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23화 (23/127)

五장. 해룡 토벌! (2)

다음 날, 이순신은 주요 무장들을 모아놓고 먼저 자신의 안건부터 이야기했다.

“곧 있으면 전라우수사 이억기 공의 함대가 합류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부산포에 있는 왜군 함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가능하게 되리라.

그러나 지금 함대의 이동로에 바다 괴물이 나타났다는 첩보가 떴다. 이 문제를 가벼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 제장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괴물이라니. 솔직히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좌수사 영감.”

이 말을 한 것은 사도 첨사 김완이었다.

좌우로 앉은 각 장수들도 비슷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하기야 실물을 직접 보지 않는 한, 그것을 믿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을 보게.”

이순신은 비단으로 싼 주머니 하나를 탁자 위에 내놓았다.

이것을 정운이 조심스럽게 펼치니 녹색의 비늘 한 장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습격받았다던 초탐선에 남겨진 바다 괴물의 비늘일세.”

“허어.”

습격 당시 배를 공격하던 씨 서펜트가 흘린 한 장의 비늘을 초탐선의 선원들이 이순신에게 진상했던 것이다.

물고기의 비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크고 단단한 비늘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물건인 것은 확실했다.

이순신과 동명이인인 방답 첨사 이순신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피난민들 중에서 요괴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흘리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째서 그 얘기를 지금 하는가.”

이순신은 방탑 첨사 이순신을 꾸짖었다.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전쟁을 하는 장수로서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이순신의 원칙이었기에 피난민들이 들려준 요괴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에 분노한 것이다.

이에 방탑 첨사 이순신은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일전을 앞두고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낭설도 통제사 영감의 심기를 흔들까 저어되어 말씀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소장의 모자란 판단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본래라면 엄중히 처벌해야 할 테지만 이번 사안이 전례에 없던 해괴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한 번만 넘어가주겠다.”

“송구합니다.”

용서를 받은 방답 첨사 이순신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순신은 이어 다른 휘하 장수들의 면면을 살폈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대부분도 방답 첨사처럼 이런 소문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

이순신의 말에 대부분이 낯빛을 바꿨다. 소문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소문은 전라좌수영까지도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다.

이순신은 재차 말했다.

“왜 수군과의 일전을 앞둔 지금, 바닷길을 가로막은 바다 괴물의 토벌은 필요한 일이라고 본관은 생각한다.”

“바다 괴물의 토벌이라니······.”

“으음.”

이순신의 말에 좌우 제장들은 무거운 반응을 보였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존재와 싸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토벌은 제약 또한 존재했다.

“알다시피 이번 출정은 전라 우수영과의 합동으로 진행되기에 시일을 늦출 수는 없다. 그런 까닭으로 좌수영이 모인 함대를 전체를 출동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시면 경상우수사께 이 일을 맡기심이 어떻습니까? 어차피 그들은 왜 함대와 싸울 때 그리 도움도 안 되지 않사옵니까.”

송희립의 말에 이순신은 순간 심기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왜군이 본격적으로 침공했을 때,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수영의 배를 몽땅 불태우고 도망쳐 온 경상우수사 원균은, 객장이면서 이순신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전투에선 늘 뒷전에서 구경만 하다가 전투가 끝날 쯤에야 나서서 목 베기를 하기 일쑤인 자였다.

이런 까닭에 전라좌수영에서 그를 좋아하는 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 주장에 대해 순천 부사 권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바다 괴물이라는 생소한 존재를 상대하기엔 경상우수영의 함대는 부족함이 많네. 자칫 애꿎은 피해만 키울 수 있어.”

“본인도 권 부사의 말에 동감이다.”

이순신도 이렇게 말해오니 더는 원균의 함대에 일을 떠넘기자는 주장은 나오지 않게 되었다.

결국 전라좌수영에 소속된 함대에서 토벌에 참가할 배를 차출해야 했다.

이순신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장수를 토벌을 지휘하는 장수로 선택했다.

그 장수는 바로 녹도 만호인 정운이었다.

“바닷길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무엇보다 괴물의 실체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것들의 약점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좌수사 어른.”

이순신의 말에 정운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리하여 녹도 만호 정운의 지휘하에 판옥선 4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추도로 출동하게 되었다.

* * *

이른 새벽.

정운이 이끄는 4척의 판옥선은 만전의 준비를 갖추고 본영을 떠나 출항했다.

황포黃布를 활짝 펼치고 줄지어 항해하는 판옥선들.

그 중 가장 앞에서 물살을 가르는 대장선에는 상호 일행이 탑승해 있었다.

“설마 바다에서 몬스터 토벌을 하게 될 줄이야.”

뱃전에 서서 상호는 섬들이 도처에 자리한 다도해의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 일이 중요하기에 이순신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판옥선에 직접 탑승하긴 했지만, 막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바다에서의 몬스터 토벌을 앞두니 새삼 긴장되었다.

“우윽.”

“이런, 이런.”

소리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기에 상호는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돛을 단 기둥을 부여잡고 토를 하는 율이 있었다.

당초 배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율은 상호가 만류해서 이번 토벌에 참가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본인이 강력하게 원하였기에 할 수 없이 태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부득불 우겨 이 배까지 쫓아 탄 율이지만 결국 물살에 출렁이는 배를 이기지 못하고 멀미에 시달리는 중인 것이다.

이 모습을 걱정스러워 상호는 율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많이 힘들지?”

“전······ 괜찮······ 우읍!”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율은 재차 갑판에 대고 토를 했다.

그 모습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며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이렇게 흔들리는 배라면 고생할 만하지. 아아, 코어를 통해 민첩 수치를 올려놓길 잘했지, 안 그랬다면 나도 이런 꼴을 면치 못했을 테니 말이야.’

순발력을 올리는 민첩 수치는 부가적으로 균형 감각의 향상도 이끌어낸다.

덕분에 상호는 거칠게 흔들리는 판옥선 위에서도 멀미를 조금도 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견디도록 해. 곧 있으면 섬 근처에 도착할 테니 말이야.”

“······네.”

상호는 쪼그려 앉은 율의 등을 두어 번 두들겨서 말했다.

이에 퀭한 눈으로 율은 힘겹게 대답하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그런 율을 돌보다가 상호는 배의 중심에 자리한 망루 쪽으로 다가갔다.

좌수영을 상징하는 깃발을 비롯한 여러 군기가 꽂혀져 있는 망루 위에는 정운이 진지한 눈으로 멀리 전방을 보고 있었다.

적어도 그 모습은 믿음직스러웠다.

그런 정운에게 상호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기······ 정 만호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

만호인 정운은 종 4품의 위계를 갖고 있어 일개 정 9품의 효력부위인 상호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은 겸손한 태도로서 상호를 대하였다.

“다른 게 아니고······ 추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요?”

“앞으로 두 식경이면 도착하네.”

“아, 그렇습니까.”

상호는 두 식경이 정확히 얼마큼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인지 잘 몰랐지만 그리 길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호에게 이번엔 정운이 질문하였다.

“자네는 다른 세상에 왔다고 했다지.”

“예, 뭐······.”

“도사들이 도를 쌓으면 갈 수 있다는 선계가 존재한다니. 솔직히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는군.”

“그러실 겁니다, 하하.”

여기서도 자신을 선계에서 온 자라고 소개한 바 있는 상호는 정운의 반응에 어색하게 반응할 따름이었다.

정운은 바다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어찌 오랑캐가 쳐들어온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늘도 무심하군그래.”

“······.”

“어쨌든 바다 괴물을 퇴치하는 데 많은 조언을 부탁하겠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염려마시길.”

이렇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함대는 추도 가까이에 접어들었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치는 가운데 홀로 있는 큰 섬이 보였다.

사람도 살던 섬이지만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피난을 떠난 섬 주변엔 갈매기만 날 뿐이었다.

“어디 살펴볼까.”

상호는 ‘매의 눈’ 능력으로 최대한 시야를 넓혀 추도 인근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바다는 잔잔했고 특이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바다 속에 은신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수면 밖으로 끌어낼 수밖에 없겠는 걸.”

말을 한 상호는 슬쩍 정운을 보았다.

바다 아래에 있는 씨 서펜트들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미끼가 필요한데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운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여 상호는 정운이 있는 망루에 올라가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놈들을 물 밖으로 끌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유인할 게 필요하단 얘기군.”

상호가 설명하기도 전에 정운은 그 내용을 간파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기패관에게 말을 전했다.

“나머지 배에 현 위치를 지키라는 신호를 보내라.”

“예, 나리.”

“우리는 섬을 향해 앞으로 갈 것이다.”

정운은 미끼로서 자신이 탄 대장선을 선택했다.

부하들에게만 위험한 역할을 맡기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노를 저어라!”

“영차! 영차!”

갑판 아래에서 격군들이 힘껏 노를 젓자 판옥선은 추도 가까이까지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어느 섬에 가까이 다가갔을까.

뱃전에서 수면을 보던 상호는 수면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물거품을 발견해 냈다. 급하게 배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끔 큰 소리로 외쳤다.

“좌현 쪽에서 올라올 거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면 아래에서 그림자 같은 게 커져 올라온다.

촤아아앗!

그리고 마침내 수면 위로 씨 서펜트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오메!”

“나타났다!”

갑판 위에 있던 모두가 모두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냈다. 아무리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어도 막상 눈으로 보니 다른 것보다 공포가 치민 것이다.

그런 군졸들을 독려하고자 망루 위에서 정운은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고 고함을 터트렸다.

“겁먹지 마라! 좌현, 포격 준비!”

다른 조선군과는 달리, 이순신의 엄격한 훈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훈련받은 대로 움직이게끔 조련된 군졸들은 바로 정신을 번쩍 차리고 각자 맡은 소임에 임했다.

쇠로 된 포환이 장전된 천자승통과 지자승통이 일제히 불을 뿜자 새하얀 연기가 배의 갑판에 자욱하게 발생한다.

발사된 포환 중 두 발이 각각 씨 서펜트의 머리와 상체에 명중하였고 피와 함께 큰 상처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크오오오!”

씨 서펜트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바람에 판옥선이 파도에 밀려 옆으로 쏠리듯 움직였다.

그 바람에 상호는 갑판에서 뒤로 나뒹굴어야 했는데, 다행히도 누군가가 손을 뻗어주었다. 이 손을 내민 것은 율이었다.

“고, 고맙다.”

“별말씀을요.”

펑! 펑!

대화하는 목소리가 묻힐 정도로 큰 포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다.

뒤에 남겨둔 세 척의 판옥선에서도 포격을 개시한 것이다.

쾅!

한 발의 포환이 머리에 또 한 번 명중하고 씨 서펜트가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수면 위로 쓰러진다.

“와아아!”

“해치웠다!”

그 모습에 군졸들은 함성을 터트렸다.

생각보다 쉽게 바다 괴물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에 사기가 치솟은 것이다.

하나, 지금 나타났던 놈은 자신들의 영역에 쳐들어온 적을 확인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정찰에 불과했다.

촤아아.

물살을 일으키며 차례차례 씨 서펜트들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총 20마리에 달하는 씨 서펜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중 한가운데에 있는 놈은 특히나 거대하였다.

아마도 저 개체가 게이트로부터 선택받아 게이트 키퍼로서 강력한 힘을 부여받은 로드임이 분명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군.”

네 척의 판옥선만으로 과연 이들 씨 서펜트들을 쓰러뜨리고 섬의 게이트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금부터 어떻게 싸우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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