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화 (8/127)

二장. 광해군을 구하다 (2)

본래 역사에서는 없었던 조선군 대 몬스터의 싸움은 이름 없는 산에서 시작되었다.

“캬오옷!”

“히익!”

야차처럼 생긴 흉악한 인상으로 달려오는 고블린의 모습에 창을 든 군졸은 다시금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렸다.

비단 한 사람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이러했으니 노도같이 내려오는 고블린을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고블린에게 덮침을 당한 군졸들이 한데 뒤엉켜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이렇게 굴러 떨어지면서 서로 뒤엉킨 와중에도 고블린은 뼈를 깎아 만든 단검으로 자신이 덮친 군졸의 드러난 목 옆 부분을 찔렀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쓰러진 군졸은 바들바들 몸을 떨다 이내 축 늘어졌다.

“킬킬킬!”

자신이 이뤄낸 살인에 만족을 느끼는지 고블린은 신나게 웃으면서 다음 희생양을 찾았다.

군졸들이 차례차례 당하는 가운데, 광해군과 그를 지키는 호위 무사들이 있는 곳에도 고블린들이 급습하였다.

“저하, 위험하옵니다!”

“이놈들!”

붉은색 무복을 입은 호위 무사들은 장검을 뽑아 들고 밑으로 내려오는 고블린들을 맞이했다.

“카아앗!”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뛰어오르는 고블린들!

이 순간, 호위 무사들의 장검이 허공을 가르고 고블린들이 피를 뿌리며 옆으로 쓰러져갔다.

“여긴 우리가 맡겠네.”

“어서 세자 저하를 모시고 내려가게.”

두 명이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막는 사이에 나머지 호위 무사들은 광해군을 보필하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탈하는 그들을 발견하고 고블린 중 몇이 그쪽으로 접근했다.

‘지금 나설까?’

상호는 위쪽에서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타이밍을 가늠해보았다.

마침 광해군과 그를 호위하는 이들은 상호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카카캇!”

“어딜!”

뒤를 따라온 고블린 중 한 마리가 광해군을 노리자, 각진 얼굴에 눈매가 부리부리한 무사가 뛰던 중간에 나무 등치를 발로 차며 방향을 바꾸더니 호선을 그리며 고블린의 목을 단숨에 땄다.

무예가 고강한 호위 무사들이 사방에서 덮쳐오는 고블린들을 상대로 칼 시위를 뽐냈다.

피를 뿌려대며 고블린들이 쓰러져 갔지만 개중 몇 놈은 목숨을 잃는 그 순간에도 악착같이 반격을 가해 호위 무사들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고블린들은 호위 무사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변을 포위하고 틈을 노렸다.

“저하, 제 옆에 꼭 붙어 계십시오.”

“나도 싸우겠네.”

분연히 말하며 장검을 뽑은 광해군은 쇄도해 오는 고블린들을 보았다.

말은 멋지게 했지만 고블린이라는 이형적인 존재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지 검 손잡이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때, 산 위에서 다른 고블린보다 체격이 좋고, 어설프게나마 가죽 갑옷에 쇠로 제련한 검을 든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고블린과는 기세부터가 다른 놈은 바위 위로 올라가 크게 포효했다.

“카오오옷!”

그러자 여기에 호응하듯 살아남은 고블린들도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상호는 놈의 모습을 보고 단박에 그 장체를 알아챘다.

“고블린 전사인가.”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로드(Lord)라 불리는 개체다.

그리고 게이트 등급이 높거나 몬스터 개체 수가 많아질 경우, 로드만큼은 아니더라도 몬스터 코어를 품은 상위 개체가 출현하게 된다.

지금 나타난 고블린 전사가 바로 그러한 상위 개체였다.

“이거 곤란한데··· 상위 개체라면 나라도 쉽지 않은데.”

원래 사용하던 총화기 같은 장비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상호로선 고블린 전사가 꽤 어려운 적이었다.

한 편, 고블린 전사는 산비탈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내려와 호위 무사들을 공격했다.

“이 놈이!”

호위 무사 중 한 명이 다가온 고블린 전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일격은 간단히 고블린 전사가 든 검에 가로막혔다.

푸욱.

고블린 전사는 힘을 줘서 상대를 밀쳐내는 동시에 바로 찌르기를 펼쳐 호위 무사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아닛?”

“윤열아!”

동료의 죽음에 다른 호위 무사들이 격분하며 고블린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몇 차례 공격이 오고가고 한 명이 변칙적인 고블린 전사의 검에 베여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분명 무예 면에서는 호위 무사들이 더 뛰어났지만 작은 체구에서 나온다고 보기엔 믿기지 않는 놀라운 힘, 그리고 야성의 본능에 따라 움직임을 상대로는 싸워본 경험이 없어 시종일관 고블린 전사에게 당하였다.

“제길,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상호는 고블린 전사하고 싸울 각오로 숨었던 곳에서 벌떡 일어나 광해군과 그 수행원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다, 여기! 다들 이쪽으로 어서 오라고!”

“······!”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상호가 소리치니 광해군과 호위 무사들은 순간 그가 있는 쪽을 보았다.

상호는 그들을 향해 팔을 위로 들어 휙휙 저으면서 어서 오라고 재촉했다.

바로 이 때!

“저하!”

급박한 상황이기에 호위 무사 중 한 사람이 광해군의 소매를 무례하게 당겨 그를 옆으로 밀려나게 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방금 전 돌진해 온 고블린 전사가 휘두른 검에 광해군의 목이 동강났을 것이었다.

“으윽.”

“어서 피하십시오, 저하!”

비탈 때문에 약간 아래로 굴렀던 광해군은 곧 몸을 일으켰다.

바로 일어나려했지만 방금 전에 굴렀던 탓에 어지러웠는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광해군을 노리고 막 호위 무사들을 쓰러뜨린 고블린 전사가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상호는 그 상황을 보고 광해군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꽤 가파른 산비탈이었고 나무나 땅에 박힌 바위가 많은 험한 지형이었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오르는 상호의 움직임은 보통 사람의 눈엔 마치 휙휙 날아가는 듯 보였다.

고블린 전사는 광해군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다가 달려오는 상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받아랏!”

상호는 고블린 전사의 가슴을 노리고 낫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낫의 끝이 갑옷을 찢고 고블린의 피부까지 한꺼번에 베어 갈랐다.

“카아악!”

꽤나 깊은 상처에 고블린 전사는 비명을 터트리면서 들고 있던 검을 상호에게 크게 휘둘렀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칼날을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피하고는 다시 낫을 짧게 휘둘러 고블린 전사의 턱을 찍고자 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긁은 상처만 냈을 뿐, 놈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다.

상호는 자신을 경계하는 고블린 전사를 노려보며 뒤에 있는 광해군과 살아남은 호위 무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놈을 내가 맡을 테니깐 어서들 피하라고!”

세자를 향하여 하는 말치곤 무례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누구도 그것을 갖고 뭐라 하지 않았다.

광해군과 호위 무사는 대답도 않고 서둘러 산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를 본 고블린 전사는 그것을 쫓으려 했지만 상호가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가려고 그래, 응?”

“카앗!”

“베테랑을 물로 보지 마라, 이 괴물아!”

살의에 충만하여 덤벼드는 고블린 전사를 상대로 상호가 고함을 터트린다.

무기의 불리함이 있지만 상호에겐 다년간 쌓아올린 경험이 있다.

날아드는 검을 피하면서 거리를 좁힌 상호는 발차기로 자신보다 체격이 작은 고블린 전사의 명치를 걷어찼다.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간 고블린 전사는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굴러갔다.

“캇!”

“카앗!”

상호는 밑으로 굴러간 고블린 전사를 뒤쫓으려 했다. 그러나 근처에 있던 다른 고블린들이 방해를 해왔다.

‘치잇.’

겨우 낫 한 자루만 믿고 싸우기엔 형국이 나빴다.

다행히 광해군 일행은 이미 멀리까지 피신한 뒤였다.

상호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린 다음, 지체할 것 없이 몸을 아래로 날렸다.

“카앗!”

“네놈들의 짧은 다리로 날 따라잡을 것 같으냐!”

뒤쫓는 고블린들을 비웃으며 상호는 거리를 벌려 나갔다.

“카아아앗!”

아까 나뒹굴었던 고블린 전사의 포효가 상호의 귀를 때렸다.

분하지만 지금은 놈에게 등으로 보이고 후퇴해야 할 때였다.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

속으로 그리 다짐하면서 상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산 아래를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 * *

고블린들의 매복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광해군 일행만이 아니었다.

다른 방향으로 수색에 나섰던 토벌대 역시 산에 숨어있던 고블린에게 습격당해 많은 피해를 입고 말았다.

상호의 도움으로 무사히 산을 내려온 광해군은 이러한 상황을 알고 결국 부상자들을 수습하여 출발 전에 하루 머물렀던 마을로 귀환하였다.

“으으······.”

“아악, 내 팔!”

거적에 누워있는 부상자들이 신음과 비명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조금만 참도록 해라.”

“세, 세자 저하.”

손수 격려를 해주는 광해군의 모습에 부상 입은 군졸은 적잖게 감동하였다.

이렇게 광해군은 전투의 피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친 자들을 일일이 둘러보며 상태를 살폈다.

일국의 세자로서 실로 귀감이 될 만한 태도였지만 곁을 지키는 호위 무사는 이를 염려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저하, 많이 지치셨는데 좀 쉬십시오.”

“다친 곳도 없고 난 아직 괜찮네. 그보다 임 무관, 다친 팔을 어서 치료하는 게 어떤가.”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사옵니다.”

팔에 살짝 베인 상처가 있는 호위 무사는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것도 뒤로 미루며 광해군의 곁을 지켰다.

광해군은 피투성이가 되어 맨땅에 누워 있는 군졸들을 보며 탄식하며 말했다.

“후우! 나 때문에 애꿎은 군졸들만 다쳤구나.”

“아니옵니다, 저하. 그 괴물들이 그렇게 치밀하게 매복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저하를 위험한 곳으로 가게 한 소인의 잘못이 크옵니다.”

실질적으로 이번 토벌대의 지휘를 맡았던 무관 남지만은 이렇게 말하며 광해군 앞에서 석고대죄를 하였다.

실제 오늘의 일이 대신들에게 알려지면 하급 무관인 그의 처벌은 피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친히 손을 뻗어 남지만을 직접 일으켜 주면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적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무리해서 토벌을 이끈 본인의 탓이 크다. 따로 이 패배에 대해 처벌을 하지 않을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

“저하!”

광해군의 마음씀씀이에 남지만은 크게 감격해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렇듯 부상자가 많았기에 토벌대는 바로 이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루를 더 마을에서 보내게 되었다.

숙소로 삼은 기와집으로 돌아온 광해군은 피로함에도 불구하고 휴식을 취하기에 앞서 한 사람을 독대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아닙니다, 세자 저하.”

오랫동안 기다렸던 상호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광해군을 향해 정중하게 대답했다.

본래라면 일반 평민이 감히 세자 앞에서 서 있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광해군의 뒤편에 서 있던 임 무관은 눈을 부라리며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광화군은 이러한 것을 크게 개의치 않고 상호에게 친근하게 말했다.

“때마침 자네가 나타나서 도와준 덕에 본인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네.”

“큰 도움도 못 드렸는데 그저 황공할 따름입니다.”

“아닐세. 그 요괴의 강함은 무예에 대해 안목이 부족한 이 몸조차도 한눈에 알아봤네. 그런 괴물을 상대로 홀로 상대하고,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네.”

아낌없는 광해군의 칭찬에 머리를 숙인 상호의 입가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 모든 게 상호가 바라던 대로였다.

이때, 임 무관이 상호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째서 그 때 그 산에 있었던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 말하는 임 무관의 손은 검 손잡이에서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만약 상호가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바로 저 칼이 뽑혀 나와 그의 목을 칠 게 분명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한 순간이다. 상호는 그리 생각하면서 곧 표정 유지를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실은······ 전 이 나라의 사람이 아닙니다.”

“뭐라?”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지금 이 땅에 나타난 요괴들을 상대하기 위해 머나먼 곳에서 왔습니다.”

상호가 이리 말하자 광해군도, 그리고 임 무관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자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상호였기에 이 반응에도 흔들림은 없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상호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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