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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93/270)

93화

“말도 안 돼…… 고작 레어 등급의 무기로 감히 내게 상처를 준다고?”

티탄은 자신의 상처를 비집고 파고드는 남궁의 검을 바라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쩌적…… 쩌저적.

하지만 그 순간, 남궁이 입힌 상처 주위가 검게 물든 것을 알아챘다.

“요정독?”

푸욱-!! 서걱……!!!

남궁이 검을 있는 힘껏 밀어 넣자 더욱 깊숙이 검이 파고들었다.

가드드득……!!

검날이 마치 뼈를 긁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악!!!!”

티탄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남궁을 떨어뜨리기 위해 있는 힘껏 팔을 내저었다.

툭-

뒤로 물러난 남궁이 검을 허공에 긋자 처음으로 티탄의 붉은 살점이 섞인 핏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빌어먹을…… 모기 새끼 같은 요정 놈들이 감히 거인족을 습격한 인간에게 힘을 보탤 줄이야…….”

“영역에 틀어박혀 인육이나 씹고 있으니 소식이 늦군. 내 딸이 요정족의 계약자라는 걸 몰랐나 보지?”

“네놈을 죽여 버리고 요정족으로 가 날파리 같은 놈들의 날개를 모조리 찢어주겠다!!”

티탄의 눈이 붉게 변했다.

‘시작되었군.’

그러자 그의 피부가 마치 돌처럼 회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색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둘러싸고 있는 피부 역시 단단하게 변했다.

‘광석화(鑛石化).’

그것이 마력이나 요력이 없는 거인족들이 다른 대리자 일족들을 이기고 최강좌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크르르르르……!!]

거대한 바위 골렘처럼 변한 티탄은 목소리도 2중으로 겹쳐 들렸다.

[조심하십시오!!!!]

규류가 그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30초간 모든 공격이 무효화되고 공격력이 2배로 증가한다. 그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의 공격을 피해야 해.’

그야말로 무적.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반대로 남궁이 가장 기다려 왔던 순간이기도 했다.

‘하나, 둘, 셋…….’

남궁은 시간을 재는 듯 속으로 숫자를 외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하지만 그의 생각을 읽은 듯 티탄은 미친 거대한 포효와 함께 그에게 달려들었다.

다다다다……!!

놀랍게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티탄을 향해 오히려 남궁은 도망치지 않고 뛰어들었다.

[무, 무슨……?!!]

그 광경에 규류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칠 때, 남궁의 모습이 잔상과 함께 사라졌다.

부우우우웅……!!

티탄의 주먹이 목표를 잃고 허공을 갈랐다.

“……쿨럭!!”

사라졌던 남궁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10초.’

【써펀트의 부서진 비늘 조각】이 만들어낸 은신 덕분에 티탄의 공격을 피했지만, 일격이 토해내는 풍압만으로도 그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지를 찢어 먹어주마!!]

우뢰와 같은 목소리에 남궁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조금 전 풍압의 피해가 컸는지 시야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앞이…….’

콰앙-!! 펑! 펑!! 퍼펑!!!

그리고 티탄의 주먹이 남궁을 내려치기 바로 직전, 아스와 영혼 병사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건방진……!!!]

하지만 티탄은 순식간에 영혼 병사들을 짓이겨 버리고 아스의 멱살을 움켜잡아 지면에 내리 꽂았다.

쾅!!!!

‘15초.’

스으으으으……!!

영혼 병사들이 몸을 바쳐 티탄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번 시간은 5초.

지독한 통증을 참아 내며 남궁은 시간을 재었다.

[머, 멈춰!!!!]

규류의 외침과 함께 티탄의 주먹이 다시 한번 그를 쇄도했다.

그 순간,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서 있던 남궁이 기다렸다는 듯 티탄의 주먹을 피하며 그의 영역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

남궁의 눈이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규류가 정확히 티탄의 공격을 피하는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펑! 펑!! 퍼펑!!!

공기를 찢어발기는 내지른 주먹 주위로 물방울들이 터져 나갔다.

[수어(水魚)로군……!]

흔들리는 시야를 【어룡(魚龍)의 보석】으로 대신한 것.

‘20초.’

티탄의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든 남궁은 서서히 돌아오는 시야와 함께 있는 힘껏 검을 찔러 넣었다.

무아경(無我經) - 1서(書)

콰앙!!!

박힌 검을 회전시키자 티탄이 두른 바위들 안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쩌적……! 쩍!!

폭발과 함께 안쪽에서부터 바위들이 갈라져 위로 들렸다.

턱- 쯔즈즈즉!!!

남궁은 상처 부위의 딱지를 벗겨 내는 것처럼 들린 바위 껍질을 양손으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크아아악!!]

억지로 잡아뗀 결과, 바위 껍질과 함께 살점들이 덕지덕지 뜯겨 나갔다.

티탄은 고통스러운 듯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25초.’

[감히……! 이 새끼가!!]

분노에 찬 티탄이 몸을 아래로 꺾어 위로 쳐올리며 남궁의 목을 움켜잡았다.

[사지를 터뜨려 주겠다!!!]

꽈아아악--!!!

티탄이 남궁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하지만,

[……?!!]

놀랍게도, 손가락에 힘만 줘도 터질 것 같은 연약한 인간이 그의 손아귀 속에서 멀쩡하게 버티는 것이 아닌가.

[어, 어떻게……?]

“퉷-”

티탄의 눈에 남궁이 물고 있던 작은 병이 들어왔다.

창그랑……!!

바닥으로 떨어지며 굴러가는 병에 몇 방울 남아 있는 액체를 본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오수(下五水)……?]

비록 5초뿐이지만 복용한 순간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무적 상태로 만드는 진웨이의 연금 포션.

“30초.”

남궁은 티탄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쩌적……! 쩌저적……!!! 콰앙!!

그 순간, 티탄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바위들이 사정없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크, 크윽?!”

광석화가 끝나 원래 목소리로 돌아온 티탄에게서 당혹감이 묻어났다.

그는 아찔한 통증과 함께 손을 풀며 잡고 있던 남궁을 밀어냈다.

“광석화가 끝난 직후 거인족의 피부는 공기에 닿는 순간 극도로 약해진다던데…… 아주 두부처럼 잘 들어가는데? 힘을 줘서 쑤실 필요도 없겠어.”

“이 새끼……!!!”

손바닥에 깊게 박혀 있는 남궁의 검을 신경질적으로 뽑으며 티탄이 그를 노려봤다.

“그래서? 고작 이따위 모기 바늘 같은 검으로 내 목을 베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콰직!!!!

티탄이 신경질적으로 남궁의 검을 움켜쥐자 순식간에 그의 검이 부서졌다.

“……그거 오래 쓰려고 했는데.”

하지만 남궁은 유일한 무기인 검이 부서졌음에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내 기억에 거인족의 무기는 별로 쓸 만한 게 없었던 것 같거든.”

그가 티탄을 바라봤다.

“값은 야차 일족에게 받아야겠다. 알겠지?”

푸욱-!!

그때였다.

“규류.”

그 순간 티탄의 뒤에서 쇄골을 뚫고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손톱이 있었다.

[키킥……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억……?”

흔들리는 눈동자와 함께 그는 고개를 돌렸다.

[어이, 덩치.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전쟁하자고. 그런데 날 그냥 두고 인간에게 한눈을 팔면 쓰나. 내 말은 귓등으로 들었지?]

촤아악……!!

규류가 티탄의 살점을 움켜잡으며 있는 힘껏 팔을 뒤로 잡아당겼다.

“이…… 빌어먹을 박쥐 같은 새끼가…….”

푸슈슈슛--!!!

티탄이 규류를 떼어내려 팔을 들자 그의 목덜미에 분수처럼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쿨럭…….”

하지만 그의 손이 규류에 닿기 전에 그의 무릎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쿠웅-

부들거리는 손이 결국 축 늘어지고 말았다.

[크, 크히히……!!]

규류는 고개를 숙인 거인의 머리 위에 올라타서는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덩실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여봐라!! 다들 보아라!!! 야차 일족의 규류에게 지금 거인의 목이 떨어졌도다!!]

“와…… 왕이시여……!!”

“안 돼!!!”

주위에 있던 거인족들이 규류의 외침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팔각전쟁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대리자는 티탄이다. 전쟁의 규율에 따라 거인족은 수장의 심장을 바쳐라!!!]

“……닥쳐라!!!”

“비겁하게 뒤에서 공격하다니!!”

“네놈을 죽여 티탄의 명예를 지키겠노라!”

거인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규류를 향해 포효를 지르듯 외쳤다.

[……아니, 이 새끼들은 왜 뒤늦게 난리야? 누가 같이 싸우지 말래? 지들이 물러나서 구경이나 처하고 있었던 거면서.]

규류는 달려드는 거인들을 향해 어이가 없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솨아아악---!!!

황량한 바위로 둘러싸인 라칸하임과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향기가 느껴진 순간, 규류의 입꼬리가 씨익 하고 올라갔다.

-거인족의 수장, 티탄의 목이 야차 일족 제2위계인 규류의 손에 떨어졌음을, 요정족의 여왕, 나 메멜이 증인이 되어 알린다.

물에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메마른 땅 위로 푸른 잎들이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네, 네놈들은…….”

“빌어먹을……!!”

번지는 풀숲 위로 피어나는 꽃망울 속에서 수많은 요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족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바득 이를 갈았다.

-왕을 잃은 거인족은 지금 부터 팔각전쟁의 모든 자격을 박탈하며, 오직 대리자 일족으로서 카니발에서 행하는 모든 의무만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마지막 말을 내뱉은 여왕의 목소리가 라칸하임 전역에 울렸다.

-거인족은 지금부터 패자(敗者)로서 왕의 숨을 끊은 야차 일족의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가 어찌 저따위…….”

[꿇어라.]

쿵-!! 쿵-!! 쿠우웅-!!

반발하는 거인족들은 놀랍게도 규류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단박에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킬킬…… 이래도? 승자의 힘이 적용된다는 것은 규율이 나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규류는 자신의 앞에 고개를 숙인 거인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서 말했다.

“말도 안 돼…….”

“거인족이 야차 일족에게…….”

바닥에 처박힌 채로 거인족들은 억울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결국 일을 저지르셨군요.

“그럼. 저질러야 뭐든 시작할 수 있는 거야.”

남궁은 여왕을 향해 말했다.

“팔각전쟁도 카니발도.”

푹-!! 쩌어억……!!

남궁은 부러진 검을 잡아 티탄의 가슴을 갈랐다.

가슴 안쪽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거대한 그의 심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우웅…….

남궁이 손을 가져가자 티탄의 심장이 순식간에 줄어들며 그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잘 가지고 있다가 무휘에게 가져가.”

[네? 드시지 않을 겁니까? 거인의 심장을 먹으면.]

규류는 남궁이 건넨 티탄의 심장을 받아 들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처음부터 무휘에게 줄 것이었다. 대신 심장값은 받을 거라고 전해줘.”

[허…… 그렇게 말씀하시니 벌써부터 얼마나 뜯어내실지 무서운데요?]

“무휘의 심장을 달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남궁의 말에 규류는 피식 웃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라칸하임의 창고에 들러야지. 그곳에 아마 4번째 지옥문의 마물을 상대할 도구들이 있을 테니까.”

[아하, 알겠습니다. 그럼 전 심장을 아버님께 가져가도록 하죠.]

규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부터 열어줘야지. 가긴 어딜 가?”

차원문을 만들려는 그를 향해 남궁이 말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규류가 그를 바라봤다.

“적응 안 돼? 네가 이제부터 거인족의 왕이야.”

[아하!!]

그의 말에 규류는 잇몸을 만개하며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알아서 잘 해라. 그럼 네게 떨어질 것들이 앞으로도 많으니까.”

[암요, 암요. 발등에 뽀뽀라도 해드릴깝쇼?]

“저리 치워.”

남궁은 다리를 부여잡는 규류의 머리를 발로 밀며 말했다.

“부러진 검 대신 쓸 만한 걸 가져가겠다고 했지? 심장을 가져다줄 때 무휘에게 미리 말해놔.”

[아항,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걱정 마십시오. 이 정도의 일을 끝냈는데 뭘 못하겠습니까.]

규류는 맡겨 달라는 듯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그런 그를 향해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묘(劍墓)의 문을 열라고 할 거거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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