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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159/270)

159화

“새로운 계시자들이라……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어째서라니…… 당연히 마물을 사냥하려고?”

클락은 왜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오히려 남궁에게 되물었다.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붉은색 인장이 찍힌 양피지에 적힌 퀘스트죠. 전설급이라고 하던데.”

제렌이 클락의 말을 끊으며 남궁에게 대답했다.

“계시자에 뽑히고 나서 바로 문이 열리는 바람에 아직 다른 계시자들과의 교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퀘스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감이 오진 않지만…….”

그는 남궁에게 가지고 있던 양피지를 꺼내 보였다.

“거암귀에 있는 불기린을 사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 뭐야. 난 그런 거 없는데? 왜 너만 퀘스트를 받는 거야?”

퀘스트를 받은 사람은 제렌이었고, 클락이 그의 양피지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같이 잡자고 했잖아. 연락했을 때 말했는데 너 제대로 듣지도 않았지? 하여간 이 녀석은…….”

제렌이 그의 옆구리를 한 대 툭 치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떠들어대던 두 사람은 남궁의 시선을 느꼈는지 입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아니.”

전생의 동료였던 때와 달리 자신을 의식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남궁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그때의 감정은 자신만의 것이었으니 그저 추억일 뿐 이제 와서 그런 관계를 그리워할 필요는 없었지만…….

뭐랄까.

마음 한편의 아쉬움을 숨길 순 없었다.

‘아무래도 안개 속 길잡이가 움직인 모양이군.’

예지 능력을 가진 니나가와 에리카의 위상인 안갯속 길잡이라면 회귀 전의 자신을 엿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에리카는 그래도 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위상들의 생각이 같을 순 없겠지.’

그림자 회랑에서 위협했던 남궁의 모습을 다른 위상들이 좋게 볼 순 없었다.

어쨌든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계시자들의 상황에서 위상들에게 남궁은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

그리고 그런 관계가 눈앞의 그들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그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쉽게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제렌에게 준 퀘스트. 미풍의 어머니는 내가 이곳에 올 것을 예상하고 미리 선수를 친 것이겠지.’

그녀는 우(无)의 탑을 열었을 때 아마 누구보다 자신이 란(亂)에게 죽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탑과 세상이 연결되었으니, 그녀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강수를 둔 것이 분명했다.

‘이제 막 계시자가 된 사람이 불기린을 잡는다는 것은 자살 행위지. 그렇다고 내가 잡아버리면 제렌의 퀘스트가 실패할 테고.’

전설급 퀘스트는 카니발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보상을 가진다.

‘미풍의 어머니는 끝까지 나를 괴롭힐 생각인가 보군.’

남궁은 그림자 회랑에서 보았던 그녀의 가증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란(亂)과 우(无). 위상을 죽이기 위해서 저 둘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알았다.’

문제는 그들 중 과연 어떤 힘이 진정으로 위상을 죽일 수 있는가.

태초의 위상이라 불리는 란(亂)과 태초의 시대를 비틀었던 우(无).

둘은 위대한 존재이지만 분명 서로 다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다른 둘은 지금 모두 똑같이 위상들에게 봉인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째서?

‘우(无)는 그렇다 쳐도 란(亂)이 위상들에게 가둬졌다는 것은 솔직히 좀 의아한 일이야.’

남궁은 그들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이번 생에,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있을 지독한 이 축제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보다는 저기 뒤를 신경 써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에 흐르는 고민은 복잡했지만 시간은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았다.

남궁은 제렌의 뒤에 있는 불기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제렌은 황급히 뒤를 돌았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이던 불기린은 의외로 거리를 둔 채 경계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신기하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릴 잡아먹으려고 안달이던 놈인데…….”

“설마 겁을 먹은 건가? 역시 남궁 씨가 오니까 우리 때랑은 다른 건가.”

넉살 좋은 클락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남궁에게 말했지만, 남궁은 불기린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불꽃이구나.]

화르륵……!!!

보랏빛의 불꽃이 일더니 남궁의 뒤로 라테아가 나타났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 투구와 사냥꾼 복장을 하고 있는 그녀의 등장에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봤다.

[놈을 잡을 거냐.]

“아니. 불기린은 나도 사냥하기 버거운 놈이야. 당신이 돕는다고 해도 승패를 확신할 순 없어.”

[흐음…… 네 실력이라면 부족하진 않을 거 같은데.]

“녀석을 상대하다 시간을 빼앗겨서 거암귀로 피해를 입으면 곤란하니까.”

[아쉽군. 요란 일족은 불꽃에 강하지. 때로는 불꽃을 먹어 치움으로서 강해지기도 하거든.]

아마 불기린이 지금 경계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가 노리는 건 놈의 둥지인 호수 밑에 있는 【맹화장】이니까. 불기린은 잡지 않아도 지옥문을 클리어하는 데 문제 되지 않지만 장화를 얻지 못하면 다음이 곤란하거든.”

그것은 플레임 워커(Flame Walker)라고 불리는 불기린의 힘이 담긴 장화였다.

순간 불꽃을 일으켜 화염 속성의 내성과 더불어 공격까지 가능케 해주는 방어구.

하지만 【맹화장】을 얻으려는 이유는 단순히 속성 효과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순간 불꽃을 일으켜 착용자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올려주기 때문이었다.

‘연속으로 불꽃을 일으키게 되면 수십 미터 높이는 순간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 장화는 거암귀와 같은 거대한 마물뿐 아니라, 그다음 나타날 마물을 상대하는 데도 유용했다.

천상령(天上領)이라고 불리는 부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남궁으로서는 그곳을 공략하기 위해 비상(飛上)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궁 씨도 잡기 힘들다고요? 하지만 위상이 제게 퀘스트를 줬는데요?”

“계시자라 한들 위상이 주는 모든 것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항상 의심하고 의심해야 해.”

남궁이 제렌의 말에 답했다.

“불기린을 사냥하면 확실히 보상도 크겠지. 어쩌면 퀘스트를 떠나, 거암귀를 잡는 것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드랍할 수도 있어.”

그 말은 현재 6번째 지옥문의 보스보다 불기린이 더 강한 마물이란 뜻이기도 했다.

‘미풍의 어머니가 나를 방해하기 위해 그런 퀘스트를 준 거라고 말 할 필욘 없겠지.’

그렇게 되면 그가 마치 한 수를 위해 쓰다 버리는 장기 말처럼 되어버리니까.

“잡을 생각이냐.”

남궁은 제렌에게 물었다.

설명은 충분했다.

제렌과 클락이라면 본인들과 그의 실력 차이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니까.

“자살 행위야.”

“맞아요. 싸워보고 알았습니다. 저희끼리 잡는다는 건 그냥 녀석에게 맛있는 먹이를 두 개 던져 주는 것과 똑같죠.”

“잘 생각했군. 퀘스트는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목숨은 하나니까. 죽으면 끝이다.”

남궁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마등처럼 마족에게 죽임을 당했던 제렌의 모습을 떠올렸다.

“돌아가도록 해.”

부디 죽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감추고, 남궁은 두 사람을 지나쳐 가려 했다.

“저희 둘이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뭐?”

“해보고 싶은 계획이 있거든요. 남궁 씨가 도와주신다면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분명 말했을 텐데. 시간 낭비할 생각 없다고. 너희도 계시자라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전에 세상을 돌보는 눈을 가져라.”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1분이면 됩니다.”

“그게 무슨…….”

불기린을 상대로 1분 안에 끝내겠다는 제렌의 말은 믿을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남궁은 흥미가 동했다.

‘제렌 녀석은 전생에도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던전을 공략하긴 했었지.’

“흠.”

남궁은 잠시 숨을 돌리며 그를 바라봤다.

[크아아아아----!!]

그 순간 경계 하던 불기린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날카로운 포효와 함께 달려들었다.

“비켜.”

남궁이 두 사람을 발로 걷어찼다.

튕겨 나간 그들을 뒤로하고 그가 불기린을 향해 【계명검】을 휘둘렀다.

카앙-!!!

불기린의 비늘에 검이 닿자 마치 쇠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검의 악귀들이 불기린의 불꽃에 고통스러워합니다.

▶ 검의 내구도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검이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떨렸다.

‘상성이 좋지 않아…….’

일반적으로 화염은 미약하게나마 정화의 힘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언데드를 상대할 때 성력 이외에도 화염을 쓰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악귀의 영령으로 만들어진 【계명검】은 불기린에게 대미지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검이 부러질 수도 있었다.

콰아아앙……!!

생각이 길었던 걸까.

순간 불기린의 발길이 남궁을 때렸다.

“큭!!”

숨이 막힐 듯한 고통과 함께 그의 전신을 두르고 있던 바위들이 와그작 하며 산산조각 났다.

▶ 석화의 보석의 효과가 중단됩니다.

▶ 15분간 재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뒤로 밀려난 남궁은 전신에 붙어 있는 바위 조각들을 털어내며 이를 바득! 갈았다.

▶ 원시 아룡의 팔찌를 사용합니다.

▶ 어룡의 보석이 발동됩니다.

▶ 풍진의 보석이 발동됩니다.

그의 발밑에 10마리의 수어들이 소환되었다.

처음과 달리 수어들의 이마엔 날카로운 돌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촤아아아악---!!

수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불기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드레이크를 잡고 얻은 풍진의 보석에서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수어를 감쌌다.

퍼억-! 퍽!!

치이이이익……!!

수어들이 마치 포탄처럼 불기린에게 닿으며 터져 나가자 새하얀 증기가 솟구쳤다.

[크륵-! 크르르륵-!!]

처음과 달리 불기린이 수어들의 공격에 고통스러운 듯 뒤로 물러났다.

“1분 된 것 같은데? 이봐!! 그 계획이란 게 뭐야!”

마지막 수어가 불기린의 앞발에 물풍선처럼 터져 버리자 남궁이 소리쳤다.

“잠시만요!!”

[쿠우우우우우---!!!]

그때였다.

제렌의 외침과 함께 뱃고동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남궁의 귀를 때렸다.

거대한 기둥 같은 것이 솟아올랐고 순간 일대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어두워졌다.

‘저건…….’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올려다봤다.

거대한 기둥은 다름 아닌 거암귀의 머리였다.

90도로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거북의 머리에서 뭔가가 뿜어져 나왔다.

“옆으로!!!”

철푸덕---!!!

거대한 물덩이가 떨어졌다.

쾅! 쾅! 쾅!!!!!

마치 폭격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물줄기들이 그대로 일대를 강타했다.

[키에에에에엑--!!!]

불기린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좋아!!”

제렌이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으며 쾌재를 외쳤다.

‘설마…….’

마른하늘에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소나기.

그 순간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에 남궁은 인상을 구기며 제렌을 바라봤다.

그건 거암귀가 내뱉는 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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