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3화 (13/127)

三장. 고블린을 격퇴하라 (2)

상호가 없는 사이에 마을을 공격했던 고블린들이 물러나고, 살아남은 이들이 농성하던 기와집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고블린들의 습격이 워낙 창졸간에 벌어졌기 때문에 희생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특히 토벌에 나섰다가 부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었던 자들은 모두 피신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결국 살아남은 것은 세자 광해군과 그의 호위 무사, 그리고 몇 명의 군졸이 전부였다.

하마터면 나라의 국본인 세자가 이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다.

그 만큼 광해군이 가지는 감사의 마음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대들이 제 때에 온 덕에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맙구나.”

“황공합니다, 세자 저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광해군의 말에 상호와 남윤수는 엎드린 상태로 대답했다.

상호는 대답한 뒤에 슬쩍 고개를 들어 광해군을 보았다.

‘휴,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네. 만약 광해군이 잘못 되었다면 내 계획은 물론이고 이 조선의 미래도 끝장이었을 거야.’

상호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광해군은 곧 어두운 표정으로 담 너머 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부상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로다.”

“저하.”

“이번 일이 끝나고 차후에 그들의 묘를 정상을 다하여 만들어 주게.”

“알겠습니다.”

광해군의 말에 임충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잠시 뒤, 마을 어귀에 두고 왔던 인원들이 도착했다.

상호는 달아난 고블린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그 결과가 궁금했다.

“달아난 놈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놈들을 모두 처치했어요.”

율이 대표로 말했다.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그냥 보내지 않고 모두 처치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근데 아까 지휘를 맡겼던 자가 아니라 율이 대답한 것일까.

그 이유는 곧 고블린을 퇴치할 때의 상황을 설명 듣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달아난 십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상호가 예상한 대로 민병들이 매복한 지점을 통과하려 했다.

하지만 상호가 지휘를 맡긴 자는 이 좋은 기회에서 덜컥 겁을 먹고 공격을 주저했다. 그 바람에 다른 민병들도 공격을 망설였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율이 활을 쏘고 사람들을 독려해 달아나던 고블린들을 상대로 싸움을 속행케 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상호는 새삼 율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무예뿐만이 아니라 강단도 대단한 처자일세.’

이리 생각하고는 상호는 주변 상황을 살폈다.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당장 앞일이 걱정이었다.

특히, 광해군의 안전이 염려스러웠다.

하여 상호는 광해군에게 이런 간언을 하였다.

“저하의 안전이 염려되오니 이후에 남은 잔당을 토벌하는 것은 소인들에게 맡기고 어서 이천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는 없다. 토벌의 장수가 어찌 병사들을 놔두고 혼자 피한단 말인가.”

예상대로 광해군은 상호의 제안을 완강하게 거절했다.

솔직히 있어봤자 방해만 된다. 차마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저하의 깊은 뜻은 알겠지만 만에 하나 저하의 몸에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꾸려진 분조가 제 기능하지 못할 일이 우려되니 역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으음.”

상호의 말에 광해군은 결국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시신을 수습하고 불탄 집의 남은 불씨를 정리했다.

당장 오늘 토벌을 갈 상황이 아니었고 또 광해군도 바로 이천으로 돌아갈 수 없어 하루를 더 이곳에서 묵기로 했다.

일단 고블린들을 전멸시켰지만 그래도 또 있을 습격에 대비해 교대로 경비를 세웠다.

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상호는 또다시 광해군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자네가 말한 그 신비한 보옥인가.”

“그렇사옵니다.”

광해군은 상호가 앞에 내민 몬스터 코어를 흥미 가득한 눈으로 살펴보았다.

광해군은 보옥을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며 상호에게 물었다.

“정녕 이것으로 전에 없던 능력이 생긴다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말로 듣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믿기 어렵구나.”

“그러하시면 한 번 눈으로 직접 보시겠습니까?”

“호오! 그것 좋구나.”

상호는 광해군의 반응을 보고 슬쩍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원래 처음엔 이것을 자기 자신에게 쓸까 했다. 하지만 광해군에게 제대로 확신을 심어주고 그의 신임을 얻기 위해 마음을 바꿨다.

광해군은 몬스터 코어를 만지작거리며 상당히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문 쪽에 기립해 있던 임충이 불쑥 말했다.

“저하,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특한 것을 어찌 직접 시험해보신다고 하십니까. 부디 옥체를 보존하소서.”

“허면 임 무관이 대신 시험해보시지요.”

불쑥 끼어든 상호의 말에 입충의 두터운 눈썹이 크게 휘어졌다.

“이것을 받으시죠.”

“······.”

차마 뱉은 말이 있기에 상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임충이었다.

임충은 어색한 손길로 몬스터 코어를 받아 들었다.

“이 보옥에 깃든 힘을 끌어내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보옥을 이마에 대고 강하게 원하는 것을 상상하십시오.”

“상상하라고?”

“누구보다 강한 힘을 원한다면 자신이 그러한 힘을 내는 상상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고 싶다고 하면 그러한 모습을 상상하구요.”

“으음.”

확실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은 것인지, 아니면 요망한 물건을 자신에게 닿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임충은 자꾸 주저하며 몬스터 코어를 이마 한가운데에 가져가지 못했다.

그러나 광해군을 위해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마침내 상호가 시킨 대로 따라하였다.

“자, 집중하는 겁니다.”

“크흠.”

상호의 말에 임충은 헛기침을 공연히 하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눈을 감고 집중하던 그의 이마 부근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그 광경을 본 광해군은 자신도 모르게 앉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빛은 10여 초간 지속되다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몬스터 코어도 붉은색에서 투명한 색으로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코어의 힘이 확실히 전달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금 눈을 뜬 임충은 뭔가 느낀 듯 굳은 얼굴로 일어났다.

안마당 한쪽에 꽤 무거워 보이는 바윗돌을 향해 간 그는 그것을 품에 안았다.

“허업!”

놀랍게도 임충이 힘을 쓰자 바윗돌이 살짝 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느낀 것입니까.”

뒤따라 나온 상호가 말을 건네자 임충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래도 임충이 원한 힘은 기존보다 더 강한 완력이었던 모양이다.

“정말로 달라진 것 같은가?”

“예, 저하. 이전까진 없던 힘이 샘솟는 것이 느껴지옵니다.”

광해군의 말에 임충은 공손히 대답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불안해했던 그였지만 막상 괴력이 생겨나니 내심 흥분되는지 목소리 톤이 전보다 고양되어 있었다.

눈앞에서 상호가 한 얘기가 사실임을 알게 된 광해군이 기쁨을 담아 말했다.

“이러한 힘을 열 명, 아니, 백 명에게 줄 수 있다면 왜적을 몰아내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군.”

“······.”

상호는 여기에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몬스터 코어의 힘을 지속적으로 얻어낸다면 항우나 장비 같은 일기당천의 장수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임진왜란’의 판세를 그것만으로 뒤집을 수 있다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회의적일 것이다.

지금 시대보다 더 옛날이라면 모를까, 전술이라는 게 발달되고 아울러 무기도 슬슬 냉병기에서 화약 무기로 바뀌는 이 시대에 아무리 개인의 무력이 뛰어나도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뭐 이것도 대량의 능력자를 양성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로써 상호 말고 몬스터 코어의 힘을 취한 사람이 지금 조선 시대에 최초로 생긴 셈이다.

미래의 측정 기준으로 따지면 고작 1단계에 불과한 힘이지만 무예가 뛰어난 임충한테는 그야말로 범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고, 광해군은 호위 무사들을 대동하고 이천으로 돌아갔다.

다만 한 사람만은 거기서 제외되었다.

“내 대신 토벌을 반드시 성공시키고 돌아오게나.”

“예, 저하.”

어젯밤에 몬스터 코어의 은총을 받은 임충은 광해군의 명령에 따라 토벌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금월산이라 불리는 산에 도착했지만 상호는 섣부르게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오랜 사냥 경험이 있는 사냥꾼들에게 정찰을 맡겨 산 위에 있는 고블린들의 배치를 먼저 확인했다.

한 1시간이 흘렀을까.

“정찰에 나갔던 자가 돌아왔네.”

“그렇습니까?”

돌아온 사냥꾼은 자신이 보고 온 것을 고했다.

“여기 계신 분 말대로 요괴들이 산으로 오르는 중요 길목마다 은신하고 있었습니다.”

“숫자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자세하게는 세지 못했지만 얼추 백 마리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배치는 어디어디였습니까.”

상호는 여러 가지를 더 물어보고 정보를 모아 가다듬었다.

어제의 습격에 나갔던 개체들이 모두 전멸한 탓에 산에 남은 고블린의 숫자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분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지금 있는 인원만으로도 해볼 만 했다.

“그럼 작전을 설명하죠.”

상호는 임충과 남윤수, 그리고 모은 인원 중 전날 있었던 싸움에서 그나마 용기를 내서 싸웠다는 세 명을 선택해 그들에게 분대장을 시켰다.

본래 게이트를 거점으로 다수의 몬스터가 배치되어 있는 곳을 공략하는 ‘몬스터 레이드’를 할 때는 ‘커맨더’가 총괄 리더를 맡고 그 밑으로 서브 리더들을 둔다.

서브 리더들은 총괄 리더인 커맨더가 내리는 지시에 따라 각각 역할에 따라 소규모 조로 나눠진 헌터들을 지휘한다.

그렇게 유기적인 지휘 체계가 갖춰진 헌터 집단은 자신들보다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상호는 분대를 조직하고 중간에 분대장들을 둔 것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은 산 동쪽 기슭을 따라 올라갈 겁니다. 선두엔 저와 일 분대가 앞장설 것이니 각 분대는 일정 간격으로 뒤를 따라 와주십시오. 그리고 고블린 집단과 조우하면 먼저 총통과 비천진천뢰를 이용해 적의 기세를 꺾은 후에 돌격하여 적을 섬멸하는 식으로 우선적으로 갈 것입니다.”

상호가 이끄는 일 분대나 남윤수가 이끄는 이 분대는 돌격을 전담하는 분대로 무예를 조금이라도 익힌 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총통과 화약을 운반하는 분대, 왜군이 썼던 창과 같은 길이가 긴 병기를 들어 유사시엔 적을 막는 목책과도 같은 역할을 할 분대 같이 분대 편성도 역할에 따라 정해졌다.

시간이 많이 없어 예비 훈련을 간략하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편성을 꼼꼼히 하고 준비도 철저히 하여 드디어 산의 동쪽 기슭을 통해 게이트를 찾아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풀을 낫으로 치면서 길을 만들고 산 위를 향해 얼마나 올라갔을까.

“······.”

“으욱!”

무덤덤한 상호와 달리 일부 사람들이 헛구역질을 해댄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산 입구에 걸려 있는 사슴의 시체 때문이었다.

사슴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었다. 이것은 고블린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는 증표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영역을 지키는 고블린을 만날 수 있었다.

“다들 몸을 숙여요.”

상호의 말에 다들 수풀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시야에 포착된 고블린의 숫자는 대략 스무 마리 정도였다.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혔다.

다들 소리 죽여 기다시피 지면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돌격하기 적합한 거리까지 다들 도달하였다.

‘지금은 화포를 쓰기 보단 화살을 쏘고 돌격하는 편이 좋겠어.’

하여 이른 아침부터 훈련을 하면서 틈틈이 가르친 수신호를 통해 뒤에 있는 인원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다.

그런 다음에 천천히 소리를 내지 않고 각궁에 화살을 쟀다.

그것을 보고 뒤에서도 몇 명이 활을 잡고 화살을 장전했다.

‘빗 맞추지 말자.’

대장으로서 못 맞추면 큰 창피라는 생각에 상호는 ‘매의 눈’을 활성화하며 신중하게 고블린 중 하나를 표적으로 삼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손가락이 부르틀 정도로 활 연습을 하고 왔다.

마침내 상호의 손이 움직이고 화살이 표적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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