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6화 (6/127)

一장. 과거로 온 헌터 (5)

깊고 깊은 산속.

상호는 몇 시간째 산을 돌아다니며 대호, 즉 거대한 호랑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여기도 있군.”

웬만큼 노련한 사냥꾼도 찾기 힘든 흔적이었으나, 그의 ‘매의 눈’을 벗어나진 못했다.

헌터로서 호랑이는 아니지만 비슷한 것들을 추적해 본 경험이 있는 상호의 추적은 아주 빼어났고 곧 호랑이가 머무는 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스르릉.

“후, 좋아.”

천천히 등에 찬 나이프를 뽑은 상호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굴 근처로 갔다.

아직 호랑이가 저 굴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신중에 신중을 더하며 걸음을 떼던 찰나.

상호는 불현듯 전신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끼고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

상호의 뺨에 굵은 땀이 흘러내린다.

이제까지 이러한 경험은 몇 번 정도 해봤다.

바로 목숨을 노리는 존재의 시선에 딱 걸렸던 때의 경험이다.

‘젠장, 어디냐.’

기습을 노리다가 역으로 기습에 걸려든 지금, 상호의 온 신경은 사방을 향하였다.

온통 수풀과 나무뿐인 곳에서 숨어 있는 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야성이 발달한 맹수라면 더더욱.

그러나 상호는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매의 눈이 이럴 때만큼은 쓸모 있다니까.’

대충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호는 좀 전부터 수백 배나 발달된 시야로 주변의 풍경을 세세하게 훑었다.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도 볼 수 있는 시야로 수풀 사이에 엎드려 덮칠 기회를 보는 호랑이를 찾아낸 것이다.

‘내 등 뒤라. 조금만 눈치채는 게 늦었다면 바로 놈의 한 끼 밥이 될 뻔한 거잖아.’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긴장으로 굳었던 상호의 입술이 살짝 곡선을 그렸다.

서 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상호.

그런 그를 노리고 드디어 호랑이가 행동에 들어갔다.

파앗!

커허엉!

수풀을 뚫고 튀어나온, 황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놈은 동물원에서나 보던 그런 호랑이와는 근본부터가 틀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놈이 뛰어오를 때 내지른 포효에 실신하거나 그 자리에 오줌을 싸며 주저앉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놈들도 사냥한 상호에겐 귀청 아픈 소리에 불과했다.

‘지금이다!’

뛰어오른 호랑이를 향해 등을 돌리며, 상호는 나이프를 위로 하고 앞으로 뛰었다.

최대한 몸을 낮게 숙이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정확히 위에서 떨어지던 호랑이의 뱃가죽에 나이프를 꽂는 데 성공했다.

“하아아압!”

그 순간! 상호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빠른 움직임으로 단숨에 호랑이의 꼬리 쪽으로 빠져나왔다.

나이프가 호랑이 뱃가죽을 찢어발겼다. 그 안에서 장기와 피가 왈칵 쏟아졌다.

털퍼덕.

육중한 덩치가 힘없이 땅에 처박힌다.

상호의 숨은 약간 거칠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그리고 아래로 비스듬히 내린 나이프에선 방금 묻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됐다!”

목표한 호랑이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노린 호랑이 가죽도 최대한 상하지 않는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것을 가지고 광해군이 있다는 강원도 이천에 가는 것뿐이었다.

****

강원도 이천.

상호는 꼬박 며칠을 걸려 이 땅에 드디어 도착했다.

늘 교통수단에만 의존하다 두 발로 걸어야 했던 상호의 꼴은 꾀죄죄하기 짝이 없었다.

“겨우 도착했구나.”

상호는 지방 관아를 행궁 삼아 지내고 있는 광해군을 만나기 위해 이 먼 길을 왔다.

반드시 그를 만나겠노라 다짐하며 등에 맨 봇짐을 한번 고쳐 매고 걸음을 재촉했다.

“저긴가.”

딱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관청이 눈에 들어왔다.

각양각색의 깃발이 내걸려 있고, 평소라면 포졸들이 경비를 설 정문엔 붉은 도포를 입은 군관들이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후우, 좋아.”

긴장된 마음을 다스리고 상호는 조심스럽게 정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의 접근에 군관 중 한 사람이 매서운 눈빛을 보내왔다.

상호는 그에게 가까이 간 다음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저기, 실례 좀 하겠습니다.”

“뭐냐, 네놈은.”

“이곳에 세자 저하가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지요.”

일부러 사극에서 흔히 쓰이는 말투를 따라하며 말을 건 상호를 군관은 위아래로 슥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군관은 하대조로 말해왔다.

“너 같은 무지렁이가 그것을 알아서 뭐하려고. 썩 물러가거라.”

“그분께 꼭 진상하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그러니 부디 한 번만 들여보내 주십시오.”

“진상품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상호의 말에 군관은 봇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진상품인가.”

“예에.”

“한번 보지.”

“아니, 그게······.”

이곳에서 보따리를 풀자니 상대가 영 못 미더운 상호였다.

그렇게 망설이자 무관의 눈매가 더욱 사나워졌다.

“어서 풀지 않고 뭐하는가?”

“알겠습니다요.”

결국 마지못해 상호는 등에 짊어진 봇짐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봇짐을 풀자 나온 것은 커다란 호랑이의 머리였다.

“호피 아닌가.”

“네, 그렇죠.”

봇짐에 들어 있는 게 호피라는 것이 밝혀지자 말을 주고받은 군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군관들까지 관심을 보였다.

상호는 잽싸게 여기에 온 목적을 밝혔다.

“이 호피를 세자 저하께 진상하려고 먼 길을 왔습니다요.”

“내가 대신 전해주겠네.”

무관의 말에 상호는 속으로 ‘널 믿을 수 있겠냐!’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꼭 세자 저하를 한 번만 가까이서 보고 싶습니다. 부디 청을 들어주십시오.”

“허어! 너 같은 자가 어딜 쉽게 높으신 분을 만나려 드느냐!”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이놈이!”

눈을 부라리며 군관은 상호를 핍박했다.

이러한 상대의 태도에 상호는 순간적으로 울컥해 그냥 계획이고 뭐고 한번 뒤엎어버리고 싶어졌다.

“웬 소란인가.”

이때, 정문 쪽에서 늙고 얄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엔 녹색의 의복을 갖춘, 등이 살짝 구부러진 수염 없는 노인이 서 있었다.

‘오, 저 사람은.’

상호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내관 복장을 한 노인의 등장에 격앙된 마음을 누르고 그쪽을 보았다.

노인은 상호가 있는 쪽을 가는 눈썹을 치켜들면서 보더니 손짓으로 군관을 불러들였다.

군관은 황급히 달려가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급히 말했다.

“송구합니다, 임 내관님. 이자가 진상품이라고 호랑이 가죽을 가져왔는데, 꼭 세자 저하를 뵙고 드려야 한다고 우기는 통에 소리가 커지고 말았습니다.”

“호랑이 가죽이라고?”

귀한 물품을 가지고 왔다는 말에 임 내관이라 불린 내시는 흰 눈썹을 살짝 올리며 상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계단을 내려와 상호의 앞까지 걸어온 다음 말을 꺼냈다.

“그대가 직접 잡은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상호는 허리까지 깊숙이 숙이면서 대답했다.

이런 곳에 있는 노내시라면 십중팔구 광해군과 가까이 접촉하는 사람이 분명할 터였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더욱 행동을 조심한 것이다.

“흐음.”

임 내관은 호랑이 가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상등품이군그래.”

“세자 저하를 위해 발품을 팔아 산속을 찾아다녀 어렵게 잡은 호랑이입니다.”

입술에 침도 안 묻히고 술술 잘도 말하는 상호였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강조한 후에 상호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부디 한 번만 저하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러한 말에 임 내관은 수염도 없는 턱을 손가락으로 쓱 문지르더니 이와 같이 말했다.

“세자 저하께서는 분조를 이끄시느라 바쁘시네. 자네의 갸륵한 마음은 내가 직접 전할 테니 그만 돌아가게.”

“그, 그것은 좀······. 어떻게든 세자 저하의 얼굴을 한번 보려고 어렵게 호랑이를 잡고 이 먼 곳까지 왔는데 그냥 가라니요.”

상호의 항변에 내관은 찌뿌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와 같이 말했다.

“정 그러면 내가 한번 말을 올려보겠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게나.”

“정녕 말씀을 전하시는 것인지요?”

“쯧! 날 뭐로 보는 건가!”

“아, 아닙니다.”

쩔쩔매는 상호를 빤히 보던 내관은 휙 돌아서며 말했다.

“흠흠,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게나.”

“······.”

말을 남기고 호랑이 가죽을 챙겨 가는 내관의 뒷모습을 보는 상호의 얼굴은 잔뜩 찡그러져 있었다.

‘제길, 저것을 믿고 기다려야 하다니.’

자신이 속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기에 시킨 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호였다.

분조를 이끌어 백성들을 위무하라는 선조의 어명을 받고 이곳 이천 땅까지 내려온 광해군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장계를 1차적으로 받아 살피고 있었다.

“세자 전하, 전라남도에서 올라온 장계들이옵니다.”

“어디 보지.”

아직 18살이라는 나이임에도 세자로서의 위엄을 보이는 광해군은 용포가 아닌 두정갑을 입은 채로 업무를 보았다.

그런 그가 앉은 긴 탁자 좌우로 영의정 최흥원을 비롯해 분조에 따라나선 대신들 십여 명이 자리했다.

“다행히 아직까진 전라도 지방에 대한 왜적의 침탈이 없는 모양이오.”

“아무래도 적 주력이 북진에 동원된 탓이겠지요. 하나 곡창지역인 전라도를 적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흥원의 말에 광해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다른 장계를 확인했다.

“이것은?”

“왜 그러십니까.”

“또 요괴가 나타났다는 장계가 올라왔네.”

광해군의 말에 대신들은 웅성거렸다.

최근 며칠 동안 이곳으로 올라온 장계 중에는 왜군의 동향에 대한 장계 말고도 괴상한 요괴가 출몰하고 있다는 장계도 꽤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내용이라 일축하고 무시했지만, 각지에서 빈번하게 장계가 올라와 이제는 광해군도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광해군은 대신들을 보며 말했다.

“이러한 장계가 올라온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소. 그래도 정녕 여기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참이오?”

“으음.”

대신들은 모두 말을 아꼈다.

처음 이런 장계가 올라왔을 때는 무지몽매한 이들이 퍼뜨린 헛소문이라고 대신들은 입을 모았다. 그리고는 왜군을 상대하는 것이 우선이니 이런 장계는 무시하라고 간언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피해를 호소하는 장계가 올라오니 이때까지 요괴의 존재를 부정했던 대신들은 비로소 일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올라온 장계들에는, 벌써 일곱 곳의 고을이 초토화되고 수백 명의 백성이 희생되었다고 호소하고 있었소. 이런 마당에 장계의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가릴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내 이를 확실히 파악하고 토벌을 해야 하지 않겠소.”

“하나, 저하. 왜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도 벅차옵니다. 그렇기에 병력을 보내시는 것은 다시 한 번 숙고해 보시옵소서.”

“부디 재고를 하심이······!”

쿵.

묵직한 소리가 원목으로 만든 탁자에서 울린다.

광해군은 탁자에 올린 주먹을 거두지 아니하고 말하였다.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소. 왜군을 몰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고한 백성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존재들 역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 아니오!”

“그렇지만 요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어렵사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산적패일지도 모르니 주변 관아에 우선 조사를 하게끔 하시지요.”

지금 당장 파죽지세로 침략해 오는 왜군을 상대하는 일도 벅찬 마당에 신뢰성이 떨어지는 요괴 토벌에 대신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달랐다.

“아바마마를 대신해서 분조를 이끄는 세자로서, 도적이든 요괴든 왜적의 침입으로 도탄에 빠트린 백성들을 위협하는 존재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저하.”

“마침 오늘 올라온 장계를 보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고을에 요괴가 출몰하였다고 하오. 내 직접 토벌군을 이끌고 가서 요괴의 실체를 확인할 것이오.”

광해군의 폭탄 발언에 황급히 영의정 최흥원이 만류를 하고 나섰다.

“저하께서 직접 나서시는 일은 부디 재고해 주시옵소서.”

“어찌 저하께서 그런 위험한 일을 나서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대신들은 날 만류할 생각하지 마시오. 이미 내 마음은 확고하니 당장 토벌군을 준비시켜 주시오.”

대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뜻을 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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