도끼를 내리찍었다.
유독 단단한 부위라 도끼는 약간의 흠집만 낼 뿐, 도로 튕겨져 나왔다.
“퉷! 어디 어느 쪽이 이기나 보자!”
한 번이 안 된다면 열 번, 스무 번 찍으면 된다.
이런 신념으로 상호는 두 손으로 꽉 도끼 자루를 잡고 연신 도끼질을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백날 찍어봤자 소용없었겠지만 상호의 근력이 담긴 도끼질은 나름 효과가 있어 조금씩 상처가 벌어져갔다.
마침내 두개골까지 보이고 거기에 도끼를 휘두르니 누런 액체가 피와 섞여 솟구쳤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앗!”
휘둘렀던 도끼가 그만 부러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공격하면 끝장을 낼 수 있는 기회인데 무기를 잃고 말았으니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나리!”
마치 나는 것처럼 뛰어온 율이 검을 들어보였다.
그것을 본 상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위 아래로 힘껏 끄덕였다.
푸욱!
율이 역수로 잡은 검으로 상호가 낸 상처를 쑤셨다.
그런 그녀를 도와 상호 역시 검 자루를 잡고 힘을 보탰다. 그러자 상처가 더 깊숙하게 벌어지고 마침내 씨 서펜트의 생명의 빛을 잃고 탁해졌고 결국 축 늘어진 채 죽고 말았다.
“후, 겨우 해치웠군.”
“하아, 하아.”
“괜찮아?”
상호는 가픈 숨을 몰아쉬며 창백하게 질린 율을 보며 말했다.
이에 율은 대답은 못했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여 안심을 시켰다.
이런 가운데, 배에 또 다시 충격이 왔다.
그 사이에 다른 씨 서펜트들이 판옥선 주위에 접근한 것이다.
콰직!
한 마리가 몸으로 펼쳐진 돛을 찢어낸다.
또 어떤 놈은 직접 물속에서부터 몸을 부딪쳐 선체에 충격을 주었다.
이런 식이면 배가 파괴되어 침몰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물기둥과 함께 씨 서펜트 주변에서 폭발이 있었다.
신호를 받고 근처까지 접근한 다른 판옥선들이 쏜 포탄이 떨어진 것이다.
일제 사격에 의해 몇 마리는 정통으로 맞고 물속에 침몰했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다른 판옥선에게도 공격을 시도했다.
“쏴라!”
“배 가까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고래고래 소리치는 군관들과 연신 대포를 쏘고 화살을 날리는 군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신 쏴 재끼는 통에 함부로 배에 접근하지 못하는지 씨 서펜트들은 잠수를 반복하면서 주변을 얼쩡거렸다.
한편, 우두머리 격인 씨 서펜트 로드는 다른 놈들과 다르게 좀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아까 씨 서펜트를 해치우느라 잔뜩 피를 묻힌 상호는 멀리 보이는 그놈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쪽의 싸움을 지켜본 다음 움직이겠다는 건가. 영악한 녀석이군.’
일개 짐승에 불과하다고 얕잡아 볼 수는 없다.
몸에 품은 몬스터 코어의 힘 덕에 다른 씨 서펜트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진 놈이라면 이쪽의 수단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지능적인 대응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는 황급히 정운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 말하였다.
“우두머리를 치면 무리가 혼란에 빠져 상대하는 게 수월해질 겁니다. 혹 저기 있는 놈을 공격할 만한 수단은 없습니까?”
“천자총통이라면 사거리 닿을 걸세.”
“놈을 없앨 만한 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장군전을 쓰도록 하지.”
대장군전은 무게만 56근(33.6kg)에 달하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화살이다.
현대 사람들이 세계 최초의 미사일이라고 농담식으로 말할 정도로 그 모습이 현대적이고 파괴력도 상당해, 해전에서 왜군의 세키부네 정도는 일격에 침몰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명중만 한다면 지금 물 위에 모습을 드러낸 씨 서펜트 로드도 일격에 해치울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천자총통으로 쏘는 대장군전이었다.
“하지만 저 위치라면 여기서 맞추기란 쉽지 않을 것이네.”
“···제가 한 번 해보죠.”
상호의 대답에 정운이 한 번 크게 눈을 뜨며 그를 보았다.
단순히 내뱉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 정운은 이리 말했다.
“······알겠네. 화포장, 자네가 이 부위를 도와 대장군전을 발사하게.”
“예, 만호 나리.”
명령에 따라 배의 화포장은 몇 명의 군졸을 데리고 대장군전 발포를 준비했다.
준비가 끝나는 것을 보고 상호는 천자총통 뒤편에 서서 멀리 있는 표적을 눈으로 확인했다.
“거리가 약 600보나 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해봐야죠.”
화포장의 말에 딱딱하게 대꾸하면서 상호는 ‘매의 눈’을 활성화했다.
조준기도 없이 구닥다리 대포로 정확히 표적을 맞춘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발, 맞아라.”
간곡하게 빌며 마침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다 타고 큰 소리와 함께 장전된 대들보만 한 대장군전이 발사되었다.
상호의 간절함이 조금은 부족했던 것일까.
대장군전은 빠르게 씨 서펜트 로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하지만 씨 서펜트 로드가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통에 목 아래 옆을 스치고 뒤편의 바다에 첨벙 빠졌다.
“크오오오!”
단지 스쳤을 뿐인데도 두꺼운 비늘이 뜯어지고 생살이 보일 정도로 부상을 입은 씨 서펜트 로드는 고통에 포효를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본 상호는 탄식을 터트렸다.
“젠장할! 거의 맞출 수 있었는데!”
스쳤을 뿐인데 저 정도의 상처를 입혔다. 만약 제대로 맞았다면 완전히 끝장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상호로선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분노한 씨 서펜트 로드는 관망하는 것을 그만두고 상호가 탄 대장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정운은 화포장에게 외쳤다.
“모든 화포를 써서 저 해룡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
“예이!”
그렇지 않아도 위압적인 움직임으로 오는 씨 서펜트 로드는 배에 탄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벌써 인식되고 있던 터였다.
급하게 준비한 지자총통에서 불이 뿜어지고 포환이 날아갔지만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바다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이런 가운데 씨 서펜트 로드가 어느 정도 접근하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그 입 안쪽에서부터 고압의 물줄기를 판옥선을 향해 뿜어냈다.
“우와아앗!”
“커헉!”
설마 물줄기를 뱉어낼 줄 몰랐던 사람들은 그것에 휘말려 갑판 위를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중에 몇 명은 바다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상호는 배의 난간을 간신히 붙잡고 다시 일어나 씨 서펜트 로드를 노려보았다.
‘몬스터 코어를 통해 개화한 특수 능력인가.’
몬스터 코어를 품은 몬스터들 중에는 다른 몬스터에게는 없는 특수 능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강한 수압을 지닌 워터 브레스를 뿜어낸다고 이상해할 일은 없었다.
콰앙!
“크으윽.”
“뭐든 붙잡아라!”
마침내 배에 접근한 씨 서펜트 로드의 몸이 판옥선에 부딪쳐 온다.
또 한 번 사람들과 사물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고 굴러다니는 사이에 갑판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타액이 떨어졌다.
“어구구구.”
“내 다리!”
여기저기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를 낸다.
상호 역시 갑판에 쓰러져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문득 자신의 몸이 캄캄한 그림자에 덮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왠지 안 좋은 예감이······.’
속으로 이리 생각하면서 상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숨을 깊게 삼켰다.
갑판 위까지 머리를 올린 씨 서펜트 로드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이 향한 곳에는 막 쓰러진 군졸을 부축하던 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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