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8/270)

188화

[……뭐? 디센 협곡에서 비룡족이 습격을 받았다고?]

“도대체 누가? 야차 일족도 지금 호수에 집결하고 있는데…… 그들을 공격할 병력이 더 있단 말인가?”

나가 일족의 여왕은 갑작스러운 보고에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서둘러 그곳을 비추거라!]

여왕의 명령에 술사들이 황급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연합의 막사 안에 있는 거대한 구슬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구슬 속에서 검은 연기를 뚫고 들려오는 비룡족의 비명 소리에 여왕은 인상을 찡그렸다.

“저자들은…… 비룡족이잖아? 어째서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는 거지?”

해인 일족의 수장인 쏘론은 거칠게 자라 있는 턱수염을 쓸어 넘기며 물었다.

[같은 편이 아니다. 저들 중 절반은 이미 죽은 자들이야. 시체를 일으켜 싸우는 자가 있는 모양이다.]

“시체를 일으키는 자? 사령술을 쓰는 자라면…….”

[역시 그 남자밖에 없겠지.]

그리고 여왕의 우려대로 검은 연기 속에서 비룡족의 목에 박힌 검을 뽑아내는 남궁의 모습이 보였다.

[……!!]

순간 마치 자신을 보는 듯 남궁이 고개를 돌리자 여왕은 깜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여전히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로군! 호수 위에 드래곤이 날고 있기에 대단한 일이라도 벌일 줄 알았는데…… 고작 한 명에게 당하기나 하고.”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쏘론, 당신도 알겠지만 지금 저곳에 있는 인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물론, 잘 알고 있지. 그가 일곱 번째 뱀의 주인의 계시자라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회귀자지. 조심하는 게 좋아. 그가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니까. 그건 우리에게 분명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거야? 아무리 회귀자라 한들 그때그때 변하는 전쟁의 수를 모두 읽은 순 없다. 지금 당장 협곡으로 가서 놈의 뒤를 치면…….”

여왕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뭐?”

[호수의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이곳을 버리고 굳이 협곡으로 가서 전투를 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당연하지! 지금 비룡족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상공에 있던 드래곤이 후위로 돌아갔어. 아마도 비룡족의 술사가 다시 불러들인 거겠지. 그럼 전력은 충분하지 않을까? 만에 하나 우리가 병력을 뺀 순간을 노려 적들이 공격해 온다면 우리는 오히려 더 중요한 거점을 잃게 되고 만다.]

“크흠……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협곡전을 비룡족에게 맡기자는 뜻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가 술사에게 마법 지원을 시킬 거야. 아무리 계시자라지만 설마 드래곤이 있는데 쉽게 지겠어?]

여왕의 목소리에서 쏘론은 미묘한 차이를 발견했다.

“이길 거라는 말인데 어째 내 귀에는 반대로 들리지? 마치 드래곤이 죽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야.”

[원한다면 지원을 가는 걸 말리진 않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호수를 지키는 것이야. 그것만 잘해도 놈들에게 절대 지지 않아.]

“어쩔 수 없지. 해인 일족은 물 위에서 강하니까.”

[결정되었군.]

나가 여왕과 쏘론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니발의 계시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협력하면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 싸워야 하는 모순된 관계인 것처럼,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합을 하고 있으나 팔각전쟁의 큰 틀에서는 결국 서로 적일 뿐.

[술사들에게 마법 지원을 준비하라 일러라.]

[하오나…… 협곡까지는 거리가 있어 대규모 살상 마법밖에 닿지 않습니다. 정교한 공격을 할 수 없게 되면 아군도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상관없다. 대를 위해서라면 소를 희생하기도 해야 하는 법. 대신 일곱 뱀의 계시자를 확실히 잡을 수 있도록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라.]

[아, 알겠습니다!!]

여왕의 명령에 술사는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는 막사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에 그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아주 작은 불협화음이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말이다.

* * *

“제길……!! 적의 수가 더 늘어나잖아!! 드래곤은 아직 멀었느냐!!”

“이제 곧 다 왔습니다!!”

“절대로 죽지 마라!! 너희들의 죽음이 적을 늘린다는 것을 명심하라!!”

무칸의 외침에 병사들은 함성을 터뜨렸지만, 실제로 영혼 지대에서 소환된 언데드 병사를 제대로 상대하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무하드의 친위대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한두 명에 불과했던 언데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어느새 언데드가 된 비룡족 전사는 그들의 3분의 1이나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3분…….’

불어나기 시작하는 영혼 지대의 병사들은 비룡족들에게 절망을 심어주기 충분했지만, 사실 남궁은 초조한 상태였다.

3분이 지나면 언데드 병사들이 사라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비룡족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것.

남궁은 좀 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놈을 막아!!”

무하드의 외침에 무명이 대답했다.

[저 젊은 비룡족은 그래도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군. 자신의 친위대로 방벽을 만들어 드래곤 테이머를 보호하고 있으니 말이야.]

여전히 아스의 포위망을 뚫지 못한 상태였지만, 반대로 무하드 역시 영혼 병사들 중 가장 강한 아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가 아스를 막아준 덕분에 친위대는 빠른 속도로 병력 안을 파고들어 간신히 마샤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래. 확실히 녀석은 다른 비룡족들에 비해 낫지. 하지만 내가 설마 저런 애송이의 친위대 때문에 테이머를 그냥 둔다고 정말 생각하는 건 아니지?”

[흠?]

무명이 되물으려는 순간,

[키에에에에-!!!]

포효와 함께 갑작스럽게 그들의 머리 위로 어둠이 짙게 깔렸다.

“왔다.”

“왔다!!”

같은 말이었지만 차분한 남궁의 어조와 달리 드래곤을 본 비룡족의 전사들은 흥분 가득한 목소리였다.

“이제 쓸어 버려!!!”

그리고 무칸의 외침은 그들을 더욱더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와아아아아아---!!!

밀리던 병사들의 기세가 살아나면서 언데드 병사들을 향해 무구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카앙-! 캉!! 카가강……!!

요란한 검격(劍擊)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푸욱-

하지만 그때였다.

피어오르려던 사기의 불씨를 단박에 꺼뜨려 버리는 날카로운 소리.

“컥…….”

마샤는 자신의 목에 박힌 검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1분이라…… 실력이 좋군. 딱 맞았어.”

“아, 안 돼!!!”

무하드의 외침과 동시에 남궁은 마샤를 찌른 검을 가로로 그었다.

서걱-

마샤의 목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촤르르륵……!!

그를 막으려고 뒤늦게 반응한 친위대들은 남궁의 사슬에 조각이 나 버렸다.

“……!!”

무하드는 갈기갈기 찢긴 친위대의 시체를 보며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크륵…… 크르르륵…….]

상공에 떠 있던 드래곤이 혼란스러운 듯 자신의 머리를 흔들며 비틀거렸다.

테이밍이 풀리려는 징조였다.

“빌어먹을……!! 후퇴해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엘더 드래곤에게 저희들까지 당할지도 모릅니다!”

무하드는 이를 악 깨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후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사역마가 두려워 도망친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이더냐!”

“드래곤은 평범한 사역마가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엘더 드래곤입니다! 비룡족의 보구를 모조리 쏟아 부어서 간신히 길들인 마물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저놈을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

“…….”

무하드는 한심한 아버지의 변명에 질린 듯 탄식과도 같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몽(夢), 살아남은 친위대를 모두 모아라.”

그는 자신의 수하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투구를 깊게 눌러쓴 부하가 빠르게 전장에 흩어진 무하드의 병사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여긴 글렀다. 이대로 있다가는 전멸이야. 드래곤이 왔다는 건 나가와 해인들도 이곳의 상황을 안다는 것인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 말은 자신들이 했던 생각을 그들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버려졌군.’

빠득-

그는 차오르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팔각전쟁을 통해 비룡족을 대리자 일족의 정점에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가장 먼저 탈락자 신세가 돼버리고 말았다.

‘남은 병력이라도 모아 후일을 도모해야…….’

무하드는 협곡의 퇴로를 찾기 위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콰아아앙…… ·!!

그 순간 거대한 엘더 드래곤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쿠오오오오---!!]

엄청난 크기의 녀석은 포효를 지르며 눈앞에 있는 언데드 병사들을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려 연신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크하하! 좋아!! 녀석들을 모두 죽여 버려라!!”

무칸은 날뛰는 드래곤의 모습을 보며 기쁜 듯 소리쳤다. 하지만 테이머가 죽은 지금, 녀석은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잇감을 찾는 것일 뿐이었다.

“시간 다 됐다.”

그리고 남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혼 지대에서 소환되었던 언데드 병사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

언데드 병사들이 사라지자 전장에 남은 것은 당연하게도 비룡족의 전사들뿐.

남궁은 소환했던 영혼 병사들마저 모두 거둬들였다.

“조, 좋아!! 운이 따르는군! 이제 놈은 혼자다!!! 죽여 버…… ·!!”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무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와그작-

그때였다.

전장의 떨림이 순식간에 멈췄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리치던 무칸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리를 쩝쩝 씹어대는 드래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무…… 무칸 님!!!”

부하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목이 날아간 무칸의 몸뚱이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질 뿐이었다.

[쿠오오오오오---!!!]

“배는 고프고 먹잇감은 줄었으니 닥치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겠지.”

제어가 풀린 드래곤은 비룡족에게도 그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마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모두 후퇴하라!!!”

무하드는 아버지의 시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황급히 드래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언젠가 꼭……! 네놈에게 복수를!!”

무하드는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남궁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글쎄. 그럴 기회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그를 향해 남궁은 차갑게 대답했다.

“……뭐?”

남궁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쿠그그그그…….

“언제……?”

무하드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느새 전장의 하늘이 시커먼 먹구름 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콰가가가가강---!!!!

수백 개의 새하얀 번개가 전장을 때렸다.

나가 일족의 마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