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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123/270)

123화

“EU가 어째서 저희에게 협조 요청을 했는지 알겠네요. 그런 위험한 녀석들에게 성물이 있다면…… 유럽도 절대로 안전하지 않을 테니까요.”

총리와의 만남 이후 접견실을 나온 남궁을 박효주가 배웅했다.

“그런데 아무리 런던에 피해를 입혔다고 해도…… 유럽은 알렉 트라만을 버린 걸까요? 솔직히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긴 합니다.”

“어째서?”

“사용하기 쉬운 카드를 놔두고 굳이 어려운 카드를 쓰려고 하는 거니까요.”

박효주는 접견실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이제야 털어놓았다.

“모르지.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걸지도. 알렉 트라만을 버린 게 EU만이 아닐 수도 있으니.”

“……?”

박효주는 그의 대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그의 모습에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ISR이라니…… 하필이면 골치 아픈 놈들을 상대하게 되었네요.”

“상관없어. 어차피 인간인데. 녀석들의 대한 정보는 있나?”

“음… EU에선 저희가 수락하면 현지 안내인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온 정보에서 유추해 본다면…… 두 가지 정도겠네요. 일단 성물의 형태가 한 권의 책이라고 합니다.”

“……책?”

“네. 그래서 그자들은 【알라의 서(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에 남궁은 코웃음을 쳤다.

“알라? 웃기지도 않는 소리군.”

“아무래도 그 덕분에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비웃는 그와 달리 박효주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알라가 신화 속에서 이슬람의 수많은 신들을 굴복시키고 유일신이 된 것처럼, 자신들에게 성물이 내려진 이유가 세계의 정화를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학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닌 성전(聖戰)이라 말하고 다니는 것이고요.”

“……지랄 맞은 놈들은 어디에나 있군. 기껏 광신교를 막아놨더니 더한 놈들이 날뛰고 있단 말이지.”

그는 성물이 찍힌 사진을 신경질적으로 구겼다.

“하지만 그게 먹히는 게 문제죠. ISR의 전 수장이었던 압델 시야프를 따랐던 오른팔, 다에시 아드나니가 살아 있거든요. 천재 참모라고 불리던 ISR의 공식 대변인 말입니다.”

“천재 참모는 무슨…… 그냥 약은 놈이지. 수장이 죽던 날 이미 국외로 도망쳤으니까.”

남궁은 그렇게 말했지만 과거 ISR을 섬멸하던 당시에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에시의 존재에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작전에 투입되어 희생된 전력의 절반 이상을 모두 놈이 계획한 전투에서 잃었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놈의 전술은 지금 생각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게 모두 그놈이 만든 판이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잘 아시잖아요. 미치광이지만 천재기도 하니까.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아프리카와 중동에 계시자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계시자를 뽑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때였다.

“유일하게 계시자가 존재하지 않는 땅. 그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서 있는 이곳이 성역이니까. 신의 간택을 받는 것이 아닌,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한 시련의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때,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궁은 고개를 들었다.

“무스타파라고 합니다. 남궁 님의 시리아 안내역을 맡았습니다.”

남궁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자를 바라봤다.

헨리넥 셔츠와 멜빵바지는 이곳과 꽤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복장이었지만, 남궁은 오히려 그에게서 풍기는 이형의 기운에 더 집중했다.

“잠시만요. 안내라뇨? 아직 요청을 수락하지도 않았는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분명 요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을 텐데……!’

박효주가 황급히 무스타파의 앞을 가로막았다.

“황금 가지가 안내원이라…… 융숭한 대접이군.”

“오…… 과연.”

무스타파는 남궁의 대답에 환하게 웃었다.

“황금 가지……?”

“아프리카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10명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지. 목 뒤에 있는 문신이 그 증거고.”

“맞습니다. 과연 아버지의 말씀대로네요.”

“……아버지?”

순간 남궁은 다시 한번 무스타파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설마…… 너 바겐의 아들인가?”

“맞습니다.”

“하하, 믿을 수가 없군. 그 꼬마 녀석이 언제 이렇게 큰 거지? 몰라보겠군.”

남궁의 경계가 사라지자 박효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괜찮아. 예전 711에 있을 때 작전을 도와줬던 자의 가족이다. 그 덕분에 ISR을 소탕할 수 있었거든. 당시에 아버지께 많은 도움을 받았어.”

“네. 아버지께서도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 어떠신지.”

“흠…… 글쎄.”

뭔가 석연치 않은 그의 대답에 무스타파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신이 되겠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람들이 믿습니까?”

“죽음과 공포 앞에서 이성적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미 압델 시야프로 인해 각인된 공포는 사람들이 반항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박효주의 물음에 무스타파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부가 사라진 중동 지역을 장악한 ISR은 단순히 유럽만이 아니라 이집트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 순간 무스타파가 남궁의 손을 잡았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뭐?”

샤륵…… 샤르르륵…….

처음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싶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느새 마치 매미의 울음소리처럼 복도를 가득 채웠다.

‘……거미?’

박효주는 순간적으로 밀물처럼 쏟아지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거미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헉……!!”

거미들이 그들을 덮쳤다.

* * *

“여긴…….”

박효주가 눈을 가린 거미줄을 뜯어내자 청와대 복도가 아닌 드넓은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모습에 그녀는 당황스러운 듯 남궁을 바라봤다.

“욱!!”

하지만 놀라워하기도 잠시, 그녀는 코를 찌르는 시체의 썩은 내와 매캐한 화약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처음에는 멋져 보였던 바다도 자세히 보니 파도에 쓸려 떠내려 오는 시체들로 즐비했고, 항구에는 부서진 선박들이 반쯤 가라앉아 있었다.

“라타키아입니다. 시리아 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죠. 지금은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지만…….”

무스타파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공간 도약을 할 수 있는 자가 미카엘 말고 또 있었나? 그럴 리 없는데…….’

남궁은 순식간에 변한 풍경에 놀람보다는 의심이 먼저 앞섰다.

“마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하더라도 아포칼립스가 시작되었다느니, 지옥이 열렸다느니 엄청나게 떠들어댔는데…… 여길 보니 저희는 천국이었네요.”

눈을 돌리는 곳곳마다 보이는 것은 핏물로 붉어진 건물 잔해들과 성한 데가 없는 시체들뿐이었다.

두두두두두……! 콰아앙!!!

멀리서 총성과 폭발음이 마치 그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메아리가 되어 들려왔다.

간간이 굉음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비명 소리는 이곳이 전장(戰場)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단은 자리를 옮기시죠. 이곳의 사정은 보시는 바대로 썩 좋지 않습니다. 안전 가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무스타파는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고는 주위를 살피며 달리기 시작했다.

“안쪽에 차량을 숨겨뒀습니다. 일단 그곳으로…….”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

남궁이 황급히 달리던 그의 옷깃을 잡아 뒤로 당겼다. 굉음과 함께 조금 전 그가 있었던 자리가 시커멓게 변했다.

“저기다!!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이 있다!”

“죽여라!!!”

포탄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자 무장을 한 수십 명의 인원이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차로 가진 못하겠네요.”

“……그러네요.”

무스타파는 불타는 자신의 지프를 보며 난감한 듯 대답했다.

“처리할까요.”

박효주가 품 안에서 단검을 뽑으며 말했다.

“아, 아뇨!! 그러지 마십시오. 여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무스타파는 자세를 잡는 그녀를 황급히 말렸다.

부아아아앙……!!!

그러는 사이 그들을 향해 무장된 차량들이 접근했다.

샤륵…… 샤르르륵…….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순간 무스타파의 주위에 다시 한번 수많은 거미들이 모여들었다.

촤르르륵---!!!

두 사람을 감쌌던 것처럼 수백 마리의 거미들이 차량을 향해 흩어지면서 줄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부르……! 부르르르르……!!!

달리던 바퀴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어느새 들러붙은 거미줄에 시동이 멈추고 말았다.

“뭐, 뭐야?!”

안에 타고 있던 테러범들은 당황한 듯 소리쳤지만 그들의 외침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웁!! 우웁!!!!”

거미줄로 차량을 감싼 거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올라와,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까지 순식간에 고치로 만들어 버렸다.

“가시죠.”

무스타파는 차 안에서 거대한 고치를 떼어내어 바닥에 내려놓고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부우우우웅……!!!

언제 그랬냐는 듯 차량에 들러붙어 있던 거미줄은 사라져 있었고, 그는 익숙한 솜씨로 시동을 걸었다.

“대단하네요. 저렇게 많은 수의 거미를 다루는 건 웬만한 친화력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정령을 다루는 박효주였기에 지금 무스타파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집트의 주술사들은 드루이드와는 결이 달라. 친화력으로 정령에게 부탁을 해서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복속시키는 거니까.”

“그건 더 어려운 일 아닌가요? 사역을 시키려면 강제력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맞아. 친화력도 친화력이지만 정신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지. 남아메리카의 주술사들처럼 토템을 쓰는 것도 아니라 실력으로 따지면 이쪽이 한 수 위야.”

“정말 잘 아시는군요. 다른 술사들과도 연(緣)이 있으신 겁니까?”

“작전을 수행하다 보면 때로는 과학적이지 않은 힘에 의존하게 될 때도 있거든.”

무스타파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버지 말씀대로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힘에 대해서 불신하는데 말이죠.”

그는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 순간, 남궁은 그의 말에 차갑게 웃었다.

“그렇게 내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도 정작 중요한 걸 모르는 것 같은데.”

“……네?”

턱-!

그 순간 남궁은 무스타파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컥?!”

▶ 영혼 감지 Lv3가 발동됩니다.

“네 아버지.”

남궁은 당황한 그의 머리를 뒤로 꺾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에 속삭였다.

▶ 영혼의 눈 Lv3이 발동됩니다.

“지금 네 옆에 있는 거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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