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박효주 팀장의 말이 정말일까요?”
“아니길 바라지만…… 계시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준비는 해야겠지. 국내에 밀입국했다는 ISR의 위치를 서둘러 파악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절대로 조심해야 하네. 어디에 다에시가 있을지 모르니 교전보다는 확인하는 즉시 보고하도록 하게.”
총리의 말에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쉘터의 상태는?”
“현재 서울을 비롯하여 서산, 광주, 대구, 강릉 이렇게 다섯 군데에 건설 중인 대규모 쉘터에 한해서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가능 인원이 턱 없이 부족합니다.”
“내성에 취약한 아이들부터 쉘터의 보호를 받게 하고,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능력자들 중 독에 강한 자들이나 내성을 올려줄 수 있는 버퍼들은 쉘터가 없는 도시에 배치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만약 전국적으로 마약 폭탄이 터진다면 피해는 끔찍할 겁니다.”
비서실장은 말했다.
“어쩌면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살릴 사람과 희생할 사람을 말인가? 그걸 결정하는 건 더 이상 우리가 아닐세.”
철컥-
총리는 직무실에 세워둔 창을 꺼냈다.
진수혁이 설계하고 만덕수가 제작한 특수한 창이었다.
“이것 보게. 손에 감기는 느낌이 훌륭해. 부족한 사람인데 자리 덕분에 혜택을 보는군.”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목을 갑갑하게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
양복 정장과 기다란 창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면서도, 묘하게 두 개 다 착 총리에게 감기는 듯 보였다.
“무슨…….”
비서실장은 훈련도 아닌데 그가 창을 들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정보단 실행이지.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ISR 밀입국 위치를 검토하여 출몰 지역을 선정하게.”
“설마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만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겠지.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이제 족하네. 마물의 공습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습격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지.”
비서실장은 지금껏 봐왔던 총리의 모습과 사뭇 다른 기세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이 계기가 될 것이야. 그 누구도 다시는 우리 국토를 전장으로 삼지 못하게 각인시켜 줄 테니.”
총리는 창을 허리에 차고는 벨트를 단단히 조이며 말했다.
“참악(慘惡)을 부르게.”
* * *
에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피를 알리는 경고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지하철역에 만들어진 임시 보호소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시민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지금부터 마물 공습에 대비하여 대피 훈련이 있겠습니다. 도시 내 모든 시민들께서는 지정된 보호소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때아닌 경고 소리에 소란스러웠던 거리가 한산해지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ISR의 인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뭐야. 여긴 이런 훈련도 합니까?”
“누구는 사람 면상에 대고 총을 갈기며 서로 싸우고 있는데 팔자 좋게 대피 훈련이나 하고 말입니다. 저 안에다가 하나 터뜨려 버릴까요?”
“낄낄…… 그거 괜찮은데?”
빌딩 안쪽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놈들이 지하철역을 가리키며 히히덕거렸다.
“대장. 진웨이로부터 연락입니다.”
그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다에시는 건넨 전화를 받았다.
“흐음…… 진심입니까? 알겠습니다.”
몇 번이나 되물으며 확인하던 다에시가 통화를 끊으며 고개를 돌려 조금 전 떠들어 대던 부하들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기.”
다에시는 시민들이 대피한 지하철역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터뜨려.”
* * *
콰아아아앙……!! 쾅! 쾅!!!!
곳곳에서 요란한 폭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뭐, 뭐야?! 훈련이라고 하지 않았어?!”
“모두 자세를 낮추고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서두르십시오!!!”
임시 보호소에 배치되어 있던 군인들의 통제에 시민들은 황급히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폭발 확인. 위치 상암 월드컵 경기장. 다시 말한다. 12시 20분. 서울 시내 폭발 확인. 위치는 상암 월드컵…….
박효주의 보고 이후 각 비행단의 감지선들이 일제히 영공을 날며 도시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제길……! 차라리 마물이라면 미사일이라도 때려 박을 텐데. 무차별 테러라니…… 어떻게 놈들을 잡아야 하는 거지?”
세종에 마련된 임시 작전 사령부에 모인 지휘관들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포구에 폭발이 일어났다고 해서 놈들이 그곳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원격으로도 점화가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지금으로선 놈들을 잡기보다는 폭약의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월드컵 경기장 내부에서 피어오르는 연녹색 연기에 특수한 입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연기들이 바람을 타고 퍼지기 시작합니다!! 도시 전역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지휘관들은 이렇다 할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부우우우웅……!!]
그때였다.
“저, 저기……!!”
모니터를 주시하던 통신병의 외침에 지휘관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도시에 띄워둔 드론의 카메라에 포착된 건 한강을 가로지르는 보트 한 척.
지이이잉-
화면을 확대하자 보트 안에는 3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강호준?”
* * *
“와 씨……! 진짜 폭탄이 터졌네?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 이제는 테러라니. 진짜 세상 미쳐 돌아가네.”
“사람을 잡아먹는 마물들을 사냥하고 마족의 목을 베는 게 평범한 세상은 아니지.”
“그래도 놈들은 인간이 아니잖습니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지. 서로 잡아 죽일 작정이라니…….”
“몰기나 해. 바람을 타고 연기가 흩어지려고 한다. 도시를 덮기 전에 분석을 끝내야 해.”
“가능은 합니까?”
턱-
보트의 핸들을 잡고 있던 호준의 머리를 움켜잡는 손.
“말이 많아졌다. 강호준.”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김창환이 호준의 머리를 잡은 손의 주인에게 말했다.
“진웨이가 만든 마약성 독약이 들어 있는 폭탄이라면서요. 이걸로 과연 버틸 수 있을지 확인이 안 되었으니 걱정스러울 수밖에요.”
“육안으로 보기엔 카이로에 생성된 흑운과 비슷해. 그렇다면 충분히 필터가 가능하다. 설마 못 미더운 거냐? 내가 만든 방독면이?”
“그럴 리가요. 형님 실력이야 누구보다 저희가 더 잘 아는데요.”
창환은 호준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항상 냉정하고 말수가 적은 그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럼 들어가.”
하지만 그런 호준의 태도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처럼, 주사인은 얼굴에 쓰고 있던 방독면을 다시 한번 조이고는 장비를 작동시켰다.
“에라이, 갑니다. 가요. 지옥으로 한번 들어가 봅시다!!!”
부우우우웅--!!
보트가 속력을 높였다.
* * *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상암 일대를 시작으로 세 곳의 도시에서 폭탄이 터지자, 각 국가의 언론들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테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저게 끝이야? 생각보다 위력이 별로인데.”
베트남 공장에 숨어 있던 진웨이와 에이라 미쉘은 보도되는 뉴스를 확인했다.
“위력이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저기 위에 생성된 구름이지. 연금술로 만든 독구름이다. 공기와 접촉하게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분열 하며 증가하지.”
“효과는?”
“일전에 만든 버서커의 10배. 흡수하지 않고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이야. 인간들을 살아 있는 좀비로 만들 수 있는 거지.”
“흐음…… 지속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하지만 어차피 독구름이 계속해서 퍼질 거고, 공기 안으로 입자들이 정착하게 되면 일대 자체가 죽음의 땅이 되는 건 순식간이지.”
진웨이는 서서히 퍼져 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긴장된 듯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무리 남궁이라도 저걸 막을 방법은 없어. 대한민국이 폐허가 되는 건 시간문제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방아쇠는 당겼고, 빨리 성물이나 내놔.”
“좋아. 그러지.”
에이라 미쉘은 품 안에서 성물을 꺼냈다.
성물의 모양은 깨진 화롯불의 형태로, 육안으로 봐도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진웨이는 알 수 있었다.
“흥, 처음부터 이럴 것이지. 남궁 앞에서 설설 기는 꼴이 참 보기 좋았는데 말이야. 걱정 마라. 성물의 힘을 개방하기만 하면 남궁이라도 내게 안 될 테니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대감으로 인한 흥분.
진웨이는 에이라가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성물을 살폈다.
“남궁을 잡고 나면 나머지 놈들이야 알아서 기게 될 거다. 약속하지. 그놈들을 잡기 전에 널 죽이는 일은 없어.”
마치 선심 쓰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에이라는 어색하게 웃었다.
“가장 먼저 남궁을 잡는 것은 진심이지?”
“물론. 놈을 죽이지 않고서는 결국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걸 명심해.”
“좋아. 그럼 됐어. 그게 네 뜻이라면 충분해.”
툭-
그 순간, 에이라 미쉘이 진웨이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신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테니.”
“……뭐?”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진웨이가 에이라 미쉘을 바라봤다.
갑자기 그녀의 눈동자가 수십개의 고리가 엮인 것처럼 분열되기 시작했다.
[남궁을 죽여라.]
에이라 미쉘의 목소리가 겹겹으로 들렸다.
“……그러도록 하지.”
성물을 들고 있던 진웨이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나사가 빠진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툭, 툭.
“그래도 통하는 게 있네. 나도 다른 놈들을 잡기 전에는 널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거든.”
그녀는 진웨이의 뺨을 가볍게 두들겼다.
“후우, 광신술도 만만찮다니까. 최면술과 달리 자신의 의지가 부합돼야 발동하다니 말이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같이 화를 냈을 진웨이가 지금은 신기하게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시자들을 모두 죽이고 네놈도 자살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녀는 진웨이의 손에 들려 있는 성물을 빼앗았다.
“이건 내가 보관하고 있겠어. 이제 날 믿지?”
“……알겠다.”
어차피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그녀는 이미 성물을 품 안에 집어넣은 뒤였다.
“뭐 해? 간 보지 말고 지금 당장 나머지 폭탄들도 모두 터뜨려 버려.”
인간의 목숨 따위 하찮은 듯, 성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