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0화 (10/127)

二장. 광해군을 구하다. (4)

광해군의 사람이 된 상호는 곧바로 하나의 일을 맡게 되었다.

그 일이란 바로 오늘 실패한 토벌 작전이었다.

“이대로 아무 것도 못해보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자네가 힘이 되어 준다면 그 요괴들을 토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만.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아 그것은······.”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니 난감했다.

상대가 몬스터 중 가장 약체인 고블린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그들을 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이것을 잘 아는 상호는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전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있는 병력과 무기로는 그들을 무찌를 수 없습니다, 세자 저하.”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송구합니다.”

지금 광해군의 마음을 더 완벽하게 사로잡으려면 거짓말이라도 입에 발린 말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나, 괜한 자신감으로 일을 키우기엔 현재 이곳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먼저 토벌대 중 다수가 부상을 입었고 가지고 온 무기도 기껏해야 창과 활이 전부였다.

이래서는 토벌은 고사하고 만에 하나 고블린들이 마을로 쳐들어올 경우, 그들을 막을 지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방법이 없다면 할 수 없지. 그렇지 않아도 본인의 지휘 아래 많은 병사들을 잃고 다치게 했으니 말이네.”

이리 말하는 광해군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의주로 피난을 떠난 왕을 대신해 분조를 이끌고 이 어려운 정국을 타파하는 역할을 받은 광해군은 사실 사정이 썩 좋지 못했다.

우선 민심이 크게 등을 돌렸고, 조정의 통제에 따라야 할 지방 군청들은 사분오열되어 있다.

게다가 가장 힘이 되어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선조는 분조를 이끄는 광해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으며 못한 점만 조목조목 따져 그것을 꾸짖기만 했다.

그러니 이번 토벌에 실패하는 것에 광해군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상호는 이러한 광해군의 반응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광해군이 이번 일을 성공하는 편이 나로서도 좋긴 하지. 아까는 안 된다고 말은 했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어디까지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힘들다는 것이지 아주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상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만약 토벌 실패가 부담스럽다면 조금 시간을 걸리겠지만 이러는 게 어떻겠습니까?”

“뭔가 좋은 방안이 있는가?”

“당장 이곳에 있는 토벌군만으로는 다시 산에 있는 요괴를 섬멸하기 힘듭니다. 일단 저하께서는 이곳에 남으셔서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시고 그 사이에 사람을 보내 이천에서 지원군과 도움이 될 만한 병기를 확보하여 다시 한 번 토벌을 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천에 남아있는 병력은 거의 없네.”

애초 광해군이 이천까지 올 때 동행한 것은 내금위 소속의 무관 과 조정 대신 몇 명이 전부였다.

각지의 군 지휘관에 통문을 보내 병사를 모으고자 했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천에 있던 병력 대다수를 데리고 왔으니 당장 충분한 병력을 모으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했다.

‘휴, 명색이 세자가 제대로 병력 하나 건사하지 못하다니.’

임란 초기에 조선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다른 쪽으로 생각을 해봐야 했다.

‘그러면 일반 백성들 중에서 싸울 수 있는 자들을 끌어 모으는 수밖에 없나.’

머릿수를 채우는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았다.

그리고 뭣보다 상호가 광해군에게 말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지도 몰랐다.

‘어차피 정규군이 아닌 의병을 이용할 생각이었잖아. 이번 기회에 그것이 정말 괜찮은 생각인지 검증해 볼 수 있을 지도 몰라.’

상호가 굳이 정규군이 아닌 의병을 헌터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 장군이 해상에서 적을 막아 보급로를 차단하고, 뜻 있는 이들이 나서서 의병을 일으켜 점령지 내에서 게릴라전을 펼쳐 육지에서의 보급로를 막은 덕에, 평양성까지 점령했던 왜군의 1진인 고니시의 군대가 더 이상 진격하지 못했던 것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 사람이라도 다 아는 바이다.

그만큼 임진왜란 초기가 의병의 활약이 컸고 또 가장 활발하던 때이다.

솔직히 말해 조정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정규군은 상호가 마음대로 부리기도 어려울뿐더러, 왜군을 상대하는 것만으로 벅찬 그들에게 몬스터 사냥을 요구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의병이라면 아직은 조선 조정의 명령을 직접 받지 않는다는 장점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자체적으로 세력을 일으켰기에 굳이 따로 지역을 나누지 않아도 해당 지역의 몬스터 토벌을 맡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의병을 몬스터 헌터로 만드는 게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옆에서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임 무관이 불쑥 말을 꺼냈다.

“소인이 알기론 지금 저하의 손발이 되어 왜적을 무찌르겠다고 이천 땅에 모여든 백성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그들을 모은다면 충분히 이자가 말한 지원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런 백성들이 있단 말인가?”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임 무관은 상호가 바라는 것을 대신 말해주었다.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상호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일반 백성이라도 숫자가 갖춰지면 토벌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일반 백성들을 이런 일에 끼게 하고 싶지 않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면 할 수 없겠지. 임 무관, 자네가 여기 있는 선인과 함께 다녀오게.”

“이곳엔 다른 내금위 호위들도 있고 병사들도 있으니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것일세.”

“···알겠습니다, 저하.”

마지못해 대답하는 호위 무사에서 상호 쪽으로 시선을 돌린 광해군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의 이름도 묻지 못했군.”

“이상호라고 합니다.”

“이씨인가. 선계에도 본인과 같은 성씨가 있다니 신기하구나.”

“하, 하하. 우연의 일치이겠지요.”

상호는 광해군의 말에 땀을 살짝 흘리면서 대충 얼버무리는 말을 하였다.

상호가 이씨이긴 하지만 경주 이씨여서 왕족의 본관인 전주 이씨와는 본이 완전히 틀렸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따지지 않고 광해군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소개를 아직 제대로 하지 않았군. 본인은 조선 왕국의 세자인 광해군 이혼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바마마를 대신해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분조를 이끌고 있지.”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위험한 곳까지 오시다니. 정말로 훌륭한 군주의 재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과찬을 하는군.”

상호의 칭찬이 싫지만은 않았는지 광해군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멈추고 광해군이 상호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자네가 내게 한 말 중에 거짓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신뢰한다고 말할 수도 없네.”

“물론 그러실 테죠.”

아무리 신빙성 있는 말이라도 겨우 오늘 초면인데다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하는 자가 하는 말이면 100% 믿기란 사실 어려운 법이다.

이를 잘 알기에 상호는 딱히 광해군의 말이 섭섭하지 않았다.

광해군은 또 말했다.

“이번 토벌을 성공시키고 또한 앞으로 왜적과 요괴를 토벌하여 나라를 평안케 만드는데 힘을 보탠다면 이 조선의 세자로서 난 그대에게 큰 포상을 내릴 것이네.”

“황공합니다, 세자 저하.”

이 시대에서의 포상은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분조를 이끄는 세자의 권한으로 자네를 정9품 효력부위(效力副尉)로 임명하겠네.”

“예?”

설마 지금 시점에서 관직까지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 못한 상호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임 무관의 눈짓을 읽고 황급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뜻밖에도 비록 교지를 받지 못했어도 관직까지 받게 되었다.

이것은 곧 광해군이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바였다.

‘이런 선물까지 받았으니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겠는 걸.’

이천에서 지원군을 모아 고블린을 토벌하는 이번 일을 꼭 성공해리라 마음먹는 상호였다.

* * *

이천에 가서 지원군을 확보하기 위해 상호는 광해군과 만날 때에 동석했던 임충이라는 이름의 무관과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상호가 승마를 못하는 이유로 임충은 그를 뒤에 태우고 직접 말을 몰아 이천으로 귀환했다.

계속 말을 타고 달리니 걸어서 하루 걸렸던 거리를 수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몸은 고생했지만 말이다.

“에구구, 엉덩이야.”

“우선 내가 아는 자부터 만나보러 가지.”

임충은 쉴 시간도 아까운지 관아에 가서 전달한 말을 급히 전하고, 다시 나와서는 상호에게 재촉을 했다.

이곳 사람이 아니고 외지인인지 주막에 찾아간 임충은 사랑방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

“남윤수, 자네 있는가?”

그러자 방 안에서 기척을 느껴지더니 한 남자가 장지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상투를 틀고 흰 옷을 입은 그는 5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임 무관님 아니십니까.”

“잠시 얘기를 하러 왔네.”

서로 아는 사이라더니 남윤수라는 남자는 임충을 반갑게 맞이했다.

“세자 저하께서 절 거둬주신다고 하십니까?”

“흠흠, 일단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어떤가.”

“그러시죠.”

곧 세 사람은 좁고 퀴퀴한 방 안에 앉게 되었다.

“그런 이 젊은 친구는 누구입니까.”

“세자 저하의 명에 따라 중요한 일을 맡은 자이네.”

임충의 말에 남윤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서둘러 말하였다.

“높은 분을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저보다 연배도 높으신데 말을 편하게 하세요.”

“어찌 일개 범부에 불과한 제가 그러겠습니까. 그 말씀 거둬주시지요.”

남윤수의 이러한 태도는 상호에게 새삼 과거 시대의 신분 제도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일단 이것으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남윤수는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려 때부터 ‘해동류’라는 이름의 검술로 유명했던 가문의 일원이다.

과거 선조 중에는 높은 관직에 오른 무장들도 수두룩했지만, 조선이 건국되면서 남윤수의 가문은 한순간에 평민 신분으로 격하되어 버렸다.

윗대의 선조들이 조선을 받들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관직과 먼 생활을 한 까닭에 변변찮은 재산 하나 없이 빈곤하게 살면서도 가문의 검술만큼은 대를 이어오게 했고, 오늘 날에 와서는 남윤수가 그 대를 잇게 되었다.

왜란이 터지고 검술이 필요한 때가 되자 남윤수는 이 전쟁을 그의 가문이 부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검을 챙겨 세자인 광해군이 있는 이곳 이천까지 왔던 것이다.

‘무가의 후예인가.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상호는 그리 생각하며 임충과 남윤수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네.”

“허허허! 드디어 제 검이 왜적 놈들의 목을 딸 날이 왔군요.”

“아니, 자네가 쳐야 할 적은 왜적이 아닐세.”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던 남윤수는 이어진 임충의 말에 순간 망연한 표정을 드러내더니, 곧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제 검이 왜적을 베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베어야 한단 말입니까.”

“요즘 소문이 자자한 요괴라는 것들을 토벌하는 데 자네의 검을 빌려주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요괴라고 했네.”

재차 설명해 주자 남윤수는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향간에 떠도는 낭설을 믿으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남윤수는 요괴의 존재를 불신하는 쪽인 모양이다.

그 반응에 상호가 처음으로 나서서 말했다.

“요괴의 존재는 사실입니다.”

“허어!”

“물론 직접 보지 못했으니 믿기 어려운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세자 저하께선 그 요괴를 토벌하기 위해 토벌대를 이끌고 나가셨다가 불의의 기습을 받아 일단 후퇴를 한 상황이네.”

임충까지 말을 거드니 남윤수의 태도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가 될 때쯤.

“아버님.”

창호지를 바른 문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앳된 여성의 목소리에 남윤수가 한 이름을 불렀다.

“율이냐.”

“예.”

“잠시 들어오거라.”

“알겠습니다.”

바깥에서 답변이 들려오고, 한 여성이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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