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제렌! 뭐 하는 거야? 보호막의 강도가 약해지잖아!!”
“시끄러워! 네 녀석이 막무가내로 혹한을 뚫고 가느라 그런 거잖아!”
“야, 그러라고 성서를 시전한 거 아냐? 자신만만하던 건 다 구라였냐?”
콰아앙―――!!!
쏟아지는 얼음 가시들을 정면으로 들이받으며 클락이 속도를 더 높였다.
“너처럼 무식하게 다 맞아 가며 뚫는 놈이 어디 있냐? 적어도 좀 피하는 시늉은 해야 할 거 아냐!”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다 어느 세월에 적을 죽이냐!! 이런 건 근성으로 돌파하는 거라고!!”
퍼억―!!!
클락이 【오룡권갑】을 있는 힘껏 바닥에 내리쳤다.
[크에에에에―――!!]
그 순간, 바닥에서 거대한 토룡이 튀어나와 여왕을 덮쳤다.
콰직―! 콰가가가각――!!
하지만 맹렬하게 달려드는 바위 용들도 여왕이 가볍게 손을 젓자 순식간에 얼어붙어 힘을 쓰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콰강!!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얼어붙은 토룡들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며 잔해들이 클락에게 튀었다.
“쳇, 괴물 같은…….”
조각난 파편이 그의 뺨을 날카롭게 베었고 그는 건틀릿으로 뺨을 닦아 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저 정도 냉기라면 네 권갑의 불꽃으로 불가능한 거 아냐? 순식간에 얼어붙을 것 같은데.”
“그렇겠지. 하지만 보주를 부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제렌, 죽기 싫으면 어떻게 해서든 여왕의 공격을 막으라구!”
“결국 내게 맡기는 거잖아.”
제렌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성서를 뒤적였다.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성원은 3개가 끝이다. 지금부터 미풍 지대를 끌 거야. 알아서 잘 피해라. 죽기 싫으면.”
“그럼 넌?”
촤르륵―――
그가 성서의 중간을 펼쳤다.
▶ 성서의 7번째 페이지가 발동 되었습니다.
▶ 여신의 손길이 시전됩니다.
▶ 성서의 소지자에게 5분간 피해를 감소시키는 보호막이 형성됩니다.
미풍 지대가 사라지자 뼛속까지 시릴 정도의 냉기가 스며들었다.
“더럽게 춥네…….”
클락은 몸을 부르르 떨며 찬란한 황금빛으로 감싸인 제렌을 바라봤다.
“이제는 좀 피해라. 알겠지?”
제렌이 그의 등을 밀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콰가가가강―――!!
조금 전 클락에게 했던 말이 무색하게 쏟아지는 얼음 가시들을 정면에서 받아내기 시작했다.
주륵…….
수십 개의 가시 다발이 부서지면서 보호막 안에 있던 제렌의 입가에 핏물이 흘러내렸다.
여신의 손길은 피해를 감소시키는 것이지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공격을 받으면 조금씩이지만 피해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고작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받아낸 여왕의 공격에 내장이 뒤틀릴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줄은 몰랐다.
‘클락 녀석…… 이런 걸 어떻게 맞고 있었던 거야? 괴물은 여왕이 아니라 저 녀석이었군.’
재렌은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아 내며 고개를 저었다.
[감히 왕의 핏줄을 해하려 하다니.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네놈들이 빼앗아 간 왕의 구슬을 내놓아라!!]
“구슬? 미안하지만 그게 뭔지 우린 몰라. 하지만 네가 우리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알지.”
[닥쳐라……!! 왕을 죽이고 구슬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이제 우리의 아이마저 죽이려 드는구나. 그래, 좋다. 잘 듣거라!! 이번 카니발은 오늘로서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둘 순 없지.”
제렌이 바닥에 손을 가져가자 그의 몸을 두르고 있던 보호막이 방패처럼 펼쳐지며 방벽을 이뤘다.
“크윽……!!”
보호막이 사라지자 새하얀 입김이 터져 나왔다.
“클락!! 얼어 죽겠다! 서둘러!!”
“알고 있어!!”
쾅―! 쾅―!! 쾅――!!!
클락이 건틀릿을 연달아 부딪혔다.
그러자 소환된 화룡들이 하나둘 그의 몸 안에 스며들었다.
▶ 권갑의 모든 화룡을 흡수하였습니다.
▶ 화(火)속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 화룡의 열기가 당신의 내장을 태우기 시작합니다. 지속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흐아아아아아!!!”
그의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키릭……! 키릭……!]
보주 주위에 소환된 아이스 골렘들이 클락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리 비켜!!”
클락의 외침과 동시에 입김 대신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룡권갑】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그의 주먹이 골렘을 때리자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골렘들이 부서지며 녹아 내렸다.
▶ 주의하십시오. 화룡의 열기가 당신의 내장을 태우기 시작합니다.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은 굳이 경고를 듣지 않아도 지금 자신의 몸이 얼마나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크아아아―!!”
눈보라 속에서 두 사람의 포효만이 울렸다.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싸워왔다.
어찌 보면 일반인들보다 더 처절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신들을 내몰아면서 말이다.
‘우리는 계시자니까.’
조금은 재수 없어 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던 것은 계시자란 이름의 무게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비록 뒤늦게 선택받았지만 카니발이 시작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봐온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힘을 감사했다.
“클락……!!!!”
콰가가가가강―――!!
방벽이 부서지며 얼음 가시들이 제렌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가시들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큭.”
기둥처럼 거대한 얼음 가시들을 움켜잡으며 그가 비틀거렸다.
[지독한 놈.]
여왕은 물러서지 않는 제렌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크아아아아아――!!”
그 순간 골렘들을 쓰러뜨린 클락이 보주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끝이다!!”
오행무(五行武).
응축된 오러가 불꽃을 뿜어내는 권갑 사이로 스며들었다.
콰아아앙―――!!!
공기가 폭발하며 그 사이로 화룡의 불꽃이 보주를 때렸다.
시커먼 연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쿨럭, 쿨럭……!!”
클락은 얼음 가시를 끌어안은 채 기절한 제렌을 부축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야!! 정신 차려!! 다 끝났다고!!”
휘몰아치던 혹한이 멈췄다는 것을 깨달은 클락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는 품 안에서 포션을 꺼내 제렌의 입에 밀어 넣으며 전선을 빠져 나가려 했다.
[하찮은 짓을 했구나.]
하지만 연기가 걷히자 놀랍게도 여왕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클락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보주가…… 멀쩡하잖아?”
금이 간 상태였지만 그건 자신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설마 내 공격이 박효주의 단검보다 못하다는 건가?’
꿀꺽―
클락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여왕을 바라봤다.
카릉…….
그 순간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그가 고개를 들자 여왕의 머리 위에 새하얀 얼음으로 된 천칭이 떠있었다.
거의 기울어져 있는 천칭의 높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클락이 그것을 바라봤다.
[천칭의 빈자리가 딱 두 개로구나. 기뻐해도 좋다. 너희들의 목숨으로 천칭을 완성시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죽게 될 테니.]
“……뭐?”
▶ 가이나스의 얼음 천칭이 저울질을 시작합니다.
▶ 혹한 지대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목숨의 무게를 측정합니다.
끼릭…….
천칭의 기울기가 조금 더 기울어지려는 순간 클락은 제렌의 호흡이 서서히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야!! 정신 차려!!!”
그는 다급히 소리쳤다.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내게 맞서려 하다니. 너희들의 목숨을 저승에 있는 왕에게 바치겠노라.]
쿠그그그……!!
여왕이 손가락을 튕기자 클락의 발아래에서 날카로운 얼음 가시들이 튀어나왔다.
▶ 가이나스가 얼음 감옥을 시전합니다.
“……!!”
도망치려던 순간 가시들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거라.]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여왕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퍼억―!!
그때였다.
여왕의 이마에 단검이 박혔다.
“……!!!”
퍼엉―!! 콰가가강――!!
동시에 단검이 폭발하며 그녀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끼릭…… 끼리릭…….
그녀가 쓰러지자 기울어져 있던 천칭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두 사람의 앞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박효주였다. 그녀의 등장도 놀라웠지만 클락은 여왕에게 유효타를 날린 것에 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한 거지?’
계시자인 자신보다 일반인이 더 강하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제가 있으니까죠.”
▶ 군신화 Lv 8가 발동되었습니다.
“네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녀는 네가 있기 전에 이미 보주에 금을 냈어. 계시자인 내가 전력으로 내리쳐도 안 된 걸 말이야.”
클락은 자신을 가둔 얼음 감옥을 단번에 부쉈다.
“당연하죠. 그쪽은 둘이고 이쪽은 수백 명인데요.”
“……뭐?”
“저 단검.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소민이의 강화 마법이 걸린 거예요. 입고 있는 옷은 덕수 할아버지가 만든 보호구고 장갑에 달려 있는 장치는 사인 형이 만든…….”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너희 협회에서 만든 무구들이 우리 계시자의 힘을 뛰어넘는다는 말이냐.”
“무구의 차이가 아냐.”
그 순간 박효주가 말했다.
“고등학생도 아는 걸 계시자인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단순히 영웅 놀이를 하는 것과 다름없지. 그러니 이제 뒤에 가서 보기나 해요.”
촤르륵……!
그녀가 단검을 흩뿌리자 수십 다발의 단검이 마치 날개처럼 그녀의 뒤에 떠올랐다.
“우리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싸우는 동료입니다. 남궁씨는 그것을 알기에 우리에게 이 전장을 맡긴 거고요.”
“계시자인 우리의 공격도 먹히지 않는데 일반인인 당신들이 여왕을 잡을 수 있다고?”
그 순간 그녀는 금이 간 보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증명했을 텐데?”
“…….”
클락은 그녀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감히…… 천칭에 담을 목숨들이 제 발로 찾아왔구나!!]
쿠그그그그…….
이마에 단검이 박힌 채로 금이 간 얼굴이 된 여왕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검은 구름이 그들의 머리 위에 드리워졌고 수백 개의 얼음 가시들이 나타났다.
“미친…….”
클락은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얼음 세례에 온몸이 굳어 버린 듯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펑―! 펑―! 펑―!!
그 순간 새하얀 화살이 떨어지는 얼음 가시들을 꿰뚫었다.
“누구……?”
육안으로는 정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그 거리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 빛을 내뿜는 활은 선명하게 보였다.
“칫, 멋있는 건 혼자 다 한다니까.”
그 활의 주인이 누군지 잘 알고 있는 성우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파앗―!!
박효주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폭죽처럼, 그녀의 머리 위로 비전탄막이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