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저게…… 마물이라고?”
세인트폴 섬에 도착한 세 사람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섬을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이이잉---!!!
철컥-!!
프리빌로프 제도를 둘러싼 함대의 함선들이 일제히 함포를 조준했다.
-전 함선 교전 준비!
-놈이 베링 해협을 통과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에에에에엥……!!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긴장감은 더욱더 고조되기 시작했다.
“저걸 어떻게 잡죠?”
“어떻게 잡긴. 다들 무기도 가지고 있잖아.”
“설마…… 검으로요?”
“잡아야지. 그리고 내가 아니라 저놈은 네가 잡을 거라니까.”
“……제발 농담 좀.”
명훈의 한숨에 남궁은 피식 웃었다.
“……진심 아니죠?”
“너희 둘은 최대한 녀석의 속도를 늦추도록 해. 놈을 공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거든.”
“그게 뭔가요?”
“저기 놈의 등에 돋아나 있는 3개의 화산 안쪽에 있는 용암 호수를 공략할 거야.”
우우웅…….
그 순간 남궁의 팔찌가 가볍게 떨렸다.
▶ 원시 아룡의 팔찌를 사용합니다.
▶ 5가지의 보석 효과 중 한 가지를 불러낼 수 있습니다.
▶ 보석의 효과는 2개 이상 중첩 되지 않습니다.
▶ 석화의 보석이 발동됩니다.
쩌적…… 쩌저적……!!
팔찌에 박혀 있던 회색 빛깔의 보석이 반짝이자 남궁의 전신에 단단한 바위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길을 열어.”
그의 명령에 소환된 영혼 주술사가 마법을 시전하자 거센 돌풍과 함께 그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타닥! 타다닥……!!
그가 수면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 * *
[키에에에엑--!!!]
사방에서 벌떼처럼 달려든 식인어들이 남궁을 공격했다.
▶ 원시 아룡의 팔찌를 사용합니다.
▶ 토룡의 보석이 발동됩니다.
식인어들이 남궁을 물어뜯기 직전, 남궁이 다시 한 번 팔찌를 흔들자 그를 중심으로 녹빛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켁……!! 케켁!!!]
연기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남궁의 주위로 퍼진 바실리스크의 독액이 식인어들을 단숨에 괴멸시켰다.
쌓여 가는 헤드의 알림을 들으며, 남궁은 둥둥 떠 있는 식인어의 시체를 발판 삼아 수면 위를 달렸다.
솨아아악……!!
영혼 주술사의 룬어가 들리고 죽은 식인어의 시체가 검게 변하며 둥둥 떠오르자, 남궁은 공중에서 그것들을 밟아 올랐다.
팟……!!!
공중에 뛰어오른 그의 몸을 나타스가 낚아채듯 끌어 올렸다.
마왕이 거대한 날개가 움직이며 엄청난 속도로 거암귀의 머리 위까지 날아 올랐다.
[조심해라. 놈의 등에 자라난 화산 안에는 진들이 살고 있으니까.]
정령과 요정의 합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진은 정령보다 강력한 육체를 가졌으며 요정보다 더 상위의 술법을 쓸 수 있었다.
[특히나 용암 호수에 살고 있는 진은 상대하기 고약한 놈들이거든. 잘 죽지도 않지만 한번 붙으면 쉽게 불이 꺼지지 않는다.]
남궁은 마왕의 말에 코트를 다시 한 번 여몄다.
[쿠우우우우!!!!]
거암귀가 고개를 쳐들며 포효를 지르자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그들을 때렸다.
[살아 남길 바라마.]
“마왕답지 않은 말이로군.”
[아직은 세상을 좀 더 구경하고 싶거든. 네 녀석이 죽어버리면 불가능하니까.]
“노력해 보지.”
마왕이 있는 힘껏 거암귀의 머리 위로 남궁을 집어 던졌다.
솨아아악---!!!
공기를 뚫고 남궁이 그대로 낙하했다.
화르륵……!!
그 순간 거암귀의 등껍질에 돋아 나 있는 3개의 화산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침입자를 막아라……!!]
뿜어져 나오는 불꽃 속에서 3마리의 붉은 화염 거인이 나타났다.
“훕……!!”
그리고 남궁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진들을 향해 검을 그었다.
무아경(無我經) -1서(書)
카강……!!
섬뜩한 예기와 함께 날아간 검기가 거인들을 단박에 잘라 버렸다.
하지만 혼신을 다한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치 옅은 바람이 분 것처럼 조금 흔들리는 정도일 뿐이었다.
화아악……! 쾅! 쾅!! 쾅!!
진들이 양팔을 뻗자 붉은 화구(火球)가 연이어 남궁을 향해 쏟아졌다.
“큭!!”
공중에서 진의 화염을 피할 수 없었던 남궁이 코트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틀었다.
콰가강!!!
화구가 폭발하며 남궁의 전신을 불꽃이 휘감았다.
[키에에에엑!!!!]
그 순간, 남궁의 앞을 용아가 가로막으며 물을 뿜어냈다.
치이이익……·!!!
검게 그을린 전신에서 새하얀 김이 서렸다.
탁!!
“잘했어.”
용아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남궁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겼다.
“가자.”
[크르르르……!!]
그의 명령에 용아의 몸이 거암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용아의 크기는 다른 소환수에 비한다면 큰 편에 속했지만, 기껏해야 거암귀의 앞다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6번째 지옥문의 마물이 얼마나 괴물인지 알 수 있었다.
콰직……!!
용아가 있는 힘껏 거암귀의 다리를 물자 그의 머리를 밟고 남궁이 마물의 등 위로 뛰어올랐다.
[더 이상은 올라가지 못한다.]
[순리를 어기는 자여.]
[돌아가 죽음을 기다려라.]
3명의 진들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상공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꿀꺽-
▶ 중급 내성 비약(화염)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 5분간 3등급 이하의 화염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가집니다.
▶ 내성 등급 이상의 속성 공격을 받을 시 효과의 지속 시간이 감소합니다.
콰직-!!
남궁은 들이킨 비약의 빈병을 바닥에 던지며 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라……!!!]
진들이 그를 붙잡으려 했다.
캉-! 카가강--!!
그 순간, 영혼 병사들이 그의 옆을 가로막았다.
화르륵……!!
그저 진의 근처에 갔을 뿐인데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열기에 남궁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 영혼 지대 Lv3이 발동됩니다.
남궁의 발아래 검은 영역이 생성되자, 기다렸다는 듯 영혼 병사들이 진들을 밀어내며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쿠웅-!!
그 순간, 그의 뒤에 소환된 영혼 주술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 영혼 강화 Lv3이 발동됩니다.
▶ 영혼 지대 안에 있는 모든 영혼 병사들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 지속 시간 10분.
영혼 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이 영혼 병사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화르륵……!!
병사들이 쥐고 있던 검에서 검붉은 화염이 맹렬하게 솟구쳐 올랐다.
쩌적……! 쩌저적……!!
영혼 주술사가 룬어를 외우며 지팡이를 치켜세워 들자 자줏빛의 낙뢰가 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파앗-!!
그리고 그것을 신호탄으로 영혼 병사들이 다시 한 번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캉! 카강……!!
강화된 영혼 병사들이 진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그들의 공격에 놈들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죽이려고 할 필요 없어. 무리하지 말고 그냥 놈들을 붙잡고만 있어.”
[크르르…….]
영혼 주술사가 남궁의 명령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 강화의 지속 시간은 10분. 그 안에 아티팩트를 찾는 게 좋겠지.’
남궁은 우뚝 솟아 있는 3개의 화산 중 가운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는 섬이라는 명성이 어울리게 울창한 숲 안을 연상케 하는 거암귀의 등껍질 위에서, 그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그때였다.
화산 아래에 있는 동굴에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에 남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뭐지? 용암 호수에 있는 불기린은 아직 잠들어 있을 텐데……?’
캉-! 캉--! 카강---!!!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에 그의 굳은 얼굴은 당혹감으로 덮였다.
‘누구지?’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 소란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봐! 그렇게 해서는 못 잡는다니까!!”
“그럼 어떻게 하라고? 당신이야말로 힐만 하지 말고 좀 싸우지?”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남궁은 몸을 숙였다.
‘거암귀의 용암 호수는 일종의 히든 던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깰 수도 없는데…… 도대체 어떤 머저리들이 불기린을 깨운 거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들로 인해서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키에에에엑!!!]
불기린이 포효와 함께 거대한 꼬리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물을 상대하고 있던 남자가 튕겨 나갔다.
“크하!!! 젠장, 갈비뼈가 나간 거 같은데?”
바닥을 수미터 구른 남자는 엉망이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즐거운 듯 소리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불기린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어 버렸을 텐데 말이다.
‘하긴. 여기까지 올라올 정도라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 실력자이거나…… 미친놈이거나.’
남궁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순간 조금 전 불기린의 일격에 튕겨 나가 바닥에 너부러져 있던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구?”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궁을 바라봤다 .
“……?!!”
하지만 정작 놀란 쪽은 남궁이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어? 우아!!!”
당혹스러워하는 남궁과 달리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는 그를 가리키며 반색했다.
“남궁? 남궁 씨 맞죠? 야, 여기 봐봐!! 그 사람이 왔어!! 정말 네 말대로네?”
갈비뼈가 부러진 고통도 잊었는 지 남자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크르르르르…….]
불기린을 앞에 두고도 여유로운 그의 모습은 묘하게 긴장감을 깨뜨려 버렸다.
“……날 아나?”
“당연하죠. 계시자들 중 남궁이란 이름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불기린의 앞에 서 있던 나머지 한 사람이 거리를 물리며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왔다.
‘……계시자?’
그들을 이곳에서 만난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남궁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반갑습니다.”
남궁은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 계시자라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네, 맞습니다. 제가 이번에 새로이 뽑힌 미풍의 어머니의 계시자 거든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한 그에게 남궁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연인지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둘을 계시자로 뽑았다라…… 재밌네.”
“네?”
남자는 생각지 못한 그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남궁은 그런 남자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 잘 부탁하지. 제렌 파울.”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남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놀란 남자가 눈을 크게 떴지만, 남궁의 시선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클락 노먼.”
회귀를 했으니 언젠가는 다시 그들의 이름을 부를 날이 올 것이라 기대했었다.
제렌과 클락.
그들은 회귀 전 남궁과 마지막까지 함께 싸웠던 유일한 동료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는 그 또한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계시자들은 서로 싸워야 한다.
빠득-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