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270)

176화

“전 세계에 걸친 술법진이라…… 이런 건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군요.”

남궁의 소집에 덴 하울과 미카엘, 알렉 트라만, 그리고 나니가와 에리카가 모였다.

“그런데 드루이드의 술법으로 의심된다면서 정작 드루이드가 참석하지 않았군.”

알렉 트라만은 가시덩굴의 미망인의 계시자인 록산느가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최근 적색지대가 갑자기 불안정해졌습니다. 아마도 우(无)의 탑이 등장하고 난 이후로 예상됩니다. 그녀는 적색지대에 날뛰는 마물들을 정리 중이라 참석이 어렵다고 합니다.”

“다른 전문가라도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드루이드의 술법엔 문외하니까.”

“그녀의 스승인 쿠후란을 데려 오려 했다. 그는 명색이 현존하는 최고의 드루이드니까.”

“그런데?”

“거절당했다. 나이도 있어서 여기까지 오는 건 어렵다고 하더군.”

“아니, 지금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 기로에 서 있는데 그게 말이 돼? 미카엘의 도약술도 있잖아. 그거면 1초도 안 돼서 넘어올 수 있을 텐데?”

“도약술 자체가 신체에 부담을 주는 일이니까.”

“그럼…… 화상통화라든지 뭐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때가 어느 때인데 꼭 직접 볼 필욘 없잖아요.”

덴 하울을 비롯한 나머지 계시자들은 남궁의 대답에 끝없이 반론을 재기했다.

하지만 남궁의 표정을 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쿠후란께서 거절하신 이유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드루이드가 이미 2명이나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2명?”

명훈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쿠후란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아마 박효주 팀장이라고 들었는데…… 그녀 말고 또 한 명이 더 있…….”

덴 하울은 아차 싶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아…….”

남궁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 박효주 팀장은 당분간 참악부대의 대원들과 함께 현재 알려진 카를로스 소속의 클랜들을 조사할 거다. 대신 대규모 술법진의 파훼법을 소민이가 맡을 거야.”

“형님, 설마 작전도 같이 하는 건 아니겠죠?”

호준이 물었다.

“너무 걱정 마시죠.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엔 소민 양보다 약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에리카가 소민을 보며 옅게 웃었다.

“강하다고 해서 모든 전투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야. 어린아이의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그 찰나의 틈이 생과 사를 나누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어.”

“비월이 그녀를 보호하도록 하죠. 그리고 원하신다면 계획이 끝날 때까지 미래 예지를 소민 양에 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요.”

“감사해요, 언니.”

소민은 그녀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에리카가 쓰다듬었다.

“자식이 아무리 강해도 부모 눈엔 여전히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소민이 너도 자신의 힘에 휘둘리지 말고 항상 명심하도록 해.”

“네, 그럴게요.”

믿어달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딸에게 남궁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술법을 파훼하는 것부터 부탁하마. 네가 더 잘 알겠지만 조심해야 해. 술법을 파고드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술자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이니까. 오히려 적을 끌어들이는 꼴이 된다.”

“응, 알겠어!!”

남궁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민은 신이 난 듯 회의실을 박차고 나섰다.

“빌어먹을 노인네. 멀쩡히 올 수 있을 거면서…….”

그는 분명 웃고 있을 쿠후란을 떠올리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소민이를 믿으라는 뜻이겠죠. 아마…… 형님 빼고 모두 믿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거야.”

“네?”

“소민이 또래의 아이들 중 너희보다 강한 아이들이 정말 또 없을 것 같아? 아이들의 자질은 그야 마로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어. 분명 다른 아이들도 너희보다 강할 수 있겠지.”

남궁은 사람들을 훑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너희 대신 싸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소민이를 감싸는 건 부모이기 때문도 있지만…… 소민이의 힘을 빌리는 순간 나조차 그 아이에게 의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남궁의 말에 사람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의지하기 시작한 마음은 언제라도 나보다 강한 자가 나타나면 다시 약해진다. 그게 어린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말이야.”

“그래서 우리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말하신 건가요? 당신만큼은 강하다는 것처럼 말이죠.”

에리카는 웃으며 물었다.

“그래야지. 그 아이들도 의지할 곳 하나 정돈 있어야 하니까.”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남궁은 그녀의 말에 어쩐지 진지하게 대답했다.

“브라질에서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봤다. 그들 중엔 자질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어. 하지만 자질을 깨우치기도 전에 그저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지.”

남궁은 말했다.

“자질을 가진 아이들에게 그 힘을 일깨워 주는 것. 그리고 자질을 가진 아이들보다 더 강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짝-!!

“그럼, 각자 위치로. 특이사항이 발견되면 연합으로 보고하도록 해.”

“형님.”

회의실을 나서는 남궁을 명훈이 붙잡았다.

“왜?”

“그럼 형님은 누구에게 의지하십니까?”

“……뭐?”

남궁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명훈을 바라봤지만 이내 곧 그의 생각을 읽고는 피식 웃었다.

“낮뜨거운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 언제 다음 문이 열릴지 몰라. 그 전에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그는 명훈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 * *

“어떻게 지금까지 저런 곳을 알아차리지 못했지?”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앞에 멈춘 함선의 갑판 위에서 남궁을 비롯한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저건 확실하게 공방 기술로 만든 방벽이 아닐세. 모르긴 몰라도 물리 공격으로 부술 순 없어 보이는군.”

“요새화는 어느 정도 진행된 것 같네요. 대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구색은 갖춰진 걸로 봐서 방벽 뒤에 터렛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덕수와 진수혁이 저 멀리 있는 도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붉은색으로 된 이형의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는 육안으로 보면 확연한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성이라든지 각종 감시 시스템에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저걸 보니 더 이상한 일이네요. 누가 봐도 이상한 광경인데 어째서 대원들이 보고를 하지 않았을까요.”

“파견된 자들 중에 연락이 되는 자가 없다고 했지? 아마도 저 방벽 안으로 들어가면 뭔가 주술적인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드루이드 술법 중엔 정신 지배나 정신 오염 같은 것들도 있으니까.”

꿀꺽-

남궁은 포션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 상급 내성의 비약(상태)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 5분간 2등급 이하의 모든 상태 이상 공격에 강한 내성을 가집니다.

▶ 내성 등급 이상의 상태 공격을 받을 시 효과의 지속 시간이 감소합니다.

▶ 강제로 비약의 효과가 파괴 될 시 소유자에게 피해가 되돌아가게 되므로 주의하십시오.

몸 안에서 서서히 피어올라오는 물약의 효과를 느끼며 남궁은 함선 밑에 준비되어 있는 보트에 올라탔다.

부우우우웅……!!

보트가 빠른 속도로 도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찌잉…….

붉은색의 장벽을 통과하자 남궁은 머리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비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꽤나 곤욕을 치렀겠군.’

남궁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급 비약임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줄 정도라면 자신의 예상보다 더 고위의 술법이 도시에 적용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암귀를 사냥할 때만 해도 중급 비약을 썼는데 말이야. 혹시 몰라 한 단계 더 높은 비약인데도…….’

강화된 내성을 뚫을 만큼의 실력자가 과연 누굴지 그는 궁금했다.

치직…… 치지지직…….

귀에 꽂고 있던 인이어 이어폰에 잡음이 들리며 스파크가 번뜩였다.

기대하진 않았지만 장벽을 통과하자마자 고장 난 이어폰을 대충 바다에 던져 버리며 남궁은 도시 안을 훑었다.

“……조용하군.”

도시의 풍경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뭔가 묘한 이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때였다.

보트가 도시의 터미널을 지나 항구 지구인 ‘라 보카’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그는 한 팔을 가슴에 얹고서 예의 바르게 남궁을 향해 인사했다.

“저는 페레스라고 합니다. 카를로스 경을 모시고 있지요. 여러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카를로스 경?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남궁은 보트에서 내려 도시를 훑었다.

처음에는 몰랐던 묘한 이질감의 이유를 페레스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복장 한 번 요란하군. 어디 성에서 온 건가?”

페레스가 입고 있는 정장은 묘하게 현대의 모습과는 달랐다.

마치 중세 시대의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

그리고 도시의 건물들 역시 하나같이 고전적인 형태의 것들이었다.

“이제 보니 단순히 외부와 단절 시킨 것이 아니로군.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든 거였어.”

이곳은 더 이상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니었다.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도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감지 시스템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맞습니다. 카를로스 경께서는 모두가 강해질 수 있는 힘의 도시를 만드셨습니다.”

“힘의 도시? 미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도구는 헤드를 주고도 살 수 없어. 그렇다면 이 도시 자체가 술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건데…….’

남궁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자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인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농담처럼 지껄인 말이었지만 페레스가 뻗은 손을 따라 남궁이 고개를 들자 그곳엔 정말로 거대한 성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히이이잉……!!

마차 한 대가 두 사람의 앞에 섰다.

마부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남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는데, 어쩐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부가 쥐고 있는 고삐의 끝에 마차를 끌어야 할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마차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을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남궁은 마차 위에 올라탔다.

이럇-!!

인간의 음성이 아닌 기묘한 목소리가 들리고, 마차는 빠른 속도로 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멀리서 볼 때만 하더라도 거무튀튀해 보이던 흑색 성의 크기가 서서히 커지자, 동시에 창밖을 바라보던 남궁의 눈도 커졌다.

“카스틸료 데 상그레(Castillo de sangre).”

그 모습을 보던 페레스가 기다렸다는 듯 남궁에게 말했다.

“피의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은 수없이 많은 인간의 뼈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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