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자…… 어디 보자. 잠깐, 잠깐. 그대로 들어가지 마라. 발목이 날아간다.”
시커멓게 변한 던전 입구를 살피며 남기철은 다가오는 남궁을 가로막았다.
“흐음.”
그러고는 마치 맛있는 요리를 앞에 둔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키이이이이이이---!!!
던전의 문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찌르자 마치 문이 살아 있는 것 같은 귀곡성의 비명 소리가 토해냈다.
“……이게 뭡니까?”
“던전의 입구를 마물화시킨 거다.”
“마물화……?”
“너라면 아마 경험이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의 지역이 카니발의 영향으로 인해 던전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던전화라고 하잖느냐.”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화를 단순히 현실의 지역이 변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던전 역시 이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지역이다. 그 말은 던전 역시 카니발로 인해 이곳에 나타날 때 현실의 지역과 합쳐져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지.”
퉁- 퉁-
남기철은 던전의 입구를 가볍게 두들겼다.
“한마디로 말해 마물화는 던전화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던전이 우리 세계에 정착하기 전, 본래의 모습으로 돌이키는 것이지.”
남궁은 그의 말에 마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변한 것은 우리 세계만이 아니다.’
25년이란 세월 동안 지옥문의 마물들을 사냥하고 던전을 공략하면서 그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마물이나 던전이나 결국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라면 이곳에 적용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한 법이니까.”
“블랙 루트(Black Route)…….”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남기철은 그의 말을 듣고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허허,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너도 이걸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는 자신의 아들을 살폈다.
“어떻게 이걸 만들 수 있는 겁니까.”
“말했잖아. 이것저것 잡기들을 배우다 보니 남들은 볼 수 없는…… 아니지, 보려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거든.”
“그 전에도 이걸 열어본 적이 있습니까.”
“당연하지. 해보지 않고서야 네게 이걸 보여줄 이유가 있겠느냐.”
“무슨 던전입니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
“블랙 루트를 열게 되면 카니발이 정해 놓은 던전의 등급마저 완전히 뒤바뀌거든.”
꽈악-
남기철이 남궁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러니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철컥-!!
솨아아아악---!!!
남기철이 던전의 문을 두들기자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저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도 너를 도 줄 수 없을 거다. 알아서 살아남아라. 보스의 앞에서 만나자꾸나.”
하지만 남궁이 뭐라 할 겨를도 없이 남기철은 그의 등을 밀어 문 안으로 집어넣었다.
“자, 잠깐……!!”
완력으로 남궁을 넘어뜨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남기철의 손길에 남궁은 반항도 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던전의 문 안으로 떨어졌다.
쿠우웅---!!!
“큭.”
▶ 진(眞) - 번개나락에 입장하였습니다.
▶ 자격이 없는 자는 끝없는 공허와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 허용된 세계가 아닙니다.
▶ 당신의 신체가 이계(異界)의 영향력에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 저주받은 영혼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소곤- 소곤-
추락이 멈추고 바닥에 일어선 남궁은 머릿속에 시끄럽게 울리는 경고에 검을 쥔 채 주위를 경계했다.
‘여긴 뭐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자신이 경험해 왔던 던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쏟아져야 할 낙뢰도 없었고 귀청이 떨어질 듯 울려야 할 천둥도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마치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재잘거림뿐이었다.
[영혼들이 널 보고 있다.]
그 순간 무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던전에 잡아먹힌 자들이로군. 아마도 이 세계 이전에 열린 카니발에서 죽은 자들일 거다.]
[조심해라. 영혼들이 너를 끝없이 공격할 거다. 그들에게 있어서 생자(生者)는 훌륭한 먹잇감이니까.]
마왕과 라테아 역시 주위로 느껴지는 불온한 기운에 경계했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거지?’
하지만 걱정도 잠시,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남기철을 아버지라 불렀다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그 인간을 걱정하는 건가? 미쳤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블랙 루트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던전의 본질이고, 그것을 열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자질 때문이라는 말인데…….’
어쩌면 남기철의 죽음으로 인해 전생에서 블랙 루트 공략이 끊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직 그만이 블랙 루트를 열 수 있는 열쇠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지? 보스 앞에서 만나자고 한 걸 봐선 분명 길이 있긴 있다는 건데…….”
남궁의 목표는 번개나락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위에 마물은커녕 길조차 없으니 던전의 보스가 있는 곳이 어느 방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퉁-
그때였다.
앞을 가던 남궁의 머리에 뭔가가 닿았다.
“음?”
남궁은 자신의 앞으로 손을 뻗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물컹한 뭔가가 잡혔다.
“이건 또 뭐지?”
그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벽을 천천히 쓸었다. 그러자 마치 물결이 이는 것처럼 벽면에 꿈틀거렸다.
촤아아아악---!!
그때였다.
[키키키키키킥……!!!]
[키킥…… ·!!!]
귀에서 들리던 재잘거림이 갑자기 요란한 웃음소리로 바뀌더니, 물컹한 벽면이 순식간에 남궁을 향해 뿜어져 나오며 그를 집어삼켰다.
스르르릉---!!
남궁은 자신을 잡아끄는 알 수 없는 힘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퍼엉-!! 펑!!!
영혼 병사를 소환하려는 순간, 소환된 영혼들이 마치 압착되듯 짓눌리며 터져 버렸다.
[키키키키킥……!]
[키키킥……!!]
그 모습에 그를 둘러싼 영혼들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주위의 영력이 너무 강해. 사령술은커녕 우리들도 네게 말을 거는 것이 힘들다.]
[이러다 네가 먼저 소멸될 수도 있어.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해!!]
무명과 마왕이 경고했지만 남궁은 오히려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 인간은 이걸 몇 번이나 해냈어. 그 말은 공략이 불가능한 곳이 아니란 뜻이잖아. 그런데 도망치라고?”
[그는 블랙 루트를 열 수 있는 자질을 가졌잖으냐. 너와는 달라!!]
“아니.”
남궁은 자신을 뒤덮기 시작하는 투명한 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인간이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이곳에 데리고 왔을 리 없어.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데리고 온 거지.”
임무 성공률 100%.
국정원 시절부터 711부대를 비롯해 각종 특수 임무를 수행했던 그의 기록을 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그는 여러 가지 술법들을 익히면서 블랙 루트를 열 수 있게 되었다고 했지만, 남궁은 알 수 있었다.
자질이란 그런 잡기를 배운다고 해서 익혀지는 것이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인간의 안목만큼은 항상 정확했으니까.”
그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필요한 건…….
한 발을 더 내딛는 결심.
‘여긴 더 이상 번개나락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던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남궁은 눈을 감았다.
귓가에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그는 점차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다.
‘영혼 병사를 소환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 이곳이 영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저 웃음소리들의 주인 역시 영혼의 일종.
자신의 영력이 저 영혼들을 압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하다면 영혼 병사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사령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무명, 마왕, 그리고 라테아까지.
남궁에게 힘을 주는 그들 역시 모두 영체였다.
섣불리 그들을 불러낼 수도 없었다.
자칫 자신을 둘러싼 영압에 그들도 영혼 병사처럼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
‘그 힘은 쓰지 마라.’
이런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한 걸까. 남궁은 사령술을 쓰지 말라고 했던 남기철의 말이 떠올랐다.
‘괜한 잔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조언이었군.’
남기철은 말했다.
블랙 루트는 이면이 아닌 본질이라고.
그렇다면 그것을 공략하려는 자 역시 카니발로 얻은 힘이 아닌 본질의 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능의 힘이 아닌 순수한 인간의 힘.’
그게 무엇일까.
남궁은 좀 더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진 힘이라…….’
검술(劍術)? 무투(武鬪)?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들이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일 리가 없었다.
좀 더 본질에 가까운 것.
‘이런 식이면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겠군.’
스스로를 내려다볼수록 남궁은 어쩐지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역시 카니발이 내려준 힘에 의존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
그때였다.
‘던전 공략……?’
남궁은 조금 전 자신이 했던 생각을 되짚었다.
‘블랙 루트는 모든 것을 뒤집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아직까지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던 거지?’
아차 싶었다.
꽈악-
그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깨물었다.
붉은 핏물이 뜯어진 살점을 타고 흘러내렸다.
“먹어라.”
비릿한 피 내음이 풍기고, 그를 집어삼킨 투명한 막이 핏물에 닿는 순간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부글…… 부르르르르…….
남궁의 핏물을 먹은 점액들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바보 같았군.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어.”
공략을 하기 위한 본질이 아니었다.
이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던전의 존재성에 대한 본질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던전을 공략하는 것 자체가 블랙 루트의 본질에서 벗어난 행위인 거다. 던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잡아먹어야 할 대상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잡아 먹혀 주마.”
스스로 제물이 되는 것.
부르르르르르--!!
점액들이 그를 뒤덮기 시작했다.
“큽……!!”
그의 입과 코, 그리고 귀와 눈, 심지어 땀구멍까지…… 온갖 구멍이란 구멍으로 차가운 점액들이 그를 집어삼켰다.
죽는다.
남궁의 본능이 그렇게 울부짖었다.
전생부터 그토록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였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웁……! 우웁……!!”
온몸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빠득-
하지만 그 본능을 짓누르려는 듯 남궁은 이를 갈며 요동치는 몸을 움츠러뜨렸다.
그렇게 그의 의식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고요.
“잘 왔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니, 어쩌면 찰나였을지 모르지만 정말로 죽었던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클클, 호되게 당한 모양이지? 네가 네 입으로 날 아버지라 부르다니 말이야.”
끝없는 바다를 헤엄친 것처럼 삭신이 쑤시고 온몸은 물먹은 스펀지같이 무겁고 힘이 없었다.
“던전이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군.”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블랙 루트의 공략법이라니…… 계시자의 시험보다 더 지독하군.”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 질거다.”
“두 번 다신 안 할 겁니다.”
“클클…….”
남궁은 자신을 향한 남기철의 손을 뿌리치며 일어섰다.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남기철의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은 한 번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오기 부리긴.”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남기철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여긴 어딥니까.”
“던전의 배 속.”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어둠은 사라지고, 남궁의 눈앞에 오래된 전당 같은 곳이 들어왔다.
“심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