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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화 (215/270)

215화

“지금이야!!!”

강호준의 외침과 동시에 박효주가 가이나스의 뒤편에 있는 커다란 보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것만 부수면……!!’

그녀는 협회를 찾아온 록산느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시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

테이머로서는 뛰어나지만 정령력이 없던 그녀는 미안한 얘기지만 박효주가 보기에도 드루이드로서 부족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궁도 그녀에게 드루이드를 포기하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협회를 찾아온 그녀에게서 박효주는 지금껏 보지 못한 엄청난 정령력을 느꼈다.

화아아악……!!

그리고 위대한 드루이드의 존재는 정령력을 쓰는 자신의 힘도 강화시켰다.

“하압!!!”

염동력으로 띄운 단검의 숫자는 무려 열다섯.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검을 감싸고 있는 날카로운 바람들이었다.

‘셀러맨더의 버프가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정령력이 강화되었어.’

그녀는 록산느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의 보스보다 더 강력한 정령력을 보유하고 있는 그녀는 두말할 것 없는 최고의 드루이드였다.

‘이긴다.’

박효주는 눈꽃 여왕의 보주를 노리며 단검들을 날렸다.

펑! 펑! 퍼벙!!

여왕이 뿌려대는 눈보라를 뚫고 단검들이 보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카앙―!!

열다섯 개의 단검 중 오직 두 개의 단검이 보주에 닿았다.

상급 바람의 정령의 힘을 머금고 있는 단검들을 대부분 막은 여왕의 혹한이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혹한을 뚫고 두 개의 단검을 명중시킨 박효주의 힘이 대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두 개의 단검 중 하나가 보주에 정확히 박혔다는 것이었다.

쩌적…….

박힌 단검 주위로 균열이 생겨났다.

[…… 안 돼!!!]

그 순간 여왕이 고개를 돌리며 박효주를 향해 소리쳤다.

“……저게 뭐지?”

하지만 놀란 것은 여왕만이 아니었다.

보주에 생긴 균열 사이로 보이는 무언가에 박효주의 눈이 커졌다.

[모두…… 죽여 버리겠다!!!]

▶ 광폭화가 진행됩니다.

▶ 가이나스의 혹한이 강화됩니다.

▶ 가이나스의 모든 능력치가 1.5배 상승합니다.

▶ 여왕을 제외한 혹한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능력이 더욱더 감소합니다.

“큭?!”

귀를 때리는 알림과 동시에 박효주는 순식간에 자신의 두 다리가 얼어붙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카앙―!!

황급히 단검으로 얼음을 깨며 그녀는 보주에서 물러섰다.

“헉, 헉…….”

“크아악!!”

정령으로 보호 받고 있는 그녀조차 간신히 눈보라 속에서 버티는 정도였으니 아무리 속성의를 입었다 하더라도 부대원들의 타격은 심각했다.

“모두 뒤로 빠져!! 나 혼자 상대한다!!”

“팀장님, 더 이상 진입하는 건 무리입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두 번은 없어. 눈꽃 여왕의 보주를 부수려면 그에 상응하는 정령력이 필요해. 그녀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록산느를 제외하고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하지만…….”

“피해!!”

박효주는 자신의 옆에 있던 부관을 강하게 밀쳤다.

콰가가강―――!!

그가 있었던 자리에 날카로운 얼음 가시들이 떨어지며 바닥에 꽂혔다.

눈꽃은 어느새 가시들로 변해 있었고 주위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그때였다.

혹한을 뚫고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 성서의 3번째 페이지가 발동되었습니다.

▶ 미풍 지대가 시전 됩니다.

▶ 가이나스의 혹한의 효과가 감소됩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동시에 그녀의 다리를 옭아매던 얼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제렌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협회에서 한 번 뵌 적 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

박효주는 만덕수의 공방에서 무구를 받으러 왔던 그를 떠올렸다.

“제렌, 인사는 나중에 하고 집중하는 게 어때? 꼬마가 곧 이곳에 올 거라고.”

“꼬마요?”

“성우라고 했던가요? 무마이 던전에 있던 군신화를 쓰던 아이 말입니다.”

제렌의 옆에서 클락이 오룡권갑의 끈을 조이며 말했다.

“성우를 아시나요?”

“네, 라챠프 길드에서 지원 요청을 했었거든요. 제가 아닌 클락에게 부탁을 하다니. 좀 의아한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렌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제렌, 네 성서도 대단하지만, 성우의 군신화를 겪어보면 놀랄걸. 완전히 다른 거니까. 성서는 보호의 개념이지만 군신화는 강화의 개념이니까.”

“그래서 온 거잖아. 무마이 던전을 공략하고 난 뒤에 네가 하도 극찬을 하니 궁금하지 않겠나.”

“성우가…… 던전 공략에 성공했나 보군요?”

“제가 있는데 설마 실패하겠습니까. 그리고 라챠프 길드에서 아무래도 그 아이의 힘을 눈여겨본 모양입니다. 던전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무기가 건틀릿이었거든요. 일부러 저를 영입한 걸 테죠.”

클락이 씨익 웃었다.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말이겠죠.”

콰앙―!!!

클락이 양쪽 건틀릿을 서로 부딪히며 말했다.

“꼬마가 오기 전 까지 몸 좀 풀고 있을까?”

[카아아아―――!!!]

권갑 안에 응축되었던 오행기(五行氣)가 폭발하면서 그의 건틀렛 사이로 4마리의 화룡들이 나타났다.

“후웁…….”

소환된 화룡 중 한 마리를 클락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

생각지도 못한 그의 행동에 박효주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후우…….”

새하얀 입김과 함께 전신을 타고 드는 열기에 클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2분인가……? 대단하네요. 이런 눈보라 속에서 싸웠다니.”

“아닙니다.”

“저 보주를 부수면 되는 거죠?”

“그렇긴 한데…….”

클락의 물음에 박효주는 어쩐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보주 안에 아이가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그녀의 말에 두 사람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주를 부수는 게 공략이라고 해도…… 만약 잘못하면 그 안에 있는 아이의 생명도 위험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저들은 마물이라고요.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렵다면 제가 하죠. 저도 그쪽과 마찬가지로 속성 공격을 할 수 있으니까.”

“잠깐만요! 지금 여왕은 광폭화 상태에요. 다시 저 혹한 안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라고요!”

“그건 일반인들에게나 그렇겠지.”

“……네?”

“염동력이나 정령술이 확실히 희귀한 힘이긴 하지만 계시자의 힘에 비할 바는 아니죠. 군신화의 힘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 아이가 있어야 공략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요.”

▶ 성서의 4번째 페이지가 발동되었습니다.

▶ 신속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 주위의 모든 우호적인 존재의 속도를 향상시킵니다.

▶ 성서의 2번째 페이지가 발동되었습니다.

▶ 신벌의 철퇴가 내려옵니다.

▶ 주위의 모든 우호적인 존재의 공격력을 향상시킵니다.

“…….”

박효주는 성서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저희들에게 맡기시죠.”

그녀를 뒤로 한 채 자신만만한 제렌이 클락의 어깨를 툭 치며 고갯짓을 했다.

“생각해보면 요즘 계시자들보다 협회의 능력자들이 마물을 더 많이 사냥하고 있단 말이지. 웃긴 상황 아닙니까? 마물을 막기 위해 뽑힌 자들이 오히려 몸을 사리고 있다니 말야.”

스윽―.

제렌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콰아아앙――!!!

순간 신속의 바람이 두 사람의 주위를 감싸자 쏟아지는 얼음 가시를 뚫고 여왕의 보주가 있는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계시자의 힘은 엄청나네요. 조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전멸 위기였는데…… 두 사람이 합류한 것만으로 여왕의 혹한이 이렇게 힘을 잃다니.”

조금 전 얼음 가시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참악의 부관이 박효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제렌과 클락이 등장하자마자 전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좋지 않아.”

“네? 뭐가 말씀이십니까?”

“계시자의 힘이 대단한 거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야. 확실히 그들이 합류하면 보스를 사냥하는데 수월하겠지. 그런데 그건 누구보다 남궁 씨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으음…… 그런데요?”

“남궁 씨의 말이라면 계시자들이라 하더라도 쉽게 거절할 순 없을 거야. 더욱이 마물을 사냥하는 것이라면 말이지. 그런데 어째서 그들에게 맡기지 않고 계속해서 문의 보스를 사냥하는 걸 우리에게 맡기는 걸까?”

“뭔가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저 둘은 계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다른 계시자들이 사냥을 피하는 게 아냐.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지.”

박효주는 카니발이 시작된 이후 가장 오랫동안 남궁을 곁에서 봐 온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누구보다 그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글쎄요. 기회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요? 저 두 사람이 없었다면 사실 전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관은 그녀의 말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계시자를 부르지 않았다고 하지만 록산느 님이 오셨잖습니까.”

“그건 달라.”

부관의 말에 박효주는 고개를 저었다.

드루이드로서 자격 미달이었던 록산느의 고민을 부관이 알 리 없었다.

그렇기에 힘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단순히 계시자가 사냥에 참가한 것과는 달랐다.

‘남궁 씨는 문이 열릴 때마다 단순히 쉽게 공략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모으는 게 아냐. 만약 그렇다면 직접 사냥을 하는 게 빠르겠지.“

그녀는 생각했다.

최명훈, 강호준 그리고 이제 록산느와 자신에게 돌아온 이 기회를 지금 도착한 두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부관의 말대로 자신이 이끌었던 순간 부대원들은 전멸의 위기에 놓였었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불쾌감에 그녀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고 싶지 않은 거죠. 남이 아닌 내가 중심에 서고 싶은 마음 말이에요.”

그때였다.

치지지지직…… ·.

일그러진 공간의 틈 속에서 성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카엘도 없는데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그의 모습에 박효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저도 그랬거든요. 지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덕분에 새로운 능력도 얻었습니다.”

치직…… 치지직…….

성우가 새롭게 얻은 건틀렛과 함께 주먹을 쥐자 그의 주위로 검은 번개가 파즈즉……! 하며 튀어 올랐다.

▶ 군신화 Lv8가 발동되었습니다.

▶ 반경 350m 내게 있는 모든 우호적인 존재들의 신체 능력을 상승시킵니다.

▶ 군신화의 효과는 거절할 수 있습니다.

‘만신전 때만 해도 군신화의 레벨이 4밖에 안 되었었는데…… 언제 이렇게…….’

박효주는 제렌의 성서와는 다르게 마치 불꽃처럼 끓어 오르는 힘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로 보고만 있지 않을 거죠?”

“물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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