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57화 (257/270)

257화

[남궁이…… 맞냐고?]

화롯불을 다루는 자, 갈란은 요르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했어. 아무리 그가 회귀자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위상의 세계를 경험한 것도 아닌데…….]

[너무 강해.]

[저자는 그럼 누구지?]

[지금 우리 팔위상보다 더 오랜 세월 카니발을 지켜본 유일한 인간.]

요르는 그들의 의문에 간략하게 대답했다.

[루(淚)다.]

[설마…… 란과 우 사이에서 탄생했던 최초의 필멸자? 그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내가 가지고 있었거든. 그의 영혼을.]

[……어째서?]

요르의 대답에 미풍의 어머니, 그라시엘이 인상을 찡그렸다.

[다들 알 거다. 낙원에 있던 그를 이 세계로 끌어내린 자가 누군지 말이야. 그는 인류를 탄생케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설마 그 일에 대한 사죄라는 거야? 일곱 뱀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욕망의 근원들이다. 그걸 다루는 네가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가졌다고?]

[당신답지 않은 일이로군.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어때? 목적이 있어서 그를 지금껏 숨긴 것 아냐?]

[흥, 뻔하지! 태초의 위상들을 제거하고 네가 그 자리에 오르려는 것을 누가 모를 줄 알아?]

위상들의 비난을 들으며 요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은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 한 적 없나?]

[무엇을……?]

[차원이 탄생하고 지속되면서 우리 위상들도 소멸하고 태어났다. 단지 기억이 전승되면서 우리는 스스로 불멸처럼 느낄 뿐이지.]

[그게 뭐? 시대가 변하는 만큼 고루한 육체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위상다운 삶인데.]

요르는 갈란의 대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저 둘은? 가장 오래된 위상인 저들은 어째서 변하지 않고 영원한 거지? 단순히 우리 때문에 봉인되어 있어서?]

그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 웃음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오직 저 둘만이 진정한 신이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그 순간 갈란이 자신을 가둔 창살을 망치로 후려쳤다.

치이이익……!!!

붉게 타오른 해머의 머리가 얼어붙어 있는 창살에 닿자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닥쳐! 요르!!]

[태초의 위상과 우리 팔위상이 다른 점은 우리들은 시간이 흐르면 소멸한다는 것이다.]

요르는 으르렁거리는 갈란을 바라보며 더욱더 또렷하게 말했다.

[‘인간’처럼.]

그는 고개를 돌려 사계절의 방랑자, 레아에게 말했다.

[창살을 풀어.]

[괜찮겠어요?]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 못 알아들으면 위상의 자격도 없는 놈이지.]

레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창살이 사라지자 요르는 천천히 세 명의 위상들에게 걸어갔다.

[저기 있는 남궁 안에 루(淚)의 영혼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위상들과 싸우는 것은 루이고, 이제 어째서 그가 우리보다 강한지 알겠지.]

[무슨 헛소리…….]

[연금술을 다룰 정도로 똑똑한 네가 내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어. 네가 물어야 할 건 다른 거지. 루가 어째서 우리보다 강할 수 있느냐는 것.]

꿀꺽―

갈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미 불안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우리가…… 루(淚)에게서 탄생한 것이냐.]

[……!!!!]

그의 대답에 나머지 두 위상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갈란! 너야말로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우리가 고작 인간에게 태어났다고?!]

[너까지 미친 모양이로군!!]

그들은 반발했지만 갈란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태초의 위상이 란과 우로 분열되기 전, 온전한 위상에게서 루라는 존재가 탄생했고 그와 함께 온전한 위상은 란과 우로 분열되었다.]

요르는 말을 이었다.

[그 이후는 너희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란과 우는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지. 낮과 밤, 비와 바람,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루를 위한 것이었다.]

[…….]

[세상은 영원히 평온할 것이라 여겨졌지만 사실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루의 탐욕 때문이지. 조용히 낙원에서 살아가면 될 것을…… 그가 신의 영역까지 욕심을 부렸기에 나락에 떨어진 것이잖아.]

[탐욕이야말로 인간의 근본이니까.]

요르는 그들의 대답에 묘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그럴까? 만약 그 반대라면?]

[반대라니……?]

[필멸이 불멸보다 뛰어났다면? 혹여나 자신들보다 뛰어나지 않을까, 언젠가 자신들의 자리까지 빼앗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태초의 위상들이 인간처럼 그런 하찮은 감정에 휩쓸린다고?]

갈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요르를 바라봤다.

[온전한 위상에서 분열된 이상 그들도 완벽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온전한 위상에서 태어난 루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그리하여 두 위상은 루를 자신들에게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보낼 계획을 짰지.]

[설마…….]

요르는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맞아. 그게 지금의 인간세계. 그래서 내가 태어났지. 온갖 인간의 부정적인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악신(惡神). 그리고 루를 이곳으로 끌어내린 장본인이지.]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 이제 나머지 위상들을 가리켰다.

[인세로 떨어진 루가 만든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위상을 본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든 존재들.]

[믿을 수가 없어…… 정말 우리가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아무리 루가 대단해도 인간인 이상 위상의 힘을 따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계속해서 쓸수록 그 힘은 약해졌어. 위상들 간에 힘의 차이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해와 달을 만들 때 그는 가장 많은 힘을 쏟아부었고, 원소를 탄생시키고 자연을 일구는 과정에서 루의 힘은 점점 소진되어 갔다.

[그리고 너희들과 내가 격이 다른 것 또한 그 때문이고. 나는 유일하게 신이 만든 위상이니까.]

[우, 웃기지 마……!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거냐!]

미풍의 어머니는 요르를 향해 소리쳤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너희들이 떼로 덤비는 것보다 루가 더 강하다는 사실 말이다.]

요르는 팔짱을 낀 채 남궁을 바라봤다.

[루는 이제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다. 두 위상을 소멸시키고 진정으로 이 길었던 축제의 막을 내릴 생각이지.]

[좋아. 그럼 어째서 지금껏 가만히 있었던 거지? 저렇게 강하다면 그 전에도 카니발을 멈출 수 있었을 텐데?]

요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릇이 필요했으니까. 루의 영혼을 담을 만큼 강한 그릇이 말이야.]

[그럼 레오릭은? 그 역시 카니발을 종결시키려고 했었잖아. 내가 보기엔 그도 남궁 못지않은 강자였는데?]

[멍청하긴…… 그는 우의 계시자였잖아.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상태였으니 그에게 루의 존재를 얘기할 수 없지.]

그라시엘은 요르의 핀잔에 아차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레오릭의 일 덕분에 더 확신할 수 있었지. 우가 카니발을 종결시키겠다고 한 것은 결코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란과 하나가 되기 위한 거짓이었다는 것을 말이야.]

요르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레오릭 역시 그것을 깨닫고 복수를 원했다. 나는 그의 영혼을 가두었고 다음 기회를 기다렸지. 란과 우, 두 위상에게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믿는 괴짜를 말이야.]

사실 반쯤은 포기했었다.

참가자들은 카니발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게임에 반기를 들기는커녕 살아남는 것에도 급급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 괴짜를 만났다.

그것도 계시자도 아니면서 스스로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위상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지만, 녀석이 다른 녀석이 아닌 나를 선택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운명에 감사했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 여겼으니까.]

요르는 아직도 남궁과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했다.

충격과 환희, 다시는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기대를 가지게 되었던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감사하게도 녀석은 내 기대보다 훨씬 더 대단했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었다.

[사실 란과 우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야. 이 세계는 불안하다. 처음부터 루를 가두기 위한 곳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세상을 지우고 새로이 만든다면 더 완벽한 세계가 만들어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인간들을 보며 깨달았다. 불안한 것은 불안한 대로 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나는 이 불안한 세계에 기대를 걸어볼 생각이다.]

[요르…….]

위상들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의 이름을 읊조릴 뿐이었다.

[어이가 없군…… 죽음에 가장 가까운 위상인 당신이 우리들 중 가장 미래를 바라다니.]

그라시엘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루가 너를 만든 이유를 잊지 마라. 미풍의 어머니는 인간들의 기도와 찬양을 먹고 그들을 보호하는 존재였어.]

요르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나 카니발이 우리도 망쳐놓은 것일지 모른다. 그라시엘, 언제부턴가 너는 인간의 광신과 광기를 먹는 신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는 그녀를 지나쳐 위상들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콰아아아아앙―――!!!!!

그때였다.

란과 우가 있던 자리에서 강렬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루…… 네가 남궁을 그릇 삼아 위상의 힘을 얻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과연, 필멸자였을 때도 완벽했던 네가 위상의 힘까지 얻으니 대단하구나.]

우(无)가 바닥에 처박힌 루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너의 태생은 필멸이다. 저 머저리들 역시 그러 하듯 위상의 힘은 절대로 불멸이 아니다!!]

그는 란을 향해 소리쳤다.

[고작 이런 것 때문에 겁에 질려 나를 소멸시키려 했던 것이냐! 어차피 모조리 죽여 버릴 것들이었어. 란!! 내게 네 목숨을 바쳐라!]

하지만 요란하게 소리치는 우(无)와 달리 란(亂)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여전히 어리석구나. 우(无)여. 태생을 논한다면 나는 온전한 위상이 빚은 존재. 너희들이야말로 불완전한 존재지 않을까?”

[닥쳐!!]

“조용히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인 것 같은데…….”

차르릉―!!

그 순간 사슬이 요동쳤다.

순식간에 우(无)의 사지를 결박한 사슬이 그대로 바닥에 박히자 우의 몸이 뒤로 밀려 나며 튕겨 나갔다.

[크윽……!!]

우(无)는 사슬을 풀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사슬은 그를 조여왔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어. 루가 아무리 온전한 위상이 빚은 필멸자이기에 강하다 해도…… 란과 우보다 더 강한 것이 맞을까?]

가시덩굴의 미망인, 일레이나는 두 위상을 압도하는 루를 보며 요르에게 물었다.

[우가 했던 말처럼 루의 태생은 결국 필멸. 사실 불멸의 존재인 저 둘보다 강한 것은 말이 안 되지.]

[그럼……?]

[답은 남궁이다.]

요르는 그 순간 묘한 미소를 지었다.

[수천 년 동안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한 일을 그놈이 해버렸거든.]

차르릉―!!

그 순간, 마치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슬이 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