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장. 해룡 토벌! (1)
도착하자마자 이순신 장군에게 용건이 있어 왔다는 것을 밝혔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기다리기를 얼마나 있었을까.
이쪽의 방문을 이순신에게 알린 군관이 세 사람이 대기하던 방으로 돌아왔다.
“좌수사께서 지금 만나시겠다고 하시네. 그러니 어서 날 따라오게.”
“휴!”
혹여나 퇴짜를 맞을까 걱정했던 상호는 한 시름 놓으며 표정을 밝게 했다.
이순신을 만나기 위해 의복도 이천에서 얻었던 옷으로 재차 갈아입은 상호와 흔들림 없는 표정의 임충, 율은 함께 전라좌수영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 드디어 내가 그 전설의 이순신 장군님을 직접 만나보게 되는 건가.’
한민족 최고의 영웅을 만나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쿵쾅쿵쾅 거세게 두근거렸다.
그러던 중에 걸음을 옮기던 상호의 시선이 이순신의 집무실로 세 사람을 안내하던 인물의 옆얼굴에 우연히 가게 되었다.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호남형의 얼굴은 분명 범상치 않아보였다.
그런 그에게 신경이 간 상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녹도 만호 정운이라고 하오.”
“헉!”
상호는 그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운이라고 하면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많은 활약을 한 수군 장수였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역사에 나오는 인물인 줄이야.
정운에 대한 상호의 눈빛은 방금까지와 사뭇 달라졌다.
한편, 상호의 반응에 의아함을 느꼈는지 정운이 이렇게 말해왔다.
“혹시 본관과 아는 사이이신가?”
“아, 아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가.”
다행히 정운은 상호의 말에 크게 의혹을 갖지 않고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는 한 건물 앞에서 멈추더니 대청마루를 지나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을 열며 실내로 앞서 들어갔다.
안은 집무를 보기 위한 장소로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엔 남해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가 걸려 있었다.
긴 탁자 끝에는 간편한 차림으로 서류를 읽는 한 사람이 있었다.
풍채는 그렇게 썩 대단하지 않지만 턱이 곧고, 거기에 난 수염도 정갈하고 힘이 있으며 눈썹이 굵다.
그리고 뭣보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니 후대에까지 기록된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저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님.’
구국의 영웅이자 불세출의 명장을 직접 보게 되니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상호는 지금 아이돌 사생팬의 기분을 만끽하면서도 그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스려야만 했다.
한편, 일행을 안내한 정운은 이순신에게 이들을 소개했다.
“좌수사 어르신, 광해군 마마께서 보냈다는 이들을 데려왔사옵니다.”
“수고했네, 정 만호.”
서류를 보던 눈길을 거두고 탁자 맞은편에 선 상호 일행을 본 이순신은 손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리에 일단 앉게나.”
“아, 예.”
상호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이순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과도하게 이순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상호의 옷 뒤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옆에 앉은 율이 걱정하는 마음으로 손을 쓴 것이었다.
‘아차.’
자신이 너무 정신을 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호의 낯빛이 새빨개졌다.
율이 내심 감사해하며 상호는 일행의 대표로서 광해군에게서 받은 서신을 품에서 꺼내 이순신에게 정중하게 내밀었다.
서신을 받은 이순신은 고개를 까닥하고는 그것을 펼쳐 한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모든 내용을 읽은 후, 이순신은 상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 서신 내용이 진정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하면서 상호는 이순신의 표정을 읽어보았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표정으로는 알기가 어렵다. 때문에 그의 입이 열릴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이순신의 굳게 닫힌 입이 열렸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라······. 세자 저하의 말씀이 아니라면 믿게 어려운 얘기군.”
솔직한 이 대답에 상호는 이해 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순신을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을 시작했다.
광해군에게 했던 얘기 그대로를 고스란히 이야기 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을 소요케 했다.
전쟁을 치르는 장수로서 일각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을 텐데 이순신은 끝까지 이야기를 경청했다.
마침내 모든 사정을 이야기한 상호는 마지막으로 이리 말했다.
“장군이 제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일이 조선 땅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 따로 조사하여 진상을 확인해보지.”
결코 상호의 말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매사 철두철미하게 업무를 보는 이순신의 성품 상 이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데 굳이 이 이야기를 직접 여기까지 내려와 전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마침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상호는 지금부터 하는 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신중한 답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이윽고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우선 장군이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장군께서도 요괴 토벌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백성들을 곤란에 빠트린다고 하면 응당 그것이 요괴든 뭐든 처치할 것이네.”
“물론 그러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제 말씀은, 요괴 토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 앞으로 왜군을 몰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상호가 말하고픈 것은 몬스터 코어를 통해 힘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이순신의 수군이 함대를 통해 왜군을 상대하기에 개인적인 능력을 상승시키는 몬스터 코어의 힘은 별 도움이 안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특수 능력 쪽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지휘에 도움이 되는 스킬도 몇 가지 있고, 또 강력한 속성을 다루는 스킬의 경우엔 전투의 판도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는 이러한 설명을 쭉 이순신에게 해주었다.
그런데 묵묵히 설명을 모두 들은 이순신의 표정은 담담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인가?’
이러한 상호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순신이 이리 반응을 보인 것은 그 때문에 아니었다.
“그대의 말은 잘 들었다. 하나, 그런 사이한 능력을 얻어서 왜군을 무찌른다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군.”
“장군, 한 번 더 생각을 재고해 주십시오. 왜군은 물론이고 요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나는 그런 허황된 힘이 아니더라도 제승방략에 따라 군기를 엄정히 하고 잘 조련된 병사와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움으로써 적을 물리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네.”
“······.”
역시 이순신다운 말이었다.
상호는 이러한 이순신의 반응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역사에 기록된 것 그대로의 성품이네. 이래서는 지금 당장 설득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본래 역사대로 동해로 진입해 북쪽에 있는 왜군에게 물자를 보급하려는 왜 수군을 막아주는 역할을 잘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상호에겐 최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초 목표는 한산도 대첩이 큰 문제없이 끝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 대한 설득은 나중에 보다 좋은 기회가 생겼을 때 다시 하기로 했다.
“장군! 장군!”
대화가 마무리될 쯤에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인가.”
“송, 송구합니다. 하지만 급박한 일이오니 부디 보고를 할 수 있게끔 해주시옵소서.”
“······들어오라.”
이순신의 말에 급박한 표정의 무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곧장 이순신에게 고개를 숙인 다음에 보고를 올렸다.
“추도로 정탐을 나갔던 초탐선이 돌아왔는데, 돌아온 자들이 그곳에 괴물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괴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곧 있을 출정을 앞두고 왜 수군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초탐선들을 내보냈던 바였다.
그들 중 한 척이 함대가 통과할 추도 일대의 해역에 나갔었는데 뜻하지 않게 왜군이 아닌 괴물을 목격하고 복귀한 것이다.
이순신은 즉각 초탐선에 탔던 이들을 긴급히 불러들였다.
“있었던 일을 상세히 말해보라.”
“장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박 중인 왜 수군을 정탐하기 위해 추도 인근을 지나게 되었습죠. 그런데 갑자기 바다 아래서 거대한 뱀이 나타나더니 우리를 습격하였습니다요.”
“거대한 뱀이라니?”
“몸의 길이는 전체를 다 보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판옥선보다 훨씬 길고, 몸통 또한 어지간한 대갓집 집 기둥보다 두꺼웠습니다.”
그 밤의 일이 새삼 떠올랐는지 말을 하던 군졸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어냈다.
이러한 대화를 옆에서 들은 상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허어, 이것 봐라.’
군졸이 말한 바다뱀의 정체는 누구보다 상호가 잘 알고 있었다.
강이나 바다에 게이트가 열릴 경우, 해양 몬스터가 그 일대에 출몰한다.
그중에서 씨 서펜트는 꽤 강력한 몬스터로, 대함 미사일 정도의 화력이 아니면 일격에 해치우기 힘들고, 헌터의 경우에도 어지간한 실력자들이 모이지 않으면 토벌하기 힘든 몬스터였다.
상호는 그런 몬스터가 하필 중요한 한산도 대첩을 앞두고 나타났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한편, 이사이에도 대화는 계속 오고갔다.
“놈의 공격에 배가 엉망이 되고 저희들은 죽기 살기로 달아났습죠. 다행히 그 괴물은 어느 정도 쫓아오다가 돌아갔고, 간신히 배를 응급조치하여 이곳까지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바다 괴물이라니.”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이순신은 상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다 괴물에 대한 정체를 그대는 알고 있나?”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전 그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장군.”
“그 이야기······ 자세히 해보게.”
이순신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당장 북으로 올라간 육군의 보급을 위해 서해로 진출하려고 하는 왜 수군을 막기 위해 중요한 출정을 앞둔 시기였다.
이런 때에 해로 가운데에 괴물이 출현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곤란한 일이었다.
만약 상호가 없었어도 이순신은 이러한 변괴를 그냥 가벼이 넘어가지는 않는 장수였다.
이러한 이순신을 위해 상호는 성심껏 자신이 아는 씨 서펜트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했다.
“씨 서펜트는 그 크기가 판옥선보다 크고 비늘도 대단히 두꺼워 화살 같은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수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바다 위에서는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존재라 할 수 있겠지요.”
“흐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이 시대에 맞춰 가공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성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모습을 드러낸 놈 말고도 근처 바다엔 무리를 지은 놈들이 더 있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놈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나 되겠는가?”
“그것은···워낙 유동적인 사항이라 직접 그 일대를 조사하지 않는 한 뭐라 답하기 힘듭니다.”
“으음, 그렇군.”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일을 지체하면 할수록 놈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고 더 위험한 요괴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상호의 이어진 경고에 이순신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지금 이순신은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그가 내리게 될 판단은 어떨 것일까. 그것이 무척 궁금했지만 지금은 장군의 사색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이순신이 말하였다.
“공무로 바쁘지 않다면 이번 일에 관하여 협조를 해줄 수 있겠는가.”
“협조라면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요?”
“만약 자네 말대로 추도 일대에 그런 괴물들이 세력을 키운다면 적뿐만 아니라 아군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터, 휘하 장수들과 논의하고 추후 결정하겠지만 토벌은 피할 수 없을 것이야.”
“당연히 그렇겠죠.”
“자네가 말한 그 씨 서펜트라는 요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자가 없는 현재로선 정면에서 그것들을 토벌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테지.”
이순신은 미지의 변수를 최대한 줄여야만 아군의 피해가 적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상호에게 이러한 부탁을 했다.
“괜찮다면 토벌에 보낼 함선에 자네도 승선해서 도움을 주었으면 하네.”
“기꺼이 하겠습니다!”
상호는 이순신의 부탁을 흔쾌히 접수했다.
향후 치러져야 할 ‘한산도 대첩’의 변수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명도 있지만 무엇보다 누구보다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태도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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