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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156/270)

156화

“남궁 님. 탑을 빼앗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가요?”

덴 하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말 그대로야. 저들은 탑 속의 주민들이다. 이번에 탑의 주인이 바뀌면서 풀려나게 되었지.”

“탑은…… 던전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남궁의 옆에 서 있는 라테아를 힐끔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는 너희와 같은 인족(人族)이다. 마물로 치부되는 것은 좀 곤란하군.]

“마, 말을…….”

덴은 투구 속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야. 탑 안에는 마물도 살긴 하지만 지금껏 생성되었던 일반적인 던전과는 다르다. 마을이 존재하고 우리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 곳이었어.”

남궁은 라테아를 가리켰다.

“그녀는 탑 속의 일족 중 하나인 요란의 수장이다. 나머지 일족들은 그녀를 통해 안내받으면 될 거야. 이제부터 시작되는 카니발에 우리는 저들의 지원을 받는다.”

“남궁 님께서 데리고 오신 것이니 믿을 수 있는 자들이겠지만…… 괜찮은 거겠죠?”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녀는 지금 나와 영혼 계약을 맺은 상태니까. 영혼 병사가 아니라 조금 특이한 위치긴 해도…… 배신을 하거나 히진 못해.”

[그럴 생각도 없지만 말이야. 탑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우리에게 은인이다. 앞으로 당신들이 카니발을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도록 하지.]

덴 하울에게 라테아의 첫 인상은 기괴한 투구를 쓰고 있는 괴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온몸이 저릿한 충격을 받았다.

‘뭐, 뭐야……? 마력?’

지금까지 느껴볼 수 없던 깊고 짙은 마력이었다. 【얼음 심장】덕분에 한 단계 상승한 그였지만 그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

아니, 오히려 성장했기에 라테아의 힘이 두려울 수 있는 것일지 몰랐다.

“소민 양만큼이나 대단한 마법사가 또 계셨군요.”

[내가 마법사? 보아하니 사계절의 방랑자가 뽑은 계시자인 것 같은데…… 아직 갈 길이 멀군. 마법사라면 자고로 본질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하니까.]

“……네?”

라테아는 덴을 바라봤다.

[나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저 약간의 주술을 위한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그걸 자네가 혼동한 모양이로군.]

“약간의 주술이요? 지금 당신 만큼의 마력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힐 겁니다.”

[그건 아직 자네들이 카니발을 모두 끝내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야. 나 정도의 마력은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테니 걱정 말게.]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라테아의 모습에 덴은 입맛을 다셨다.

[게다가 내 전공은 창이거든.]

“창술사란 말씀이십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래도 원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조금 전해주도록 하지. 상급 마법을 알지는 못하지만 3번째 페이지를 여는 것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그가 우리에게 해준 것을 생각하면 이런 건 너무 사소한 일이지.]

그도 그럴 것이, 잠시 마법 이야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덴은 도대체 남궁이 어떻게 탑의 문을 연 것인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남들은 탑에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것에도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별로 중요한 것도 아냐. 그보다 서둘러야 할 거다. 다들 들었지? 6번째 문이 열렸어. 한가롭게 노닥거릴 시간 없다.”

“넵!!”

“알겠습니다.”

남궁의 말에 미카엘과 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그그그그…….

영역을 빠져나가기 전 남궁은 다시 한 번 거대한 탑을 바라봤다.

* * *

[아무것도…… 하지 말라?]

란(亂)은 남궁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맞아. 그게 당신이 정말로 나와 손을 잡고 싶다면 해야 할 일이다.”

[이상한 일이로군. 너는 내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한 것도 모자라 탑이 준 퀘스트마저 하지 않겠다는 뜻이냐.]

“제대로 이해를 한 모양이군.”

[그럼 네가 얻는 게 무엇이지? 고작 위상들의 성물을 회수하는 것이 다일 텐데.]

그는 남궁에게 말했다.

[성물을 모아 성전을 소환한다고 해봐야…… 결국 위상들이 세계에 관여하는 것만 부추길 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물론, 성물은 회수하겠지만 말야.”

[흐음…… 네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겠군.]

“어려워할 필요 없어. 위상들이 바라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니까.”

[놈들이 바라는 것?]

“나는 만신전에서 성물을 가지고 위상들을 협박했다. 그 덕분에 놈들은 탑을 소환했지.”

[그건 생각할수록 우스운 일이지.]

“하지만 놈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 위상은 우리에게 탑 속에서 앞으로의 카니발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거라고 했다. 나는 처음엔 그게 이곳에 갇혀 있는 일족들이라고 생각했지.”

[그럴 리 없지. 그들은 위상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니까.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런 퀘스트도 네게 준 것이잖느냐.]

“맞아. 애초에 위상들은 우리를 도울 생각이 없었던 거야. 그걸 우리가 알아차려도 할 말 없도록 얄팍한 보상을 부르는 탑의 퀘스트를 만든 것일 테고.”

[그러나 너는 놈들의 예상을 깨고 오히려 일족들의 힘을 이용해서 나를 만나러 왔군.]

남궁은 란(亂)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껏 내게 와서 아무런 힘도 얻지 않고 가려 하다니.]

“얻는 것이 없는 게 아냐.”

[그럼?]

“아무것도 잃지 않는 것이지.”

우(无)의 탑은 라테아의 말처럼 카니발에 반기를 든 자들을 가둔 일종의 감옥이라 할 수 있었다.

즉, 이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위상들에겐 죽이고 싶은 존재라는 의미.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남궁의 손을 빌려 일족들을 처리하려 했다.

‘놈들의 뜻대로 움직여 줄 수 없지.’

그래서 그는 탑의 퀘스트와 반대로 일족들을 탑에서 탈출시키려 했던 것이다.

“탑을 부숴서라도 말이지. 하지만 란(亂), 당신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어. 탑을 부수는 것이 어쩌면 위상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어째서지?]

“우(无)가 변곡을 만드는 존재라면 란(亂), 당신은 규율의 끝에 있는 존재다. 아무리 네가 뭐라 해도 너는 위상의 중심이야. 네가 위상들을 적대한다 한들, 너를 풀어 준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라도 위상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란(亂)은 그의 말에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우(无) 녀석이 사람 하나는 잘 고른 모양이군. 네 말이 맞다. 나는 나를 가둔 위상들을 당장에라도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이지만…… 나는 위상들의 근원과 같은 존재. 내가 풀려나면 위상들의 힘도 강해질 수 있겠지.]

“나는 놈들이 싫어하는 일만 할 거다. 놈들이 살리고자 하는 자를 죽일 것이고 죽이려는 자들을 살릴 것이다.”

[재밌군. 하지만 아깝지 않느냐. 탑에서 얻을 수 있는 힘들을 모두 그냥 두고 떠난다는 것이 말이다.]

“누가 떠나? 그 어떤 것보다 이 탑을 확실하게 이용할 건데.”

[……흠?]

“위상들이 태초의 위상이라 불리는 당신부터 반기를 들었던 일족들까지 모두 가둘 정도라면…… 그 어떤 것보다 튼튼한 곳이란 의미지 않을까?”

[탑이 튼튼한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지? 걱정 마라. 아무리 튼튼하다 하더라도 내 힘이 풀려난다면 이 정도 따윈 우습게 부술 수 있으니까.]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그렇게 되면 위상들의 힘도 강해진다니까.”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내가 얻어 갈 건 이 탑 자체라는 뜻이다.”

[뭐?]

“더 이상 이곳은 감옥이 아니다.”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무엇보다 튼튼한 방주(方舟)가 될 것이다.”

* * *

▶ 고블린 성채의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 탑과 성채가 융합합니다.

▶ 탑의 힘으로 성채의 영역이 확장됩니다.

▶ 고블린 성채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 고블린 성채의 등급이 (레어)가 되어 각종 부가 효과를 추가적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쿠그그그…….

탑 안에 마치 거대한 성처럼 우뚝 세워진 성채 주위로 방벽이 쳐졌고 그 안에 마치 도시처럼 건축물들이 만들어졌다.

“흐음.”

남궁은 계속해서 확장되는 성채의 영역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성채의 내부가 확장되는 것 이상인 도시 형태로 성장되는구나.’

단순히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것 이상으로 부족 형태를 갖춘 고블린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탑 안에 마을을 만들다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는 아마 너뿐이겠지.]

라테아는 황량한 이곳에서 막사 생활을 해왔던 오랜 세월을 떠올리며 기가 막히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도대체 어떻게 한 겐가. 던전 안에 마을이라니……·.”

“던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물이 있긴 하지만 던전화가 된 곳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새로운 차원이라고 봐야 하니까요.”

“허, 대단하군.”

“그나저나 어떻습니까?”

“설명을 할 것도 없구만. 굴러다니는 돌마저 속성이 부여되어 있는 곳이라니…….”

그곳엔 라테아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란(亂)의 힘으로 탑의 문이 열리자, 지금까지 탑의 입구를 찾지 못해 들어오지 못했던 이들의 출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작 능력을 가진 자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일세.”

만덕수는 용암 대지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을 집어 살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랜만에 의욕이 샘솟는군. 여러 가지 만들고 싶은 것들이 생각나는데…… 이것들을 써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지만 탑의 문이 개방되었다 해도 여전히 마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니 일족의 사냥꾼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혹시 이 재료들을 밖으로도 가져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요새화시킨 도시들도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마법사들의 공간 이동술을 이용한다면 가능할 거야.]

“기대되네요.”

만덕수뿐만 아니라 진수혁 역시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탑에는 우리가 머무는 아룡의 문 이외에도 2개의 문이 더 있다는 것이다. 문은 오직 외부인에게만 반응하거든. 그 말은 자네들 중 누구라고 그 문을 열 수 있다는 거니 조심해야 할 거야.]

“그 안엔 누가 살고 있지?”

라테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른다. 문은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거든. 다만 확실한 건 그들 역시 위상에게 반기를 들다 갇혔다는 것이겠지.]

“그럼 아군이라는 뜻 아닙니까?”

[꼭 그렇게 볼 순 없지. 탑은 여전히 그들을 시험하고 있고, 그들에게 자유를 대가로 이곳의 말살을 요구한다면…….]

라테아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우리 속의 괴물을 풀어놓는 꼴이 되는 거지.]

“새로운 재료들을 얻으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군. 당분간은 이곳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마물들을 대비하는 게 좋겠지.”

“알겠습니다.”

“덴, 너는 마법사들과 함께 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을지 살펴봐.”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진수혁과 덴이 먼저 요란 일족과 함께 움직였고 만덕수는 새로이 등급이 오른 성채를 먼저 살피기로 했다.

[저곳은 앞으로 온갖 사람들이 모두 모이게 되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장(場)이라…… 지금껏 이런 걸 해낸 자는 네가 처음일 거다.]

“처음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후지.”

일족의 등장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론은 아마 불안해할 것이 틀림없었다.

남궁은 그들을 안정화시키고 더 나아가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힘이었다.

자신 덕분에 탑의 문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지만, 그렇게 얻게 된 자유는 결국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길 수 있었다.

좀 더 많은 것을 탐하려는 욕망.

[탑의 일족들이 자네의 세상을 빼앗을 수도 있다? 하하, 그럴 리 없어. 요란 일족은 절대로 자네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그건 내가 약속하지.]

라테아는 장난스럽게 쓰고 있는 투구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인간의 욕심을 끝이 없는 법이니까. 언제라도 배신은 존재할 수 있어. 나는 그걸 지겹도록 봐왔거든.]

[그럼…… 무엇을 할 생각이지?]

“세계연합(世界聯合).”

남궁의 뒤에 있던 박효주가 기다렸다는 듯 그를 향해 말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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