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장. 고블린을 격퇴하라 (5)
게이트를 수호하는 존재인 게이트 키퍼(Gate keeper)인 고블린 로드를 쓰러뜨리고 그 전리품으로 몬스터 코어를 얻었다.
상호는 코어를 보고는 잠시 안타까움의 눈빛을 취했다.
‘확률이 낮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득 희망을 품었건만······.’
고블린 로드에게서 획득한 몬스터 코어의 색상은 붉은색이었다.
만약 스킬을 얻을 수 있는 푸른색 몬스터 코어였다면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푸른색이라고 해서 무조건 원하는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얻을 수 있는 스킬은 랜덤이기 때문에 남윤수를 구할 수 있는 회복 스킬이 안 나올 가능성이 사실 더 컸다.
하지만 조그마한 기적이라도 지금의 율에겐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과 같았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한 상호였다.
“쿨럭!”
“엉엉! 안 돼요, 아버지!”
율의 통곡 소리가 한층 커졌다.
낯빛이 창백해진 남윤수는 마지막 남은 한 가닥 힘으로 한 손을 들어 눈물로 얼룩진 율의 뺨을 만졌다.
“부디···나라에 공을 세워···가문을 일으키거라······.”
“아버님!”
“······.”
율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남윤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다시 아래로 힘없이 떨어뜨렸다.
결국 남윤수는 부상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이다.
“안 돼요!”
아버지의 부고에 율은 바닥에 누운 남윤수의 주검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상호의 마음은 더욱 착잡해졌다.
‘늘 겪는 일이지만 사람이 죽는 것은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야.’
더욱이 그 사람이 자신이 처음으로 주도한 몬스터 레이드에 참가했던 자이니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상호는 쓸쓸한 눈으로 남윤수의 주검과 이를 붙잡고 오열하는 율을 잠시 지켜보았다.
“이보게.”
“···말씀하시죠.”
상호는 자신에게 말을 건 임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임충 역시 남윤수, 율 부녀의 안타까운 모습을 착잡한 시선으로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것을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나? 다들 가까이 가기를 꺼려하니 자네가 좀 나서주게.”
“알겠습니다.”
임충의 말에 자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을 처리하고자 상호는 아직 닫히지 않은 게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게이트 키퍼가 사라졌지만 게이트는 여전히 빛이 발하며 건제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새로운 몬스터들이 이 게이트를 통해 넘어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 전에 파괴해야지.”
게이트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탐사용 무인 로봇이나 사람을 보내보는 실험을 했지만 그들로부터 어떤 정보도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이쪽 세계로 귀환하지도 못했다.
다만 이쪽에서 게이트를 파괴할 수 없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파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정도 화약으로 파괴가 될지 걱정이지만, 지금으로썬 이것밖에 방법이 없으니 할 수 없지.”
상호는 이천의 무기고에 있던 화약을 모아서 시한 폭탄을 만들었다.
그것을 곧 게이트에 던지자 물속에 빨려 들어가듯 폭탄이 사라졌다.
“다들 물러서요!”
상호는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이리 경고하고 본인 역시 거리를 두고 피신했다.
파치치직!
잠시 뒤, 게이트 쪽에서 에너지의 방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몇 번의 스파크가 주변을 튀었다.
“아이구야!”
“오메!”
상호가 하는 일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던 사람들은 나타난 현상을 보고 허둥지둥 더 멀리 피신했다.
잠시 뒤, 수축되던 게이트는 한차례 큰 섬광을 뿜어내고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다행히 폭탄이 제 역할을 해준 모양이네.”
만족스런 결과였다.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진 땅을 향해 상호는 유일하게 가까이 접근했다.
게이트 파괴의 여파로 인해 시커메진 땅 위에는 투명한 작은 결정체가 여러 개 존재했다.
“마나 스톤을 얻었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 없는 심정이라니.”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마나 스톤이라 부른 결정체를 줍는 상호였다.
마나 스톤.
그것은 헌터의 주 수입원 중 하나로, 최초 발견 당시 과학자들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물질이다.
석유나 원자력을 대체할 고부가 에너지원이었기에 당연히 고가로 거래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전기는 고사하고 아직 석탄, 석유의 가치도 알려지지 않은 과거 시대다.
이런 시대에서 마나 스톤은 그저 빛나는 돌멩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걸 그냥 버릴 수 없는 일이지.’
지금 시대에서는 값어치가 없다고 할지라도 눈앞의 재보를 그냥 버리고 갈 상호가 아니었다.
게이트가 파괴되고 고블린들도 모두 전멸했다. 이제 더 이상 금월산 부근엔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었다.
목적한 바를 이뤘으니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상호는 그럴 수 없었다.
“흑흑!”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율을 향해 상호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를 이렇게 잃게 되어 참으로 유감이다.”
“······.”
“애초에 내가 이번 일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지휘를 맡은 자로서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미안할 따름이다.”
상호의 말에 고개를 떨어뜨렸던 율이 시선을 위로 하여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눈가엔 채 말라붙지 않은 눈물 자국이 있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율은 말했다.
“나리께서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버지는···무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이리 돌아가신 것이니 말이에요.”
“······.”
“분명 아버지도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셨으니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믿어요.”
율의 말에 상호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남윤수는 나라에 공을 세우기 위해 상호에게 협력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구국충정의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닌 가문의 이름을 떨치겠다는 개인적인 영달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그런 만큼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죽은 것은 남윤수 본인이 원하지 않은 결과였을 것이다.
하나, 이러한 속사정을 율에게 밝혀봤자 더 마음만 아프게 할 따름이다.
해서 상호는 이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분명 편히 눈을 감았을 거야.”
“네.”
상호가 율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전장 정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또 한 번 놀랄 일이 벌어졌다.
“허억! 이게 뭐여!”
“맙소사!”
곳곳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의 시체가 갑자기 미라처럼 변하더니 이내 잿더미가 되었다. 그리고 이내 산에서 부는 바람에 의하여 산 전체로 흩뿌려져 갔다.
여기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일일지 모르나 상호에겐 이것은 늘 봐왔던 일이다.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몬스터는 죽음을 맞게 되면 그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재가 되어버린다.
물론 그것은 이쪽 세계의 물질이 아닌 갑옷이나 무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마력이 남겨진 신체 부위나 특수한 무구 정도인데 이것들은 헌터들의 장비를 제작하거나 바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부분도 차차 설명해줘야겠군.’
금방 적응한 현대 사람들과 다르게 이쪽 시대의 사람이 이러한 것에 적응하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이런 소소한 소동이 있었지만 곧 정리가 끝나고 죽은 자들의 시신이 차례대로 산 아래로 내려졌다.
아비의 시신도 다른 사람들의 손에 운반되는 것을 망연한 눈빛으로 바라본 율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고블린 로드의 시체에 꽂인 자신의 검 대신 옆에 떨어진 아비의 검을 챙기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상호의 앞으로 와서 두 무릎을 꿇었다.
“에?”
상호는 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율은 지면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낭, 낭자?”
목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옛날 식 말투로 어색하게 말을 거는 상호를 향해 율이 진지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리께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아버지가 못 다한 일을 저라도 대신해서 마저 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 벌어지고 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리께서 나섰다고 전 날, 저희 집에서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전 나리를 따라 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
이러한 율의 말에 상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 율의 눈빛엔 결연함이 가득하였다. 단순히 치기에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눈빛이었다.
* * *
“고생했네.”
“아닙니다, 저하.”
토벌이 끝나고 이천에 돌아온 상호는 곧장 광해군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광해군은 진중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이번 일을 겪으면서 크게 깨달았네. 국토를 침략한 왜적을 무찌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백성들을 위협하는 저 요괴를 한 시라도 빨리 토벌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저하의 말이 옳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직접 그것들을 토벌하고 싶지만 전에 자네가 말한 대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대신 뒤에서 모든 협력을 해주겠네. 그러니 이 땅에 나타난 모든 요괴들을 반드시 소탕해 주게나.”
“세자 저하의 말씀, 기필코 따르겠습니다.”
상호는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면서 힘껏 대답했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본 광해군이이어서 말했다.
“앞으로 활동하는데 필요할 것 같아 준비했네.”
“이것은?”
상호는 말 다섯 마리가 그려진 마패와 한 장의 서찰을 보고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 그에게 광해군이 친절히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이것은 내 친필로 쓴 서찰이네. 국난을 이겨내기 위해 나를 돕는 자이니 협력을 아끼지 말라는 내용을 적었네.”
“아, 그런 것이군요.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하의 배려,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 한 말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패와 광해군의 서찰만 있다면 조선 팔도 어디를 가도 불편함 없이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고 향후 계획에 필요한 의병 설득이나 관군의 지원도 이끌어낼 수 있기에 상호에게 있어서 이것은 큰 선물이었다.
여기에 광해군이 주는 선물은 또 있었다.
“그리고 홀로 전쟁 중인 조선 땅에 활동하기는 힘들 터, 여기 있는 임 무관에게 자네의 호위를 맡아줄 것을 이야기해두었네.”
“임 무관님이 말입니까?”
“성심성의껏 보필하라고 일러두었으니 염려할 것은 없네.”
“아, 네에.”
솔직히 내금위 소속으로 뛰어난 무예를 가진 임충이 함께 한다면 나쁠 것은 없었다.
다만 함께 하기엔 부담이 되는 인물임이 분명해 상호의 반응은 마냥 좋지만 않았다.
그렇지만 광해군이 직접 보인 성의이니 제안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광해군은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했다.
“조만간 의주에 계신 아바마마께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야. 그러니 조정에 나설 때까지만 내 이름을 빌려 우선 활동하게나.”
“아, 예.”
상호는 광해군의 말에 애매하게 대답했다.
현대인으로서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아는 바이기에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광해군은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상호를 바라보았다.
이후 상호는 관청의 방 하나를 얻어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곳으로 안내를 해준 것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노내관이었다.
“······.”
“흠흠!”
자기도 찔리긴 찔리는 모양인지 노내관은 괜히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잠시 한심스레 바라본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지난 일을 갖고 저 양반과 다퉈봤자 나만 손해니 그만두자.’
어차피 결과적으로 원하던 결과를 얻었기에 상호는 호랑이 가죽에 대해 말하는 것을 관뒀다.
혼자가 되고 방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후우, 지친다.”
벌써 과거에 와서 지낸 지도 며칠이 흘렀다.
조금씩 이 시대에 적응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서 빨리 원래 시대로 돌아가고플 따름이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어려운 일들이 아직 많음을 알기에 마음의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과 달리, 연달아 큰일을 치른 상호의 눈꺼풀은 눕자마자 곧바로 감겼고 곧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