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270)

81화

“아오…… 어디서 뒷짐 지고 구경하다 이제 와서는 폼 잡기는.”

창환은 남궁의 손을 잡아 일어나며 궁시렁거렸다.

“자신만만하게 들이대길래 지켜봤지. 그래도 제법이던데. 해군하고 연계까지 해뒀다니.”

“죽지 않으려면 당연한 일이죠. 와이번 때문에 대공 지원을 받지 못하니까요. 함포면 될 줄 알았는데…… 저 괴물 새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남궁이 들고 있던 검을 바라봤다.

“하긴 그걸 잘라 버린 형님이 더 괴물이긴 하네요. 호준이에게 들었습니다. 1번째, 2번째 문의 보스도 형님이 잡으신 거라면서요.”

“별 얘기를 다했군.”

“별 얘기라뇨. 지금 생각해도 그 정체를 호준이를 통해 들은 게 열받는데. 명훈 형이야 그렇다 쳐도 당연히 그 곰 같은 녀석보단 제가 낫지 않습니까.”

“그런 소리를 하니까 너희가 만나면 맨날 으르렁거리는 거야.”

자리를 털고 일어선 창환이 입술을 씰룩였다.

“주위에 와이번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등을 맡겨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그의 말에 창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그 순간 남궁의 모습이 사라졌다.

“……!!!”

육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

창환은 말로만 들었던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자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퍼억---!!!

남궁이 잘려 나간 골렘의 다리를 있는 힘껏 발로 내리쳤다.

콰직!!

파스스스스!!!

날아간 녀석의 다리가 얼굴에 꽂혔다.

휘청거리는 놈을 놓치지 않고 남궁이 더욱더 속도를 높여 녀석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끼에에엑!!!]

하늘 위에서 날아다니던 와이번들이 남궁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남궁은 오로지 골렘에게만 집중했다.

퉁-!!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창환의 총이 불을 내뿜었다.

쿵!! 콰가강!!!

남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골렘을 향해 달려갔고, 하늘에선 와이번들이 맥없이 추락하며 바닥에 처박혔다.

[01 : 08 : 00]

남궁은 시계를 힐끔 바라봤다.

‘너무 여유를 부렸나.’

적색지대에서 써펀트가 소환되기까지 앞으로 1시간 남짓. 생각지 못한 창환의 합류로 전투를 살펴보던 그는 조금 속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우우웅……!!

그 순간 남궁의 머리 위로 골렘의 주먹이 떨어졌다.

“형님!!”

스코프를 통해 보던 창환이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골렘의 주먹이 떨어진 곳에 있던 남궁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환영을 본 것 같은 광경에 그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타다닷!!

지면을 때린 골렘의 팔 위로 들리는 가벼운 발소리.

‘잔상……?’‘

연기처럼 흩어진 남궁의 모습은 어느새 골렘의 팔 위에 있었다.

지잉!!

찰나의 순간, 골렘의 눈동자가 빛났다.

“자세 낮춰!!”

남궁이 외치자 창환은 황급히 부서진 콘트리트 잔해 안으로 몸을 틀었다.

콰가가가가가!!!

골렘의 입에서 날카로운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주위에 쌓여 있던 컨테이너 박스들이 마치 종잇장 날아가듯 찢겨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쿨럭!”

창환의 입에서 붉은 핏덩이가 터져 나왔다.

“젠장.”

그는 입가를 닦으며 묵직한 통증에 다리를 내려다 봤다. 허벅지를 관통한 부서진 철근이 보였다.

꽈악-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는 숨을 토해내며 감각이 없는 다리를 이끌고 총구를 들어 올렸다.

타아아앙--!!!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의지처럼 총구가 불을 뿜었다.

* * *

“보고드립니다. 리버풀 항구를 포기하고 방어선을 세인트 헬린스까지 후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상하이 상공에 와이번들의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지원은 불가합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대도시들이 마물에 의해 괴멸되었습니다! 남미 지역의 소환된 마물들이 도시를 지나쳐 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국에서 쏟아지는 교신들.

청와대에서 보고를 받던 서재욱 총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낮게 숨을 토해냈다.

“국내 상황은?”

“군산 시민들은 대전 쪽으로 무사히 이동하였습니다. 현재 대전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마물과 대적중입니다.”

“대구 역시 포항 쪽에 지원을 나갔던 항공대대들이 다시 집결하여 와이번과 전투 중입니다. 현재까지는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지원은?”

“서울에서 선별된 능력자들이 곧 대구에 도착하게 되면 군 병력과 함께 방어선을 전진하려 합니다.”

박효주의 보고에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저희들의 상황은 낙관적입니다.”

“하지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 마물과 싸우고 있는 장병들부터 대피를 하지 못한 시민들까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네. 통탄할 일이지.”

“생명의 가치를 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희망조차 없는 곳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총리와 달리 박효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콰앙-!!

“보, 보고드립니다!!!”

그 순간,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인도 정부에서 온 급보입니다. 현재 뉴델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어 복구 불가능! 마물의 진격을 막기 위해…….”

숨을 헐떡이는 보좌관은 창백한 얼굴로 총리를 바라봤다.

“원폭 사격을…… 실시합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 * *

[크아아아아!!!]

주위를 폭사시키며 포효를 지르던 골렘은 주위에 너부러진 컨테이너 박스들을 있는 힘껏 내던지기 시작했다.

안에 적재되어 있던 화물들이 충격에 여기저기 튀어나갔다.

츠으으으…….

남궁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아스의 전신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력한 골렘의 포효에 마치 꺼진 촛불의 연기처럼 아스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사령들이 타격을 입은 듯 크게 흔들렸다.

“…….”

남궁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검을 쥔 손을 풀고서는 자신의 손목을 검으로 가볍게 그었다.

▶ 검이 사령자의 피를 삼킵니다.

▶ 검날에 혼기(魂氣)가 서립니다.

검날에 자줏빛의 날카로운 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꽈악-

동시에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자 자줏빛의 오러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타닥……! 타다다닥!!!

남궁이 총탄처럼 빠르게 튀어나갔다.

콰앙!!!

골렘이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주먹을 내리쳤다.

부서진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다.

부우웅!!

아스가 주위에 떨어져 있던 시멘트가 박혀 있는 철근들을 골렘을 향해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골렘은 날아오는 잔해들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비틀거리며 남궁을 향해 걸어갔다.

콰아아아아아……!!!!!

내지른 주먹과 남궁의 검이 맞부딪혔다.

두 힘이 부딪히는 순간 유례없는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촤아아악……!

남궁의 몸이 그대로 밀려났다.

쿠그극!! 크그그극!!

검을 지면에 박아 속도를 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미터 뒤로 미끄러졌다.

주륵-

무릎을 꿇은 채 서 있던 그의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우득……! 우드득……!!

팔과 다리, 전신의 뼈가 우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요동쳤다.

[크르르르…….]

골렘은 숨을 내쉬며 남궁을 바라봤다.

“퉷-”

입안의 핏덩이를 뱉어내며 남궁은 자세를 다시 잡았다.

[크오오오!!!]

녀석은 화가 돋을 대로 돋았는지 자신의 발아래를 있는 힘껏 내려치지 시작했다.

콰앙!!

내려친 곳은 발아래였는데 폭발은 남궁의 발아래에서 일어났다.

용암이 분출하듯 그가 있었던 자리가 충격파로 폭발이 일어나며 먼지구름이 일었다.

놈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거대한 구덩이가 연신 생겨났다.

꿀꺽-

창환은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뿌옇게 피어오른 분진 속에서 순식간에 폐허가 된 부두는 정적이 흘렀다.

지이이잉…….

용케 부서지지 않고 남은 마지막 드론의 프로펠러 소리만이 들릴 뿐.

푸스스스스…….

솟구쳤던 연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콰앙!!

그 순간, 골렘의 몸이 휘청거리며 먼지 구름 속으로 내질렀던 주먹이 위로 튕겨 올라갔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녀석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

가라앉았던 먼지 속에서 날카로운 소용돌이가 일더니 순식간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강한 놈들이 말이야.”

움푹 파인 구덩이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남궁.

우드득-

그는 목을 꺾으며 너덜너덜해진 외투를 벗어 던졌다.

“빈집을 터는 건 좀 치사하지 않나?”

단순히 마물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적색지대란 미끼를 풀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을 짠 위상들을 향한 일침이었다.

“……형님?”

창환은 드러난 남궁의 모습을 보며 조금 놀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쉬이익…….

남궁에게서 들려오는 숨소리는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섬뜩한 느낌.

창환은 그를 바라봤다.

남궁의 얼굴은 마치 위장 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것처럼 새하얬고, 눈과 뺨에는 검은 줄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크릉…….

그가 입꼬리를 열자 맹수의 것처럼 기다란 송곳니가 드러났다.

[크르르르르…….]

경계를 하는 듯 골렘이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남궁을 향해 다시 걸어가려 했다.

그 순간,

쩌적……!

놀랍게도 조금 전 신나게 공격을 하던 놈의 손등이 오히려 금이 가기 시작했다.

[크륵…….]

이미 한쪽 다리를 잃은 녀석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듯 뒤로 물러섰다.

저벅- 저벅- 저벅-

분명 두 사람의 보폭이 다를지언대, 신기하게 물러나는 골렘과 남궁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았다.

“후우…….”

남궁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아래로 쓸어 넘겼다.

넘버링 88.

이름 : 귀면피(鬼面皮)

등급 : 유니크(최초)

▶ 야차 일족 최초의 수장, 무량의 얼굴을 본떠 만든 가면.

▶ 착용자의 모든 신체 능력을 증폭시킨다.

▶ 착용자가 야차의 술법을 익혔을 시 술법의 능력을 사용 가능한 한계치까지 극대화시킨다.

대리자 일족의 2번째 혜택.

감았던 눈을 뜬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파앗……!!!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남궁의 모습이 사라졌다.

[크아아아아!!]

골렘이 두려운 듯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콰가강!!

하지만 그 순간 나타난 영혼 병사들이 마치 놈을 포박하듯 양팔과 허리, 그리고 남은 다리를 움켜잡았다.

턱-

남궁이 골렘의 어깨를 밟고 놈의 목덜미 뒤로 올라탔다.

“후읍.”

그가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움켜잡은 검날에서 폭발적인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아경(無我經) - 1서(書)

콰아아아앙--!!!

남궁의 검이 골렘의 정수리에 정확히 꽂혔다.

[케에에엑!!!]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골렘은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 아이언 골렘을 처치하였습니다!

▶ 소환된 모든 골렘들의 작동이 멈춥니다.

골렘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과 함께, 발버둥 치던 녀석이 끝내 힘을 잃고 멈췄다.

서걱-

하지만 쓰러진 골렘의 시체 위에서 남궁은 다시 한번 검을 그었다.

퉁, 투투두둥……!!

반토막이 난 골렘의 머리와 몸이 완전히 분리되었고, 튕겨 나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콰직……!!

그 순간 남궁은 있는 힘껏 놈의 머리를 밟았다.


0