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9화 (19/127)

四장. 점령지를 돌파하다 (3)

꼬박 이틀을 쉬지 않고 내달려 상호 일행은 청주 지방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밤을 새면서까지 먼 거리를 달린 탓에 사람도 사람대로 엄청 지쳤지만 무엇보다 타고 온 말들이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 숨을 헐떡였다.

상호는 앞에서 달리는 임충의 말을 따라잡고 옆에서 말을 걸었다.

“좀 쉬었다가 가야지, 안 그러면 말들이 먼저 쓰러질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 상태라면 쉬어도 오래 달리지 못할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나루가 나오니 그곳에서 잠시 말을 쉬게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임충의 말처럼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미호천이라는 꽤 폭이 넓고 수심이 있는 하천이 존재했다.

여길 건너려면 나룻배를 타야만 했는데 지금 가고 길을 쭉 가면 그 배를 탈 수 있는 나루가 있는 것이었다.

“으음, 그렇다면 조금만 더 말에게 힘내라고 할 수밖에 없겠군요.”

지금 많이 지친 말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나루까지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상호도 임충의 뜻에 따랐다.

그런데 길을 따라 이동하여 도착한 나루엔 운 없게도 수십 명이 넘는 왜군들이 있었다.

“제길, 여기도 왜군이 있는 건가.”

“일단 몸을 숨기지요.”

왜군의 눈에 띄기 전에 일행은 서둘러 말을 멈추고 몸을 숨겼다.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한 나루터에는 북방으로 보낼 물자를 한참 옮기고 있었다.

다행히 짐을 옮기느라 대부분은 훈도시만 입은 벌거숭이 모습으로 있었지만, 주위를 경계하는 자들도 몇 명 보였다.

“이곳 말고 이 근방에 하천을 건널 곳은 없는 겁니까?”

“본인이 가진 지도엔 이 근방에 다리가 있지 않다고 나와 있습니다.”

임충이 가진 지도는 군사용 지도였다.

그렇지만 조선 중기 시대라 그런지 지도의 구성은 무척이나 형편  없었다.

이곳 지리에 잘 아는 길잡이가 있다면 다른 나루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길잡이를 구해 다른 나루를 찾을 여유는 없었다.

상호는 나루 쪽 상황을 보면서 말했다.

“어쩌죠. 보아하니 저들이 여길 떠날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그래도 여기서 배를 타야하니 강행돌파를 할 수밖에요.”

“저 정도나 되는 숫자를 우리만으로 상대한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라고 봅니다만.”

상호는 임충의 말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자신을 포함해 임충과 율 모두 왜군을 상대로 상당히 우위를 보이며 싸울 수 있는 실력자라지만 그래도 정면에서 부딪치는 것은 너무나 위험 부담이 컸다.

“저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은 무리인 것 같고 차라리 기회를 만들어 왜군들을 따돌리고 저기 나루에 있는 나룻배를 탈취해 하천을 서둘러 건너는 게 어떨까요?”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가.”

“으음.”

자신이 말을 꺼낸 만큼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상호는 잠시 대답을 보류하고 나루 주변을 눈으로 살폈다.

현대 문물에 길들어져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생활을 해온 예전의 그였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 년 동안 헌터로서 산전수전을 경험했기에 그만큼 배우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익힐 수 있었던 게 있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익혀온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위험한 환경에서 살 길을 찾는 것이었다.

주변 지형과 왜군의 동향,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 유추를 통해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계획을 생각하였다.

이윽고 상호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제가 떠올린 생각인데 한 번 들어보시죠.”

“들어보지요.”

임충과 율은 진지하게 상호의 얘기를 경청했다.

그런 둘에게 상호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루터 주변은 갈대숲이지 않습니까. 저기에 불을 지르면 아마도 저들은 놀라서 불을 끄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를 노려 배를 탈취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화재를 통해 왜군의 주의를 빼앗잔 말씀입니까. 확실히 좋은 방안인 것 같습니다.”

“불을 피우는 역할을 저한테 맡겨주세요.”

상호의 계획을 들은 율은 스스로 자청해서 불을 내는 역할을 맡고자 했다. 아무래도 일행 중에서 가장 아랫사람인 자신이 그런 위험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왜군들의 눈에 띄지 않게 그들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일을 굳이 여자아이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상호는 율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처럼 말했다.

“이런 일은 내게 맡겨.”

“하지만······.”

“이런 일은 내게 있어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상호는 라이터를 꺼내보였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나선 상호는 곧 나루터를 향해 단독으로 접근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 복장보단 역시 이게 은밀함에 있어서 낫지.”

상호는 두 사람이 안 보이는 곳에 옷을 갈아입었다.

관아에서 얻어 입은 무복이 편하기 했지만 원색으로 되어 있어 눈에 띄기 쉬었기 때문에 일부러 보따리에 싸서 가져온 현대에서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우드 랜드의 밀리터리 복을 입은 상호의 모습은 주변의 수풀이 너무나 잘 녹아들었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나루터 부군의 갈대숲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군대에서부터 배운 낮은 보폭을 아주 익숙하게 펼치며 전진한 상호는 전진하다가 잠시 멈추고 옆을 보았다.

아마 지금 쯤 임충과 율도 상호가 말한 대로 다른 방향으로 해서 조심스럽게 나루터 쪽으로 접근하고 있을 터였다.

“슬슬 시작할까.”

상호는 두 사람이 충분히 나루터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태울 것을 모아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금방 붙은 불은 매캐한 연기를 일으키며 주변 갈대에 옮겨 붙었다.

“좋아.”

상호는 불이 제대로 붙은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다시 낮은 포복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뒤,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챈 왜군들이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불이다!”

“불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어서 불을 꺼라!”

소란이 커지고 자연스레 불이 나지 않은 반대쪽은 경계가 소홀해졌다.

상호는 갈대를 양옆으로 밀치면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나루터에는 지금 대여섯 명만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앞장 설 테니 두 사람은 뒤에서 따라오기만 하면 됩니다.”

호기롭게 말한 임충은 장검을 뽑아 들고 나루터 쪽으로 앞서 움직였다.

상호는 적어도 선봉엔 임충이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굳이 말리지 않았다.

대신 뒤를 보며 율에게 말을 전했다.

“우리도 가자고.”

“예.”

이렇게 세 사람은 갈대숲에 난 화재를 이용해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고 나루터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나루터에는 임충의 말대로 몇 명만이 남아 쌓아놓은 물품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황색 돛을 단 나룻배 위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기회는 딱 지금뿐이었다.

가장 먼저 나루터를 향해 임충이 달려 나갔다.

“헉! 웬 놈이냐!”

임충이 오는 것을 본 왜군이 놀려 소리쳤다.

무기도 갑옷도 입지 않은 상대를 향해 임충이 매서운 검격을 날렸다.

“크학!”

피분수가 벌거벗은 가슴팍에서 터지면서 검을 받은 왜군은 물에 빠지고 말았다.

임충은 기세를 그대로 끌어올려 연달아 앞에 있는 왜군들을 베며 배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 상호와 율도 힘껏 내달렸다.

“적이다!”

“어서 놈들을 막아라!”

뒤늦게 상황을 안 왜군들이 허겁지겁 불을 끄다가 말고 나루터 쪽으로 달려왔다.

나루터에 남아 있었던 왜군들이 전부 임충의 칼에 맞아 쓰러진 상황이었고, 세 사람은 무사히 나룻배에 오를 수 있었다.

펄럭.

접었던 돛을 펴고 임충이 배의 노로 힘껏 바닥을 밀자 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나루터에 다다른 왜군들이 멈추지 않고 달려오더니 아직 강변을 떠나지 못한 배에 향해 달려왔다.

이대로 둔다면 배에 올라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거나 받아라!”

상호는 활을 잡고 배로 가서 자세를 잡은 다음 잇따라 시위를 당겼다.

대충 조준하지 않고 쏘았지만 상호의 완력에 의해 날아간 화살은 무서운 기세로 나루터까지는 날아갔다.

쉬유우웅!

날아오는 화살에 놀란 왜군들이 허겁지겁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훗.”

간단히 왜군을 막은 상호는 유유히 하천 하류를 향해 떠내려가는 나룻배에 서서 멀어져 가는 나루터를 응시하면서 마음속으로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 * *

탕!

막사 안을 울릴 만큼 큰 소리에 좌우로 앉은 이들이 움찔한다.

저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가부토(兜)에 도오세이구소쿠(當世具足)를 입은 고위 무장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이렇게 화를 낸 것은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중 한 사람으로, 일본 전국시대에 잘 알려진 무장인 후쿠시마 마사노리였다.

제4진으로 조선 공략에 나선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앞서 진격한 군대를 뒤따르며 충청도 일대를 공략하는 임무를 갖고 군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화를 낸 것은 그제와 어제 있었던 불미스런 사건 때문이었다.

“조선을 정벌하는 중대한 일을 할 때에 이런 문제를 만들다니, 정말이지 한심스럽지 않은가.”

“송구합니다, 마사노리님!”

휘하의 무장들은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토록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분노하는 것은 몇 시각 전에 날아든 보고 때문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평양으로 올라가는 보급 물자가 옮겨지는 나루가 불시에 습격을 당하다니. 대체 경계를 했기를 이런 일이 생기는가 말인가.”

“면목이 없습니다, 주군.”

“송구합니다.”

자리에 착석한 무장들은 대부분이 마사노리 가문의 가신들이었다.

그런 만큼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진정될 때까지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한결 차분해진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말했다.

“전해진 보고에 따르면 남녀 포함한 삼인이라고 한다.”

“고작 세 명이 나루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을 돌파하였단 말입니까?”

“고작 세 명에게 그런 실추를 보이다니. 나루를 지키던 책임자를 당장 할복시켜야 합니다!”

가신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것을 보던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손을 들어 주변을 조용히 시킨 후 말을 꺼냈다.

“저번에 검문을 하던 자들이 모두 참살된 일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내 추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선을 본다면 얼추 맞을 것 같습니다, 주군.”

“그렇다면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우리 군이 점령한 영토를 지나 남쪽으로 가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무장들은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말에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식견을 좋다고 평가받는 한 가신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복장이나 구성으로 봤을 때는 조선군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분명 어떤 밀명을 받고 움직이는 자들이 분명합니다.”

“밀명이라고?”

“조선 남부, 전라도라 부르는 지방에 있는 조선군으로 향한 것이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분명 중앙 조정으로부터 뭔가 전달해야 할 밀명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 말에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턱을 쓰다듬었다.

급하게 조선 국왕을 잡기 위해 서두른 탓에 진격로에서 떨어진 전라도 일대는 아직까지 발도 붙이지 못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조선군 수군과 상당수의 육군이 아직 남쪽에 건재하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아는 바였다.

후방에 있는 부대들이 전라도 공략에 막 나선 이때에 조선 조정에서 보냈을 것이라 의심되는 자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었다.

잠시 좌우에 도열해 앉은 휘하 무장들을 본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마침내 한 사람의 이름을 지명했다.

“노부유키!”

“하앗!”

이름을 불린 무장이 자리에 벌떡 일어나면서 고개를 깍듯이 숙인다.

이제 20대 초반의 그는 마사노리의 친척으로 이번이 첫 출정인 어린 무사였다.

그런 그에게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이와 같이 말했다.

“너에게 기병 스무 기를 주겠다. 되도록 산 채로 잡아오되 어렵다면 죽여도 좋으니 그자들이 목적지까지 당도하지 못하게 반드시 막도록 해라.”

“명에 따르겠습니다.”

공을 세울 기회가 생겼음에 노부유키는 한껏 들떴다.

상호 일행을 쫓는 임무를 띤 스무 기의 기병이, 이 젊은 무사와 함께 진영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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