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으음…… 으으음…… 헉!!”
차의 뒷좌석에서 몸을 꼬며 식은땀을 흘리던 무스타파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일어났나? 악몽이라도 꿨나 보지.”
창밖으로는 아직 어스름이 깔린 새벽녘이라는 것을 안 그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궁의 목소리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꿈에 아버지께서 나오셨습니다.”
“내게 들은 말 때문인가? 주술사라는 녀석이 그렇게 심약해서 어디에 쓰겠나.”
“저는 당신을 원망합니다. 아니, 당신뿐만 아니라 그날 작전을 수행했던 모든 이들을요.”
무스타파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듯 이마에 붙이며 말했다.
“키만 얀…… 그는 진실로 위대한 주술사지만 아버지께서는 그의 방식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체를 사용했으니까.”
“……맞습니다. 당신 말대로 그는 전쟁을 누구보다 바랍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된 전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기를 말이죠.”
“바겐은 그것을 혐오했다.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 이유도 그 때문이지.”
“그런데 결과는 어떻지요? 평화를 바라던 아버지는 죽었고, 카니발이란 말도 안 되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쉬리릭…… 쉬리릭…….
그의 손바닥 안에서 마치 솜사탕처럼 옅은 거미줄들이 돌돌 말려 나타났다.
“꿈꾸던 주술사의 힘을 얻었는데…… 현실은 변한 게 없네요. 결국 그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수밖에…….”
무스타파는 모으고 있던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아버지만 살아 계셨더라면…… 적어도 제 삶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이게 모두 당신들 때문입니다!”
“그게 편하면 그렇게 생각해.”
“……뭐라고요?”
“쉬운 방법이지. 누군가를 탓하는 거. 차라리 인생도 누구한테 대신 살아 달라고 하지 그래.”
하지만 남궁은 그런 그를 위로 하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오히려 차가운 그의 대답에 무스타파는 할 말을 잃은 듯 바라봤다.
“압델 시야프가 죽고 당신들이 승리의 축제를 즐길 때, 내 아버지는 황금가지를 배신한 대가로 버림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는 우리를 돕기로 결정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말이야. 적어도 그는 너보다 나은 삶이었겠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까.”
“허울 좋은 말이네요. 그래봤자 당신도 목적을 달성하니 아버지를 버린 자들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
지금까지 신랄하게 대답하던 남궁도 마지막 무스타파의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다.”
오히려 그의 반응에 엉뚱하게도 무스타파가 눈치를 보는 듯 힐끔 그를 쳐다봤다.
“바겐을 혼자 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잘못이다. 내 가족을 돌보는 것에 정신이 팔려 은인을 살피지 못했어.”
“아니, 뭐…….”
남궁은 잠시 눈을 감았다.
‘키만 얀.’
남궁이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전생에 그와 연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 이능의 힘에 기댄 적도 있었으니까.
냉철한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믿기지 않는 일이겠지만, 남궁은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 없었다.
굿부터 기도, 심지어…….
주술의 힘에도 손을 댔었다.
‘달갑지 않은 일이로군.’
남궁은 씁쓸한 표정으로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ISR을 소탕했던 자신을 키만 얀이 달갑게 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그에게 당한 수모 정도는 아내의 병을 고칠 수만 있었다면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비웃듯 영등포에 발생한 지진.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재해에 손도 쓰지 못한 채 아내를 잃은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었다.
“……죄송합니다. 저야말로 아버지를 내친 자들에게 다시 빌붙어 있으니…….”
“힘이 필요했겠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오명을 씌운 자에게 빌붙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탈칵-
남궁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무스타파. 하지만 결국…… 해답은 남이 주지 않더라.”
그는 천천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경험담이다.”
* * *
끼이익-
시내 안으로 들어온 남궁은 복잡한 골목길을 능숙하게 달렸다.
요즘 같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낡은 나무 문이 있는 건물에 도착한 그는 거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치이이익-
남궁은 품 안에서 조명탄을 꺼내 던졌다.
수도였던 다마스커스엔 전기가 끊긴 지 오래였고 어둠 속에서 붉은 조명탄의 불꽃만이 번쩍였다.
“흐음.”
조명 아래 그는 뭔가를 살피는 듯 보였다.
솨아아악……!!
영혼 병사들이 나타나 부서진 잔해들을 들어 올리자 바닥에 작은 레버가 보였다.
철컥……! 쿠그그그그…….
레버를 돌리자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묘한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아래에서 울렸다.
퉁! 퉁! 퉁! 퉁!!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
이내 부서지지 않은 조명 몇 개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컥.
그때였다.
장전 소리가 들렸다.
“이런, 미친……! 당장 꺼!!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로군!!”
“이집트로 갈 방법을 찾고 있다. 수비대에게 걸리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데…… 당신 도움이 필요해.”
“닥치고 전원부터 내리란 말이야!! ISR 놈들이 오면 어쩌려고 이 새벽에 불을 켜는 거야?! 나 잡아달라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남궁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ISR에 붙어먹고 있는 중이잖아.”
“…….”
“안 그래? 다이스.”
남궁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 빌어먹을.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꼴도 보기 싫은 새끼.”
총구를 겨누던 그는 조명 아래 남궁의 얼굴을 보고는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말했잖아. 이집트로 갈 방법을 찾고 있다고.”
“꺼져. 단물만 쏙 빼먹고 프로젝트 끝나자마자 튄 놈이…… 무슨 낯짝으로 찾아온 거지?”
“어쩔 수 없었다. 너도 알 거야. 수아가 아팠거든.”
“새끼가 꼭 이길 수 없는 카드를 꺼낸다니까…… 알고 있으니까 불이나 꺼.”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ISR과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니까 놈들에게 잡히면 나도 거리에 너부러진 시체 꼴이 될 거라고.”
파직-!
그의 말에 남궁이 레버를 있는 힘껏 밟았다.
“잘도 네가 시체가 되겠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발전기가 멈추면서 방 안을 밝히던 조명이 다시 일제히 꺼졌다.
“그나저나 너 한국에 있던 거 아냐? 아주 영웅이 되셨던데. 왜 뜬금없이 시리아에 있는 건데?”
“일단 움직이는 게 어때? 불은 껐지만 이미 포착됐을 거야. 네 말대로 ISR이 곧 올 거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제멋대로라니까.”
남자는 들고 있던 총을 던져 버리고는 노트북과 전자 장비들을 가방 안에 때려 넣기 시작했다.
“총을 버려도 돼?”
“네가 있는데 그걸 왜 들어. 짐만 되지. 마족 머리를 부수고 다니던 놈인데.”
남궁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황금가지의 주술사와 함께 왔어.”
“설마…… 이집트로 가려는 게 키만 얀을 만나려는 거야? 포기하는 게 좋을걸. 걔들 이미 거기 없어.”
“어째서? 카이로가 그들의 본거지 아니었나?”
“함께 온 주술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말단일 가능성이 높겠군. 아니면 쓰고 버릴 카드에 불과하거나.”
남자의 말에 남궁은 건물 밖에 서 있는 무스타파를 슬쩍 바라봤다.
“……무슨 뜻이지?”
“바로 3시간 전에 카이로에서 대규모 이동이 있었다. 아마도 황금가지 놈들일 가능성이 높아.”
“어디로?”
“위치는 나도 몰라.”
“지구 반대편의 일도 꿰고 있는 네가 그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응. 지금쯤 바다 위에 있을 테니까.”
“뭐?”
남궁은 인상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ISR 놈들 때문에 서버가 모두 다운돼서 나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진 않아. 단지 예상되는 경로로 봤을 때 수에즈 운하를 통해 남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어째서?”
“예전에 내게 의뢰를 한 적이 있거든. 너도 알다시피 카니발이 시작되고 난 뒤 던전들이 생성되었잖아. 동시에 던전이 아니더라도 이따금씩 마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마치 전설 속 동물처럼, 설산이라든지 깊은 해저에 거대수라 불리는 마물들이 종종 발견되고 있었다.
“그들은 인도양에 서식하는 거대수의 위치를 파악해 달라고 했었어. 그러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그쪽을 향할 가능성이 높지.”
커다란 배낭을 들쳐 메면서 남자가 말했다.
“무슨 이유로 놈들을 찾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니까 알려주는 거야. 그놈들…… 예전같이 생각하면 곤란해. 중동을 점령한 ISR과 연관되어 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리고 ISR은 이집트 정부와 손을 잡고 있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지금 부활한 ISR은 이집트가 만든 가짜라는 거겠지. 다에시 아드나니가 이집트의 끄나풀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 무정부상태인 중동을 점령하고, 이집트는 그들을 핑계로 중앙으로 진출할 계획이었겠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어. 놀랄 일은 아냐.”
다이스는 밖을 살피고서 말을 이었다.
“글쎄. 그럴까? 우리가 예측했던 모든 게 방금 달라졌거든.”
“……?”
그가 품 안에서 꺼낸 사진 몇 장을 남궁에게 건넸다.
“봐봐.”
사진은 마치 흑백 사진인 것처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시커먼 안개만이 가득했다.
“조금 전 카이로 타워에 심어놨던 캠에서 찍은 사진이야. 아직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걸 보면 이번 일을 이집트가 꾸민 게 아니란 걸 알겠지.”
“……이게 뭐야?”
“명칭은 딱히 없지만 여기 사람들은 흑운(黑雲)이라고 부르더라. 오늘 새벽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구름이 카이로를 덮친 순간 교통, 통신……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끊겼어.”
그는 말했다.
“그뿐만이 아냐. 도시 내에 생명체가 느껴지지 않아. 도시 자체가 오염됐다는 소리지. 그런데 말이야.”
남궁은 사진을 보며 굳은 얼굴로 다이스를 바라봤다.
“잘 들어. 카이로로 갈 생각은 버려. 거긴 이제 진짜 죽음의 땅이 되었으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헬리오폴리스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그곳은 대통령 관저가 있는 곳이다.
그 말은 곧, 이집트 정부 역시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이집트가 ISR을 부활시켜 황금가지와 손을 잡고 중동을 먹으려고 한 게 아냐. 오히려 황금가지가 정부와 ISR을 이용한 거지.”
“글쎄. 그것도 이상한데…….”
“왜?”
“ISR 건으로 EU의 협조 요청을 받은 상태였어. 그런데 황금가지 역시 내게 ISR을 처리해 달라는 의뢰를 했고 말이야.”
“황금가지가 ISR을? 그럴 리가. 자기들이 만든 세력을 네게 없애 달라고 했다고?”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뭐지…… 이번 일을 꾸민 게 황금가지도 아니란 소리야? 흐음…….”
달그락- 달그락-
남자는 예의 트레이드마크인 두 개의 주사위를 손바닥 안에 굴리며 생각했다.
“그럼 누군가 뒤에 더 있다는 얘긴데…… 계시자일까?”
“모르지. 고민할 필요 없어.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일단 눈앞의 단서부터 찾으면 되니까.”
철컥-
건물을 나와 차 문을 열며 남궁이 그를 바라봤다.
“키만 얀을 찾아. 할 수 있지?”
“내 의뢰비는 비싼데…….”
“의뢰가 아냐.”
남궁은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명령이야.”
순간 그의 눈빛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경례할 것처럼 손을 올릴 뻔했다.
차르릉…….
버리지 못해 배낭에 여전히 달려 있는 낡은 목걸이엔 군번이 각인 되어 있었다.
711부대 소속. 하사 주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