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일이야. 당신…… 우릴 알아볼 순 있는 거야?”
“놀랄 일이군.”
“시체술도 아니고, 정말 완벽하게 되살린 건가?”
미카엘의 시체가 눈을 뜨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어리둥절하기는 죽은 미카엘도 마찬가지였다.
“미카엘. 안타까운 일이지만 너는 죽었다. 그리고 내 힘으로 널 되살렸지만 네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
남궁이 허리를 숙여 앉아 있는 미카엘을 향해 말했다.
“형님…….”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다오. 만약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이 맞다면…… 위상의 치졸함을 확인하는 일이겠지만.”
그는 물었다.
“너는 살해당한 건가? 위상들에게.”
“……?!”
그의 물음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위상에게 살해당해?”
“어째서?”
“미카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당황해하는 그들과 달리 오히려 죽음에서 부활한 미카엘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형님, 변하셨네요.”
“뭐, 조금…….”
남궁은 자신의 눈을 슬쩍 훔치며 대답했지만 미카엘이 말하는 것이 그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그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아니, 죽음에서 돌아온 미카엘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남궁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육방 다리의 연결자를 죽이셨군요.”
“맞아.”
“대단하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네요. 위상을 이기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로 인해서 네가 희생되었다면 너의 죽음은 내 탓이겠지.”
자신의 죽음을 너무나도 덤덤하게 얘기하는 남궁을 보며 미카엘은 물었다.
“이제 신이 되신 겁니까.”
“비슷해. 위상의 힘을 가졌다.”
“……!!”
사람들은 거듭되는 그의 놀라운 이야기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남궁이 정말 위상의 힘을 얻다니…… 이젠 더욱더 그를 이길 수 없겠군.’
‘넘을 수 없는 벽이 된 건가.’
이미 그와 자신들의 격차를 알고 있었지만,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그의 말에 팔무성들은 이제 완벽하게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가 대리자 일족이 됨으로써 카니발이 멈추게 되었지만 그것이 카니발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계시자들은 위상이 내린 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육방 다리의 연결자와 함께 그가 사라졌을 때 내심 기대한 부분도 있었는데…….’
‘오히려 위상을 죽이고 돌아오다니. 도대체 그의 끝은 어디까지인 거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계시자로서 팔무성들 중 몇몇은 여전히 카니발의 우승을 포기하지 않은 자들도 남아 있었다.
“미카엘의 죽음이 당신 때문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죠? 위상이 죽는다고 계시자가 죽는다는 규율은 없었는데요.”
“그렇지. 그런 규율은 없지. 하지만 반대로 위상이 계시자를 죽일 수 없다는 규율도 없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예상이 맞다면…… 미카엘은 위상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본보기로서 제물이 된 것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위상이 그를 죽였다고? 위상은 분명 참가자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할 텐데?”
“우리가 아직도 참가자라 할 수 있을까?”
알렉의 물음에 남궁이 대답했다.
“인류는 이제 대리자 일족이 되었다. 계시자들도 예외는 아니지.”
“하지만…… 저희들은 위상들이 내린 힘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걸요. 그 말은 카니발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지 않나요?”
남궁은 에리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상하네요. 그렇다면 계시자인 미카엘을 죽일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요?”
“내가 태초의 위상을 깨웠거든. 그리고 나머지 한 명까지 깨울 생각이다. 내 생각에 동의하는 위상도 있지만 당연히 반대하는 위상도 있지. 그들이 미카엘을 죽인 것이다.”
“……왜죠?”
“일종의 본보기로. 미카엘이 죽은 것처럼, 자신들이 죽으면 계시자인 너희들도 죽을 수 있다는 의미의 본보기 말이야.”
“저희들에게 위상이 바라는 것은 그럼 무엇일까요?”
“아마도 나를 방해하도록 하는 것이겠지. 위상들 중 몇몇은 우가 란의 봉인을 풀기 전에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니까.”
위상들은 이제 편이 갈리었다.
남궁과 힙을 합치려는 자와 란의 봉인을 풀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힘으로 우를 상대해 보려는 자들.
그는 미카엘의 죽음으로 그들이 어떻게 나뉘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상들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야. 자신들의 힘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사분오열되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때였다.
팔무성들 중 몇몇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퀘스트가 생겼어?”
남궁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라…… 시시한 방법이로군. 퀘스트의 내용은?”
“탑 속에 갇혀 있던 란의 영혼이 그림자 회랑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신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신성한 전장에 남궁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라.”
“실패한다면?”
“……저희가 죽는다고 합니다.”
클락은 창백한 얼굴로 남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렌, 록산느. 표정을 보니 너희들도 같은 퀘스트를 받은 건가?”
그의 물음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와 달의 관망자와 안갯속 길잡이는 자네 손을 들어준 모양이군.]
레오릭이 말했다.
“그 셋으론 어차피 우를 이길 수 없어. 시간 낭비일 뿐이지. 결국 란의 봉인은 풀리게 될 거야.”
스르릉―
남궁이 검을 뽑았다.
“미카엘. 사령술을 가지고 있던 내가 깨우친 힘은 안타깝게도 부활이 아닌 죽음에 가까운 힘이다. 부활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함이 아닌 완벽한 죽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니까.”
“저는…… 죽는 건가요?”
“이대로 널 둔다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중간에서 영원히 갇히게 되겠지.”
“하, 하하…….”
미카엘은 자신의 이마를 움켜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왜, 왜 하필 저죠? 빌어먹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진흙탕 속을 구르며 살다 이제야 조금 행복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탓이다. 내가 위상들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왜 굳이 위상들과 싸우려고 하는 거냐구요! 그냥 형님이 카니발의 우승자가 돼서 끝내면 그만이지 않았냐고요!”
“너, 너무 함께 있다 보니 가장 중요한 걸 잊은 모양이군.”
“……네?”
부러진 다리로 기면서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울부짖는 미카엘을 향해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니발의 우승자가 되기 위해선 오직 너희 모두를 죽여야 한다는 거.”
“…….”
미카엘은 그 말에 아차 싶은 표정과 함께 공허한 눈동자로 남궁을 바라봤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할 뿐.”
“형님답네요.”
그의 말에 미카엘은 허탈하게 웃으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널 다시 죽일 건데 감사하긴…….”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없는 농담이었지만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하지 못한 인사는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대로 죽었다면 정말 아쉬웠을 겁니다.”
“남길 말은?”
“없습니다. 진흙탕 속을 구르던 제가 운 좋게 계시자가 되었고 제법 멋진 일들도 했으니까요. 즐거웠습니다.”
미카엘은 눈을 감았다.
“…….”
남궁은 그의 입술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못할 짓이었다.
죽었던 자를 깨워 다시 죽인다는 것은.
“죽고 싶지 않은데…….”
연약한 그의 마음이 새어 나왔다.
미카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왜 나여야 했지? 빌어먹을…… 개새끼들.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날 제물로 만든 거지? 아니, 위상이 문제야. 쓰레기 같은 위상 새끼! 왜 형님과 싸워 가지고는…… 아니……!!”
그는 감았던 눈을 뜨며 남궁을 바라봤다.
원망의 화살이 끝내 남궁에게 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 원망해도 상관없어.”
서걱―
그 순간 남궁의 검이 미카엘의 목을 잘랐다.
“널 돌려보낸다는 것엔 변함없으니까.”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남궁의 행동에 팔무성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미카엘을…… 그는 당신을 도와 가장 열심히 싸운 자인데…….”
“그의 오명은 내가 풀어줄 거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덴 하울은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퀘스트를 받은 세 명. 너희는 어떻게 할 거지?
남궁은 덴을 지나치며 말했다.
* * *
[결국 우를 풀어준 것인가.]
[위험천만한 그 괴물을 놔두다니…… 이게 다 그 남궁의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넘어간 머저리들 때문이라고. 그게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 셋으로 과연 놈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막아야지. 우리의 목숨을 내어주더라도 말이야. 놈이 란과 합쳐지는 것은 절대 안 돼!]
그림자 회랑이 소란스러웠다.
[이걸 여기로 가져온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의 영체가 남궁이 있던 탑에 같이 있었으니까. 남궁이 우(无)를 풀어주는 동안 이걸 빼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3명의 위상은 탁자에 놓은 작은 상자를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끝내야 해.]
[우리 생각대로 시간을 벌 수 있을지 모르겠군.]
[설마 같은 동료를 그리 쉽게 죽이겠어? 인간은 태생적으로 정에 약한 법이니까.]
계시자들에게 목숨을 조건으로 퀘스트를 내린 것이 위상으로서 얼마나 치졸한 것인지 그들도 잘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수를 써서라도 남궁을 막아야 했으니까.
콰아아앙―!!
그때였다.
굉음과 함께 회랑의 문이 산산조각 났다. 위상들은 긴장한 얼굴로 앞을 바라봤다.
[귀여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구나.]
[……우(无)!!]
그 순간 화롯불을 다루는 자의 머리가 꺾이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컥!!!]
[갈란, 네가 언제부터 내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격이 되었지? 내가 너무 오래 봉인되어 있었나?]
[웁……! 우웁……!!]
바닥에 처박힌 그의 머리를 지그시 즈려밟으며 우(无)가 물었다.
[헛걸음하게 한 건 열받지만 뭐, 란(亂)의 영혼을 잘 가져왔으니 봐주마.]
우(无)는 바닥에 처박힌 화롯불을 다루는 자를 발로 치우며 탁자에 놓인 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웃기지 마……! 또다시 끔찍한 공허의 시간을 우리보고 되풀이하라는 것이냐!]
[절대로 안 돼!!]
가시덩굴의 미망인과 미풍의 어머니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레이나, 그라시엘. 너희는 싸움과 먼 아이들이었는데…….]
우(无)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버릇없는 아이들은…….]
퍼억―!!
그가 손바닥을 휘둘렀고 두 위상은 그대로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꺄악……!!]
[크아악!!]
[혼이 나야지.]
우(无)는 가소롭다는 듯 쓰러진 그들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꼭 약한 것들이 용기는 가상하지.]
“그 말에 나도 동감해.”
회랑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无)는 고개를 돌렸다.
“이기지도 못하는 싸움에 목숨을 거니 쓸데없는 희생만 늘게 만들고.”
남궁이었다.
쿵―
그는 피 묻은 검을 바닥에 꽂으며 쓰러져 있는 위상들을 힐끔 바라봤다.
[설마…… 이렇게 빨리?]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위상의 권위를 얻었다고 해서 인정마저 버린 건가!]
위상들은 그의 검에 묻은 피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닥쳐. 지금 마음 같아선 우(无)보다 너희들을 먼저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뭐, 뭐라고?!]
위상들은 반박하려 했지만 남궁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우(无)보다 너희들을 먼저 죽인다라…… 그 말은 네 녀석이 나도 죽일 수 있다고 들리는데?]
“못 죽이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无)를 죽이지도 못하면서 왜 여기에 온 것이냐!]
[말이 다르잖아!!]
위상들이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란의 영혼을 먹어라.”
툭―
그 순간 남궁은 상자를 가리켰다.
“그래야 널 죽이지.”
남궁은 우(无)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