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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185/270)

185화

“젠장……!! 젠장……!!”

남궁을 본 순간 카를로스는 욕지거리부터 있는 대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니 그래도 블랙 루트에 다녀 온 모양이로군.”

“미친 새끼……! 내게 이딴 걸 시켜?”

그는 남궁을 향해 악에 받친 듯 소리치면서도 확실하게 던전 보스의 목 2개를 그의 앞에 집어 던졌다.

“보상은?”

“그런 거 없었다. 보스를 잡긴 했는데 보상 상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남궁은 카를로스가 던진 마물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그래?”

그가 되묻자 카를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다니까!”

퍼억-!!

“켁!”

그 순간 남궁이 그의 면상에다 죽은 마물의 머리를 던졌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지? 내게 믿음을 보여주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기껏 사소한 이득을 챙기려고 그런 거짓말을 하면 쓰나.”

“……뭐?”

“확실히 네 말대로 블랙 루트에서는 보상 상자가 나오지 않아. 그곳은 카니발의 규율에 의해 시스템화된 것이 아니라 진짜 던전을 보여주는 곳이니까.”

“…….

“하지만 단순히 보상 상자라는 개념만 없을 뿐, 보스의 시체 안에서 보상품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대리자 일족이었던 네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카를로스는 남궁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제길, 누구 때문에 목숨을 2번이나 바쳤는데 보상까지 싹싹 털어 가려고 하는군. 지독한 놈.”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의 시선에 그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품 안에 있는 2개의 물건을 꺼내 그의 앞에 던졌다.

창그랑-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남궁이 바라봤다.

넘버링 45.

이름 : 비전신궁

등급 : 에픽(최고 - 상위)

▶ 빛의 왕이 사용한 활

▶ 활에서 발사되는 모든 화살은 2등급 빛 속성을 가진다.

▶ 빛의 왕의 궁술을 사용할 수 있다.

▶ 비전 탄막 - 한 발의 비전 화살이 수십 개로 갈라져 목표물에 꽂힌다.

치직…… 치지직…….

바닥에 떨어져 있는 2개의 무구 중 하나는 새하얀 빛을 머금고 있는 활이었다.

넘버링 48.

이름 : 감쇠의 모래시계

등급 : 에픽(최고)

▶ 반경 100m 안의 모든 속성을 가진 자들의 능력치를 5분간 지속적으로 감소시킨다.

▶ 감소된 힘은 모래시계 안에 채워지며 제한 시간이 종료되면 시계 안에 채워진 힘이 2배가 되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손바닥만 한 모래시계였다.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서 잘도 거짓말을 했군.”

“그, 그건…….”

특히 아직 성능이 좋은 활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전신궁】은 전경인의 실력을 끌어 올려줄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흐음, 문제는 모래시계인가.’

5분간 능력치를 감소시키는 효과는 매력적이지만 5분이 지나기 전에 상대를 처치하지 못하면 오히려 2배의 힘을 주게 되는 것이었다.

‘양날의 검이로군.’

남궁은 모래시계가 사냥의 시작부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무리를 위한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용 횟수의 제한은 없는 걸 봐서…… 샐러맨더를 사냥할 때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군.’

“……하하, 제가 무구를 가져가서 뭐에 쓰겠습니까. 그냥 조금 신경질이 났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남궁의 시선을 느낀 카를로스가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말했다.

“죄송할 것까지는 아냐. 너와의 동맹을 파기하면 그만이니까.”

“도, 동맹이요? 그 말씀은 이제 저희를 받아주시겠다는 말씀이시지요?”

“증명했으니까. 2번이나 죽으면서까지 살겠다고 블랙 루트를 공략 한 걸 봐선 꿍꿍이가 있다 한들 적어도 거짓은 아닌 모양이니.”

“하,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요. 저를 믿으십시오. 제가 남궁 님을 카니발의 우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래 봬도 대리자 일족이었지 않습니까.”

카를로스는 반색하며 소리쳤다.

“확실히…… 대리자 일족이니 잘 알겠군.”

하지만 그런 그를 뒤로한 남궁은 무구들을 살피며 담담하게 말했다.

“말씀만 하십시오.”

“레오릭.”

“……네?”

“네가 대리자 일족으로서 해야 할 일은 나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 과거의 계약자를 찾는 거다.”

“계약자를 찾으라고요?”

“전생에 그는 나와 사령술로 맺어졌었다. 하지만 그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는 몰라.”

카를로스는 그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령술로 계약을 했었다는 건 만났다는 건데…… 어떻게 만나는지를 모른다니요?”

“내가 그를 찾은 게 아니거든. 그가 나를 찾아왔다.”

“으흠…….”

남궁의 대답에 카를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릭이 나를 찾아온 건 18번째 문을 공략했을 때였다. 그 당시 마물 떼의 습격으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나를 그가 구해줬지.”

“그러고요?”

“만신창이였던 내게 그가 자신의 피를 먹였다. 놀랍게도 그의 피는 엄청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어.”

남궁이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덕분에 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와의 유대도 높아져 그를 영혼 병사로 계약할 수도 있었고.”

“그거 이상하군요.”

“뭐가?”

“잘 보십시오. 영혼 병사로 계약을 맺었다는 건 그가 육체가 없는 영체라는 의미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남궁 님께 수혈을 할 수 있지요?”

“…….”

그의 물음에 남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전생의 파트너였기에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수도 있단 말이냐.]

“그거야 모르지요. 우리는 레오릭이 위상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고, 자신의 차원에서 추방되어 이곳에 봉인되었다는 것만 아니까.”

카를로스는 라테아에게 대답했다.

“그가 어떤 상태로 이곳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의 기운을 찾아볼 순 있나?”

“흐음,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적어도 레오릭이 당신과의 계약을 파기하지 않았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부탁하지.”

남궁의 말에 카를로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부, 부탁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제게 부탁하시는 것 맞지요?”

“……그래.”

“드디어 저를 신임하시기 시작하셨군요. 알겠습니다. 남궁 님께서 부탁을 하시니 제가 허투루 일을 처리할 수 없지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온갖 욕을 하며 투덜거렸던 카를로스는 남궁의 한마디에 반색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놈이야.’

남궁은 그런 그를 보며 더욱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수도 있는 건가.]

라테아는 다른 의미에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듯 몇 번이나 그 말을 곱씹었다.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가능성을 꼭 닫을 필욘 없겠지. 내가 그를 만난 건 18번째 문을 공략한 직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고작 7번째 문에 지나지 않아. 그의 상태가 어떤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

[그런가…….]

그녀는 남궁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이 얼굴에 어려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죽었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기는군. 애초에 봉인된 상태였던 아버지께서 너를 찾아 구해줬다고 했잖아?]

“맞아.”

[그럼 봉인에서 그를 풀어준 사람은 누굴까? 18번째 정도라면…… 모르긴 몰라도 살아남은 사람이 별로 없었을 텐데.]

“글쎄…….”

라테아의 물음에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이 저절로 풀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때쯤엔 사실 거의 모든 도시들이 폐허나 다름없었어. 봉인의 술식이 붕괴되었을 수도…….”

[아버지는 위상들이 가두었다. 위상의 봉인이 고작 그 정도로 사라질 리가 없지.]

“흐음…….”

[아마도 누군가 아버지의 봉인을 강제로 풀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렇게 강한 위상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자가 있느냐는 거지.]

“정말 모릅니까?”

[……뭐?]

“블랙 루트를 다녀왔다면 다들 예상 가능할 텐데요?”

카를로스가 라테아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던전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말 그대로 위상이 만들어 놓은 던전의 규율을 파훼하는 것. 위상의 봉인까지 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블랙 루트를 열 수 있었다면 18번째 문이 열릴 때쯤엔 불가능하지도 않겠죠.”

남궁은 그의 말에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아버지께서 레오릭을 풀어줬단 말인가?”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정말 궁금하시면 그분께 물어보시든지요.”

“…….”

남궁은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이 던전 공략을 위해 남기철을 만났지만, 남궁은 그와의 만남이 썩 달갑지는 않았으니까.

[그럴 필요 없다. 설령 그가 내 아버지를 봉인에서 풀어줬다 한들, 그건 18번째 문이 끝난 뒤였다지. 지금 시점에서 그런 능력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미래를 발설할 필요는 없지.]

남궁의 표정을 읽은 라테아가 먼저 대화를 끊었다.

[하지만 시험을 해볼 순 있겠지. 방법을 모른다 해도 그에게서 위상의 봉인을 풀 만큼의 힘이 있느냐를 보면 되잖아?]

[어떻게?]

[남궁의 아버지가 블랙 루트를 열었을 때 우리는 모두 깨달았었지. 그 힘 말이다. 그건 계약 따위로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냐.]

[아아…….]

라테아는 마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싫든 좋든 간에 너는 어쩌면 카니발을 끝내기 위해 네 아비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지도 몰라.]

[던전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이키는 것이 블랙 루트라고 할 때, 단순히 그 힘이 던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힘의 본질은 결국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이키는 것이니까.]

마왕과 무명, 그리고 라테아의 말에 남궁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인가…….”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쿠그그그그-

그 순간, 붉게 타오르는 하늘 위로 거대한 샐러맨더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싫어도 만나게 되겠지. 그 일은 천천히 생각하면 된다. 일단은 눈앞의 일부터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군.”

[샐러맨더 사냥은 강호준에게 맡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맞아. 7번째 문이 공략되는 동안 내가 할 일은 따로 있어.”

[뭔데?]

“규류.”

남궁이 이름을 낮게 부르자 거대한 야차의 모습이 나타났다.

평상시와 달리 웃음기 없는 그의 얼굴에서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준비 끝났습니다.”

달라진 건 그의 표정만이 아니었다.

가죽으로 된 전투복을 비롯하여 그의 몸엔 갖가지 무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자.”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그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팔각전쟁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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