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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227/270)

227화

[크하하하!! 그런가? 하긴, 너를 어찌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말이야.]

남궁은 의아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너희 둘. 어울리지 않게 친한 사이인가보지?”

[친할 것도 없지. 녀석은 우(无)의 계시자였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나와는 적대의 위치에 서 있던 자다.]

[오래된 적은 때론 오랜 동료와도 같지.]

[클클…….]

란의 웃음에 남궁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난 저 녀석과 동료가 될 생각 없다. 묻는 말에나 대답하고 꺼져 줬으면 좋겠는데.”

[처음 만났을 때와 한결같군. 하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 우(无)를 찾고 싶다고? 조건은 간단하다. 나를 이곳에서 꺼내어 주면 된다.]

남궁에게 란(亂)이 대답했다.

[나는 네가 바라는 대로 탑을 너희들의 세계에 끄집어내어 줬다. 하지만 너는 내게 무엇을 해줬지? 너는 내게서 받기만 했을 뿐이잖나.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너를 믿지 않아. 너와 계약을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지 세계를 어찌해 보려는 것이 아니니까.]

그는 남궁의 손목에 채워진 사슬을 가리켰다.

[내가 했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 족쇄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无)의 사슬뿐이고 그걸 가지고 있는 건 너니까.]

“자유를 원한다면 우(无)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말해. 레오릭의 말에 의하면 네가 찾을 수 있다고 하던데.”

[찾을 수는 있지.]

대답하는 란(亂)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하지만 네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무슨 뜻이지?”

[위상의 티켓으로 그곳에 가봤다고 했었지? 녀석이 봉인되어 있던 장소가 어디더냐.]

“란의 둥지.”

[그래. 맞다. 그 이름 그대로 녀석이 있는 곳은 나의 보금자리지. 그러니 내가 찾지 못할 리 없지.]

“그런데? 문제가 뭐지?”

[문제는 그곳이 나의 둥지라는 것이지. 너도 알다시피 우(无)가 변곡의 중심이라면 나는 순리의 중심이자 위상들의 시작이니까. 그곳은 소위 위상의 힘으로 가득하다.]

“위상의 힘…….”

[그렇기 때문에 위상의 허락이 없거나 위상의 힘이 없는 자는 그 둥지에서 살아남지 못해.]

“…….”

[뭐, 그러니 반대되는 힘을 가진 우(无)를 가두기에 아주 완벽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남궁은 그의 말에 살짝 표정을 굳혔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곳에 갈 수 있지?”

[간단하다. 날 풀어주고 내 계시자가 되면 된다. 일곱 뱀따위 네 발아래 굽실거리게 해주지.]

“그 말을 들으니 확신이 가는군.”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인걸.]

“넌 절대로 꺼내줘서는 안 될 놈이야.”

란(亂)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흔들렸다.

어쩐지 남궁의 대답에 웃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란이여, 쓸데없는 말장난은 이제 그만두는 게 어때. 그곳에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네가 알고 있다는 걸 안다.]

레오릭이 둘 사이에 팽팽하게 이어지는 긴장감을 뚫고 대답했다.

[재미없는 녀석.]

란(亂)은 시시하다는 듯 손을 저으며 레오릭을 바라봤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일곱 뱀의 주인에게 둥지로 갈 수 있도록 부탁하는 것이겠지. 위상의 허가가 있다면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까.]

“여전히 말을 돌리는군. 그걸론 부족하다는 건 나도 알 수 있어.”

[어째서지?]

“내가 둥지에 가는 이유는 우(无)의 힘을 사용하기 위함이다. 단순히 둥지를 구경하기 위함이 아냐.”

남궁은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를 봉인하고 있는 힘에 필적한 상태가 돼야 할 터. 둥지에 간신히 들어가는 티켓이나 파는 현재의 위상들이 과연 그럴 만한 힘이 있을까?”

[과연. 거저 회귀를 한 건 아니군. 눈치가 빨라.]

“네가 준비한 답은?”

[답은 이미 얘기했잖느냐. 위상의 힘을 가지면 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계시자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싫다면.]

“싫다면?”

[네 몸에 위상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게 되면 잠깐 동안이지만 위상의 힘을 쓸 수 있게 되지.]

“위상을…… 강신시킨다는 말인가?”

남궁은 그의 말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맞아. 만신전의 신전처럼 위상이 직접 세상에 힘을 발휘하는 강림보다 더 확실한 것이지.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야. 너희 인간들도 그런 행위를 하는 자들이 있잖느냐.]

“신내림을 말하는 거야?”

[그렇지. 역사에 거쳤던 수많은 신들은 일종의 과거 위상들이기도 하니까.]

“…….”

생각지 못한 그의 말에 남궁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의 육체가 혈맥술로 단련되어 있다 한들 신을 몸 안에 담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상태로 강신을 하는 건 자살행위겠지. 인간의 작은 그릇으로 위상을 받아들인다면 1초도 안 돼서 네 몸이 산산조각 날 테니까.]

“그럼?”

[위상보다 더 강한 힘에 도움을 받아야겠지. 그 힘으로 위상의 힘이 폭주하는 것을 제어해야 한다.]

“위상보다 더 강한……? 그런 게 있을 수 있나?”

[있지. 위상들은 저마다 보고를 가지고 그 안에 자신의 보물들을 보관하는 건 알고 있지?]

“알다마다. 요르의 삼독문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래. 그럼 나는 누구지?]

“……?”

순간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란(亂)을 바라보던 남궁의 눈동자가 커졌다.

“……!!!”

[눈치챈 모양이로군. 나 역시 위상이니까. 내 보고 안에는 지금의 위상들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구들이 남아 있다.]

꿀꺽―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카니발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등급의 무구가 뭐지?]

“넘버링이 있는 것들 중에 최상급은 레전더리 등급이겠지.”

란(亂)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아직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위상들이로군. 과거의 기억을 이어받아도 녀석들의 그릇은 아직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남궁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보다 더 상위의 무구는 존재한다. 너는 나의 보고를 찾아 그것을 얻거라. 그 힘을 이용하면 위상을 네 몸에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

“레전더리급의 무구보다 더 위의 것이 있다고?”

[오리진(Origin).]

란(亂)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것은 태초부터 존재한 나와 우(无)가 만든 가장 위대한 신의 무구다.]

* * *

[어떻게 생각해? 태초급의 무구라…… 확실히 탐이 나는 이야기긴 하군.]

탑의 동굴에서 돌아온 레오릭은 생각에 잠긴 남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전해야지. 고민해서 뭐 하겠어.”

[또 혼자서 갈 생각인가?]

“혼자는 아니지. 네가 있잖아. 666,666마리의 마족 머리를 우리 둘이서 모았어. 그런데 고작 던전 공략 하나 못할 리 없지.”

[난 너와는 안 간다.]

“……뭐?”

예상치 못한 레오릭의 대답에 남궁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동료를 모아라. 팔무성이 되었든 아니면 네 주변에 있는 자든 상관없다. 다만 네가 믿을 수 있는 자들로 부대를 꾸려라.]

“그들은 나나 너보다 약해. 도움이 되지 않아.”

[약한 게 아니라 걱정되는 것이겠지. 남궁, 잊지 마라. 전생의 너야말로 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지. 나는 녀석들이 하지 못한 회귀의 퀘스트를 끝냈어.”

[나와 함께니까 가능한 일이었지.]

“그러니까!!”

남궁은 레오릭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에도 네가 도와주면 되잖아.”

[단순히 지옥문에서 쏟아지는 마물을 사냥하는 것이라면 나는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널 도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달라.]

레오릭은 단호했다.

[그곳은 위상의 힘으로 가득하다. 평범한 위상도 아닌 우(无)의 힘이라고. 너는 그를 모르지만 계시자였던 나는 잘 안다.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어째서?”

[우(无)는 변화와 변곡의 힘을 가진 존재다. 그리고 변화는 오직 살아 있는 자의 특권이지.]

레오릭은 말을 이어갔다.

[숨을 쉬는 자만이 우(无)의 요새를 공략할 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힘을 합쳐라. 제렌과 클락, 그들도 예외는 아니다.]

남궁은 어째서 그가 그 둘의 이름을 꺼낸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동료가 죽는 것을 보는 건 끔찍한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만 있는 것도 아니다.]

“피할 생각 없어. 녀석들뿐만 아니라 명훈이나 호준이같이 내가 모은 동료들은 팔무성이 아니더라도 뒤를 맡길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런데 무엇을 걱정하는 거지?]

레오릭의 물음에 남궁은 대답 대신 천천히 성채의 출구를 향해 걸었다.

“레오릭, 넌 잘못 생각하고 있어. 네 말대로 우(无)가 변곡의 중심에 있는 존재라면 살아 있다는 것은 그저 녀석의 힘을 받아들이는 계시자의 조건에 불가해. 놈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우리들 역시 변곡의 힘을 가져야 할 거다.”

[변곡의 힘……? 그게 뭐지?]

“이를테면 살아 있으면서 살아 있지 않은 힘을 가지는 것이겠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변곡이니까.”

[사령술을 말하는 거냐.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뭐, 그러니 네가 요새의 공략의 적임자인 것이겠지만.]

“내가 아냐.”

[……뭐?]

“나는 분명 사자(死者)를 다루는 힘을 가졌지만 그건 일종의 기술일 뿐. 나 스스로에 죽음의 힘이 깃든 것은 아냐.”

[그야 당연하지.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함께할 수 있는 게 말이 되는 소리겠나. 그런 자가 어디에…….]

그때였다.

성채의 출구 끝에 도달한 레오릭은 펼쳐진 광장의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여러 일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꽤나 멋진 풍경에 기뻐서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광장 안에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챤의 아들인 테미르와 다른 일족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소민이었다.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함께하는 자…….]

레오릭은 탑에서 나왔을 때 어째서 남궁의 표정이 어두웠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저 아이가 우(无)의 요새를 공략할 수 있는 열쇠였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남궁은 레오릭을 지나 걸음을 옮겼다.

꽈악―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위험으로부터 지키려 그토록 노력했던 자신의 딸을 이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빠!”

소민이 해맑게 웃으며 남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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