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크극…… 크그그극……!!
두 개의 영혼 지대가 서로 부딪치자 거대한 화물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꿀꺽-
주사인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긴장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먹은 건지…….”
그는 인간의 한계, 그 이상의 싸움을 하고 있는 남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작 몇 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시 남궁과 재회했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25년이란 전생의 시간은 그를 바꾸기 충분했지만, 주사인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쿠웅-!!
최휘수가 지팡이를 내리쳤다.
[크륵……! 크르르륵……!]
그러자 컨테이너 박스 안에 남아 있던 시체들이 지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쩌적…… 쩌저적…….
시체들의 살점이 벗겨지며 새하얀 뼈만이 앙상하게 남았다.
퍽! 퍽……!!!
바스스슥……!!
그리고 스켈레톤들이 스스로 바닥에 머리를 박아대며 자신의 몸을 부수기 시작했다.
“뭐, 뭘 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주사인은 어리둥절했지만 하나둘 부서지는 스켈레톤들을 본 남궁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스.”
남궁의 명령에 영혼 병사들이 일제히 최휘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칵……! 카카칵……!!]
그들을 막으려 영혼 지대에 들어가지 않은 시체들이 몸을 날렸다.
카그그그극---!!!
그 순간 남궁이 사슬을 뻗었다.
달려들던 시체들이 믹서기에 갈리듯 허공에서 사슬의 회전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투둑……! 투두두둑……!!
살점과 부서진 뼈들이 비처럼 갑판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툭-
그때였다.
발걸음을 떼려던 남궁이 자신의 다리를 누군가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내렸다.
“…….”
그곳에는 살점이 너덜너덜해 뼈밖에 남지 않은 잘려 나간 팔이 그의 발목을 움켜쥔 채 매달려 있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시체의 팔을 떼어내자 이번엔 갑판 위에 너부러져 있는 손가락들이 바닥을 기며 달려왔고, 잘린 다리가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퍼억……!!
남궁이 신경질적으로 사슬을 내저었다.
퍽! 퍽! 퍼퍼퍼퍽!!!!
사슬이 그에게 달라붙는 시체의 부위들을 거침 없이 갈아버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잘려 나간 부위의 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쿵-
휘몰아치던 사슬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슬에 달라붙은 시체의 살점과 핏물 때문일까.
남궁은 사슬의 무게가 무거워진 것 같았다.
[크르르르…….]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시체들은 여전히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부우우우웅---!!!
달려 드는 시체들을 상대로 선두에 서 있던 아스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파도가 솟구치는 것처럼 시체들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와득……! 와드득……!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중에 떠다니는 검은 입자들이 아스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실체가 없는 영혼임에도 불구하고 독각의 이빨이 아스의 몸을 여기저기 갉아먹었다.
쿠웅……!!
거머리 같은 독각들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아스는 점차 기력이 달리는 듯 비틀거렸다.
▶ 엘더 리치가 데스 나이트를 소환합니다.
그 순간 귀를 찌르는 듯한 알림이 울렸다.
조금 전 스스로 머리를 박고 자신의 몸을 부수던 스켈레톤들의 조각들이 합쳐지자 그 자리에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나타났다.
기다란 창을 겨누고서 놈들이 남궁을 향해 뛰어들었다.
쾅! 콰가강……!
남궁이 창날을 피하며 데스 나이트의 가슴을 걷어찼다.
벌러덩 자빠졌지만 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남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캉! 캉! 카강-!!
쏟아지는 창들을 아슬아슬 막아내며 남궁이 뒤로 물러섰다.
[이대로는 안 돼. 네가 상대하기엔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아. 이제는 도망칠 자리도 없지 않느냐.]
갑판의 끝에 도달했을 때 데스 나이트들이 경계하듯 창끝을 세웠다.
“…….”
치직…… 치지지직…….
그리고 그를 압박하듯, 남궁의 영혼 지대가 최휘수의 것에 밀려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같은 사령술을 쓰지만 차이는 있다. 술법의 능력만 놓고 본다면 저자가 우위다.]
“……나도 알아.”
못마땅한 상황이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약하다는 말은 아니다. 너는 검을 다룰 수 있으니까. 술법과 함께 무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 역시 평범한 자질이 아니지.]
솨아악……!!
영혼 병사들이 분투하고 있었지만 고작 4명으로 최휘수의 스켈레톤과 시체들을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적어도 장소만이라도 이점이 있었다면 모를까…… 한정된 공간에서 싸워야 하니…… 어디를 가도 놈의 영역 안이다.]
“그래? 전장이 불리하면 없애 버리면 되지.”
파앗……!!
그 순간 남궁이 최휘수의 영혼 지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촤아아아악-----!!!
그때였다.
화물선 옆에서 소용돌이가 일더니 그 사이로 거대한 써펀트가 머리를 들며 솟구쳐 올랐다.
[카아아아악!!!]
용아의 포효와 함께 거대한 이빨이 그들이 있는 화물선을 물어뜯었다.
우지끈……! 쿠드드득……!!!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화물선의 옆면을 흔들어대자 선박의 뼈대가 튀어나오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쿠그그그그……!!!
배가 브이자로 꺾였고 시체들이 부서진 가운데로 미끄러지며 빠지기 시작했다.
풍덩! 풍덩!!
바닷속으로 쏟아지던 시체들이 부서진 화물선에 걸려 점차 쌓여 가자 바다 위에 발판이 생겨났다.
남궁이 그 위에 섰다.
[크르르…….]
용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화물선에 있던 나머지 세 명을 기다란 혀로 감싸 머리 위에 올렸다.
스으으으윽…….
꺾인 화물선의 끝에 서 있던 최휘수가 낙하산을 편 것처럼 천천히 상공에서 내려왔다.
그는 발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도 위에 서 있었다.
‘저건 최휘수의 능력이 아니다.’
남궁은 하늘에 떠 있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전생의 최휘수는 확실히 여러 가지 술법을 썼지만 그건 사령술에 국한될 뿐 마법이 아니었다.
‘아마도 엘더 리치의 능력이겠지.’
아직 5번째 문밖에 열리지 않은 시점에서 전성기에 가까운 힘을 발현한다는 건 키만 얀의 의해 리치의 능력이 섞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
남궁은 최휘수를 바라봤다.
그는 이제 온전한 리치였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남궁은 리치를 사냥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스르릉-
그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좀 더 중심을 낮추고 발목에 힘을 주는 모습은 틈을 노려 적의 영역 안으로 파고들려는 것처럼 보였다.
‘엘더 리치는 사령술에 특화된 마물이지만 대신 모든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
영혼 지대 안으로 들어가 최휘수에게 일격을 가할 수만 있다면 승산은 있었다.
솨아아악……!!
그가 영혼 병사들의 소환을 해제했다.
그들의 힘이 다시금 남궁에게 스며들자 그의 전신에 옅은 자줏빛이 빛났다 사라졌다.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아서라. 네가 아무리 사령술로 몸을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영역에 닿는 순간 오염될 거다.]
무명이 그의 생각을 읽고 다급히 말했다.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령술이라면 모를까…… 방법이 없어.]
“아니. 방법은 있다.”
남궁은 쥐고 있던 검을 있는 힘껏 아래로 찔렀다.
[……?]
그의 의도를 알지 못해 바라보는 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 일시적으로 사령술의 단계가 2단계 증가합니다.
▶ 영혼 사역 Lv5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사역 가능한 사령의 수 4/5
화아아악……!!
그의 검 아래에서 자줏빛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 영혼 지대 Lv5의 효과로 적대적 영혼 ‘키만 얀’을 구속합니다.
▶ 구속에 성공하였습니다.
▶ 강제 굴복이 가능합니다.
[키에에에엑----!!!]
소름 돋는 귀곡성(鬼哭聲)이 파도 위에서 울려 퍼지고, 검 아래에서 자줏빛의 불꽃을 타고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키만 얀의 영혼은 끝까지 남궁의 힘을 거부하려는 듯 발버둥쳤다.
▶ 강제 굴복에 성공하였습니다.
▶ 영혼 사역을 완료하였습니다.(5/5)
▶【계명검】의 효과가 사라지게 되면 영혼의 사역도 함께 해지됩니다.
▶ 지속 시간 : 1분
“놈을 압도할 수 있다.”
남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로브를 입은 검은 영령이 고통스러운 듯 날뛰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강……!!
키만 얀의 영혼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남궁의 전신에 알 수 없는 사기가 보호막처럼 생겨났다.
팟……! 파팟……!!
남궁이 시체들을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카카가각……!!]
물에 빠져 있던 데스 나이트들이 서로 그의 다리를 붙잡으려고 바둥거렸다.
▶ 군단 소환 Lv5가 발동되었습니다.
▶ 영역 안의 시체들이 당신의 사령술에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콰가가가가강……!!
검붉은빛과 함께 【계명검】에서 날카로운 떨림이 울렸다. 남궁이 검을 횡으로 긋자 그의 발아래 있던 데스 나이트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쿵!! 쿵!! 쿠웅……!!!
붉은 안광을 빛내며 물에서 기어 나온 데스 나이트들이 남궁의 앞을 가로막는 스켈레톤과 시체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크륵……?]
리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휘수는 수족들이 오히려 남궁을 돕자 당혹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르르륵……!!]
그가 지팡이를 저었다.
그러자 공기가 일그러지며 그의 머리 뒤로 검붉은 화구들이 나타났다.
부우웅-!!!
하지만 그보다 남궁의 검이 더 빨랐다.
“최휘수.”
남궁의 검이 그의 목을 관통했다.
쿵-!!!
츠즈즈즈…….
그가 쓰러지자 화구는 시전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되고 말았다.
“육체는 힘을 담는 그릇이지. 사령술의 극한에 도달했던 너지만 결국 허약한 육체로 인한 한계를 통감했었으니까.”
[크륵…… 크르륵…….]
“정신력만으로는 안 된다, 극한을 뛰어넘는 극의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육체라고 너는 말했었지. 그게 네가 나를 실험체로 골랐던 이유기도 하고.”
꽈악-
남궁은 쓰러진 최휘수를 밟고 있는 발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전생의 너는 나를 끔찍하게 괴롭혔지만 현생의 너는 나로 인해 죽임을 당했으니 그것을 복수라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쩌적…… 쩌저적…….
목을 관통한 남궁의 검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용서를 구할 생각도 없어. 다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죄다.”
남궁은 말했다.
“네가 그토록 원했던 사령의 극의(極意)에 도달할 거다.”
서걱-
[크아아아아아!!!!]
최휘수의 비명 소리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저승에서 지켜봐라.”
남궁의 검이 최휘수의 목을 갈랐다.
그의 머리가 바닷속으로 떨어지자 남은 그의 몸뚱이가 부들거리며 요동쳤다.
“…….”
시체가 타는 고약한 악취와 함께 그의 몸이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 엘더 리치의 영석을 획득하였습니다.
“이건…….”
그 순간 남궁의 발아래 검붉은 구슬 하나가 떨어졌다.
▶ 영석 안에서 강인한 지배력이 느껴집니다.
▶ 사역 가능한 사령의 수가 증가합니다.
▶ 사용하시겠습니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콰직-!!!
남궁은 영석을 깨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