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270)

139화

TV에서나 보던 얼굴이 이런 아수라장이 된 장소에 나타나자 협회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차를 몰아 계획대로 나머지 길목을 막아주시죠.”

“지금 형님을 막겠다고 하셨습니까?”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형님은 우리가 다 달라붙어도 못 막습니다!! 하물며…….”

협회원들은 총리를 슬쩍 바라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같이 장정인 그들과 달리 총리의 모습은 너무나도 왜소해 보였기 때문이다.

“제가 믿음직스럽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총리는 그들의 시선의 의미를 알고서 대답 대신 들고 있던 창을 가볍게 저었다.

파핫……!!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검은 인영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엄청난 속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갖추는 모습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믿어도 됩니다.”

총리는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총리의 말씀대로 나머지 이동 경로의 폐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재 서대문구 쪽의 경로는 저희가 막고 있습니다만 인원이 부족합니다. 합정 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사람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정말 형님을 막을 수 있습니까?”

“폭식의 능력을 가진 장길수 씨는 강합니다. 하지만 정부 역시 앞으로 이 사태를 손 놓고 보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

총리는 협회원들에게 말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가 아닌 참악부대의 서재욱으로서 여러분들께 약속드립니다.”

그는 지면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장길수 씨를 무사히 여러분들께 돌려보내겠습니다.”

파앗-!!

그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

육안으로 좇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에 협회원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콰아앙---!!

그러고는 창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오자, 그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가볍게 떨었다.

“뭐, 뭐야…….”

“……저런 이미지였었나?”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서재욱의 모습에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총리가 직접 나서다니…….”

“이러면 우리도 할 말이 없잖아.”

지금껏 정부의 사람들이야 그저 탁상공론이나 하는 자들이라고만 여겼으니까.

하지만 서재욱의 등장은 지금 그들의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고 있을 수 없지! 자, 어서 가자고!!”

“……괜찮을까요?”

“뒤에서 명령이나 하는 게 아니라 목숨 걸고 앞으로 나왔잖아. 그렇다면 믿어야지.”

협회원들은 서둘러 냉동차를 몰기 시작했다.

“세상이 뭣같이 변해도 좋은 점도 있나 봅니다. 총리가 싸우는 모습도 보고 말이죠.”

“좋긴 뭐가 좋아. 난 일 끝나고 소주나 마시던 시절이 훨씬 더 낫다.”

“그래도 저런 사람들이 앞장서주면…….”

차에 탄 협회원들은 장길수를 막아서는 총리를 사이드 미러로 힐끔 한 번 더 보며 말했다.

“나라가 변하지 않겠습니까.”

* * *

“벌써 돌아갔습니까?”

“응. 그리고 그것도 가져갔다.”

“설마…… 옥산갑 말입니까? 오오무카데의 껍질로 만든 갑옷 말입니다.”

전설 속의 지네 괴물.

오오무카데를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기에 지네 굴 속에 있다는 보물도 그저 수련을 위한 핑계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을 오랜 세월 도전한 자신들이 아닌 이방인이 가져갔다는 것에, 비월의 살수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맞아. 성물은 찾지 못했어도 비월의 2가지 보구 중에 하나를 가져갔으니 억울하진 않겠지.”

“……믿을 수가 없군요. 그런 평범한 자가 어떻게…… 지네 굴에서 살아남은 것도 놀라운데 신물까지.”

“그러게 말이다. 괴상한 일이지. 비월의 살수 중 아무도 지네 굴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그렇진 않죠. 가츠마타 님께서 지네 굴에서 살아 돌아 오셨잖습니까. 게다가 2개의 신물 중 하나를 훨씬 오래전에 취하셨고요.”

지네의 이빨로 만들었다고 불리는 가츠마타의 무기인 곡산도는 40㎝ 정도 되는 두 자루의 중단검이었다.

단검이라고 하기엔 길고 장검이라고 하기엔 짧은 그것은 검은 녹색의 날을 가졌다.

“곡산도는 지네 굴의 최하층에 있는 게 아냐. 나는 그저 입구에 잠시 닿았을 뿐이지.”

가츠마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남궁의 주위엔 하나같이 기인들이 가득하지. 강호준 같은 괴력을 가진 자부터, 그의 딸은 엄청난 마력의 보유자지. 전경인과 김창환은 말도 안 되는 시력을 가졌고 말이야.”

그런데 최명훈만은 이렇다 할 특색이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인 능력은 준수한 편이지만 사실 그 정도의 능력은 비월에서만 봐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강하단 말이지.”

알렉 트라만이 【별해검】을 맡긴 것만 봐더라도 최명훈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그자가 찾아왔을 때 한 번 붙어봤지만, 솔직히 말해서 여전히 그가 강하다는 느낌은 없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해내지 못한 지네 굴을 최명훈은 통과했다.

“과연 남궁이 선택한 이유가 있긴 하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아직도 최명훈이 왜 강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도 궁금하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흥미는, 가츠마타에게 지금껏 없었던 존재를 선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경쟁자라는 것 말이다.

“한국으로 간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에리카의 명령으로만 움직이던 비월의 수장이 처음으로 자의(自意)를 가지게 만들었다.

* * *

[전방에 소형 독구름 확인. 경기장을 향해 이동 중! 1시간 내외로 중앙 독구름이 있는 마포구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오케이. 알겠어. 10분 단위로 계속해서 이동 위치를 보고해.”

[그런데 진짜 올까요? 독구름을 터뜨린 놈 말입니다.]

“온다. 분명히.”

서울 월드컵 경기장 옆 하늘공원의 꼭대기에 있는 주사인은 외곽에서 독구름의 위치를 주시하고 있던 김창환의 물음에 대답했다.

“독구름은 진웨이가 만든 거지만 이걸 터뜨린 놈은 다른 녀석이야. 다에시 그 변태 같은 녀석이라면 분명 지금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 할 거야.”

주사인은 독구름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며 말했다.

“독구름이 합쳐지는 모습을 자기 눈으로 보려고 하겠지. 최악의 상황을 보는 게 놈이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거든.”

그는 모니터를 주시하며 말했다.

“가장 근접한 독구름의 경로는 성북구를 지나 종로구를 통과할 가능 가장 높아. 창환아, 네가 소민이를 엄호해서 좋은 위치를 확보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효주 씨는 계속해서 덴 하울에게 연락을 취하세요. 그가 오지 않는 이상 결국은 독구름을 막기 어려우니까.”

우우우우웅…….

그의 옆으로 작은 유리관들이 세워진 가방 안에서 여러 가지 용액들이 섞이며 반응하는 것이 보였다.

치이익…….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용액이 계속 증발하면서 유리관 안은 시커멓게 변했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완벽하게 분석하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데. 효주 씨, 국방과학연구소에 장비들이 준비되었습니까?”

-네. 말씀하신 장비들 모두 세팅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헬기가 계신 곳으로 이동 중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서둘러서…….”

그때였다.

“오랜만이군.”

장비의 회수를 준비하던 주사인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

“역시 나를 잘 알아. 네 말대로야. 이런 광경은 놓칠 수 없지. 다이스.”

“……!!”

주사인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솨아아악……!!

하지만 그 순간, 다에시의 주위에서 푸른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를 밀어냈다.

뼛속까지 시리는 엄청난 한기에 주사인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귀혼을 맞고도 버티다니. 제법 많은 인간의 목숨을 엮어서 만든 건데 말이지.”

“이 새끼…….”

“독구름을 분석하는 건 목숨을 내거는 일인데. 왜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는 거지?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쪽 아니었나?”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하는 거지. 진웨이? 머리 빈 건달 새끼가 만든 폭탄 따위에 쫄 필요가 없잖아.”

“하하. 그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은 너뿐일걸. 연금술로 만든 독구름은 결국 이능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과학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은 생각 아닌가?”

“과학이 바보 같다는 소리를 하는 너야말로 머리가 빈 거지. 끼리끼리 논다더니 잘 만났네.”

“…….”

다에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도 함께 작전을 수행했던 사이인데 너무 날을 세우는 것 아닌가?”

“함께? 웃기지 마. ISR에 잠입했을 때 네놈이 신임을 얻기 위해 우리 쪽 대원 몇을 죽였는지 기억 안 나? 혼자서 공을 독식하려는 욕심에 말이야!”

“더 안전한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거지. 하지만 덕분에 ISR을 괴멸시킬 수 있었잖아. 내가 압델 시야프의 비밀 통로를 알아내지 못했다면 그를 놓쳤을걸.”

“동료를 팔아서 공을 세우는 놈 따위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아쉽군.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동료? 새끼야. 진웨이는 그나마 죽일 가치라도 있지. 너는 그럴 가치도 없었어. 남의 밑에서밖에 움직일 줄 모르는 놈 따위.”

주사인은 다에시를 향해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의 도발에 어쩐지 다에시는 오히려 즐거운 듯 웃었다.

“그래, 그럼 어디 너는 한번 날뛰어봐라. 괴물이 되기 딱 좋은 분위기잖아. 안 그래?”

촤르르륵…··!!

다에시에게서 뿜어져 나온 한기가 주사인의 팔과 다리를 움켜잡았다.

“미친 새끼.”

슉-!!!

그때였다.

다에시의 뒤통수를 뚫고 튀어 나온 화살이 주사인의 발아래 박혔다.

툴썩-

머리가 관통당한 다에시의 몸이 그대로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괴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옥에서 너나 날뛰고 다녀.”

주사인은 다에시의 시체를 밟으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봤지? 이 새끼 분명히 보러 온다니까.”

-정말 나타났네요.

“제 버릇 남 주겠어. 임펄스 작전을 수행할 때도 그랬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죽어갈 때는 꼭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거든.”

그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동료들이 죽어갈 때도 놈은 어디선가 보고 있었겠지. 그리고…… 지금도 말이야.”

주사인은 이게 진짜 다에시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놈은 자신의 죽음마저 바라보며 웃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구름이 합쳐지는 곳이 아니라 그쪽으로 갈 걸 예상하시다니 말이에요.

“악취미니까.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 나를 괴롭히는 게 더 재밌을 게 분명하겠지.”

-정말 대단하세요.

주사인은 경인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 거리에서 화살로 머리를 한 방에 맞히는 것보다야 대단하지 않지.”

두두두두두…….

주사인은 날아오는 헬기를 보며 장비를 챙겼다.

“…….”

조금 전 머리가 날아간 다에시의 시체가 마치 벗어 놓은 뱀의 허물처럼 녹아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헬기의 사다리를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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