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촤르륵―!!!
요새 안에 들어서자 남궁은 두르고 있던 망토를 펼쳤다.
그러자 망토 안에서 검은 기류가 흩어지더니 사람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 뱀 안개가 시전되었습니다.
▶ 우호적인 대상을 안갯속에서 보호합니다.
“모두 안개 밖으로 나가지 마라. 요새 안은 우(无)의 힘이 가득하다. 위상의 힘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위험하니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군. 계시자들조차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니…….”
알렉은 남궁의 말에 대답하면서 슬쩍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의 걱정대로 박효주와 명훈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멀미를 하는 사람처럼 헉구역질을 참았다.
“저 둘은 지금이라도 빼는 게 낫지 않을까?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라 데려온 거야. 계시자가 아니라고 해서 꼭 약하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저들을 봐.”
남궁의 말대로 소민과 남기철은 다른 계시자들처럼 요새 안에서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흐음…….”
알렉은 저 둘은 특별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다물었다.
“여기도 위상의 보고라면 아까처럼 위험은 없지 않을까요? 들어올 수 있는 자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일인데 말이죠.”
명훈은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말했다.
“글쎄 그렇진 않을걸.”
“……네?”
“란의 보고는 오직 자신의 계시자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하지만 여긴 계시자가 아닌 위상의 힘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
“그렇죠.”
“그건 반대로 말하면, 위상이라면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설마…… 위상들이 저희를 방해할까요?”
남궁의 말에 명훈이 긴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니, 녀석들의 방해는 걱정할 일이 아냐.”
“그럼요?”
“잊었어? 우(无)는 위상을 싫어한다는 거.”
[위상을 증오하는 자가 위상만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레오릭의 목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들렸다.
[누가 봐도 위상을 노린 함정으로 들리는데.]
남궁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정답.”
콰아아아앙―――!!
그 순간 검은 안개를 뚫고 뭔가가 튀어나와 남궁을 덥쳤다.
[우(无)의 개들이로군. 녀석들까진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건가.]
그의 앞을 레오릭이 막아섰다.
카그그극……!!
연기가 걷히자 검은 사냥개들이 레오릭의 검을 물고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조심해라. 놈들의 이빨에 물리면 인간의 살점이 그대로 녹아버리니까.]
[카앙―――!!]
개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레오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막고 있는 3마리의 개들 뒤로 수십 마리의 개들이 나타났다.
“모두 제자리로!!!”
알렉의 외침에 계시자들은 본능적으로 대열을 맞추었다.
“정령들이여…….”
록산느가 가장 먼저 주문을 외웠고 그의 뒤로 소민과 제렌의 요정 마법과 신성 마법이 결계를 완성 시켰다.
캉! 캉!! 카강……!!!
검은 개들이 반투명한 방벽에 막히며 뒤엉켰다.
“미카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카엘의 손을 잡자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졌다.
공간을 뛰어넘어 개들의 뒤에 나타난 알렉이 있는 힘껏 검을 뽑았다.
“흐압!!”
그의 검날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검을 휘두르자 빛의 가루가 흩날렸고 방벽을 부수기 위해 날뛰던 개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서걱―
하지만 알렉은 놈들이 피하기도 전에 마치 두부 자르듯 개들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마음에 드는걸.”
알렉은 조각 난 개들의 시체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의 검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조금 전 그의 검술은 충분히 특별했다.
“그게 천두술인가.”
“맞아.”
새로이 익힌 검술은 다름 아닌 알렉이 만신전의 신전을 완성시키고 얻은 새로운 보상 중 하나였다.
“원래 이 정도의 위력은 아닌데…… 아직 위상들의 혜택이 유지 되고 있어서인가 봐.”
“덕분에 수월하게 끝나겠군.”
“맡겨주라고.”
알렉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남기철을 힐끔 바라봤다.
“이래도 내가 그에게 배울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남기철과 한 팀으로 묶어놨던 게 은근히 아직까지 불만인 모양이었다.
“비켜.”
그때였다.
산산조각 난 개들의 시체 위에 서 있던 알렉의 뒷목을 누군가 잡아당겼다.
“……?!”
갑작스러운 행동에 알렉이 당황한 듯 뒤를 돌아봤지만,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몸은 남기철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펑! 퍼어어엉!!
순간 검은 개들의 시체가 일제히 폭발하며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독이로군.”
알렉은 검은 개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독보다 남기철이 자신을 잡아당겼다는 것에 더 놀란 듯 보였다.
‘뭐지……? 다가오는 기척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알렉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기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보기엔 배울 게 많아 보이는데.”
남궁은 그런 그를 지나치며 말했다.
얼굴을 붉히며 알렉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바, 방금은 실수였거든?”
“실수도 뒈지면 실력이지.”
“…….”
알렉은 남궁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이럴 때 해야 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깔끔하게 인정을 하는 것.
“마음 쓸 필요 없네. 내가 남들보다 냄새를 잘 맡기 때문이니까.”
남기철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알렉을 향해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나저나 지독한 냄새로군. 언데드도 이런 악취는 나지 않을 텐데 말이야. 도대체 이놈들은 뭐지?”
남기철은 잿가루가 흩날리는 것처럼 사라지고 있는 마물의 시체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라면 저 냄새가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그 순간 레오릭이 말했다.
[블랙 루트를 열 수 있다면 이것과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일 테니까.]
“…….”
남기철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죽음인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죽음이 아니다. 그가 가진 죽음의 힘은 그야말로 소멸이니까. 평범한 인간은 닿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레오릭은 알렉을 바라봤다.
[계시자라 해서 다를 것 없지.]
“……한마디 했다고 두루두루 까이는군.”
알렉은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우(无)의 개들이 있다는 것은 그의 힘이 이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다.]
“그게 뭐지?”
[파라곤(Paragon). 우(无)의 심복이자 그의 첫 계시자다. 그는 스스로 계시자를 포기하고 마물화하여 그를 따르는 소환수지.]
“계시자가 소환수가 되었다고?”
[그래. 내가 그와 계약을 맺었던 당시 지금 자네와 나처럼 나는 파라곤의 힘을 빌렸었다.]
“흐음…….”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无)가 란(亂)의 동굴에 갇혀 있으니 파라곤이 소멸되지 않았다면 그가 있을 곳은 여기뿐이다. 아마도 그는 우(无)의 보물을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얼마나 강하죠?”
명훈이 굳을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얼마나 강하냐고? 우리의 수준으로 그의 강함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그 정도인가요?”
[아무것도 없던 내가 카니발의 우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 조금 이해가 가려나?]
레오릭의 말에 명훈은 긴장이 된 듯 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가볍게 쓸었다.
“설마 놈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어. 동굴 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나머지 하나의 오리진(Origin)을 회수해야 해.”
[경계를 늦추지 마라. 그는 가장 우(无)와 닮은 자다. 강하며, 빠르고, 악랄하지.]
“자신의 위상을 악랄하다고 평가하다니. 진심이야?”
[그렇기 때문에 변혁을 이루려 하는 것이지.]
남궁의 말에 그는 대답했다.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으흠.”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아아앙――!!
그때였다.
폭음과 함께 무언가가 남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레오릭이 그의 앞을 막아서려는 순간 남궁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검을 들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힘을 튕겨냈다.
“보호받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해.”
카드드드득―
하지만 놀랍게도, 남궁은 있는 힘껏 잡고 있는 검이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것을 느꼈다.
[파라곤……?! 노리고 있었던 건가?]
레오릭이 남궁에게 달려든 묵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를 보며 놀란 듯 소리쳤다.
[카륵―]
레오릭을 본 파라곤은 뭔가 반응을 했지만, 전생의 레오릭처럼 언어 능력을 상실한 듯 기묘한 소리를 냈다.
“아빠!!!”
콰직―!!
그 순간 소민의 뇌화가 파라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쾅―! 쾅―! 콰강―!!!
연이어 떨어지는 붉은 번개에 녀석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남궁을 향해 내질렀던 창을 거두었다.
차르륵一!!
뒤로 주춤거리는 파라곤을 향해 박효주가 품 안에서 단검을 뽑아 던졌다.
10개의 단검들이 바람의 정령의 힘을 머금고 녀석의 관절에 일제히 박혔다.
“새로운 생명이 뿌리 내릴지어다.”
록산느가 주문을 외우자 박효주가 던진 단검의 손잡이에서 두터운 뿌리들이 자라나더니 파라곤의 몸을 뒤덮었다.
“좋았어!”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계획이 먹히자 기쁜 듯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의 뒤에서 미카엘이 그들을 잡아당기며 옆으로 피했다.
콰아앙―――!!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할버드가 날아와 박혔다.
“이런 미친…….”
걸음을 걸을 때마다 관절마다 박혀 있던 뿌리가 사정 없이 부서졌다.
쿵― 쿵― 쿵―
회심의 공격이 허무하게 끝나자 록산느는 어이가 없는 듯 중얼거렸다.
“흐아아압!!!”
명훈과 알렉이 그를 향해 검을 그었다.
캉! 캉! 카강―!!!
함께 훈련을 했던 두 사람의 공격은 완벽한 합을 이루며 파라곤의 사지를 갈랐다.
“……뭐야?”
하지만 두 사람이 있는 힘껏 검을 내려쳐도 파라곤에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명훈은 자신들에겐 관심도 없는 듯 바닥에 떨어진 할버드를 향해 걸어가는 그를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툭―
그때였다.
파라곤이 바닥에 박힌 할버드를 잡으려는 순간, 할버드를 밟고 있는 발에 처음으로 그가 멈춰 섰다.
“너 강하군.”
남궁은 파라곤을 향해 말했다.
[크륵……?]
할버드를 잡으려던 파라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궁을 바라봤다.
“탐이 날 정도로 말이야.”
▶ 영혼 군림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남궁은 자신을 바라보는 파라곤의 머리를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