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2화 (12/127)

三장. 고블린을 격퇴하라 (1)

길을 서둘렀지만 조선의 도로 형편은 그야말로 최악이기에 우마차에 잔뜩 짐을 실고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별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상호는 중얼거렸다.

최대한 서두른다고 했지만 벌써 만 40시간이 흘렀다. 사악하고 간교한 고블린들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광해군이 지금 있는 마을이 안전하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마을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해서 나무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발견한 임충은 말도 없이 그대로 말을 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를 본 상호는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적의 숫자나 상황을 확인도 않고 그냥 나가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무턱대고 가서 싸울 수는 없었다.

상호는 일단 마차에 실어둔 무기를 챙기게 하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시를 내리는 것에만 따라주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무단으로 도주를 한다면 군법에 따라 즉결처분할 것입니다.”

“꿀꺽.”

실전이 코앞이다 보니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과연 얼마나 제 몫을 해줄지 의심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지금으로선 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조용히 날 따라와요.”

상호는 앞장서서 지원군으로 나서 이곳에 온 사람들을 통솔해 이동했다.

산을 끼고 이어진 길을 돌아서 이동하니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불타는 가옥 사이로 사람들의 주검이 보이고 있었다.

“카칵!”

나뭇가지로 만든 담을 밟아 무너뜨리면서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뒤따라온 민병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으니 이런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광해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을을 습격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상호는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한 다음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여러분은 저쪽 마을 어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마을 밖으로 튀어나오는 고블린을 발견하면 일제히 공격해 주십시오.”

“우리가 마을로 쳐들어가 세자 저하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나마 다른 사람에 비해 침착한 모습으로 남윤수가 말해왔다.

이에 상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세자 저하 쪽은 아까 간 임 무관이 있고 또 호위병들이 있으니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퇴로를 막아서 놈들을 한 마리도 못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으음.”

“이쪽의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상호의 말에 지명 받은 남윤수는 이렇게 반문했다.

“내게 맡기고 자넨 어떻게 하려고?”

“아무리 그래도 저 고블린들을 잘 아는 제가 가야 안쪽에서 반격의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상호는 혼자서 임충을 따라 광해군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이때, 갓을 쓴 자가 겁먹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만, 만약 그놈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오면 어떻게 하나?”

“상대하기 벅찰 정도라고 판단되면 그들이 그냥 물러나게끔 내버려 둬도 됩니다. 단, 여기서 도주하거나 하면 세자 저하께 고해 이 죄를 물을 것이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해주니 그제야 따라온 민병들은 조금이나마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남윤수는 왼손에 든 검을 반쯤 뽑아 들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가야겠네.”

“······아까 제가 한 말 잊으셨습니까. 여기 일도 중요······.”

“내 검 솜씨라면 저 불타는 마을을 지나기가 용이하지 않겠네.”

“후우, 알겠습니다.”

딱 봐도 공명심 때문에 이러는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말싸움으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기에 상호는 남윤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남윤수를 대신해 민병들을 이끌 사람을 선정한 후에 상호는 비로소 움직였다.

“가죠.”

상호는 손에 각궁을 쥐고 앞장을 섰다.

원래 ‘매의 눈’ 특성을 살려 정밀 사격을 장기로 삼으며 소총을 주무기로 다루던 그이지만, 사용하기 불편한 조총을 쓰는 것보단 차라리 손에 익진 않아도 활을 잡은 것이다.

아직 불씨가 남은 불탄 집 사이를 지나 움직인 상호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앞쪽에 고블린 3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에 잡을 수 있을까.’

거리는 약 16에서 17미터 정도.

처음 쏴보는 활을 가지고 단번에 숨통을 끊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기에 심호흡을 가다듬고 예전 TV에서 봤던 대로 활을 잡아보았다.

팅!

시위에서 떠난 화살이 그대로 고블린들 사이로 휭 지나가 버린다.

‘칫! 이렇게 형편없이 빗나가다니.’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어이없게 빗나갈 줄 몰랐던 상호의 표정은 한순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구겨졌다.

“캬아앗!”

상호의 존재를 인지한 고블린들이 돌이나 뼈로 만든 단검을 들고 달려왔다.

이것을 본 상호는 급히 화살을 다시 시위에 걸려고 했지만 동작이 서툴러 뽑아 든 화살을 땅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 틈에 바로 코앞까지 온 고블린들이 단검을 휘둘렀다.

“비키게.”

상호를 강하게 옆으로 밀쳐내면서 남윤수가 검을 뽑았다.

아무래도 현대인에 비해 신장이 작고 마른 체구인 게 불안했지만 그것은 상호의 기우에 불과했다.

서걱.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으로 베어져 들어간 검에 의해 고블린의 상체에 큰 상처가 생겨났다.

고블린은 그 자리에서 일격에 절명했고 바닥에 쓰러졌다.

“휘유.”

상호는 이러한 남윤수의 솜씨에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낮게 불렀다.

헌터들 중에서 검을 쓰는 자는 꽤 많은 편이라 자연스레 여러 종류의 검술을 보았지만 지금처럼 깔끔하고 절도 있는 검술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검사로서 남윤수는 확실히 믿을 수 있었다.

“어서 가세.”

“아, 네.”

입장이 역전되어 남윤수가 앞에 서고 상호가 뒤따랐다.

이윽고 광해군이 잠시 머물던 기와집이 있는 곳에 도착한 상호의 눈에 보인 것은 담을 두고 격전을 펼치는 양측이었다.

“담을 넘어오지 못하게 해라!”

시체를 발판 삼아 담을 넘으려는 고블린들을 창으로 쓰러뜨리는 군졸들의 모습에 이어, 대문에서 피로 범벅되어 싸우는 임충과 다른 호위 무사들을 볼 수 있었다.

세자인 광해군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분전하는 호위 무사들의 검에 연신 고블린들의 목이 잘려 잘린 머리통이 돌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지만 곧 새로운 고블린들이 덤벼들어 대문 너머로 우격다짐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것을 본 상호는 활을 굳게 잡고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야말로!”

상호는 ‘매의 눈’ 능력을 활성화하며 시위를 힘껏 당겼다.

담장과 대문을 노리고 몰려 있는 고블린들이 마치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이번에는 아까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결의하며 손가락에 걸었던 시위를 놨다.

쉬유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이번엔 정확히 표적으로 삼은 고블린에게 명중했다.

“켁, 켁!”

목 뒷부분에 꽂힌 화살로 인해 고블린 하나가 숨을 못 쉬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다른 고블린들은 앞을 공격하느라 정신이 팔려 동료의 죽음은 알지도 못했다.

“좋았어.”

자신감을 얻은 상호는 연거푸 활 시위를 당겼다.

변변찮은 방어구 하나 없는 고블린들은 등짝에 화살을 맞고 계속해서 쓰려졌다.

이렇게 연달아 동료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야 바로소 다른 고블린들은 상황 파악을 했다.

곧 뒤편에 자리하고 있던 고블린들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화살을 쏜 당사자를 찾았다.

“캬아앗!”

개중 한 놈이 정확하게 상호가 있는 쪽을 보고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일부의 고블린들이 상호를 향해 내달려오기 시작했다.

“치잇!”

상호는 한 발이라도 더 화살을 쏘기 위해 반복적으로 행동을 취했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화살은 조준이 형편없었지만 대신 힘은 실려 있어 고블린을 쓰러뜨리기엔 충분했다.

이러한 화살에 다시금 두세 마리가 땅바닥에 쓰러졌지만 다른 놈들은 코앞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오거라, 이 요괴들아!”

아까의 첫 교전으로 고블린에 대한 미지의 공포가 줄어든 남윤수는 호기롭게 외치며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상대했다.

우측 횡 베기로 선두로 온 고블린의 목을 치고, 이어서 몸을 뒤로 반 바퀴 돌리며 투구 깨기로서 허리 정도 오는 고블린 머리를 강타했다.

“으허업!”

택견의 몸동작을 연상케 하는 한 발 높이뛰기를 선보이며 고블린 두 마리의 어깨 위로 넘어간 다음 크게 몸을 돌리며 횡으로 길게 검을 뿌린다.

남윤수의 칼에 베인 고블린들이 쓰러지는 가운데 상호 역시 남아 있는 화살을 다 쏘고 허리에 찬 환도를 뽑았다.

“근접전은 장기가 아니지만······.”

상호는 헌터가 되고나서 처음부터 총화기를 주로 다루는 건너(Gunner)이기에 딱히 레이드에서 근접전을 펼칠 일은 드문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그럴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론 아주 불리한 상황에 놓여 생존하기 위해 덤벼드는 몬스터와 육탄전을 치를 때도 있었다.

이런 까닭에 상호는 헌터로서 짬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눈으로 익힌 다른 헌터들의 싸움법을 통해 나름대로 냉병기를 다루는 기술이나 회피 기술을 터득해두었다.

“덤벼!”

“캬악!”

상호의 도발에 제대로 걸려든 고블린에 정면에 달려왔다.

서컥!

상호는 상대의 체격을 고려해 허리를 살짝 숙이고 옆으로 검을 내질러 고블린의 옆구리를 깊숙이 베고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상호를 향해 다른 고블린이 흉측한 얼굴을 들이밀며 동시에 뼈를 뾰족하게 깎은 단검을 앞으로 찔러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앗 하고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의 눈’을 통해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조차도 세세하게 읽을 수 있고, 그 눈에 맞춰 보통 사람 이상으로 움직임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 것과 다름없다.

“어림없지!”

힘껏 휘두른 칼날에 고블린의 머리가 날아간다.

푸화학!

근처에서 남윤수도 자신을 향해 달려온 고블린들을 연거푸 쓰러뜨렸다.

두 사람의 활약에 고블린들이 분산되자 기와집 내부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기회다! 모두 날 따르라!”

“와아아!”

임충이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가 계단 위에 있는 고블린들을 잇따라 베고 아래로 내려가니 다른 자들도 사기충천하여 뒤를 따랐다.

그러자 대문 정면에 있던 고블린들이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다.

“캬아아앗!”

하지만 날카로운 울음이 그 혼란을 잠재웠다.

아깐 미처 보지 못했지만 전에 산에서 본 바 있는 고블린 전사가 무리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을 잡지 않으면 고블린들이 달아나지 않는다.’

고블린 전사를 본 상호는 망설이지 않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타핫!”

기합과 함께 내려치기를 상호가 펼치자 고블린 전사는 본능적으로 두꺼운 칼을 머리 위로 들어 그것을 막았다.

여기까지의 흐름은 좋다.

상호는 입가 끝을 말아 올리며 별안간 왼발로 상대의 명치를 강하게 찼다.

“카아앗!”

비명을 토하면서 뒤로 넘어지는 고블린 전사의 칼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상호는 검을 든 오른팔을 뒤로 뺐다가 순간적으로 강하게 앞으로 뻗었다.

정확히 가죽으로 된 갑옷을 뚫고 가슴 한가운데를 찌른 칼날. 그것을 쥔 상호는 체중을 실어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 전사를 압박했다.

왈칵하며 피가 분수처럼 솟더니 고블린 전사의 몸이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후우.”

상호는 검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폈다.

역시나 고블린들은 대장이 죽자 바로 겁을 먹고 마을 어귀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 정도 숫자면 충분히 저쪽에 남겨둔 인원들만으로 제압할 수 있겠지.’

뭐 성공 못 해도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 상호는 쓰러진 고블린 전사의 시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럼 승리의 전리품을 회수해 볼까.”

상호는 가슴에 박힌 검을 빼낸 다음, 갖고 있던 단검으로 상처를 벌려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다.

잠시 뒤, 심장이 있는 부분 옆으로 붉은색의 작은 구슬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찾았다.”

바로 이 구슬이 놀라운 힘을 부여해 주는 몬스터 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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