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장. 과거로 온 헌터 (4)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하던 조선 시대에서 나그네들이 잠시 길을 가다 쉴 수 있는 장소의 역할을 하던 주막.
전쟁 통이지만 그럼에도 먹을 것을 파는 이곳엔 많은 손님들이 붐비고 있다.
초췌한 모습의 피난민부터 왜군을 피해 급히 발길을 돌린 보부상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 앉아 국밥에 탁주를 놓고 이야기 삼매경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이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전쟁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양성이 엊그제 함락되었다고 하던데.”
“그게 참인가?”
“평양 쪽에서 온 보부상이 그리 떠들어대더이다.”
“허! 이제 이 나라도 끝장났군.”
장돌뱅이들은 서로 탁주를 마셔대며 한탄을 했다.
철사 수염을 가진 장돌뱅이는 빈 잔을 탁 놓으며 외쳤다.
“하기야 왕도 의주로 도망간 마당에 볼 장 다 본 격이지.”
“그러게. 거기에 그 소문도 떠돌잖아.”
“무슨 소문?”
“자네는 아직 못 들었는감? 요즘 곳곳에서 요물들이 나타나 마을을 습격한다는 소문을 말이야.”
“뜬소문을 어디서 듣고 온 모양이구만.”
“그게 아니라니깐. 나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이번에 여기 오면서 직접 그런 것을 봤다는 사람을 만났다니깐.”
“그게 정말인가? 어디 자세히 얘기 좀 해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비단 말상대였던 장돌뱅이만이 아니었다.
어느 사이엔가 주변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남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던 터였다.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중엔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진 마루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이도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남자가 말했다.
“대룡산 인근에 있는 한 마을에 들렸을 때 거기 촌로 얘기해 준 건데 자기가 이무기를 봤다고 하더군.”
“그것이 참말인가?”
“아무렴. 그 노인이 나이는 먹었어도 정신은 말짱해서 헛소리할 양반은 아니었네.”
“그래서 그 이무기는 어떻게 생겼다고 하던가?”
“아침 안개 때문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어지간한 기와집보다 큰 덩치를 가지고 산 위에서 날아왔다고 하더라고.”
“허! 거참!”
“그래서 마을로 날아온 놈이 키우던 돼지를 낚아채 가버린 통에 사람들이 죄다 겁먹어서 다들 마을을 떠났다고 한탄하더라고.”
“허허, 진짜 말세구만. 이러다가 이 나라가 진짜 망할지도 모르겠어.”
“쉿! 관리라도 들으면 어쩌려고 그려.”
“관리들은 진작 다 도망쳤는데 무슨 걱정이여.”
그렇게 말하며 장돌뱅이들은 다시 한 번 탁주 한 사발을 들이켰다.
“이보슈, 식사는 언제 시킬 거유?”
“앗.”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주막의 주모가 해오는 말을 못 듣고 있었다.
상호는 쓰고 있던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며 말했다.
“좀 있다가 시키겠소.”
“참나.”
주모는 구시렁대며 자리를 떠났고 상호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사실 배고프긴 했다.
하지만 가진 게 무일푼이라 뭐 하나 시킬 수가 없었다. 아니,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시키기가 곤란했다.
‘이런 비위생적인 곳에서 밥이 넘어가겠냐고.’
수많은 파리가 쉼 없이 날아다니는 통에 가만있어도 입에 파리가 들어갈 지경이다. 현대인인 상호로서는 도저히 참기 힘든 환경이지만, 그래도 꾹 참고 이곳에서 한참이나 있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면 모든 이야기는 주막에서 오가지 않는가.
실제로 지금도 좋은 정보를 들었다.
‘아까 말한 이무기라고 했던 몬스터, 아마 와이번이나 코아틀 같은 용족 계통의 몬스터겠지. 역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은 한 곳에서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네.’
조선에서 벌어진 몬스터 사태는 21세기에서 초기 몬스터가 나타났던 때와 비슷했다.
이대로 간다면 도처에 생긴 게이트가 점점 영역을 확장하게 되고 그에 따라 몬스터들이 더욱 활개를 칠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리 된다면 몬스터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고 몰살당할 게 분명했다.
전에도 이런 우려를 했던 상호는 순간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만약에··· 이 시대에서 몬스터가 날뛰어서 역사가 바뀌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역사가 바뀌면 자연히 미래도 바뀔 것이다.
즉, 이 시대에서 조선이 몬스터에게 멸망하고 이 땅의 사람들이 전멸한다면 미래에도 이 땅엔 사람이 살지 않게 될 터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전 세계에서 벌어진다고 하면 최악의 경우, 어찌어찌 방법을 찾아 미래로 돌아가도 사람 대신 몬스터만 있는 세상을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단순히 돌아가는 것만 생각해선 안 되겠어. 어떻게든 이 시대에서의 사태를 막고 원래 역사가 되게끔 만들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그것은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였다.
21세기의 군대조차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겨우 막았던 몬스터들이다.
고작해야 조총이나 총통으로 전쟁을 하는 이 시대의 군대가 몬스터들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지금은 조선과 일본이 전쟁을 하는 판이지 않은가.
과연 이런 악조건에서 몬스터를 물리치고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상호는 이 암담한 상황에 이마를 손으로 감싸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과연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일류 헌터도 아니고 변변찮은 경력을 가진 이류 헌터에 불과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것에 대한 고뇌는 깊었다.
혼자가 아니라 힘이 되어줄 헌터가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푸념 섞인 생각을 막 하던 찰나!
“가만!”
상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그런 그를 순간 주막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보았다.
“아, 하하.”
상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다시 아까 생각한 것을 떠올렸다.
‘혼자가 무리라면 헌터를 늘리면 되는 거잖아.’
21세기에도 인류는 헌터라는 새로운 대항마를 찾음으로써 몬스터로부터의 위기를 어느 정도 몰아낼 수 있었다.
몬스터와 대적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가진 헌터들을 어느 정도 육성한다면 게이트를 막고 몬스터들을 격퇴할 수 있을 터였다.
‘본래라면 몬스터에 대한 정보, 그리고 게이트나 몬스터 코어에 대해 정확히 이해를 한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미래에서도 이러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다르다.
실력은 어쩔지 몰라도 경험과 지식만큼은 상당한 상호가 있는 것이다.
미래에서 헌터로 활동했던 상호의 존재는 곧 치트키나 다름이 없다.
‘처음만 좀 힘들지 잘만 가르쳐서 숫자를 조금씩 불리면 나중엔 충분히 시국을 극복할 수 있을 터.’
희망이 생기니 생각하는 상호의 얼굴로 아주 밝아졌다.
그렇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았다.
딴 세상이나 다름없는 조선 땅, 그것도 전란이 한참 일어나는 이곳에서 기반을 잡아야 하는 문제와 또 가치관이 현대인과는 완전히 다른 이 시대의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지에 문제 등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호는 자신이 있었다. 또 적잖은 흥분에 취하여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게 나뿐이라니.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인 걸.”
사실 헌터가 되었어도 딱히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 없이 늘 변변찮은 역할만 했었다.
그런 점이 내심 콤플렉스였던 터라 상호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부담이면서 한 편으론 내심 기뻤다.
아무튼 몬스터에 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취득했다.
그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현재 시대의 정확한 시간이었다.
이 부분에 관해서도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대충 파악이 가능했다.
“이번에 왕자님이 이천 땅에 직접 오셨다던데.”
“나도 들었어. 분조를 이끄시고 이렇게 위험한 땅까지 오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시지 않은가.”
주변 술자리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상호의 귀에 들어왔다.
분조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상호는 공부를 썩 잘하던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름 역사에는 관심이 있어 국사 성적만큼은 좋았다.
또한, 사극을 즐겨봤기에 주워들은 것도 많은 편이었다.
‘분조라면 분명 본래 조정과 별도로 떨어져 나온 것을 말하는 건데. 그럼 왕자라는 사람은 바로 광해군인가.’
광해군이 분조를 세웠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정확한 날짜까지는 몰랐다.
다만 지금의 조선 국왕인 선조가 의주로 도망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 자체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은 확실하네.’
상호가 기억하는 임진왜란 초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조선을 침공한 왜군을 상대로 조선군이 계속해서 패배하였고 국토 대부분도 잃은 암울한 시기였다.
하지만 바다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해 마지않는 이순신 장군이 승전보를 올리고 각지에서 뜻 있는 자들이 의병을 일으켜 후방에서 왜군의 보급로를 끊는 등 많은 활약을 펼쳐 전황을 서서히 바꾸게 된다.
‘나에게 이 전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평화로운 때라면 사병 하나 거느릴 수 없는 게 조선시대다.
만약 상호가 전쟁이 없던 때에 헌터를 만들겠다고 사람들을 모아 무기를 쥐어준다면 철저하게 왕권 국가인 조선 조정은 그냥 가만히 이것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왜군을 막는다는 구실이 있으니 얼마든지 사람들을 모아 훈련시킬 수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상호가 직접 사람들을 모을 필요도 없었다.
‘굳이 그럴 것도 없이 의병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설득시켜 헌터가 되게 하면 되잖아.’
조선 팔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만큼, 이미 각지에서 궐기한 의병들을 설득해 그들을 헌터로 만든다는 생각은 꽤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다만 여기엔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지인데.’
의병들을 이끄는 의병장들은 대부분이 유학을 공부한 유학자들이다.
고지식한 그들을 설득해 몬스터 토벌에 가담케 하는 일을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호가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설령 의병들을 헌터로 만들어도 몬스터 토벌을 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지원해줄 스폰서가 없으면 애로사항을 클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내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폰서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겠다.’
상호는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제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조선의 1인자인 현재 국왕인 선조였다.
하지만 이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지, 왕을 만나는 것도 어렵겠거니와 역사에 나온 선조의 인격을 생각하면 득보다 실이 크다.’
그렇다면 다음은 누가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이었다.
‘으음, 분명 존경스럽고 또 믿을만한 분이기 하지만······.’
솔직히 상호는 원리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맡은 역할에만 충실한 장수인 이순신 장군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또한, 현재 시점에서 이순신 장군의 이름값만으로는 의병장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이쪽도 포기했다.
그런데 이 때, 상호는 불현듯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잠깐, 내 정신 좀 봐라. 그를 잊고 있었네.”
분조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 생각해내지 못하다니.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광해군이 있었어.”
지금 조선 국왕인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이 일부의 조정 대신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왜군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중이다.
국왕일 때의 평가는 젖혀놓고 이 당시의 광해군은 민중한테도 큰 인기를 얻을 만큼 맡은 바 소임을 잘해 나갔다는 것은 현대의 사람인 상호는 잘 알고 있는 바였다.
“현재 시점의 광해군은 사실상 왕의 역할을 대신해 전쟁을 이끌고 있다. 그런 그를 스폰서로 맞이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릴 게 분명해.”
광해군이 역사가 아닌 실제로는 어떤 인물인지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선 최상의 파트너라고 볼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은 왕자인 그를 만날 수단과 방법이다.
“으음.”
상호는 새로운 고민거리에 눈을 감고 생각에 몰두하였다.
이때, 주막 옆 골목으로 아낙네들이 짐을 들고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저 뒷산에서 대호가 나타났다던데.”
“세상에, 밤에 문단속을 잘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대호라면 호랑이를 뜻하는 게 분명했다.
“호랑이인가.”
안 그래도 광해군을 만날 구실이 필요하던 차에 이 이야기는 상호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뭔가 생각을 마친 상호는 드디어 오랫동안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행동을 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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