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왜…… 왜……!!! 말리지 않았던거야!!”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남궁은 【드루이드의 눈물】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울고 있는 록산느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쿠후란의 의지였다.”
단지 사실을 담담히 전할 뿐.
“웃기지 마……!! 네가 강요한 것이겠지!!!”
“너도 알 텐데. 그 눈물은 드루이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강압적인 죽음으로 절대로 얻을 수 없어.”
남궁은 빛나는 보옥을 바라봤다.
“드루이드의 눈물을 제련하는 방법은 2가지. 드루이드가 스스로 위커맨의 제물이 되어 불탄 시체에서 정수를 빼내는 것과 스스로 원하여 자연으로 돌아갈 때 생성 되는 것.”
“…….”
“그리고 그 두 가지 방법 중 무엇이 더 순도 높은 눈물로 완성 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꽈악-
록산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생에 그는 위커맨의 제물이 되어 드루이드의 눈물을 남겼다. 그리고 그 눈물을 취한 것은 당연히 너였고. 문에서 나오는 괴물들을 막기 위해서 너의 힘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남궁은 그 당시의 풍경을 떠올렸다.
“하지만 전생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 제물이 되었어. 네가 눈물을 받지 않길 바랐던 거겠지. 어째서일까?”
“모르지. 전생을 살아보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알아?”
“아니, 너는 알걸. 전생은 지금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인류는 힘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쿠후란은 반대를 했었다. 왜?”
록산느의 눈빛이 떨렸다.
“……드루이드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겠지.”
“맞아. 그 당시 너는 세계를 구원한다는 이유로 그가 가장 싫어하는 짓을 했어.”
살인(殺人).
그녀는 그 당시 한 사람을 죽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 한 사람을 죽인 것이 그리 큰일일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을 숭배하는 드루이드에게는 크나큰 금기를 깬 것이었다.
“나는 이제 화신의 시험에 도전 할 것이다. 남은 화신은 모두 여섯. 그들은 모두 지옥문의 보스이기도 하다.”
“……뭐?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겠다고?”
“그래. 내가 만약 놈들을 모두 죽일 수 있다면…… 그만큼 열리게 될 문의 수도 줄어들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문의 순서도 바뀌게 될 것이다.”
록산느는 충격적인 그의 말에 쿠후란의 죽음도 잠시 잊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봤다.
“아마도 내 예상이 맞다면 다음 문의 유력한 마물은 가이나스일 것이다.”
“……가이나스?”
“우레왕의 아내이자 눈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괴물이지. 그녀가 사용하는 혹한 지대는 인간이 버틸 수 없는 냉기로 가득해. 아마도 그녀가 강림하게 된다면 최소한 도시 몇 개는 포기해야겠지.”
꿀꺽-
록산느는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얼음의 천칭이다. 한쪽에는 얼음덩이가 놓여 있는 그 천칭은 혹한 지대 안에 갇힌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 갈수록 반대쪽에 무게가 기울어져.”
남궁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까닥거렸다.
“그리고 인간의 목숨이 담긴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게 되면 지대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까지 모두 죽는다.”
“미친…….”
록산느는 끔찍한 그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여왕의 술법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당연하지만 자연계의 힘이다. 혹한 지대는 말 그대로 어떠한 생명체도 살 수 없는 극한의 지역. 그곳에 생명을 피울 수 있다면…… 그녀의 힘도 약화되지.”
“드루이드만이 할 수 있는 것이로군.”
“맞아.”
“하지만 이상한걸. 당신 얘기만 들으면 쿠후란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더라도 하라고 했을 것 같은데.”
“여왕에게 자식이 한 명 있다. 우레왕의 핏줄이기도 한 유일한 아들.”
“……마물 따위가?”
남궁은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마물 따위라……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너는 탑의 사람들이나 대리자 일족을 보고 느끼지 않았나? 그들 역시 하나의 일족이고 자아를 가진 자들이야. 마물 역시 마찬가지다.”
일전에 소환되었던 마족이라든지 살기 위해 탑을 도망쳐 나온 악마족까지…….
그들을 단순히 괴물로 단정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 마물의 핏줄이 왜?”
“네가 죽였거든.”
“……내가?”
“그 아이는 우레왕의 힘과 가이나스의 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번개와 눈.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마물보다 극상의 자연계의 힘을 가졌지.”
“설마 내가 욕심에 눈이 멀어 그 아이를 죽였다는 말이야? 헛소리 지껄이지 마!!”
“그래, 그걸 누구도 욕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가이나스의 아이를 죽일 수 있는 자도 너뿐이었으니까.”
“그럼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굳이 문제라면 아이를 풀어준다면 스스로 문을 닫고 사라지겠다고 한 여왕의 앞에서 그를 죽인 게 문제겠지.”
“뭐?”
“일곱 뱀의 주인의 계시자였던 최휘수는 눈꽃의 여왕 다음 나타날 마물에 대해서 계시를 받았다. 놈은 재앙이라 불릴 강력한 뱀의 화신, 우로보로스였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를 죽이기 위해서는 꼬리와 머리를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평범한 공격으로는 불가능했고, 오직 가이나스의 냉기만이 놈을 얼려 잘라낼 수 있다고 했지.”
“여왕의 냉기를 얻기 위해…… 그녀의 아이를 내가 죽였다는 건가?”
“맞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가이나스가 사라진다 한들 그다음 마물을 막지 못하면 인류가 끝나는 건 매한가지니까.”
남궁은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힘든 선택이었지만 강요받은 것이니까. 쿠후란도 그걸 알기에 너를 탓하지 않았다. 단지 드루이드의 신념을 잊지 말라는 유언과 그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었겠지.”
“내가…… 살인을…….”
비록 지금의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충격이었던 듯 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내가 네게 이 일을 얘기한 건 전생의 일을 족쇄처럼 채우라는 뜻이 아냐.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보라는 거다. 쿠후란이 직접 네게 드루이드의 눈물을 주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겠어?”
남궁은 그녀에게 말했다.
“드루이드로서 살아가라는 거다. 나는 우로보로스를 잡을 것이다. 그러니 다음 문을 걱정해서 원치 않는 살인을 할 필요 없어. 너는 그저 쿠후란이 준 드루이드의 힘으로 가이나스를 막으면 된다.”
주르륵…….
그때였다.
록산느의 뺨을 타고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물 한 방울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는 네게 드루이드를 포기하라 했지만, 쿠후란은 네가 자신의 유지를 받들길 바랄 거다. 주어진 힘에 도망치는 것만이 답은 아니야.”
남궁은 쓴웃음을 지었다.
“록산느. 드루이드는 영혼이 강할수록 강해진다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네게 강력한 힘을 줄 것이다. 쿠후란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강한 존재였으니까.”
“당연한 소리.”
록산느는 입술을 삐쭉이며 【드루이드의 눈물】을 품 안에 넣었다.
“당신이 그런 말 안 해도 쿠후란은 최고였어. 현실의 물건 중에 카니발에서 레전더리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어?”
“그렇지.”
“박효주 씨와 소민이를 불러주겠어? 드루이드의 눈물을 몸 안에 갈무리하려면 나 혼자서는 불가능해. 강력한 자연계의 힘이 필요하니까.”
아이러니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녀보다 정령을 가장 잘 다루는 박효주와 요정족의 계약자인 소민은 그녀보다 더 강력한 자연계의 힘을 보유한 자들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닌데 소민이가 내 욕을 해도 잘 받아줘라.”
“음?”
“곧 팔각전쟁을 마무리 지을 거거든.”
“아아…….”
록산느는 그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가시밭길이로군.”
“부모가 된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록산느는 그의 모습에서 쿠후란이 겹쳐 보였다.
“부모라…….”
록산느는 뺨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겨라. 화신이든 뭐든 간에 모조리 다 죽여 버리고 와. 당신이 없는 동안에 여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막을 테니까.”
“지금까지 모습 중 제일 마음에 드는군.”
남궁은 결의에 찬 그녀의 모습에 자신이 없어도 앞으로의 카니발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제 남은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 * *
“네가 날 찾을 줄은 몰랐는데. 일전에 괴상한 악마 놈이 찾아 와서 네 이름을 나불거리기에 머리통을 날려주긴 했다만.”
질겅질겅-
“머리통이 날아가도 살아나는 걸 보고 악마가 맞긴 하더군. 그런 놈을 왜 알고 있는 게냐.”
대충 손으로 달라붙은 파리를 치우며 육포를 씹어 먹던 노인이 남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다름 아닌 남궁의 아버지인 남기철이었다.
“그런 거 말고 제대로 된 걸 좀 드시죠.”
“네가 고분고분 말하는 걸 보니 부탁이 있어서 왔나 보구나.”
“……전처럼 할까요.”
“클클, 뭐. 이것도 나쁘진 않지.”
남기철은 웃으며 남궁이 가져온 음식들을 살폈다.
뜨드득-
꿀꺽- 꿀꺽-
“크, 좋군. 이게 흔해 보여도 여기선 구하기 어려워서 말이야.”
그는 음식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음식들 중에서 가장 먼저 소주병을 꺼내 순식간에 들이켰다.
“며칠이나 있었던 겁니까.”
“글쎄, 악마 녀석을 보내고 난 뒤부터 계속?”
“……죽으려고 환장했군요.”
남궁이 그를 찾은 곳은 사하라 사막에 생성된 던전의 입구였다.
[말했잖습니까. 저 인간, 인간이 아니라고요.]
“뭐야, 악마 녀석. 너도 함께 있었던 거냐. 인간에게 인간이 아니라니. 그것보다 멍청한 소리도 없군.”
수척해진 남기철은 들고 있던 소주병을 대충 던져 버린 뒤 남아 있는 음식을 입안으로 쑤셔 넣으며 말했다.
[쨌든…… 블랙 루트가 열린 곳이 어디냐고 물으셔서 찾아 드렸으니 이제 저는 갑니다. 제가 아무리 욕심이 있어도 저 노인네랑은 엮이기 싫거든요.]
카를로스는 남기철이 내뿜는 기운이 싫은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날갯짓을 하며 사라졌다.
“아직 멀었군. 블랙 루트를 먼저 겪어봤으면서 그 기운을 감지하지 못해 저런 놈에게 부탁한 거냐.”
“감지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감지하지 않으려고 한 겁니다.”
“그래?”
남기철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잘했다.”
“…….”
“네가 혼자 찾아왔다면 오히려 널 혼냈을지도 모르지. 이 힘을 남발하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테니까.”
“그걸 알면서 이런 짓을 합니까.”
“이거 필요하지 않느냐.”
남기철이 남궁에게 건넨 것은 작은 단검이었다.
“일곱 뱀의 화신 중에 하나, 히드라를 죽일 수 있는 검이다. 뭐…… 이걸 쓴다고 정말로 죽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건 또 어떻게 구한 겁니까. 아니, 그보다 일곱 뱀의 화신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 겁니까?”
“악마가 하는 말 못 들었냐. 인간이 아니래잖냐.”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믿으라는 겁니까.”
남궁은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듯 입맛을 다셨다.
“이해하려 하지도 말고 생각하려 하지도 마라. 괜히 블랙 루트를 열수 있는 게 아니니까. 부탁이나 들어보마. 아들 녀석이 가지고 온 밥값은 해야지.”
“……영혼들을 강화시킬 방법이 필요합니다. 정확히는 전쟁 영웅들을 통해 죽은 계시자들을 영혼 병사로 만들 생각입니다.”
“죽은 계시자들이라…… 만신전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그놈들?”
“맞습니다.”
“쉽지 않을 텐데. 사역을 하려면 일단 우호적인 영혼만 가능한 것 아닌가?”
“그래서 영혼을 소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 둘뿐만 아니라 전쟁 영웅들도 모두 소환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거로군.”
남기철은 마지막 남은 술병을 뜯어 단숨에 마시며 말했다.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면 블랙 루트만큼 완벽한 장소도 없으니까.”
촤르륵-
그 순간, 남궁은 기다렸다는 듯 전대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꺼내어 그의 앞에 쏟았다.
“온 세상 영웅들을 여기 다 모였군.”
하나같이 박물관에 있어야 할 유물들이 사막의 모래에 덩그러니 떨어지자 남기철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시작하자.”
퉁-
그가 비워 버린 술병을 던지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